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푸른 돌
은모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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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푸른돌 


은모든 작가님의 소설을 생각하면 늘 ‘산책’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누군가와 나란히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모두 너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해>와 <안락>도 그랬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조용한 감정의 리듬을 따라 천천히 걷는 기분. <세 개의 푸른 돌>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고요하고 서늘한 아침의 숲길을 닮았다. 발밑의 돌을 밟을 때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속삭이는 것처럼, 작고 섬세한 감정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루미와 현은 보호받지 못한 채 유년을 통과한 인물로 너무 일찍 어른스러움과 책임감을 내면화하며 살아간다. 감정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부모에게 의무를 강요받은 두 사람은, 가족이 오히려 무게로 작용하는 삶을 견뎌야 했다. 

그런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조정해나가기 시작한다. 현은 연기를 다시 시작하고, 루미는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을 계획하며 자신만의 미래를 그려나간다. 변화는 폭발처럼 급격하지 않지만, 그들의 세계에 일어난 작고 단단한 균열은 결국 ‘다른 삶’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감정 표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빨리 읽을 수 없었다. (무려 한 달을 붙들고 있었다.ㅠㅠ) 루미와 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어느새 오래전의 나를 떠올리며 자꾸만 멈추게 되었다. 누군가의 선택 아래 놓였던 순간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조건이 붙었던 기억들. 그 시절의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었지만, 늘 남과 비교당했고, 비난과 자랑 사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 편해지려고 너를 팔아먹겠다는 거네?” 라는 현의 말은 언뜻 무심하고 날카롭게만 들리지만 사실은 현의 아픔이 투영된 고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지만, 소설을 통해 미처 말하지 못한 내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세 개의 푸른 돌’은 상처와 기억, 침묵과 애도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돌처럼 굳어버린 감정들이 여전히 그들 안에 남아 있지만, 서로를 마주하며 그 무게를 함께 견디려는 움직임. 그렇게 이 소설은 서로 다른 고통이 조용히 공존하고 때로는 곁을 내어주며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은모든 #은모든장편소설

#안온

#소설추천 #책추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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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숭이와 나 - 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웅진책마을 126
지윤경 지음, 오이트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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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숭이와나


지윤경 작가의 세 편의 단편 동화가 실린 #웅진주니어문학상 수상작


<숭숭이와 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 양말, 운동화, 가방까지 온통 검정 일색인 13세 도진원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돌아가신 엄마가 남겨준 분홍색 원숭이 인형 숭숭이. 진원은 숭숭이를 애착 인형 삼아 감정을 위로받는데, 어느날 숭숭이의 팔이 뜯어지는 사고를 계기로 찾은 인형 병원에서 자신의 감정과 친구 관계, 용기를 마주하게 된다. 


<한여름의 냉장고>
재혼한 엄마가 외국에 일하러 나가면서 새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한여름은 냉장고를 자주 열고 숨겨둔 음식을 꺼내 먹는 것으로 공허함과 더위를 견디는데,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하는 할머니의 직설적인 말투는 여름에게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고 상처가 된다.


<짜릿한 카메라>
하진은 친구 민준과 함께 깜짝 카메라 영상을 찍으며 즐거움을 느껴 왔다. 그러나 마주치지 않은 현준이의 고통스러운 사정을 알게 된 후, 하진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처음 깨닫게 된다.
재미를 추구하던 장난은, 결국 타인의 사적 감정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한 상처는 진솔한 현준의 고백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하진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세 이야기 모두 결핍, 관계의 단절, 감정의 혼란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유려한 문장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경험을 전면에 두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한 발짝 떨어져서 사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점이 큰 매력이다.
특히 ‘한여름의 냉장고’에서 강제적 화해가 아니라 여름이가 내면적으로 관계의 가능성을 다시 염두에 두는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 인상 깊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힐링 동화. 


