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슐르 미루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 만남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다이 시지에의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인 소녀」를 보면, 발자크의 '위르실 미루에'라는 소설이 등장 인물들의 삶에 미친 큰 힘이 나온다. 그것이 궁금하여 발자크의 장광설 문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번역본을 하나 샀다. 어문학사에서 나온 최○○님 번역본이었는데, 이 번역은 읽는 사람을 몹시 힘빠지게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초벌구이(직역한 상태)만 하고 손을 대지 않고 출판했다..라는 인상을 주었다. 아니면, 대학원생들에게 1장씩 맡겨서 번역해오라고 숙제를 내 준다음, 수합만 했을지도 모른다는 죄송스런 상상까지 들었다. 한 대사 안에서 '당신'과 '너'가 혼용하고,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에서도 '당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한국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엉성한 번역인데다가 오타도 허다하다. 동의할 수 없는 번역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18쪽 첫 단락은 주어를 '크레미에르 부인'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내가 읽기에는 '마쌩 부인'인 것 같다. 나는 최○○님께서 이 책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창피하게 여기실 것 같다. 

서사가 탄탄하게 진행되는 힘이 아니었다면, 읽다가 던졌을 것이다. 다이 시지에의 책에 나오는 중국어 번역은, 등장 인물들이 감탄할 정도로 좋았다고 나오는데, 한국어 번역본은 왜 이렇지 모르겠다.T.T 다른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앞서 말한대로, 스토리가 몹시 탄탄하다.  인물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어떤 경지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위르실 미루에'라는 비현실적으로 보일만큼 숭고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그녀가 받은 교육의 묘사 때문에 그마저도 현실적으로 보인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여러 사람의 욕심, 시기, 음모, 어리석음..... 들이, '돈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만든다. 작품 초반부에 등장하는 미노레라는 부자는 비교적 평범해서(그렇게 악착같지 않아서), 누구나를 대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게 연민과 공포를 더 줄 수도 있으리라.

허접한 번역으로 읽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책의 절반 정도만 章별로 줄거리를 나열해 본다. (줄거리를 알고 읽으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1. 불안스러워진 상속인 

첫 장면은 1829년 프랑스 느무르 지방. 60세 가량의 '미노레 르브로'라는, 느무르의 부자가 파리에서 돌아올 그의 아들의 귀환이 늦어지자, 그를 마중하려 가다가, 중간에 성당으로 길을 바꾸고 있는 장면이다.  그의 아저씨(미노레 박사)가 성당 미사에 참석한 일이 그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첫 장이라서,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계셔서, 그들의 관계와 대강의 인물됨을 파악하느라 나는 정신이 없다.


*미노레 박사 : 평소에는 신앙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요사이 신부와 친하게 지내고 있음.상속할 재산 때문에, 교회에 재산을 희사하고 죽을까봐 상속대상자인 세 집안에서는 벌벌벌 떨고 있는 듯.
*미노레 르브로 - 느무르 지방의 역마차 회사를 소유한 부자. 느무르 부부(미노레 르브로와 젤리 르브로)와 그들의 과다한 애정 때문에 건실하지 못하게 자라나는 그의 아들 데지레가 가장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음.
*크레미에르 디오니스: 느무르의 징세인, 공증인. 예민하고 위선적인 사람.
*디오니스 부인: 미노레 박사의 조카딸쯤...
*구삘: 크레미에르 디오니스 씨의 수석 서기. 방탕하고 향락적인, 27살의 숏다리 청년. 추한 외모에 곱추임. 지방 신문을 혼자서 발간할 정도로 지식이 많고 이해관계에 밝음. 돈 때문에 데지레에게 접근하여 우정을 유지하고 있음.
*마쌩-치안 재판소의 서기. 큰 딸과 부인을 자기 업무처리를 하는데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탐욕스러운 부르조아.
*마쌩부인-미노레 박사의 모계 혈통의 증손녀.
*미루에- 제목에 등장하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는데, 아직까지는 별 정보 없다. 늙은 미루에 박사(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상속 대상자들이 과다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와 가까이 지내는 젊은 처녀라는 정도. 그래서 다른 상속인들이 그녀에게 매우 분노하고 있는 듯.



2. 상속재산을 가진 아저씨

느무르 지방의 가계도가 소개되고 있는데, 너무 복잡해서 족보 제작자들도 괴로워했을 것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어서, 나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미노레家, 크레미에르家, 르부로家, 마쌩家 네 집안이 느무르 지방의 주된 부르조아 집안이다.이 집안들이 혼인관계로 얼키고 설켜 있다. 이 복잡한 모든 혈통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은 하나라는 저자의 설명은 아마도 집안들 간의 싸움이 우습게 펼쳐질 예정이기 때문인가? 그리고 상속 재산을 가진 아저씨인 미노레 박사에 대한 정보가 속속 펼쳐지고 있다. 

