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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 달달북다 7
예소연 지음 / 북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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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

p.31 "그 공책, 어른들한테 갖다줘."
"무슨 어른?"
"선생님이든, 경찰이든, 부모님이든. 그럼 알아서 해결해줄 거야."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데."
"동미야, 어른들은 이 상황을 절대로 바꿀 수 없어.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이 공책을 우리 부모님이 보게 되는 거야."
이석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제야 내가 오롯이 '타깃'이 되지 않은 입장에서만 이 상황을 생각해왔던 걸 깨달았다.

p.34 "동미야. 남을 깎아내리려고 안달 난 사람 얘기는 귀담아듣지 말자. 우리 그러지 않기로 하자."
단호한 이석진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른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단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이석진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고정하더니 내게 흘리듯 말을 툭 내뱉었다.
"좋은 냄새 나. 너한테."

p.46 정말 이석진은 명태준이 밉지 않은 걸까. 맨날 맞고 괴롭힘당하면서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결코 내가 가닿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p.54 “화분이요."
"응? 무슨 화분?"
"명태준이 할머니가 아끼던 화분을 떨어뜨렸다고 했어요."
"아, 그거?"
"실수였대요."
"다 실수지. 그맘때는. 근데 어떤 건 돌이킬 수가 없어. 그게 문제야."


로맨스X하이틴을 다루고 있는 만큼 학교가 공간의 배경이 되는데 주요 인물은 서동미, 이석진, 명태준이다.
서동미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돌보고, 학교 내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게 지낸다.
이석진은 교내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교내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소위 권력을 가진 명태준에게 타깃이 되었으나, 크게 대립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명태준이라는 인물로 인해 이석준과 서동미 사이에 접점이 생겼고, 멀리서 단편적으로 서로를 같은 반 친구 정도로만 알던 관계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동미는 교내 분위기를 흐리는 명태준이 사실은 그 역시 나름의 격정의 고민을 지니고 있는 약한 인간상을 가진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님의 작업 일기에서는 남자 주인공을 이석진으로 할지, 명태준으로 할지 고민하셨다고 적혀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남자주인공을 이석진으로 해서 너무 좋았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명태준과 대립하지 않는 이석진에게 나약하고, 겁이 많다고 하겠지만 교내 분위기를 해치는 명태준이라는 인물에게서 이석진은 나름 스스로 중심을 지키고 상식적인 태도를 가진 그런 담담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명태준이 타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던 그 순간은 가만히 있지 않고 받아치던 모습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좋은 냄새 나. 너한테” 라며 동미의 마음을 흔들던 이석진의 멘트는 ‘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 독자들을 석진맘으로 만들던 순간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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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조용히 해.
지철 지음 / 스토리온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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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조용히 해.

p.268 그때 알았어요.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건 은쑤도 통훈도 아니라 나라는 걸요.
“통훈아… 용서는 사과하는 네가 아니라… 사과받는 내가 하는거야!”

곧 결혼을 앞둔 나비는 결혼을 준비 중인 남자친구와의 잠자리가 메스껍다.
p.28 잠자리 거부는 이혼 사유야.
쉬잇! 나비야! 조용히 해!
내가 무슨 짐승ㅅㄲ가 된 기분이야…

친한 친구들한테 고민을 이야기 하지만,
p.15 정신차려 최나비 너 37살이야. 곧 폐경이야.
왜 이렇게 철이 없어
그런데 나비야 싸울 때 네 잘못도 있을거 아냐.

나비에게는 사실 과거 대학시절 트라우마가 있다.
트라우마와 동시에 집안에서 자라온 환경과 함께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그 모든 것이 점점 나비를 숨도 못 쉬게 한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준 것은 남자친구도, 친한 친구들도, 가족들도 아니다.
갑자기 어느 날 알게 된 아파트 친구 은쑤다.

하지만 은쑤의 여자친구는 과거 대학시절 나를 힘들게 했던 배에 선배다.
온 사방이 나비의 숨구멍을 조이는 거미줄인 곳에서 나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중요한 것은 이제 나비는 더 이상 조용히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는 내내 내가 나비인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던 작가님의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은 우리모두가 처했던 상황은 다르겠지만 나비였던 적, 지금 이순간에도 나비와 같은, 또는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비가 번데기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모두가 나를 향해 조용히 하라고 하는 이 수많은 끔찍함 속에서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마주하여 더 이상 조용하지않으려는 나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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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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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p.105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또 그 알아듣지 못할 말을 무조건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들어주었다. 사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법이다.

p.263 혐오는 너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눈앞의 화면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이, 더 정확 히 말하자면 자신이 추상화한 개념의 모습이 그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화면을 본다는 것은 자신도 지금껏 알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몰랐던 내 마음속에 있는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p.345 "우리는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습니다. 죽고 나면 땅으로 돌아가서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됩니다. 그게 우리 방식입니다."
참나무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게 원래 자연의 방식입니다."