#지윤경 #웅진주니어
#동화추천 #책추천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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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 - 나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자폐 스펙트럼의 세계
피트 웜비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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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너무어려운스몰토크

서른넷에 자폐 스펙트럼을 진단 받기 전, 저자는 매일같이 너무 많은 자극에 지치고, 사소한 사회적 상황조차 버겁게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자신을 탓하며 살아왔다. 이 책은 자폐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이 아니라 자폐인으로 긴 오해와 고통을 통과해온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가는 여정을 기록한 에세이다. 사회적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워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매일을 전쟁처럼 느끼던 저자의 고군분투가 진심으로 전해진다.

책을 읽으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렸다. 우영우는 시도 때도 없이, 밤이라도 새울 기세로 고래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이하다고 여기며 불편해하지만, 사실은 스몰토크라는 사회적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그런 규칙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수없이 관계에서 미끄러졌다고 고백한다.


신경 다양인 당사자의 고통을 조명하면서도 신경 다양성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안내서. 책을 덮고 나면 나와 다른 감각, 다른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나의 민감함과 경계까지도.

#피터웜비 #윌북
#책추천 #에세이추천
#자폐스펙트럼 #자폐인 #신경다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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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감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6
최현진 지음, 모루토리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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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감

산이는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 산이를 위해 왼쪽에 서 주던 메아리 누나가 워터파크에 놀러 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누나와 함께한 마지막이 싸움이라는 기억으로 남은 산이에게도, 누나에게 워터파크에 놀러 가자고 했던 두나 누나에게도 누나의 죽음은 괴롭고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사고 순간이 담긴 영상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며 무분별한 댓글로 가족을 비난하는 사람들. 엄마는 이마를 찧어 상처를 내고 앞머리로 가린 채 매일 아침 피켓을 들고 어디론가 간다.

어느 날 산이는 누나가 아꼈던 카우보이모자에서 산이는 누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누나의 카우보이모자를 쓴 산이는 누나의 공책, 친구들, 지나간 말들 속에서 누나의 모습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산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떠났다는 아빠가 남긴 ‘나비도감’은 누나의 세계와 산이의 감정 회복을 잇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애벌레가 배추흰나비가 되듯이 산이는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고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누나에 대한 기억을 나누며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다.

한 몸 같던 가족을 잃고 상실을 자신만의 언어로 소화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소설. 아름답고 절제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감정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따뜻한 삽화도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장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도록 이끈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문학동네 #최현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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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해도 되는 타이밍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황영미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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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해도되는타이밍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황영미 작가의 신작 소설.

2019년, 한 중학교의 북토크에서 작가를 만났다. 10대의 심리를 생생하게 표현한 덕에 중학교에 잠입해서 쓴 거 아니냐 또는 중학생이 나이를 속이고 쓰지 않았냐는 오해를 받는다고 작가가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에게 학교란 세상 전부라고 얘기하면서, 작가는 관계 때문에 학교생활이 괴롭다면 바깥으로 눈을 돌려 보라고, 취미나 관심사가 같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다고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전작인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 <모범생의 생존법>에서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 소설에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단단해지는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다섯 살 홍지민은 평범한 중학교 2학년이다. 초등학교 때는 인기도 많았던 것 같은데 중학교에 올라오니 주변의 공기가 쎄하다. 대놓고 따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결계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집이 망한 걸 감추느라 얼마 전에 괜한 허세를 부리다가 허언증 개찐따로 찍혔다. 하루하루가 괴롭지만, 자신을 부정하거나 아이들을 원망하며 몸을 웅크린 채 시간을 견디는 대신 지민은 주변을 살피며 돌파구를 찾아낸다.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도서관으로 시선을 돌리고 책에서 즐거움을 찾고 급식실에 같이 갈 친구를 만들고, 자꾸 생각나는 아이도 발견한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모든 일이 다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보이는 경쟁자가 나타나고, 집안 사정은 나아질 것 같지 않고, 엄마, 아빠는 사춘기 딸에 대한 배려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며 쉽게 휘둘리지 않는 지민의 미래를 낙관하며 응원하게 된다.

대사며 심리묘사가 전작에 비해 더 섬세해졌다. 술술 읽히고 쉽게 몰입된다. 관계가 어렵거나 스스로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는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심리를 알고 싶거나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어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황영미작가 #우리학교
#청소년소설 #성장소설 #책추천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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