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무래도 좋을 그림 - 여행을 기억하는 만년필 스케치
정은우 글.그림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을 갈 때, 나들이 갈 때, 잊지 않고 사진기를 챙긴다. 사진으로나마 그때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카메라는 부지런히 매 순간을 담아주곤 한다. 막상 시간이 흐르면 그때의 기억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찍어 둔 사진도 잘 보지 않게 되더라. 그렇다면 사진 찍느라 바빠 중요한 것들을 놓칠 것이 아니라 찬찬히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더 남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여행을 하는 방법도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년필 스케치를 통해 여행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작가 정은우 님의 <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우리 삶이 지향하는 방향은 빠름이 아니라 느림이고 화려함이 아니라 은은함이고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면의 속살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고급 카메라에 찍힌 여행지의 사진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게 하기도 하지만 떠날 수 없을 때 사진으로나마 위로 삼기도 한다. 셔터 한 번에 멋지게 찍히는 고급 카메라의 근사한 사진에 익숙해져 있다면 왜 만년필 스케치를 고집하는지 의아하기 마련이다. 책을 읽으며 왜 스케치여야 했는지, 그리고 왜 다루기 힘든 만년필인지를 쉽게 알게 된다. 스케치에서 작가의 고된 작업이 느껴지는 것처럼 여행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빠름과 신속이 우선시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주목받는 시대에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경계를 발견하는 기쁨을 찾고, 숨은 골목을 일부러 찾아가는 데서도 그 고집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 방법 또한 느림이고 냉철함이다. 화려함에 압도되어 감탄을 연발하는 우리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지 못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그 돌덩이 밑에 깔린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감수성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길을 잃을망정 그곳에서 또 다른 체험을 하는 것 또한 그에겐 기쁨이고 추억이 된다. 교통수단이 발달했지만 걷는 것만큼 값진 체험을 주지 못할 것이고, 결국 모두가 걷던 시절에 만들어진 사람의 도시였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이동 수단 또한 그에게는 사색의 주제가 된다.

 

"나는 강렬한 그 느낌과 모습을 스케치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런 인상을 받을 때마다 스케치를 하는 것은 비단 오사카뿐 아니라 어느 도시를 여행하건 줄곧 내 여행을 지배해온 일관된 흐름이었다. 마치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귀찮더라도 언더라인을 표시해두듯. 그래야만 후일 책장을 대충 훑어도 밑줄을 그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내 결핍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여행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스케치로 남겨둔 풍경은 먼 후일 많은 기억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 것이라 믿었던 거다." (본문 192쪽)

 

저자는 고통을 견디는 방법으로 항상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적는 편이라고 한다. 글로 적어 놓으면 어렴풋하던 것이 선명해지고, 그림을 그려보면 그 풍경 속에 안온해진다고. 따라서 이 책은 저자만의 삶을 견디는 방법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그림은 날카롭고, 글은 솔직하다. 저자는 그곳의 일상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구경하는 일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남들의 기이한 삶, 뜻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바로 지금 저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이 여행에서 더 필요하다. 그때에 비로소 남의 삶과 풍경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여행의 진짜 묘미이지 싶다.

 

개인적으로 창경궁, 덕수궁, 경복궁 등 책에 소개된 서울의 궁의 뒷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평소 궁하면 옛것의 아름다움을 먼저 떠올리고, 아이들과 함께라면 교육적인 측면을 떠올리기 쉬운데, 거기에 누군가의 한과 고독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깊이 있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고 단편적인 것들만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리라. 여행의 가치는 보고 즐기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픔과 아픔까지도 느끼고 체험해 보는 것이다.

 

