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ㅣ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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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한창 일본만화 해적판이 문방구에 널려 있었다. 기억나기로는 손바닥만한 크기로 하나에 오백원 했던 것 같다. 여러 일본 만화책들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드래곤볼이었다. 책이 잘 팔리니 그 외에도 다양한 만화책들이 번역되어 나온 것 같다.

 

그 중에 하나 기억나는 게 있었다. sf였는데, 첫 부분에 오딧세이 영화를 오마쥬한 부분이 나오고, 그 뒤는 인간의 우주 개척에 대한 내용들이 나오는, 나에게 신성한 충격을 주는 만화였다. 하지만 그 만화 제목을 몰랐고, 한동한 번성하던 해적판은 어느 순간 모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다, 7년 정도 됐나? 우연히 그 sf만화책이 정식으로 번역되어 출판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 또래의 어느 대표가 어릴 적 인상깊게 봤던 그 만화를 우리 나라에 정식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나만 그 책에 감명을 받은 게 아니었다! 누군가도 그 만화책을 즐겨 읽었고, 중년이 되어 그 만화책을 정식으로 출간했다는 사실이, 그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과의 연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금 그 만화책은 책장에 조심히 모셔져 있다.

 

나는 지금도 sf영화나 만화를 즐겨 본다. sf에는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영화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데, 이런 감정은 오직 sf에서만 느낄 수 있다. sf에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창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미지에 대한 희망과 갈망도 어느 부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sf 시대정신이 되다라는 책은

SF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막연히 SF를 좋아했지만, SF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고민을 해보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내 사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고, 나름 나 대로의 SF에 대한 정의도 생각해 보았다.

 

 

다음은 이 책을 보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나의 견해들이다.

 

 

첫째.

이 책에서는 SF의 본격적인 시대를 알린 이로 다르코 수빈이라는 사람을 소 개한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 분은 SF와 F(판타지)가 다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바로 인지적 낯섦과 노붐이다.

인지적 낯섦은 인지는 하지만, 그 인지가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는 뜻이고, 노붐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발명이나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로 인해 F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별이 불분명하다. 그럼 F에는 인지적 낯섦과 노붐이 없을까? 요즘 유행하는 F 중에 저 세상 시리즈와 게임 속 히어로 시리즈가 있다. 저 세상 시리즈는 이 세상에서 현타를 느끼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상상의 세계이고, 게임 속 히오로 시리즈는 현대의 게임 속에 매몰되어 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노붐이다. 이런 것들은 몇 십년 전만 해도 한번도 나오지 않은, 현대의 새로운 장르의 F인데, 이것 또한 인지적 낯섦 아닌가? 그리고 어찌 보면 노붐이 아닌가? 인간의 인지는 낯섦을 통해 그 인지의 영역을 넓혀왔다. 비단 이것이 SF에만 한정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타임머신이 SF의 새로운 시대를 선도했다는 설명은 인상적이었다. 그 말이 맞다고 본다.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분명 SF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시간이라는 것은 고대나 중세에는 신의 영역이었다. 인간이 개입할 여지도 없었고, 거기에 개입하는 것은 신에게 반역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결국 시간여행이라는 표현이 가능해 진 것은 산업혁명 이후,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17, 18세기 이후에야 가능한 키워드였다. 결국 서양의 종교의 종말이 시간여행을 가능케 한 것이다. 아찌보면 SF의 출현은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출현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일 수도 있겠다.

그럼 왜 기존의 F는 시간이라는 소재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건드리려면 얼마든지 건드려서 환타지를 만들 수가 있는데 (위에서 말한 저 세계 시리즈도 어찌 보면 시공간을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시간이 SF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프리드먼의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왜 그동안 건드리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상상력의 부재일 수도 있고, 시간을 따로 조종하지 않아도 F가 줄 수 있는 매력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뭏튼 SF는 타임머신과 함께 왔다. 타임은 기존 사상의 붕괴와 새로운 인간 중심의 시대를 의미하고, 머신은 당시 획기적으로 발전하던 과학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과학의 시대의 문을 열어주는 상징이 결국은 타임머신이다.

 

그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타임일까 머신일까?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타임은 현재 F에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결국 머신이 SF와 F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묘약을 마시고 시간 여행을 가면 F이고, 기계를 통해 시간 여행을 가면 SF다. 용을 타고 날아다니면 F이고, 그 용이 알고 보니 정밀한 로봇이었다면 SF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정리한 SF와 F의 차이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SF의 F가 FICTION이 아니라 FANTASY가 맞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픽션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판타지의 자역과학적 용어가 아닐까? 과학에서 FANTASY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SF를 번역할 때 공상과학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이 용어를 쓰는지 모르지만), 결국 픽션은 공상이고 판타지인 셈이다. 이 둘을 억지로 분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SF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다룬다. 그리고 거시적인 것보다는 미시적인 것을 다룬다. 그러면서 낯선 것을 통해 익숙한 것들에게 질문하고, 지금 익숙한 것들이 과연 언제까지 익숙할 것인지를 점검하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이것이 SF만이 갖는 강점인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이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의 접시에 담긴 적은 양의 물로도 죽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파스칼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우주를 통섭할 수 있기에 위대한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우주를 상상한다. 그러면서 우주를 껴안고 새롭고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미지에 대한 동경과 무한한 상상력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첨단에 SF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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