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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무튼, 클래식 - 그 속의 작은 길들을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겪은 순간들을 꽤 소중히 여겨왔다 ㅣ 아무튼 시리즈 40
김호경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오늘 병원을 다녀왔다. 계속 내과만 가다가 이비인후과를 가게 된 이유는 약 이십 년 전 중이염에 걸린 느낌을 내내 느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알고 계셨습니까? 콧물로 인해 중이염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저는 비염이 있고 중이염에 두 번이나 걸렸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왼쪽 귀가 더 심하고 편도선이 붓고 몸살기가 있다고 했다. 주사 맞았다. 아픔. 낑낑.
지난 주부터 코로나보다도 더 심하고 아픈 감기의 영향력을 몸소 절절하게 느꼈지만, 다행히도 지적 능력에는 아무 탈이 없어서(ㅋㅋㅋ)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누워서도 읽고 앉아서도 읽었다.
에세이에는 내게 유의미한 정보값이 얼마 없다고 생각해서 기피하던 내가 아무튼 시리즈만큼은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이 나올 때마다 챙겨봤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도 잘 들어오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아무튼 시리즈는 어느 지역 도서관에서 한 책 읽기 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읽기 쉽고 그 분야에 몸을 담가야 나오는 생생한 정보를 잘 담고 있고, 전반적으로 따스하고 희망을 품은 톤이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클래식 또한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분야여서 검색 키워드를 쉽게 얻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해당 분야의 쉬운 책을 읽는 일은 언제나 유용하다. 아무튼 시리즈에게 품은 호감이 없었더라면 읽지 않았겠지만. 음악 자체는 쉽게 즐길 수 있지만, 생산된 결과물이나 그걸 관객 앞에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에게만 관심이 쏠릴 뿐, 무대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클래식은 더더욱 그렇다. 좋은 음질의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음에도 굳이 찾아보지 않는 건 대중음악보다 무심해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같은 노래 한 곡을 오 분 넘게 듣지 못하는 마치 쇼츠 영상 중독자 같은 집중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대의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의 장점이 다가온다. 김호경은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기자이다.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지만 드라마 음악 작곡가인 남편과는 달리 클래식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가 글쟁이라는 면모가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었다.
글을 쓰려면 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가사를 쓸 때는 가사 쓰는 몸이 필요하고, 산문을 쓸 때는 산문 쓰는 몸이 필요하다. 학술적인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무드가 비슷한 글을 근래에 좀 읽은 상태,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 둥둥 띄워놓은 상태,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편안한 그런 상태가 필요하다.
실상은 늘 다른 몸으로 다른 글을 쓴다. 열심히 사회학 이론을 읽다 가사를 얼른 완성해 보내야 할 때면 곤란하다. 하나의 논리를 쪼개고 파헤치고 관점들을 나열하고 인용하고 왜 아닌지, 왜 아닌지, 왜 아닌지, 왜 맞는지, 왜 맞는지, 왜 맞는지를 열심히 좇아가다 갑자기 멈추고 직관과 느낌과 감각을 깨운다. 왜 아닌지, 왜 맞는지 따지다가는 가사는 한 줄도 못 쓸 것이다.
_나의 일, 건강한 몸으로, 95/159p (종이책), 101/182p (전자책)
으하학. 내 얘기다. 에세이를 읽으면 문체가 보다 구어체에 가까워지고, 학술적 성격이 강한 비문학을 읽으면 단어 선택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김호경이 무대 바깥 사람인 게 장점이 되는 건 아니다. 김호경은 음악에 관한 책이라 하면 흔히 연상할 연주자가 아닌 시각에서 글을 쓴다. 며칠 전 읽었던 피아노 연주 관련 책이 그렇듯 연주자가 쓴 책도 매력적이지만, 연주자가 아닌 사람의 책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음반을 설명하고, 그 음악이 어떤지 서술하고, 특히 어떤 연주가 좋았는지 추천한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영화음악, 현대음악도 언급한다.