흔히 책을 통한 여행도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여행을 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독을 통해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곳을 가더라도 여행지에 대한 풍부한 사전 지식도 필요하고 많이 보려고 하기보다는 한 곳을 보더라도 깊이 관찰하고 들여다 보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참된 여행이 될 것이다. 보여지는 멋지고 화려한 것 이면에 감춰진 숨은 속살을 봄으로써 느끼고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것 또한 여행이 주는 참된 가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 하는 여행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사진 기술의 발달은 수많은 인증샷을 쏟아낼 뿐이고, TV 매체의 영향으로 여행지 하면 맛집이 먼저 떠오를 정도다. 남들이 한 번쯤 들른다는 곳을 들러야 진짜 여행을 한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보다 의미 있는 것들을 보려는 노력들을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 보여주는 진득한 그림과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여행이 그리운 이유이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여행 후 풀리지 않은 여독에 삶이 다시 고달플지언정 여행은 늘 옳았다. 그런데 누구나 다 보는 것을 보고, 누구나 다 가는 곳을 가고, 누구나 다 먹는 것을 먹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심한 생각이 들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여행도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따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보여주기식 여행을 자제하고 있다. 정말 여행이 필요할 때,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있을 때 과감 없이 떠나려고 한다. 그래서 늘 마음은 준비되어 있다. 보다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이랄까. 여행은 남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떠나는 것이며 편파적이고 사사로운 여행이 되어야 함은 실로 그러하다. 여행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남의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있지 않고, 나의 성찰이 먼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금인출기처럼 생긴 투명한 부스 안. 이곳에서 몸을 녹이고 싶다면 손바닥 그림이 그려진 곳에 손을 갖다 대야 한다. 반대편 손바닥 그림에도 손을 올려놔야 하는데 한 사람만으로는 반대쪽에 손이 닿지 않아 꼭 두 명 이상의 사람이 함께 해야 한다. 함께 하는 사람이 두 손을 맞잡아야 히터가 작동되는 공간.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것은 난로가 아닌 맞잡은 순간의 따뜻함이다. 캐나다 북부 길거리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 안에서 가슴 한켠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과 작은 실천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지당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1도씨 인문학>에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페트병 하나로 세계 각지의 어둠을 밝혀준다는 이야기, 방치된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시작한 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의 이야기, 맹학교 학생들의 특별한 졸업앨범에 관한 이야기, 유기견들의 마지막 표정을 그림으로 남겨주는 어느 화가의 이야기,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위험에 뛰어드는 태종대 두 영웅의 이야기, 빵을 훔친 노인에게 벌금형을 처하며 빵을 훔쳐야 할 정도로 어려운데도 아무도 돕지 않은 시민 모두의 책임이라며 시민 모두에게 벌금형을 내렸던 어느 판사의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삶의 가치를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는 데 있다. 나 혼자 행복하게 잘 살고자 했다면 이런 기가 막힌 생각들과 감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10살 어린 KEN이 유기견들을 돌보며 동물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우정을 배우는 것도, 정류장 표지판에 사비를 들여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던 청년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다. 순수한 열정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언제나 놀라울 수밖에 없다. 세상을 조금만 비틀어 보면 이렇게 재미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우리의 메마른 감성과 이기주의에서 탈피하는데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온갖 거짓말과 허세가 차고 넘쳐나는 세상에 가슴 따뜻한 울림을 전하는 진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공감은 곧 힘이고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1도씨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세상을 바꾸었던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계속될 거라고. 좋은 생각이 더 아름다운 실천으로 이어지고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던 아이디어가 객관화될 때 세상에 미칠 영향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생각에 머무르는 것은 어리석다고. 우리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망설이는 사람인지, 행동하는 사람인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그 순간에 늦고 빠름이 있을 리 없다.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도 해보게 된다. 작은 거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라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진심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면 그 세상을 살만하게 바꾸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하고자 했던 소수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의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빠르게 변화는 시대 변화속에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았지만 여전히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에 갈증을 느끼고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세이브더칠드런의 놀 권리 회복 프로젝트 '놀이터를 지켜라'로 처음 만들어진 농어촌 놀이터 '도리터'에 관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미끄럼틀이나 시소 대신 컨테이너 두 개 사이에 나선처럼 꼬인 철골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띄엄 띄엄 흩어진 농어촌의 환경 탓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특별한 놀이터라고 한다. 놀이터를 세울 마땅한 공간조차 없던 농어촌에 땅을 내어주고 책임지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아이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꿈에 그리던 놀이터가 탄생하는 그 순간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벅차고 기쁘지 않았을까 싶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몇 도씨는 더 따뜻해진 세상을 꿈꾸는 것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씨앗이다. 그 씨앗이 세계 곳곳에 뿌려지기를 바라본다.

누군가 해야 되는 일이라서 제가 먼저 했어요.

이렇게 아주 작은 화살표 스티커지만 지금은 더 나은 세상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페이지 : 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끄럽지만 김훈 작가님의 책을 올 초에 처음 접했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이었다. 원래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자전거 여행>을 읽으면서 책의 대부분에 밑줄을 그었더랬다. 이건 중요한 내용이라던가, 이 문장은 멋지다라던가 의도된 생각에서 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펜을 들고 밑줄을 긋고 있었다. 그전에 접해보지 못 했던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이 나의 손을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훈 작가와의 만남이 그때가 처음이었고 이어서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봐야지 하던 참에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집을 만났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친근한 소재가 문장 속에서 갖가지 생각들이 빛났었고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발견되는 놀라운 경험을 익히 했던 터라 <라면을 끓이며> 또한 우리가 먹고 사는 일, 너무나 일상적인 그러면서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 했던 새로운 생각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라면을 끓이며>는 이전에 출간되었던 산문 중에서 작가가 선별한 산문과 새로 쓴 산문 몇 편을 엮은 책이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었다던 작가의 마음이 낮지만 깊게, 순하지만 울림 있게 전해진다. 차례만 봐도 그랬다. 밥, 돈, 몸, 길, 글 등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친숙한 주제이지만 그 주제를 풀어내는 작가만의 삶의 철학은 여러 번 읽고 음미하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말한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생활의 영원성을 몸소 충분히 느끼고 체험하며 끝내는 그 많은 느낌들이 대부분 언어화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할 정도이니 저자에게 삶이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면서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의미를 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면을 끓일 때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리라.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계장의 닭들과 사지를 결박당한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들과 양식장에서 들끓는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36억 개 라면의 그 분말수프의 맛을 생각한다. 파와 계란의 힘으로, 조금은 순해진 내 라면 국물의 맛을 36억 개의 라면에게 전하고 싶다." (본문 31쪽)

