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 달콤한 맛 1318을 위한 청소년 도서관 철학통조림 2
김용규 지음, 이우일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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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즘 철학자들을 대강 버무려 놓은 책들이 범람하여,
이 책도 그럴 것 같아,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으나,
청소년들이 읽기에 어떨까 싶어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소장할 만하다.

2.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가독성 측면에서 잘 읽힌다. 중학생 딸과 나누는 대화 형식이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물론 멈춰서서 생각해봐야 하는 굵직굵직한 철학적 난제들이 너무 술술 읽히는 것도 문제지만, 읽히지조차 않는 글보다는 낫다.^^

(2) 술술 읽히는데도, 내용이 아주 알차다.
관련 테마에 대해 고민해 본 철학자들이 다수가 등장한다.
시기적으로는 비교적 현재까지, 그리고 범위에 있어서는 생물학자들까지 말이다.
예를 들어, '행복'에 관해서는 알랭, 움베르토 마투라나, 야콥 폰 윅스퀼, 바바라 프레드릭슨...
등이 인용되고 있다. 잡화점식 나열은 아니고, 유기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의미 있는 연구결과들이 '행복이나 쾌락'이라는 테마 아래 잘 버무러져 있다.


(3) 철학자들이 다수 인용하여
누구는 뭐라고 했다더라~~~ 누구는 뭐라고 했다더라~~ 라는

이야기만 모아놓으면 공허하기가 쉽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한 것이 뭐가 어쨌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독서자에게 들면, 의미 있는 독서가 되기 힘들다.

이 책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갖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문제의식은 '딸'의 질문으로 던져지는데,
그 질문들이 충분히 청소년기에 자신에게 던져보았음직한 질문들이다.
"시험 볼 때, 부정행위를 하면 왜 안되지요?"
"학교 다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왜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이 뭘까요...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걸까요"
"좀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게 뭐가 나쁜가요?"
이런 질문들 말이다.

질문들을 해 보지 않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상황이다.
저런 질문들을 표출할 때, '쓸데없는 생각말고 공부나 해~~'라고 묵살하지 않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필요할지 모른다.
같이 대화해주고, 자신의 질문에 대해 충분히 고뇌하도록 해 주는 그런 어른 말이다.
역량 부족으로 같이 대화해 줄 수 없다면, 이 책을 선물해 주는 것도 좋으리.



3. 이 책은 아이들용으로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우리집은
어른이 더 잘 보고 있다.
집에 가져다 놓은 철학책들 중에,
P(30대임)가 유일하게 즐겁게 완독한 책이 이 책이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 "철학이란 별거 아니군요. 평소에 제가 고민하던 거를 다들 고민하며 사네요"란다.^^

4. 개인적으로 나는 매콤한 맛보다 달콤한 맛의 통조림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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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story 자이스토리 언어 비문학 독해 - 수능 16개년 + 평가원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 2009
수경 편집부 엮음 / 수경출판사(학습)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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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수험생도 아닌데 이런 책을 종종 산다.쯧쯧^^

요사이는 인터넷을 뒤지면 금방 출력할 수 있지만,
여기저기 두고 보기에 편하니까 꼭 책으로 사게 된다.

말 그대로 잡지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처럼 손닿는데 여러 군데 두고 심심하면 읽는다.
(잡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미용실이나 까페에 가면 널려있는 잡지책도

다 이런 책들로 바꿔주고 싶다.^^ - 이 견해에 대해서는 미용실 주인도, 언어영역 출제위원도 모두 성질낼지도 모르겠다^^ )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문제가 발표되면,
온나라가 그 문제를 토론하느라고 재미있어진다지만,
그런 의식에 비하면
이런 짓은 조금 멋없는 의식이긴 하다.
오지선다형 수능시험 자체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무슨 기다리던 신간서적을 구입하듯 이런 책들을 사주고 싶어진다.
물론 문제집 만드는 출판사에서는
저작권료를 내지도 않고, 

공공사업이라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원작자들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돈 돈벌려고 만든 책이지만