여기서 두 번째 즐거움을 얻었는데, 글을 기고하고 그만큼 책을 읽는 작곡 전공자가 묘사하는 음악이 아름다웠다.
발레 음악으로 쓰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에너지의 소요와 소모가 대단한 곡이다. 주술을 거는 바순의 신비로운 선율을 시작으로 생명의 태동을 묘사하는 현악기의 강렬한 일렁임, 원초적인 숨처럼 각기 다른 음색으로 터지고 포개지는 관악기, 타악기의 연속적인 고함이 이어진다. 그렇게 오로지 소리로 봄의 만개를 기원하며 대지의 신에게 의식을 올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무지 미간을 펼 수 없고 등받이에 등을 대고 앉기 어려운 ‘뒤섞임’이 이 세계의 특징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리듬의 단위를 전투적으로 쪼개 긴장을 끌어올린다. 품위 있는 서사를 고집하던 과거의 음악들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능적인 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응축하고 집약해 하나의 흐름을 완성해내는 작곡가의 경이로운 기술을 좇다 보면 곡 안에서 최후의 춤을 추던 여인처럼 탈진할 것만 같다.
_좋아하는 마음, 14~16/159p (종이책), 6~18/182p (전자책)
정말로 그런가 싶어서 김호경이 묘사한 곡을 듣고 싶어졌다.
마침 코난북스에서는 이 책에서 언급된 노래들을 모아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었다. 동영상이 긴데다 양도 많아서 다 듣지 못했지만, 요즘 듣고 싶을 때 찾아 듣는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uCyNfZIdxGGvgsPh1cCF4HZ91Eyane4l
책에서 김호경은 요한 요한슨(조한 조한슨)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음악가는 요한 요한손이었다. 영상의 의미와 효과를 훌륭하게 뒷받침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을 선보이는 음악가다. 영화 〈컨택트〉에서 처음 그를 알고 깜짝 놀랐다. 언어학자가 외계 생명체와 소통하는 이 영화는 무겁고 인위적인 금속 소리, 사람 목소리와 기계음이 뒤섞이는 오싹한 효과 등으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
_영화를 위한 음악, 138/182p (전자책)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2017년에 개봉했다.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한 외계 비행 물체와 인류가 접촉하며 지구에 온 이유를 밝히는 영화인데, 요한 요한슨이 음악을 작곡했다. 출판사에서 만든 플레이 리스트에도 있다. 제목은 Heptapod B인데, 괴기스럽고 으스스하다.
이전에 음악사인지 어떤 글인지, 하여간 음악을 다룬 글에서 읽었는데 클래식을 공부한 사람들이 영화음악을 많이 작곡했다고 했다. 그 영향이 거진 백 년 정도 지난 현재에도 남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음악 태반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컨택트의 음악을 작곡한 요한 요한슨이나 영화 오션스8의 다니엘 펨버턴이 신기할 따름이다.
본래 예술 분야의 책을 잘 읽진 않지만, 미술과 음악은 종종 찾는다. 미술은 문학과 연계해서라도 알게 되는 부분도 있고, 이런저런 전시가 많으니 읽기 수월하고 매번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았다. 내 체감으로는 미술은 대중적인 수준과 조금 깊게 들어간 수준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음악은 크다. 성급한 일반화임. 순전히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결론임. 그래서 쉽게 발을 들일 수 있게 해 준 이 책의 존재에 감사하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더 길게 말할 수 있도록 정진, 또 정진해야지. (너무 자소서 같은 문장이다...)