 

'세월호'에 관한 단상은 답답했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뚫어준다. 사고가 있고 잠시 참회를 하는 듯했던 정부나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누구 하나 속시원히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저 마음으로 느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느꼈던 세월호의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가 없어서 끔찍한 재앙을 당한 소수자의 불운으로 자리 매겨졌다. 진상 규명 보다 경제 회복이 우선이었고, 소수의 고통 따위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려나야 했다. 저자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이 곧 또 다른 난파선이라고 말한다. 양태는 다르지만 뿌리가 같아서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구분할 수 없고 과거의 사태가 오늘의 사태로 터져 나오고, 오늘의 사태가 미래의 사태를 예비하고 있으며 이 난파선은 아직도 표류중이라고 말이다. 뼈 있는 말에 숙연해진다.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본문 166쪽)

 

어떤 책은 읽고 나면 마치 세상을 다 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정작 진짜 세상을 본적도 느껴본 적도 없고 글로 이해했을 뿐이면서. 반면에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세상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겸손해지는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느끼는 것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것, 내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그 이상으로 무수히 많은 언어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겸손해지고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우리를 가장 낮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깊이 들여다보고 파고들고 생각하는 삶을 향하게 할 것이다. 맑은 가을날, 소리를 낼 수 없는 이 세상의 사물들이 바람에 스치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을 관통하는 언어는 '사랑'이다. 작가는 <당신>을 통해 현실에서의 흔한 인스턴트 사랑이 아니라 진득하고 자기 성찰이라는 과정을 통해 사랑에 접근한다. 삶을 삶답게, 죽음조차도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곧 사랑임을 은밀하게 드러내 준다. 기억은 지속이다. 기억이 지속되는 한 사랑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 기억의 지속을 확인하고 돌아보는 성찰의 기록이고 끝내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삶은 기억이고, 사랑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 당신이 있다.

 

"가슴이 마구 무너진다. 당신, 이란 말이 왜 이리 슬플까. 함께 견뎌온 삶의 물집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눈물겨운 낱말이다. 그늘과 양지, 한숨과 정염, 미움과 감미가 더께로 얹혀 곰삭으면 그렇다, 그것이 당신일 것이다." (본문 267쪽)

 

치매에 걸린 주호백을 정성껏 간호하는 윤희옥, 어떤 사연인지 주호백이 죽자 아내 윤희옥은 주호백의 시신을 마당 한가운데 매화나무 아래 묻는다. 그리곤 경찰에 찾아가 실종신고를 하고 남편 주호백을 찾아 나서며 켜켜이 쌓인 삶의 실타래를 풀어놓는다. 그 기억은 남편 주호백의 것일 수도 있고 아내 윤희옥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연과 기억은 오랜 세월 그들의 삶을 이어주고 관통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윤희옥의 늦은 회한이기도 하고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던 딸과 함께 주호백을 찾아 나선 길에 윤희옥이 왜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 했었는지 그녀에게 첫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시대적 상실에 대한 내면의 보상이기도 했고 허무하게 잃어버린 첫사랑에 대한 자기 부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찾고 싶었던 것은 주호백이 아니라 그토록 주호백을 외면해 왔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아픔에서 극복한 자신을 만나고 늘 자신의 곁을 지켰던 진짜 사랑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첫사랑의 아픔이 있던 윤희옥에게 삶의 목적이 오로지 자신이었던 주호백의 사랑은 찌질함이었다. 그런 그가 치매에 걸려 시간과 공간을 혼동하며 그 둘을 과거로 돌려놓고 세월 여행을 하는 동안 희옥은 뒤늦은 사랑을 경험한다. 치매에 걸려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 주호백을 병간호하는 동안 경이로운 삶의 실체를 마주한다. 성찰이 가져다준 깨달음이었다. 치매에 걸려 주호백이 숨겨온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남은 시간 그를 돌봐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녀 나름의 사랑이었다. 주호백에게 남은 짧은 생을 위해 온전한 희생이야말로 그녀가 마침내 찾은 공평한 사랑이자 수평적 사랑이었다.