내 딴에는  거기에 실린 언어영역 지문들을 겨냥한
'가여운 성형미인 사랑하기'이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을 읽노라면,
'성형미인'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좀 섬뜩한 단어를 사용하자면,
'칼질(?)'을 많이 당하기 때문이다. 
칼질 솜씨가 너무 훌륭한지라
정교하고 깔끔하다 못해 정내미가 뚝 떨어질만한 글.
피천득이 그의 글 '수필'에서 말했던 '약간 옆으로 꼬부라진 연꽃잎'같은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은 살아남지 못하는 글.
흠이나 파격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탄생단계부터 출제위원 수십 명이 달려들어 고쳐대기 때문에
원저자가 내뿜었던 독특한 문체도, 은밀한 의도도 온전히 살아남아 있지 않은 글.
바로 그런 글이 수능 언어영역 지문 아니던가.....
게다가 오지선다형 문제 서너 개가 업보처럼 매달려,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글.
그 철저한 목적성 때문에 차라리,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사이버미녀'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 '사이버 미녀'라고 할만한 글들이
세상에 출시(?)되는 순간부터는 더욱더 가여워진다.
원래 의도되었던 독자인,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점수라는 것이 주는 긴박감 때문에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쑤욱~ 읽고 아주
서둘러 문제를 푼다.
다시 읽는 경우라도 문제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지
이 글을 붙잡고 다시 대화하고 어루만져보기 위함은 아니다. 
수많은 학원 선생들은 흠이 없나 잡아내려 안달이다.
그리고 비슷한 것들을 복제해 내느라고 또 안달이다.
또 부분부분 분해를 해서, 이게 이럴 수밖에 없는 조합이야...라고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목적으로 대하는 일은 드물고, 수단으로 대한다.

그러니...
누구 하나 순정을 가지고 사랑해 주지 않는 사이버미녀랄밖에...^^



내 인생의 여러 부분을 망치게 한 것 중의 하나가

나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동정심이지만,
그 동정심 때문에  이 사이버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기획자들이 엄선한 좋은 지문들이 재료인만큼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우선,

이 사이버 미녀는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고 이성적인 말투와 정보 흐름들이
나같은 감상적인 인간들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또, 
이 사이버미녀는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언어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아서,
'우와~ 세상에 이런 것도 있었어? 와~ 이게 이런 거였어?' 라는 기쁨을 준다. 
 이번 수능시험에서는 음악에서 사용되는 '반복'에 대해서 다룬 글이 나왔다.
평소에 생상의 '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를 들을 때, 제목을 보면서도
론도가 뭔지도 몰랐는데, 이 지문을 읽으면서 '론도'가 뭔지 알게 되었다.
(근데...이 론도가 그 론도가 맞는 걸까?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견문이 넓은 친구는 공자님께서도 좋은 친구라도 하지 않으셨던가^^




보통.... 지식인들은 아는게 힘이라서 그런지 늘 자신만만하시
던데,
이 미녀는 아는게 많다고  해서 신랄하지도 않고,
인생사를 깊숙하게 다루어서 상대방을 기죽이지도 않는
다. 못한다고 해야겠지. 
특정 견해를 좀 깊이 다루기라도 할라치면
사이버인간
의 입에서 '인간성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이버인 주제에 인간에 대해서...뭘 안다구 난리야...'라고 벌떼처럼 일어나는 현상에 버금가는 소란이 생기테니까 말이다.
'여러분~~ 이런 것들도 있답니다'라고 말한 뒤에
대부분이 사람이 인정할만한 수준의 선에서 입을 다무는 과묵함은
목적론적으로 탄생된 그녀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겸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미녀와의 대화가
무미건조 일색은 아니다.
행간을 잘 읽어보면, 이 미녀가 입을 다무는 그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는 기쁜 부담(?)을 맛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올해 지문에는
개별자 수준과 집단 수준의 인과의 관계가 개연적이냐 필연적이냐
의 문제를 다룬 글이 실렸다.
나는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철학사에는 심한 논쟁거리였던 모양인가 보다. 
사이버미녀는 역시 그녀답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정도에서 언급하고 만다.
"둘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이라는 견해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어요."
이렇게만 말하고 끝이다. ^^
그 다음은 독자의 몫이다. 
사이버미녀가 스트레스와 병의 원인을 예로 든 것은
이 논의가 '특정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님 말구...^^
하긴 어떤 두 현상을 단순 상관관계로 볼 것이냐, 인과관계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철학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 때문에 대형 소송까지 생겨나곤 하는 마당에,
이것이 어찌 이론만의 문제겠는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두 개의 팽팽한 견해가 있구나...까지만 생각하고
이 글을 덮어버린다면,
이 가엾고 아름다운 사이버미녀를 사랑하는 소이가 아닐테다...
이 사이버 미녀는 눈빛으로 늘 말한다.
'당신의 사고를 좀더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만들어보세요'라고.
그녀의 눈빛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읽고 나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제도만 고치면 어떤 현상이 당장 좋아질 것이라고 떠벌이는 단순무식한 짓을 좀 덜하기는 할텐데 말이다.

