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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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작가라는 저자의 이력, 예쁘고 사랑스러운 표지를 보고 청취자들의 사연이나 라디오 작가로서의 에피소드를 모은 말랑말랑한 책이 아닐까 하고 예상했다.
내 예상에 더해 이 책은 작가 본인의 경험들, 담백하고도 위트 있는 문장, 깊이 있는 심리학적 분석으로 안심과 구체적인 위로를 선사해준다.
관계와 공감에 대한 글 중에 마음에 쏙 들어오는 문장들이 참 많다.

친구라고 다 도움이 되진 않는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는 말로 시작해 조목조목 따지는 친구는 자주 만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그 친구를 만나면 만날수록 상처받게 되니까. 관계를 성장시키는 것은 '팩트체크'가 아니라 '공감'이다. (p. 50)

내 말을 잊고 상대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공감이다.(p.55)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나를 많이도 떠올렸다. 젊은 나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힘들고 불안하고 우울했다. 지금에서야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조금 덜 우울해할걸.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집중했어도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십 년 전의 내 자신을 만난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정말 끝이란 것이 있어. 내 말을 믿어봐. 이 상태로 네가 소멸하지 않아. 너는 더 행복해지고 더 기쁘게 살게 돼. 내 말을 믿어줘. 더 이상 울지 않게 될거야." (p. 119)

맛있는 음식을 오래오래 음미하는 것처럼 문장들을 곱씹느라 느릿느릿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음악이 좋아졌고 책이 더 좋아졌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은 다 읽고나면 작가에 대한 호기심 뿐만 아니라 커다란 호감을 남긴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김성원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는 수많은 팬중 한 명 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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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고 뻔뻔하게 내 기분 지키는 법 -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일곱 가지 기분 도둑 퇴치하기
크리스티안 퓌트예르.우베 슈니르다 지음, 박정미 옮김 / 가디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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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고 뻔뻔하게 내 기분 지키는 법>

나는 사소한 일에 쉽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반면에 경우가 없거나 예의 없는 사람에게 쉽게 불쾌감을 느끼고 속상한 기분이 길게 지속되기도 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게 기분이 상하고, 반박을 하고 싶지만 '어버버'하며 속수무책으로 죄절감에 빠졌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프로 불만러, 불신 끝판왕, 잘난 척쟁이, 안달복달 바이러스, 뜬구름 잡기 달인, 미디어 몬스터, 과거에 사는 꼰대'라는 일곱 유형의 기분 도둑으로부터 내 기분을 지키는 법을 다루고 있다.

기분 도둑은, 조금만 다른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ㆍ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급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로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하게 하거나, 당연히 행복을 누려야 할 순간에도 걱정이나 근심으로 그것을 빼앗아 가곤 한다. (p.63)

장마다 일곱가지 유형의 기분 도둑들의 예시를 보여주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치는 통쾌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시의 말미에는 '혹시 당신이나 당신 주위의 이야기는 아닌가?'라고 적혀있다. 뼈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기분 도둑일 거라는 점을.

기분 도둑의 사악한 행위와 대처법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당신은 일단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부분에서 가볍게 미소를 짓거나 킥킥거리며 웃는가 하면, 때로는 큰소리로 한바탕 웃어젖혔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멈칫하고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잠깐! 이건 나잖아?!' 그럼 나도 가끔 기분 도둑이 된다는 건가? 내 기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훔쳐간다고?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은 유감스럽게도 짧고 분명한 '예'다. 물론 누구나 가끔은 푸념을 늘어놓고, 지나치게 불신하며, 비위에 거슬리게 잘난 척하면, 조바심으로 안달복달하기도 하고, 말만 그럴싸하게 떠벌리기도 하며, 허위 정보에 휘둘리거나 습관의 굴레에 갇히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을 괴롭힐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경험에 비춰볼 때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남에게 미치는 자신의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앞뒤 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무참하게 짓밟는 사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p.218~219)

다짐하건데, 나는 내 기분을 지키려 노력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본인이 기분 도둑이라는 걸 인지하지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기분 도둑에게 쉽게 휘둘리고 마는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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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의 비밀스러운 밤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2
김아로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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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취향의 예쁘기만 한 책인가 했지만 다양한 연령층이 읽기에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읽을수록 라인타운의 친구들, 특히 샐리에게 흠뻑 반하게 된다. 무신경한가 싶다가도 친구들의 마음을 척척 읽고 홍반장처럼 어디에나 나타나서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는 샐리.
흥미를 느끼는 일은 반드시 훌륭하게 해내는 천재적인 취미부자이고 닮고 싶은 배려심 여왕.
에피소드마다 그럴 법한 상황과 샐리의 현명한 대처법이 절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열심히 하지 않고, 적당히 비스듬하게. 때로는 포기하고, 애써 견디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샐리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오직 샐리라서.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그래서 가장 샐리다운 모습으로. (p.222)

사랑스러운 색감의 귀여운 그림들, 기분 좋아지는 스토리.
나는 이 책을 선물하지 않고 소장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참 궁금하다.
우리 도서관에도 시리즈로 갖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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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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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을 보고는 천진(天眞)을 떠올렸으나 읽다보니 톈진으로 알고 있는 천진(天津)인 것을 알았다.

