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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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었고,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적었습니다.



아포지즘이 갖는 매력은 많다.


무엇보다 아포리즘은 간결함 속에 통찰을 담아, 읽는 이로 하여금 어느 순간, 특히 도움의 끈이 필요한 순간, 벼랑 끝에 서서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든든한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줄의 짜릿한 감동이 삶 내내 지속되며 한 개인의 삶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으로 인도하는 가장 보편적인 통로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수십차례 읽으면서 철학에 입문했고, 인문에 대한 통찰이 시작됐으며 내 삶의 철학적 기반의 원초적 디딤돌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한 줄의 짜릿함을 확장해야만 한다는 것. 한 줄의 짜릿함에 머물면 안 된다. 우리는 메마름 속에서 차디찬 냉수를 원하지만 한 줄은 한 모금만 될 뿐,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냉수를 마중물로 나만의 샘물, 나만의 우물을 만들어야만 한다. 결국 끊임없는 성찰과 좋은 책들의 정독을 통한 자기만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철학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책들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독자는 이 많은 내용 중 몇 개만 가슴 속에 새겨서 마중물로 쓰면 된다.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다 담을 필요도 없다. 나를 변화시키는 건 한 문장이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5센치가 넘는 것 같은 두꺼운 책에 자잘한 글씨로 수많은 명언들이 담겨져 있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안에 있는 수십만의 문장들. 그 문장들을 다 외운다 해도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명언은 진리가 아니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주관에 따라, 그리고 문화에 따라 수많은 변용이 생성되고, 서로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 격언으로 같은 책에 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사실 서평을 남기기 힘들다. 내가 쓰는 서평의 기준은 작가의 역량이 중심인데, 책의 대부분이 다른 이들의 내용으로 덮여 있으니 작가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책 중간 중간에 짧게 편저자의 글들이 나오는데, 그 내용으로 봐서는 저자를 철학자로 부르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아포리즘은 철학서가 될 수 없다. 인문학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냥 일종의 정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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