*미노레 박사-의사, 대인 관계를 통해 자신의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홍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 은퇴 시점에 고향에 돌아와 정착하기로 함. 병원장, 황제의 주치의, 과학원의 회원 같은 유수한 경력 때문에 상당한 재산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실제로 그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음. 은퇴를 결심하고 있던1813년, 우연히 느무르에 왔을 때, 미노레-르브로(박사의 큰형의 아들이기도 한, 역마차 회사 주인)의 도움으로 느무르에 집을 구입. 1815년 느무르에 내려왔을 때 10개월짜리 여자애를 데려옴.
*유르쓜르 미루에 - 박사의 죽은 부인 이름이기도 하지만, 박사가 돌보고 있는 고아 여자 아이의 이름이기도 함.

느무르에 내려 온 후, 상속인들은 박사에게 열심히 찾아다녔고, 박사는 세 사람에게 이런 저런 도움을 준다.(마쌩부부에게는 만프랑, 크레미에르 부부에게는 직장과 보증금, 미노레 르브로에게는 데지레가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도움) 그러나, 그 후로는 그들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

3. 박사의 친구들

첫번째 친구는 샤쁘롱 신부. 무신론자인 미노레 박사가 샤쁘롱 신부와 절친하게 된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1)극단끼리는 통한다.(2)비슷한 실력의 놀이에 대한 취미와 비슷한 정도의 다양한 교양. 샤쁘롱 신부는 신앙과 관계없는 선행을 베풀기 때문에 덕망이 자자하다. 정작 본인은 늘 기운 옷을 입어야할 정도라서, 마을 사람들이 종종 새옷을 가져다 놓곤 하지만, 그 새옷을 즉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물질에 관심이 없는 양반이다. 오죽하면, 나쁜 인간들이 그의 동정심을 자극하여 돈을 받아낸 후, 그 돈으로 땅을 살 지경이다.

박사의 두번째 친구는 드 조르디 씨이다. 스웨덴 왕실 부대의 전직 대위. 육군사관학교의 전직 교수. 미노레 박사가 수집 중인 신문과 잡지를 구독. 심하게 슬픈 푸른 눈의 노총각. 애연가였지만, 유르쓜르 때문에 담배를 끊다. 우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이 노총각의 과거가 궁금해지는구먼.

박사의 세번째 친구는 봉그랑 씨. 과거에는 소송대리인이었고 지금은 느무르의 치안판사. 지혜와 학식이 풍부하고 관찰력이 예민한 사람. 45세의 나이에 홀아비가 된 그는 데르빌(빠리에서 법학공부를 하고 있음)이란 아들을 하나 두고 있음. 교활해 보일 정도로 명석하며, 말할 때 침을 많이 튀기는 다변가임.^^

세 상속인들은 박사의 건강과 어린 유르쓜르를 저주하며,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재산이 상속될는지, 그 재산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김칫국을 열심히 마시고 있다.

4. 젤리

젤리(미노레-르부로의 부인)는 마르고 키가 작은, 하지만 강단있어 보이는 여성이다. 미노레가 부자가 된 데에는 이 여자의 능력과 사람 부리는 능력이 한 몫 했으리라. 남편을 휘어잡고 그의 재산들과 하인들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그런 여자이다.  
아들을 찾으러 갔던 남편이 성당으로 온 것을 추궁하러 왔던 젤리는, 미노레 박사가 무척 경건한 모습으로 성당 미사에 참석한 것을 보고 상속재산이 위험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그녀의 아들 데지레가 멋지게 차려 입고 도착한다. 마침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유르쓜르를 보고 데지레는 홀딱 반한다. 사람들은 유르쓜르가 무신론자였던 박사를 개종시켰다는 소리를 듣고, 이제 상속인으로 자처하던 세 부부가 그 자격을 박탈당했음을 감지한다. 박사의 개종이 상속재산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나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겠다. 개종자들은 재산을 전부 성당에 희사라도 한단 말인가?

5. 유르쓜르
 
 드디어 박사가 기르고 있던 고아 처녀의 정체가 밝혀진다. 박사에게는 처남이 하나 있었는데, 그 처남이 죽으면서 자신의 딸을 박사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니까 유르쓜르는 박사의 조카이다. 박사는 유르쓜르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양육했으며, 그 양육에는 박사의 현명한 세 친구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유르쓜르는 참으로 현명하고 선하며 신앙심 깊은 처녀로 자라났다.

미노레 박사의 유산을 둘러싸고..

이제 끊없는 암투가 벌어진다....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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