Z시에 살고있는 상아는 남동생 금성의 결혼식 때문에 사흘간의 일정으로 상해를 방문하는데, 20년전 같이 일했던 고향 언니 정숙의 연락을 받는다. 마침 상해에 거주한다는 정숙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1998년의 천진을 떠올린다.

정작 그 시절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정어리떼처럼 반짝반짝 들뛰기 시작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무의식이라는 창고 속에서 진작 한줌의 재로 사그라졌을거라 여겼던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가슴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고 나의 청춘이 꽤 드라마틱한 시대 속에서 연출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정숙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p.13~14)

1인칭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20년전을 떠올릴 때에는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점으로 묘사하곤 하는데, 처음에 나는 깜빡 속아서 '어라? 본인 이야기였어?'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 젊은 '상아 앞 점점 커져가는 해바라기씨 껍질 무지에 잔잔한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고향을 떠났으며, 그로부터 아마 영원히 고향을 떠나게 될 그 시절의 내가 느끼는 흥분과 애틋함과 슬픔, 그리고 곧 도착할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바로 그 해바라기시 껍질 무지와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젊고 단순하고 생명력 넘치는 열정의 시작이었다. (p.15)

고향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고 자란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올 때 설렜던가? 슬펐던가?
무군의 큰누나가 주선해준 일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덜컥 무군과 약혼을 하고 천진에서 소꿉놀이와도 같은 동거생활을 시작한 상아는 애정표현 넘치고 손재주 좋지만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무군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업무차 잘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차를 얻어 타면서 본인의 처지를 답답하게 여기게 되는데, 한국인 사장들의 현지처 노릇을 하는 미스 신과 춘란의 화사한 옷차림과 통큰 씀씀이를 보며 이별을 결심한다. 무군을 벗어나면 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여기면서도 이별의 원인을 무군의 탓으로 미룬다.

항상 그게 문제지.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바뀌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자라는 족속은 시작이 바로 결과라고 유추하는,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방심하는 한심한 군체였다. (p.155)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독박육아와 무뚝뚝한 남편의 태도에 상아는 문득 무군을 떠올린다.

대화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남편의 문자 앞에서 나는 노력을 그만 멈췄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그는 우리가 '한 팀'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경기가 어려우면 잠깐씩 알바를 해서라도 생활비를 보냈고 이번 금성의 결혼식에도 부좃돈을 넉넉히 통장으로 넣었다. 핸드폰을 잠그고 창밖을 내다보며 나는 느닷없이 어떤 상상을 해보았다. 무군이라면 어땠을까. 혹은 무군은 지금 아내에게 어떤 남편으로 살아갈까. 무군을 추억하기 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상상이었다.(p.80)

20년만에 만난 정숙은 남편과 이혼을 하고 아이와 부모님을 돌보느라 여전히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천진에서 희철과 이별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아도 마찬가지이다.
20대 초중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변은 발전하는데 혼자서만 낙오되는 것만 같은 불안으로 어떻게든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발버둥쳤던 그녀들의 선택을 어느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결국 배경만 다를 뿐 신산한 젊음을 보내고 있는 이들과 그 시기를 이미 지나온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박한 문체가 정겹고 맛깔스러워서 술술 읽힌다. 오타인가 싶은 낯선 단어들-헐금씨금,, 눈이 올롱해졌다, 발밤발밤 등-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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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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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중간쯤 읽다가 실패했고 두번째 시도에서 어찌어찌 완독은 했지만 문장을 읽어내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왜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김영하작가의 번역본이 있다는 걸 알고는 우리 도서관에 들여서 읽어보았다.
우선 기존의 고전들이 가지고 있는 정중하달까 각이 잡혔달까 하는 딱딱한 번역투에서 탈피한 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어떤 문장들은 지나차게 솔직해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동료들의 이름을 댔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인데?" 그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좀 재수 없었다. (p.22)

하지만 덕분에 술술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엄청난 규모의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지만 닉 캘러웨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는 눈치다.

지나치게 공들여 격식을 차린 그의 말투는 우스꽝스러움을 간신히 면할 정도였다. 자기소개를 하기 전 얼마 동안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p.65) "공부는 옥스퍼드에서"라는 대목을 아주 서둘러, 아니 거의 내뱉자마자 되삼키려는 듯이, 혹은 그 말이 목에 걸려 자신을 괴롭힌다는 듯이 말했던 것이다.(p.84) 아름답고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가진 데이지는 개츠비가 처음 만난 '상류층' 여자였고 그녀를 얻기 위해 그는 온갖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된다. 그러나 그의 수상쩍은 과거와 지나치게 화려한 차림은 웃음거리가 된다.
어쩌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이 가련한 남자에 대한 조롱이 아닐까?

오직 이 책에 이름을 제공한 개츠비, 내가 내놓고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바로 그 인물에게만은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밖에 없다.(p.12)

번역자인 김영하 작가는 개츠비의 위대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에 공헌했다거나, 뭔가 엄청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붙은 수식이 아니다. 그는 무가치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의연하게 그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자신의 상상 속에 머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위대하다. 따라서 그 위대함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있으며 불가피한 자조의 기운이 스며 있다.(p.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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