또 정서적인 측면의 강점. 
수능 언어역역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선보인다.
 내가 아는 두 명의 훌륭한 분들이 문학교육폐지론을 주장하시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흥분하지 않고, 일단 접는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에서 발췌하는
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참...할 말이...많기는 하다...
나는 문학 작품에 대해서 거의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문학은 생명체이다^^)
문학 작품에 오지선다형 문제를 매달아 놓는 것에 대해 서글픈 심정을 가지고 있다.
문학과 오지선다형 문제의 결합이란 정말이지...
결혼하면 안 되었을 두 사람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는 듯하다.
서로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려주지 못하는 사이.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하는 사이.T.T 

그러나, 그런 결혼 생활도 본인들의 극도의 노력과 양보, 주위 사람들의 섬세한 도움이 있다면, 뛰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가 가진 미숙과 허물은 감추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수능 지문에서는 김광규님의 '나뭇잎 하나'라는 시가 실렸다.
읽으면서 맞아맞아..끄덕끄덕~~ 했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이 이런 느낌을 이해할지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은 저 시에 나오는 '연록색으로 부풀어 나오는 신록'에 더 가까울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산 다음에야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훈련된 대로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겠지....
'과거의 상황을 환기하며 화자의 정서를 드러낸다'에 동그라미를 하겠지.
하지만 인생 본연의 고독을 절감하고 있었던 아이들 중에
이 시가 그냥 마음에 들어 좀더 자세히 읽고 싶었다면,
32번 문제의 도움을 좀 받았을게다.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

- 김광규, 「나뭇잎 하나」 -

32번 문제 (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①1연, 2연에서 유사한 구조의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화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1~3연에서 ‘골짜기’→‘길’→‘대추나무’→‘나뭇잎 하나’로 시적 대상이 바뀌면서 화자와 대상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③1~4연에서 ‘그러니까’, ‘문득’, ‘마침내’와 같은 부사는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인식에 주목하게 하고 있다.
④4연에서 ‘저마다 한 개씩’이라는 시구를 반복함으로써 세상과 화합할 수 없는 존재의 고뇌를 강조하고 있다.(적절하지 않은 진술)
⑤4연에서 화자는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자연물의 변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암튼...사이버 미녀...수능 언어영역.

이 정도면,
사랑받을만하고

온 국민의 교양읽을거리~!로서 완벽하고,
미용실에 있는 잡지책을 다 대체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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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이케가야 유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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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이 기초과학 부분에서 종종 노벨상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가 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이런 강의를 듣는다면,
얼마나 사유의 폭이 넓어질 것인지....
정말 질투가 난다.^^
프로젝트 형식이긴 하지만 
고등학생 8명과 뇌과학자가 나누는 대화와 열린 강의 형식의 이 책은
과학에는 영~ 스키마를 갖지 않고 있던
문과 기질의 나도 아주 쉽게
현재까지의 뇌연구의 성과를 이해하게 한다.
가독성 측면에서는 별을 10개 정도 주어도 될 듯 싶다.
물론 담긴 내용도 점수를 많이 주고 싶다.
뇌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바로 닿아있다. 

 
2. 이 책을 다 읽자마자, 소크라테스 할아버지에게
이 책을 읽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몸과 마음을 그렇게 철저하게 나누어 사유하시던 분께서
뇌의 생리적 측면과, 사람 마음의 심리적 측면이
이다지도 밀접하다는 것을 아시면,
그 혼란을 어찌 해결해 나가실지..궁금해진다.
 