p.365 그러나 씨앗은 살아남을 것이다. 수많은 씨앗 중 하나 정도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아서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것 이다.
하나만 있으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 하나를 위해서, 우리는 기다린다. 지평선 너머에서 더럽고 거대한 기계의 날개 소리 대신 꽃가루가 날아오는 날을.
바람을 타고 우리가 뿌린 씨앗이 춤추며 돌아오는 날을.
그런 날이 정말로 온다면, 바로 그날 세상은,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땅과 바다는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고, 사람과 자연은 햇살 속에 하늘을 향해 함께 자라나게 될 것 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영생불사 연구소는 98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마지막 부분이 아니었다면 일상적으로 흔한 연구소, 연구소의 98주년 행사,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이겠거니 하지만 사실은 영생불사 연구소의 직원들은 진짜 영생불사하는 사람들이었고, 과장이 말단이라 하였을 때도 의아하면서도 그럴 수 있겠구나 했지만 과장 밑으로 영생불사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것이었다.

p.48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지고 가야 할 먹고사는 걱정, 밥줄에 대한 집착이 무섭고, 그 집착이 앞으로 198주년, 298주년, 398주년•••··이 지나도록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그리하여 나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연구소라는 곳에 발목 잡힌 채 끝없이 허덕여야 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슬 프고 무서웠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영생불사를 하건 안 하건, 자기 생계를 자기 손으로 마련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와 같은 처지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딱히 위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영생불사하는 사람이어도, 영생불사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똑같다는 것은 얼마나 웃긴가.

모든 8개의 단편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Maria, Gratia Plena] 였다.
마약범죄를 옳다고 미화하는 것도, 과거가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혼자만 살아남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서 폭력이란, 그것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얼마나 이다지도 잔인한 것인지 보여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라 생각하면 마약범죄를 일삼은 범죄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를 떼어놓고 이 사회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 모두 과연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곱씹어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p.320 신이 남성이라면, 여성이 느끼는 일상적 위협을 절대로 이 해하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상 속에서 일어난 위협은 삶을 송두리째 뽑히는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맞닿아있는 사회적 문제를 때로는 직관적으로, 때로는 작가님만의 감각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질문과 생각들을 남기게 한다.
소설들을 읽으며 공포를 넘어 참담하지만,
씨앗 하나, 그 하나가 희망을 바라보고 애도하고 다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너의 유토피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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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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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p.23 달이 나지막이 입을 뗐다.
"원래 삶은 완벽하지 않단다."
처음이었다. 달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p.40 짐승과 인간이 언제까지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 지켜 보고 싶었다. 그 끝을 보고 싶었다. 꼭 보아야만 했다. 달은 처음으로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 생겼다.

p.134 카나를 남겨 두고 온 슬픔과 우두머리가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꾸만 달을 미끄러지게 했다. 달에게 매달린 아이도 아슬아슬한 곡예사 같았다.
'지금 발밑에 흐르는 물만 진짜야.' 달의 귀에 카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생각이 많은 달을 핀잔하며 카나가 했던 말이다. 궂은 날씨에 거칠어진 물살에서 연어를 사냥할 때는 자신의 발밑만 봐야 한다는 늑대들의 말이었다. 달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 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달이 지금 해야 하는 건 이 벼랑길을 걸어 내는 것뿐이다.

이 이야기는 사라지고만 싶었던 달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갓난아이와, 내가 낳은 새끼를 얼마 전 새끼를 낳은 다른 암컷 늑대의 굴에 놓고 떠난 늙은 늑대가 함께하는 여정으로 시작한다.
전혀 상상이 되지도 않는 이 조합은 달로 하여금 존재의 이유가 된다.
늑대 카나는 아이를 만난 그 순간부터 정해진 일인 것처럼 아이를 보듬고, 먹이고, 키우고 더 나아가 스스로 사냥을 하는 법과 어미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살아가는 방법과 삶의 교훈을 다 주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달은 짐승과 인간이 언제까지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처음의 그 관찰자의 입장에서 어느새 아기와 늑대 카나와 함께하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본격적으로 아이를 위해 달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힘들어하는 달에게 카나는 “도와줄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고 한다.

p.80 음식들을 정리하는 달을 보며 카나가 말했다.
"도와줄까?"
달이 대답 없이 카나를 빤히 바라봤다. 머쓱해진 카나가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가슴속에 뾰족하게 서 있던 뭔가가 톡, 하고 꺾였다. 달은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달은 도움을 받는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간들은 언제나 달을 향해 도와 달라고 부르짖을 뿐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돕겠다고 나서다니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달과 카나는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서로에게 든든한 동료가 된다.

아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카나의 희생도, 부서진 달의 희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달이 부서지고 깎여나가면서도 아이를 보호하던 그 마음 그대로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계속 아이를 비추고, 카나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가르침은 여전히 아이의 삶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너의 용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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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 부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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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법을 이야기하면 차갑고, 무섭고, 딱딱한 감정밖에 안 느껴지지만 법과 사랑을 묶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천수이 변호사는 법이야말로 사랑없이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

법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한 곳.
함께 손을 잡고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곳.

천수이 변호사가 말하는 법은
법이라 쓰고 울타리라 읽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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