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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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일견 발칙하고 조금 유치하기까지 한 상상력을 발전시킨 그렇고 그런 소설인가 싶지만 오래지 않아 아껴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냉소적인데 따뜻하고, 절망적인데 빛이 함께한다.
농담처럼 가벼워 보이는 문장들이 묵직하게 부풀어 오른다.
외계인이라느니 마왕이라느니 헛웃음 나오는 소재인데 몰입감이 엄청나다.
이 단편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꼽자면 '나는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가 아닐까?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어지는 소설집이다.

가끔 마음이란 게 잔뜩 흠집 난 유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흠집이 많아질수록 유리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마침내 저편이 보이지 않게 되는 거야. 어쩌면 죽음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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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 청소년이 쓴 코로나19 교육 보고서 ㅣ 코로나19 3부작
인디고 서원 엮음 / 궁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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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쓴 코로나19 교육 보고서라는 부제대로 이 책은 청소년들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우리는 작년 한 해 코로나 19 감염 우려로 등교를 중단하고 학교를 멈추는 대응을 선택했다. 또한 작년 한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의 수는 827명이라고 한다. 안전과 생명을 위해 등교를 멈추는 선택이 가능하다면 한 해에 827명을 자살로 내모는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나는 초,중,고 12년의 교육기간을 거치는 동안 성적이 높았던 적도 있었고 낮았던 적도 있었다. 성적이 높았을 때 주어지던 특별대우 또는 우월감을 기억한다. 공부가 하기 싫었던 때, 그래서 성적이 낮았을 때에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생각난다. 그래도 어떻게든 참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행복하고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는 줄 알았다. 과연 그런가? 지금 본인의 위치에 만족하는 어른이라면 12년의 교육기간이 지금의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여기고 있을까? 암기식과 주입식으로 진행되고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우리의 교육은 문제가 없는 걸까?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청소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안해진다.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교육기간을 먼저 겪은 어른으로서 한 가지도 바꾸지 못했다는 점, 미래를 생각하며 견디라는 뻔한 조언만을 해왔다는 점이 참 부끄럽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또한 감사해진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인디고 서원에서 함께 책을 읽고 좋아하는 공부를 즐겁게 한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구나, 반짝반짝한 생각을 이렇게 훌륭한 글쓰기로 표현할 수 있구나,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책 제목처럼 우리의 청소년들이 정말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거란 희망을 갖게 된다.

박시은(14세)
정부가 온라인 수업의 수치적 성공만 이야기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이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었으면 좋겟습니다. p.20

김숲(16세)
저는 우리나라 교육이 너무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만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 문제를 풀 때, 우리는 혼자 그 문제와 씨름합니다. 함께 문제를 푸는 것은 부정행위라고 봅니다. 과목 관련 활동을 할 때도 개인별로 점수가 매겨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입니다. 함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들이 코로나19를 이겨낼 힘을 키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p.25~26

한서현(16세)
학교는 공부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는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고난들을 헤쳐나갈 능력과, 서로 공존하며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p.37~38

이진복(15세)
학교는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자신에게 아무런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는 공간입니다. 아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p.40
전태화(16세)
아프고 힘들더라도, 우리 인생의 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냥 땅속에서 조용히 있는 것이 지금 당장은 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삶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죽어버린 봄이 아닌, 생각하는 봄의 시간을 다시 찾기 위해 이 추운 겨울 잘 버텨내자고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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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ㅣ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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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원작 소설이라는 것 말고는 정보가 없었다.
표지에 있는 남자가 아주 잘생겼다고 생각했고, 책날개에 '작가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저녁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는 문장을 발견하고서야 '엇, 야한 소설인가?'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출근길 전철 안에서 용감하게 책을 열고 한 장을 넘기자마자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보며 덮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안 본 사람이 거의 없더라. 아주 유명한 29금 영화란다.
이탈리아 마피아 간부인 마시모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몸매조차 끝내주게 섹시하다. 엄청난 부자이고 끝을 모르는 욕정의 화신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투박하고 마피아답게 잔혹하고 위험한 인물이다. 언젠가부터 그의 환상에 나타나던 여인을 실제로 만나게 되자 그녀를 납치한다.
라우라는 폴란드인으로 매력적인 외모 말고는 내세울 만한 게 많지 않다.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고 심장병이 있어 자주 정신을 잃으면서도 술을 가까이한다. 시칠리아 여행에서 마시모에게 납치되고 365일 안에 그를 사랑하게 되지 않으면 보내주겠다는 조건으로 그의 곁에 머물게 된다.
말도 안되지만 구미가 당기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수시로 등장하는 정사 장면은 거칠지만 환상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365 시리즈가 폴란드에서만 15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는 사실이 절로 이해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끝난다고? 두 번째 작품인 <오늘>을 내놓으란 말이다.' 같은 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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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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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드림

이 소설은 어린 소년 다비드와 도시에서 휴가를 보내러 온 젊은 여인 아만다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
다비드가 주로 대화를 주도하고 아만다가 가까운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둘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다비드는 갑작스런 중독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었고 녹색집 여인의 처치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으나 사랑스럽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다비드의 엄마인 카를라는 다비드를 괴물로 여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두 사람의 대화는 읽는 사람에게 기묘한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조종당하는 것처럼 자꾸만 끔찍한 상상을 증폭시키며 오싹해진다.

지금껏 읽었던 것 중에 가장 독특하고 새롭고 무서운 소설이다.

#사만타슈웨블린 #창비 #소설추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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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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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깊은 슬픔’으로 신경숙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깊은 슬픔’은 제목 그대로 너무너무 슬펐다. 줄거리는 잊었지만 책을 읽고 느꼈던 그 까마득한 기분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끝도 없는 우물에 던져진 것처럼 막막하고 아득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신기하게도 그 우울과 슬픔을 조금만 더 두르고 있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깊은 슬픔’을 생각하면 그 여름날, 책을 옆에 낀 채 몸을 눕혔던 차갑게 식은 방바닥이 먼저 떠오른다.

‘외딴방’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고 있어서인지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도 감정이입이 돼서 푹푹 속이 상했다.

이 책 ‘아버지에게 갔었어’도 역시 ‘작가 본인의 이야기인가?’ 생각하며 읽었다. 초반 3분의 1 정도는 좀 지루했다. 손으로 만지듯이 섬세한 묘사는 익숙했지만, 전에 없이 설명이 긴 것 같았고 생기가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전작들에서처럼 몰입이 되었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가 왜 신경숙 작가를 좋아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짱짱하게 서서 가족들을 지탱해 줄 것 같았던 아버지. 어릴 때는 동경했다가 사춘기 때는 미워했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답답해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자명한 사실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꾹꾹 힘주어 밟으며 걸어왔을, 외롭고도 신산했을 아버지의 인생을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다 읽고서도 며칠간 기분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는데 그것이 내가 신경숙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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