3. 이 책에 나오는,
뇌가 세밀한 분업형태로 일을 하고, 심리보다는 생리적인 현상이 먼저라는 연구결과와 
그래서 쥐를 원격조종으로 움직였다는 실험 결과를 읽고 나면
영화 매트릭스의 상황은,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 내가 겪는 모든 현실은, 누군가 내 뇌를 통속에 넣고 신경세포를 조작하여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상상.
'이성의 미궁'이라는 책에서 읽은 '통 속의 뇌'이야기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그럴 것 같은데)
지금, 내가 '통 속의 뇌'상태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직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4. 동물과, 복제인간, 인공지능로봇, 인간의 경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또한 상당히 혼란스러운 문제다.
심리나, 감정이나, 의지가 인간 행동의 선결조건이 아니라
뇌행동의 부산물이라는 연구결과는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인공지능로봇과 인간과의 경계가 무엇이냐를 생각케 한다. 
나는 그것이 이 책에 나온 '애매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이나 또는 컴퓨터의 CPU와는 달리
'유연성'을 갖는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애매하게 기억하고
주요 특징만을 모아 범주화하고, 맡은 기능들이 있지만
아주 '유연하게'대처한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하고 창조해 내나 보다. 
또, 그래서 다른 모든 것들도 거의 그렇지만, 특히 인간에 대한 연구는
'환원주의식 연구'(부분을 분석해내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로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나 보다.


5. 또, 이 책은 저자가 학문을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도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사고에서도 인간은 잘 모르는 것을 멋대로 상상해서 보완하고 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아마 이렇게 되어 있을 거야"하고 멋대로 상상하고, 무의식적으로 "아하, 이렇게 생각하니까 앞뒤가 척척 맞네"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과학자도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야. 사실은 과학적으로 알지 못하면서도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믿고 더구나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것을 과학자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개념이 뿌리에서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뇌를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이 애초에 오만하고 어리석은 도전이 아닌가, 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뇌를 이해하는 것도 우리 뇌를 통해서 하는 것이잖아. 뇌가 간단한 실험으로 해명될 정도로 단순한 것이라면, 그런 수준의 뇌를 사용해서 이렇게 복잡한 사고를 할 수가 없겠지. 인간은 이렇게 멋진 존재인데, 그 뇌가 그렇게 쉽게 파악될 리가 있겠어? 뇌과학자란 사람은 그런 모순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낭만주의자인 셈이지(307쪽) 


나는 대부분의 철학자에게서는 '오만'의 냄새를 맡는다. 과학도들도 어느 정도는 철학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정도의 겸손함이라면 현실을 보다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에게 더욱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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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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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공저자(화이트 헤드), 괴델만 이해하는 책을 썼다는 사람이
 '나도 쉬운 책 쓸 수 있어~'라는 걸 보여주려고 쓴 책 같다는
(사실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이 그런 인상을 좀 준다^^)
얼토당토 선입견 때문에^^

미루고 미룬 책인데...
B의 독촉으로 드디어 손댔다.

평소 럿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엄청나게 어려운 수학책을 쓰기도 했고,
하루에 100통의 편지를 썼고. 노벨 문학상 수상의 경력이 있을 정도로 왕성한 문필가라는 것....정도의 아주 피상적인 정보들만 가지고 있을 뿐.

그러니까 이 책은 나와 럿셀과의 첫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체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직설적이고 적나라하며 현실적이다. 
이런 사람은 토론에서 맛나야 제맛일텐데^^
속된 말로 봐주는게 전혀 없다^^그래서 큭큭대고 읽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여자는 남자의 성격에 끌려 남자를 사랑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반해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열등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175쪽)


또, '정신적인 인생관'과 '체념'을 동의어처럼 사용하고 있는 문장도 있다. 하하하^^
럿셀이라는 이 사람은 자신에 대한 회의 같은 것은 한번도 가져보지 않았을 것 같은, 아주 쿨~~~ 한 문체를 구사한다.^^ 아마도 그는 서구식 합리주의, 이성주의, 과학주의의 대표자가 아닐까?

럿셀은 행복이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성취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면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외부적 사물과 현상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일설에 의하면 외부에 관심을 돌리라는 본인의 말을 말년에 정치에 뛰어드는 것으로 실천하셨는데 그에게 별로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자기에게 맞는'일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첨가하고 싶으셨을까?^^

럿셀의 충고 중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권태로운 인생살이 도중에 쉽사리 자극을 선택하지 않고, 단조로움을 견디는 능력의 가치를 높이 샀던 점이다.


