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story 자이스토리 언어 비문학 독해 - 수능 16개년 + 평가원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 2009
수경 편집부 엮음 / 수경출판사(학습)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수험생도 아닌데 이런 책을 종종 산다.쯧쯧^^

요사이는 인터넷을 뒤지면 금방 출력할 수 있지만,
여기저기 두고 보기에 편하니까 꼭 책으로 사게 된다.

말 그대로 잡지같은 가벼운 읽을거리처럼 손닿는데 여러 군데 두고 심심하면 읽는다.
(잡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미용실이나 까페에 가면 널려있는 잡지책도

다 이런 책들로 바꿔주고 싶다.^^ - 이 견해에 대해서는 미용실 주인도, 언어영역 출제위원도 모두 성질낼지도 모르겠다^^ )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문제가 발표되면,
온나라가 그 문제를 토론하느라고 재미있어진다지만,
그런 의식에 비하면
이런 짓은 조금 멋없는 의식이긴 하다.
오지선다형 수능시험 자체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무슨 기다리던 신간서적을 구입하듯 이런 책들을 사주고 싶어진다.
물론 문제집 만드는 출판사에서는
저작권료를 내지도 않고, 

공공사업이라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원작자들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돈 돈벌려고 만든 책이지만

내 딴에는  거기에 실린 언어영역 지문들을 겨냥한
'가여운 성형미인 사랑하기'이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을 읽노라면,
'성형미인'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좀 섬뜩한 단어를 사용하자면,
'칼질(?)'을 많이 당하기 때문이다. 
칼질 솜씨가 너무 훌륭한지라
정교하고 깔끔하다 못해 정내미가 뚝 떨어질만한 글.
피천득이 그의 글 '수필'에서 말했던 '약간 옆으로 꼬부라진 연꽃잎'같은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은 살아남지 못하는 글.
흠이나 파격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탄생단계부터 출제위원 수십 명이 달려들어 고쳐대기 때문에
원저자가 내뿜었던 독특한 문체도, 은밀한 의도도 온전히 살아남아 있지 않은 글.
바로 그런 글이 수능 언어영역 지문 아니던가.....
게다가 오지선다형 문제 서너 개가 업보처럼 매달려,
그것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이한 글.
그 철저한 목적성 때문에 차라리,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사이버미녀'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 '사이버 미녀'라고 할만한 글들이
세상에 출시(?)되는 순간부터는 더욱더 가여워진다.
원래 의도되었던 독자인,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점수라는 것이 주는 긴박감 때문에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쑤욱~ 읽고 아주
서둘러 문제를 푼다.
다시 읽는 경우라도 문제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지
이 글을 붙잡고 다시 대화하고 어루만져보기 위함은 아니다. 
수많은 학원 선생들은 흠이 없나 잡아내려 안달이다.
그리고 비슷한 것들을 복제해 내느라고 또 안달이다.
또 부분부분 분해를 해서, 이게 이럴 수밖에 없는 조합이야...라고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목적으로 대하는 일은 드물고, 수단으로 대한다.

그러니...
누구 하나 순정을 가지고 사랑해 주지 않는 사이버미녀랄밖에...^^



내 인생의 여러 부분을 망치게 한 것 중의 하나가

나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동정심이지만,
그 동정심 때문에  이 사이버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 기획자들이 엄선한 좋은 지문들이 재료인만큼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우선,

이 사이버 미녀는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고 이성적인 말투와 정보 흐름들이
나같은 감상적인 인간들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또, 
이 사이버미녀는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언어 다방면에 아는 것이 많아서,
'우와~ 세상에 이런 것도 있었어? 와~ 이게 이런 거였어?' 라는 기쁨을 준다. 
 이번 수능시험에서는 음악에서 사용되는 '반복'에 대해서 다룬 글이 나왔다.
평소에 생상의 '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를 들을 때, 제목을 보면서도
론도가 뭔지도 몰랐는데, 이 지문을 읽으면서 '론도'가 뭔지 알게 되었다.
(근데...이 론도가 그 론도가 맞는 걸까? 음악을 들으면서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견문이 넓은 친구는 공자님께서도 좋은 친구라도 하지 않으셨던가^^