예고! 다음에 읽을 책은 임승수의 피아노 에세이다. (전자책 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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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인용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세계에 가장 맨 위에 적어 넣을 작품을 꼽으라면 말러의 교향곡과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관현악곡이다. 나의 음악 취향은 잡식에 가깝고 그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선으로 이어본다면 이 작품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넓게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고전주의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새로운 소리 재료를 탐색해 전에 없던 음형을 창조한 대편성 관현악 작품들에 특히 관심이 많다. 밝고 아름다운 것보다 거대하고 어둑한, 파괴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 ‘취향’이라는 말로 추릴 수 있을 것이다. - P14
말러가 완성한 열 개의 교향곡을 몇몇 단어로 뭉뚱그려 말하기는 어렵지만 말러 특유의 음울함, 비극성, 허무, 격정, 분열, 표현의 과잉 같은 것이 있다. 1번 〈거인〉의 3악장을 예로 삼는다면 구전동요 선율을 더블베이스의 어두운 음색으로 길게 늘어뜨려 장송행진곡을 만들고는 그 뒤에 그로테스크한 춤곡을 이어붙이는 식이다. 말러의 아버지가 운영한 술 공장의 풍경, 동생들이 질병으로 줄줄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던 그의 삶을 참고하면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환경에 놓인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음악을 쓰는 건 아니다. 말러는 기쁨, 슬픔, 아름다움 같은 감정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중적인 표현들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빚는다. 100명이 우스운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능력도 말러라는 세계의 매력이다. - P15
발레 음악으로 쓰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에너지의 소요와 소모가 대단한 곡이다. 주술을 거는 바순의 신비로운 선율을 시작으로 생명의 태동을 묘사하는 현악기의 강렬한 일렁임, 원초적인 숨처럼 각기 다른 음색으로 터지고 포개지는 관악기, 타악기의 연속적인 고함이 이어진다. 그렇게 오로지 소리로 봄의 만개를 기원하며 대지의 신에게 의식을 올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무지 미간을 펼 수 없고 등받이에 등을 대고 앉기 어려운 ‘뒤섞임’이 이 세계의 특징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리듬의 단위를 전투적으로 쪼개 긴장을 끌어올린다. 품위 있는 서사를 고집하던 과거의 음악들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능적인 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응축하고 집약해 하나의 흐름을 완성해내는 작곡가의 경이로운 기술을 좇다 보면 곡 안에서 최후의 춤을 추던 여인처럼 탈진할 것만 같다. - P16
음악의 재료는 어떤 법칙이나 공식이 아니라 추상적인 생각, 구체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작곡이란 작곡 공식을 배워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혹은 감각이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 P21
미학자들도 선율(melody)의 영역은 명확히 분석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감상자의 논리적,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감정 과잉을 지양해야 한다는 정도의 주장을 할 뿐이다. 실제로 음악학 영역에서 배우게 되는 많은 철학에서는 극도로 아름다운 음악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음악은 차원 높은 추상 예술이고 이념과 진리를 포함하는 예술이니 선율이 통속적이고 세속적이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멋진 선율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재능을 타고난 몇 안 되는 천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 바보들아!’ - P22
라흐마니노프가 써놓은 이 압도적인 드라마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무아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연주자가 지나치게 감상에 젖으면 균형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하고, 정작 청중은 음악에 몰입할 기회를 잃게 된다. (...) - P23