•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도 몇 번의 위대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감격적이지 않다.... 칸트는 전 생애를 통해 쾨니히스베르크로부터 10마일 이상을 나간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어떤 좋은 일은 어느 정도의 단조로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건설적인 권태로부터 달아나려다가 그들은 훨씬 더 나쁜 종류의 권태의 희생자가 된다. 행복한 삶은 대부분 조용한 생활이어야 한다. 참된 환희는 오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66-68쪽)
 • (나는) 해가 거듭될수록 삶을 더 즐길 수 있다....가장 주된 원인은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과거에는) 나 자신의 죄, 어리석음, 결점 등을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무관심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점점 더 외부의 대상, 즉 세간의 일이라든가 여러 가지 지식의 분야라든가 내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15쪽)
• (습관적인 죄의식에 사로잡힌 자, 자신감 결여에서 비롯된 자기 도취라는 허영심에 빠진 자, 권력에 대한 애착이 지나친 과대망상증이 있는 자 같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몰입이 지나쳐 다른 방법으로는 이를 고칠 길이 없는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외부적인 훈련만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16쪽)
• 청혼하고 있을 때 심심풀이 삼아 이웃집 사람이 찾아와 방해를 놓더라도, 아담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류가 이러한 재난을 겪었고 아담조차도 그 나름의 걱정거리를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라...모든 문명인은 자화상을 더럽히는 일이 일어나면 괴로워한다. 최상의 치료법은 단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화랑 전체를 가득 채워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나면 이에 적합한 그림을 골라내는 것이다. 만일 그 그림들 중의 일부가 약간 우스운 것이라면 더 좋다. 하루종일 자기 자신을 굉장한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229쪽)




결국 행복이란, 자아상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럿셀의 행복론보다는

이무석 교수의 '30년만의 휴식'이 훨씬 더 행복에 실질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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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몇년 전에 대체 의학에 관심을 가져서 그 쪽 책을 섭렵한 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분과적이고, 드러난 현상을 제거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서양의학의 기본적 철학을 비판하고,
자기 몸을 스스로 알고, 몸의 자가 치유력을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호모 쿵푸스를 읽는데, 문득 그 때의 독서경험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공부의 대체의학 서적쯤이라고나 할까...^^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고,
본인의 체험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
전혀 피상적이지 않다.

대체의학 서적을 읽으면서 가졌던 작은 염려 하나는 이런 책들이 주로 '개인의 체험'을 근거로 하고 있어, 확률과 통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서양의학에 비해 다소 약하기 때문에, 무조건 수용하기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나도 이런 책을 읽다가 병원에 가지 않아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병을 가래로도 못 막게 키우기도 했다^^ )
 
이 책도 그런 염려가 조금 든다. 추천하는 동양고전이나 공부방법 등이 만인에게 맞을지 아직은 의문이다. 또, 저자가 보여주는 제도권 교육이나 현대안교육에 대한 네거티브 발언이 전체 맥락에서 이해되지 않고, 독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불만감만 진폭시킨다면,  저자가 보여주는 확신에 찬 문체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와 교류했던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자극을 받아 건강한 대안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방종과 냉소주의만 배우지 않았던가. 네거티브에 접한 자들 중에서는 늘 이런 나쁜 사례가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알아간다는 것의 기쁨'에 대해 저자의 경험과 공명되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익한 책일 것 같다. 또는 공명의 느낌은 못받았을지라도 교육의 진정한 대안을 찾아가는데 힘이 되는데 사용하면 유익할 것이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세상의 모든 약이 큰 유익함도 있지만, 독을 내재하듯이  공부에도 '독'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 부분까지 다루지 않았던 점은 아쉬웠다.

2. 특히 주위의 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며칠 전에 읽은 히라노의 책(책을 천천히 읽자고 주장하는 책)보다는 훨씬 읽을만했다. 청소년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친근한 말투를 구사하고 있고, 공부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는지 자주 생각해 보게 한다.
 
3. 나도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무조건 뭘 새로 배운다고 하면, 의욕에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즐거움을 잘 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이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도약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어느 정도 감지했다. 그것은 바로 스승과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자와의 교통이 없는 공부는 자기안에 갖힌 죽은 지식일 뿐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점점 더 師友를 만날 수 있기를 갈망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공부 공동체를 꾸려보고 싶다.


바흐친 曰 "진리는 대화라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다."


고미숙 님의 다른 책들과, 그녀가 읽은 다른 책들에도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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