보통.... 지식인들은 아는게 힘이라서 그런지 늘 자신만만하시
던데,
이 미녀는 아는게 많다고  해서 신랄하지도 않고,
인생사를 깊숙하게 다루어서 상대방을 기죽이지도 않는
다. 못한다고 해야겠지. 
특정 견해를 좀 깊이 다루기라도 할라치면
사이버인간
의 입에서 '인간성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이버인 주제에 인간에 대해서...뭘 안다구 난리야...'라고 벌떼처럼 일어나는 현상에 버금가는 소란이 생기테니까 말이다.
'여러분~~ 이런 것들도 있답니다'라고 말한 뒤에
대부분이 사람이 인정할만한 수준의 선에서 입을 다무는 과묵함은
목적론적으로 탄생된 그녀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겸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미녀와의 대화가
무미건조 일색은 아니다.
행간을 잘 읽어보면, 이 미녀가 입을 다무는 그 표정에서 뭔가를 읽어내는 기쁜 부담(?)을 맛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올해 지문에는
개별자 수준과 집단 수준의 인과의 관계가 개연적이냐 필연적이냐
의 문제를 다룬 글이 실렸다.
나는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철학사에는 심한 논쟁거리였던 모양인가 보다. 
사이버미녀는 역시 그녀답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정도에서 언급하고 만다.
"둘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이라는 견해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어요."
이렇게만 말하고 끝이다. ^^
그 다음은 독자의 몫이다. 
사이버미녀가 스트레스와 병의 원인을 예로 든 것은
이 논의가 '특정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님 말구...^^
하긴 어떤 두 현상을 단순 상관관계로 볼 것이냐, 인과관계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철학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 때문에 대형 소송까지 생겨나곤 하는 마당에,
이것이 어찌 이론만의 문제겠는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두 개의 팽팽한 견해가 있구나...까지만 생각하고
이 글을 덮어버린다면,
이 가엾고 아름다운 사이버미녀를 사랑하는 소이가 아닐테다...
이 사이버 미녀는 눈빛으로 늘 말한다.
'당신의 사고를 좀더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만들어보세요'라고.
그녀의 눈빛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읽고 나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제도만 고치면 어떤 현상이 당장 좋아질 것이라고 떠벌이는 단순무식한 짓을 좀 덜하기는 할텐데 말이다.

또 정서적인 측면의 강점. 
수능 언어역역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을 선보인다.
 내가 아는 두 명의 훌륭한 분들이 문학교육폐지론을 주장하시지만,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흥분하지 않고, 일단 접는다^^) 



수능 언어영역 지문에서 발췌하는
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참...할 말이...많기는 하다...
나는 문학 작품에 대해서 거의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문학은 생명체이다^^)
문학 작품에 오지선다형 문제를 매달아 놓는 것에 대해 서글픈 심정을 가지고 있다.
문학과 오지선다형 문제의 결합이란 정말이지...
결혼하면 안 되었을 두 사람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는 듯하다.
서로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려주지 못하는 사이. 최소한의 생활만 영위하는 사이.T.T 

그러나, 그런 결혼 생활도 본인들의 극도의 노력과 양보, 주위 사람들의 섬세한 도움이 있다면, 뛰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가 가진 미숙과 허물은 감추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수능 지문에서는 김광규님의 '나뭇잎 하나'라는 시가 실렸다.
읽으면서 맞아맞아..끄덕끄덕~~ 했다....
그러나 고등학생들이 이런 느낌을 이해할지는 의문이었다.
아이들은 저 시에 나오는 '연록색으로 부풀어 나오는 신록'에 더 가까울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산 다음에야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훈련된 대로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겠지....
'과거의 상황을 환기하며 화자의 정서를 드러낸다'에 동그라미를 하겠지.
하지만 인생 본연의 고독을 절감하고 있었던 아이들 중에
이 시가 그냥 마음에 들어 좀더 자세히 읽고 싶었다면,
32번 문제의 도움을 좀 받았을게다.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

- 김광규, 「나뭇잎 하나」 -

32번 문제 (나)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①1연, 2연에서 유사한 구조의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화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1~3연에서 ‘골짜기’→‘길’→‘대추나무’→‘나뭇잎 하나’로 시적 대상이 바뀌면서 화자와 대상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③1~4연에서 ‘그러니까’, ‘문득’, ‘마침내’와 같은 부사는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인식에 주목하게 하고 있다.
④4연에서 ‘저마다 한 개씩’이라는 시구를 반복함으로써 세상과 화합할 수 없는 존재의 고뇌를 강조하고 있다.(적절하지 않은 진술)
⑤4연에서 화자는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자연물의 변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암튼...사이버 미녀...수능 언어영역.

이 정도면,
사랑받을만하고

온 국민의 교양읽을거리~!로서 완벽하고,
미용실에 있는 잡지책을 다 대체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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