아닌 게 아니라 몇 해 전 평창의 야외 텐트에서 손열음이 붉은색 드레스 차림으로 들려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정말로 균형을 잃지 않은,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지도 스스로에게 도취되지도 않은 뛰어난 연주였다. 같은 곡이어도 오자와 세이지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와 협연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녹음물은 절제미를 갖추고 있어 고독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더 슬픈 기묘한 감흥을 준다. 이와 달리 러시아의 데니스 마추예프는 엄청난 박력과 속도감으로 듣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 P24
차이콥스키의 여러 작품 중 교향곡 6번 〈비창〉을 마스터피스라 여긴다. 1악장의 칸타빌레는 그저 마법 같다. 애틋하고 아득하다. 그 꿈같은 선율은 갑작스러운 소용돌이로 무참히 깨지는데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포효와 절규마저도 매혹적이다. 그러고는 그 아름다운 음색들을 동원해 한 번 더 꿈을 꾼다. 그 안에 푹 잠기고 싶어질 때도 있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도 충만해질 때가 있다. 이 작품의 4악장은 음악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음악을 듣는 모든 청자 그리고 자신까지도 이 곡 안에서 느끼고 싶은 모든 걸 느끼게 만든다. 고요히 사라지듯 끝나는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 P25
쇼팽의 많은 피아노곡 중 단 하나만 꼽자면 소나타 2번을 이야기하고 싶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려고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 음반을 막 재생했는데 1악장 도입부부터 말을 고르던 행위를 그저 멈추게 만든다. 왼손 저음부의 격렬한 움직임과 오른손의 날카로운 화음들, 정반대 정서를 품은 고요한 상념의 두 번째 주제, 두 테마가 대립하며 뒤섞인다. 자유로운 발상과 안정감 있는 구조, 대범한 시도와 정교한 전개, 이러한 이질적 특징을 동시에 품은 마법 같은 곡이다. - P44
2악장의 옥타브 연타와 느린 주제 역시 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이 정제된 우아한 흐름을 보인다. 그리고 3악장의 꾹꾹 눌러 잇는 장송 행렬. 장엄한 비애감 끝에 흘러나오는 선율에서도 쇼팽은 섣불리 감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1분 30초쯤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하다가 끝나버리는 4악장은 작곡가 스스로 천재적 영감을 믿고 내버려둔 순간의 기록일지 모른다.
(...) 쇼팽과 슈만 둘 다 엄청난 재능을 타고나고도 쇼팽이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누린 반면 슈만은 재능이 자신의 삶을 갉아먹도록 내버려둔 듯하다. 망상과 환각에 자주 시달리며 괴로워했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듯 작품 속 그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은 때로 쇼팽의 음악과 달리 통제력을 잃은 채 충동적으로, 무아지경으로 나아간다. 그래도 덕분에 완전히 창의적인 피아노 작품들이 음악사에 남았다. 그의 작품 속 모든 이야기는 철저히 슈만 개인의 것이다. - P45
리스트의 피아노곡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피아노 소나타 B단조다. 연주자로 하여금 여든여덟 개의 건반을 자유롭게 오가며 쇼팽이 경악할 만큼 악기를 세게 내려치게 만들기도, 미묘한 표현들로 풍부한 감흥을 빚어내게 하기도 한다. 리스트가 곡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피아니스트들은 아마 팔과 손가락뿐 아니라 몸 전체를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기세등등하게 역동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구조적으로도 통일감을 잃지 않아 완성도가 뛰어나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이 곡을 연주한 녹음 기록을 듣자면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다. - P47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왜 좋은지는 몰랐다. 그냥 바흐가 멜로디를 잘 써서 좋은 줄로만 알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배우면 배울수록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수학적 논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제가 되는 첫 곡을 시작으로 30개의 변주가 이어진 후 다시 첫 곡을 반복하며 끝마치는데 16번 변주곡을 기점으로 음악적 대칭을 이루고 있고, 카논 형식을 취하는 세 번째 변주마다 두 개 성부(양손) 사이의 음정이 1도씩 벌어진다. 이 곡은 오른손은 멜로디, 왼손은 반주로 나뉘는 일반적인 피아노곡과 달리 오른손도 왼손도 멜로디를 연주하게 하는 대위법을 취한다. 어느 하나의 성부만 연주하더라도 충분히 노래답다. 그러면서도 두 성부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며 앞으로 나아간다. - P53
도 음을 부드럽게 치든 느리게 치든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질문은 그래서 바흐가 빚은 이 우주의 질서를 발견하고 나면 달라진다. 이 세계에서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중요해진다. 별 하나가 살짝만 위치를 바꾸어도 별자리가 달라지듯 표현의 섬세한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든다. 그렇기에 음악가들은 책상 앞에 혹은 악기를 앞에 두고 앉아 음 하나하나에 어떤 뉘앙스를 입힐지, 선율 하나하나에 어떤 이야기를 부여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클래식 음악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연주하는 이유를 나는 바흐를 통해 알았다. - P54
자연스레 죽음을 묘사하는 다른 음악들도 떠올렸다. 모차르트가 쓴 〈레퀴엠〉,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도 손에 꼽게 좋아하는 작품이다.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이 음악들을 재생하는데 어쩐지 계속 버거운 마음이다. 〈죽음과 소녀〉는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곡이다. 〈레퀴엠〉은 죽음과 소멸의 한순간을 묘사한다. - P67
지금은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연주 영상을 틀어두고는 내내 넋을 놓고 있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의 여름 야외 음악회 영상이다. 풍부한 현악기 사운드가 매우 느린 속도로 큰 도약 없이 순차적으로 상행하거나 하행한다. 박자감을 느끼기도 어려울 만큼 아주 천천히 고이고, 번지고, 나아간다. (...) - P67
슈만의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정경〉을 들을 때면 슈만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슈만이 〈어린이 정경〉을 쓴 건 1838년, 클라라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 전이다. 슈만은 서른 곡을 작곡한 후에 열세 곡을 추려 Op. 15 ‘어린이 정경’이라는 제목을 달아 완성했다. 길지 않은 열세 곡의 피아노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가 그리움인 걸 보면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쓴 음악은 아닌 듯하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불러와 끌어안아주고 싶어서 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슈만 덕에 이 곡들을 들을 때마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매만지게 된다. 그중에서도 도이치 그라모폰의 노란 딱지를 단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1984년 연주를 좋아한다. (...) - P72
(...) 환상처럼 몽환적인 슈만의 〈어린이 정경〉과 달리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는 산뜻하고 또렷하다. - P77
그러다 세 번째 곡이 시작되면 그저 감탄한다. 활기찬 리듬, 생동감 넘치는 당김음과 꾸밈음들이 넋을 놓게 만든다. 단조가 언뜻언뜻 내비치던 묘한 분위기를 ‘눈은 춤춘다’로 연결해 신비로운 존재의 명랑한 움직임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작은 양치기’와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의 모호한 화성, 독창적인 표현들을 듣다 보면 피아노를 곧잘 쳤다던 슈슈의 예쁨을 나도 꼭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나 품위 있는 방식으로 이렇게나 커다란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구나. - P78
첼로와 더블베이스에 화음을 주지 않고 같은 음을 연주하게 하면 훨씬 풍부한 저음을 얻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대편성의 곡을 쓸 때 이를 적용해 입체감을 부여하고 깊이를 만들 수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도 소리는 완전히 달라진다. 독일식, 미국식, 절충식 같은 규칙을 따라 원하는 효과를 만들거나, 말러처럼 관악기를 하늘로 치켜들어 연주하게 해 특정 음색과 선율을 강조할 수도 있다. 음악학교, 작곡과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작곡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 P86
글을 쓰려면 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가사를 쓸 때는 가사 쓰는 몸이 필요하고, 산문을 쓸 때는 산문 쓰는 몸이 필요하다. 학술적인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무드가 비슷한 글을 근래에 좀 읽은 상태,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에 둥둥 띄워놓은 상태,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편안한 그런 상태가 필요하다. 실상은 늘 다른 몸으로 다른 글을 쓴다. 열심히 사회학 이론을 읽다 가사를 얼른 완성해 보내야 할 때면 곤란하다. 하나의 논리를 쪼개고 파헤치고 관점들을 나열하고 인용하고 왜 아닌지, 왜 아닌지, 왜 아닌지, 왜 맞는지, 왜 맞는지, 왜 맞는지를 열심히 좇아가다 갑자기 멈추고 직관과 느낌과 감각을 깨운다. 왜 아닌지, 왜 맞는지 따지다가는 가사는 한 줄도 못 쓸 것이다. - P95
센강의 왼쪽과 오른쪽, 낮과 밤, 잔잔한 풍경과 일렁이는 물결을 마주할 때도 역시 자연스레 드뷔시가 떠올랐다. 뼈대도 근육도 없이 오직 인상만 있는 음악이라는 드뷔시를 향한 당대의 비아냥이 얼마나 날카로운 비평이었는지도 파리를 보고서야 눈으로 이해했다. 파리를 여행하며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의 연주로 드뷔시의 두 권의 프렐류드와 두 권의 〈영상〉을 반복해서 들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윤곽을 흐릿하게 뭉개 신비로운 장면을 그려냈다면 음악은 훨씬 더 섬세하게 세분화된 음표들로 번져나가는 소리의 울림을 좇아야 한다. 자연 속에서 흔들리고 움직이는 대상 하나하나를 자기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소리 사이사이의 여운마다 색채감을 심어 넣은 드뷔시의 위대한 기록이 밤하늘 아래 굽이지듯 들려왔다. - P108
에마르의 연주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충분히 감성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다. 무엇보다 드뷔시 작품의 특징인 어두워지거나 밝아지고,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흐름과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고도 구심력을 발휘하듯 균형을 지키려 애를 쓴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혜안이 놀랍다. 파리에서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면서는 조성진의 2017년 드뷔시 음반을 듣고 있다. 에마르와 달리 조성진은 원심력을 가지고 마음껏 뻗어나가듯 연주한다. 깨질 듯 맑은 음색으로 황홀감을 선사하는 좋은 연주다. 가장 좋아하는 ‘물의 반영’을 연거푸 듣는다. - P109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음악가는 요한 요한손이었다. 영상의 의미와 효과를 훌륭하게 뒷받침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을 선보이는 음악가다. 영화 〈컨택트〉에서 처음 그를 알고 깜짝 놀랐다. 언어학자가 외계 생명체와 소통하는 이 영화는 무겁고 인위적인 금속 소리, 사람 목소리와 기계음이 뒤섞이는 오싹한 효과 등으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 - P131
(...) 종종 꺼내 듣는 아끼는 음반이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작업을 많이 한 한스 짐머가 남긴 로맨스 영화다. 이 음반은 뭐랄까, 만능이다. 아침에 들어도 늦은 밤에 들어도 좋다. 기분이 썩 괜찮을 때나 아니면 좀 센티할 때도 어울린다. 겨울에 들으면 완벽하지만 딱히 겨울이 아니라도 충분히 좋다. 여럿이 함께 듣기에도, 혼자 운전하며 듣기에도 만족스럽다. - P132
(...) 인터뷰 얼마 후 선생님이 귀국해 지휘자 정명훈, 서울시향과 함께 파스칼 뒤사팽이라는 프랑스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 〈상승〉을 아시아 초연한 자리였다. 이 곡은 고음부에서 유영하는 솔로 바이올린과 저음부에서 머무는 오케스트라의 괴리를 드러내며 시작한다. 마치 현대를 사는 하나의 자아가 신을 향해 품은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악장마다 솔리스트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건 고독한 투쟁을 치러내는 듯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바이올린은 매우 풍부한 소리로 엄청난 긴장감과 추진력을 만들어내며 뚜렷한 색채를 빚어갔다. - P140
〈머큐리〉 외에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1978), 요한 요한손의 <플라이트 프롬 더 시티(Flight from the City)>(2016), 올라퍼 아르날즈의 <ekki hugsa>(2018)를 자주 재생한다. 미니멀리즘 작품 중에서는 우울하게 추락하는 듯한 곡들도 많은데, 이 세 곡은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마음으로 있든 폭신폭신한 이불을 확 둘러 덮어준다. 언제라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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