 

사랑의 영원성에 대해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엔 사랑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는 말도 하던데 지금은 공식적인 유효기간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사랑의 기준이 조건으로 바뀐듯하다. 조건만 맞으면 그 위에 사랑의 집을 지을 수도 있고, 무조건적 사랑보다 조건 위에 지어진 집이 현실적으로 더 튼튼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조건과 조건 위에 세워진 사랑이라,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내가 믿는 사랑 또한 현실적인 사랑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황혼 이혼의 증가율도 이제 사랑에 대해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 건지 답답해진다. 소설 속 주호백과 윤희옥의 사랑은 어딘지 우리가 하는 사랑과 너무나 다르다. 아내 윤희옥은 말한다. 주호백이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경이로운 각성은 없었을 것이라고.

 

"경이로운 삶의 실체, 어떤 심지, 뭐 그런 거. 딱 맞는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어떤, 그래, 삶의 어떤, 이를테면 여실한 뼈 같은 것, 그런 걸 네 아빠인 주호백, 그의 치매 때문에 만났다면 이해할 수 있겠니. 일흔이 넘어서야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거라고 여겨. 늦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 축복이 너무나 컸거든. 뭐랄까, 여실한 뼈 같은, 그런 사랑이거든. 치매가 아니었다면, 그가 평생 감추고 억눌러왔던 자신의 본능을 차례차례 내게 드러내 보여주지 않았다면, 죽기 전 절대로 도달하지 못 했을 각성에 도달했다고 나는 느껴. 나 자신도 몰랐던, 원래 내 안에 쟁여져 있던 사랑이 나날이 솟구쳐 나오는 그것. 경이로운 각성이라고 나는 생각해. 비극이면서 곧 축복인." (본문 249쪽)

소설에서 윤희옥은 고백한다. 회한이 있다면 사랑이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것이라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소중한 것을 우리는 너무 뒤늦게 깨닫는다. 작가는 소설 속 주호백과 윤희옥의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간절한 만큼이나 독자들에게 간절하게 말한다. 현재를 결코 부정해서는 안되며 더 많이 사랑하라고. 자기희생 없이 우리는 진짜 사랑을 다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이 아니면 못 볼 꽃을 그냥 지나쳐왔을까 하고 작가는 말하는 것이다. 되돌리기엔 지나치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차고 넘친다.

 

첫사랑이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미지라면 '사랑'은 보기 좋게 잘 익은 열매일지도 모르겠다. 설레는 맛이 강하지는 않지만 잘 익은 열매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당신>에서 주호백의 사랑과 윤희옥의 뒤늦은 사랑은 잘 익은 열매 같다. 어떤 수식어 없이도 그것이 사랑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단지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생명 자체를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의 숨결로서 생명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함을 소설을 통해 배운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시고 떫은 맛을 이겨낸 잘 익은 열매여야 한다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본문 237쪽)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여서 읽을수록 겸손해지게 된다. 나 자신이 이렇게나 불완전한 존재임을 매 순간 확인하게 된다. 세상은 극도로 빠르게 변하고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씨줄과 날줄이 들쑥날쑥하고 삐걱거리는 것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그 간극을 좁히며 완성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좀 더 짜임새 있었으면 좋겠다.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는 삶을 위한 촘촘한 생각들을 하게 하는 책이다. 단순히 현재를 즐기며 행복하자가 아니다. 본질을 잃지 않으며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클래식함에 빠져 충분히 풍요로운 삶을 살라고 말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삶에 던지는 8가지 질문, 여덟 단어는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를 것이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름의 인생의 단어들을 추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 자체만으로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생은 몇 번의 강의, 몇 권의 책으로 쉽게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더 재미있고,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인생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고민은 하며 살고 있을까. 부끄럽지만 늘 그때뿐이었던 것 같다. 몇 번의 강의나 몇 권의 책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인데, 강의 몇 번 듣고 격하게 공감하다가 끝날 때도 많았고, 몇 권의 책을 읽고 내 삶이 완전히 바뀔 것 같은 경험을 하다가도 흐지부지되는 경험들을 수차례 했었다. <여덟 단어> 또한 내가 읽은 몇 권의 책 중에 하나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사랑해야겠고, 풍부한 경험들을 하며 살아야겠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다수의 시선이 가는 곳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바라볼 줄 알아야겠고,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이면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눈을 갖도록 해야겠고, 보이는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격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 쉽게 쓰러지지 않는 튼튼한 나무를 자신의 인생에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삶에 던지는 여덟 가지 질문은 더욱 단단한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지침이 되어준다. 깎고 다듬어져 전부 똑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생긴 모습 그대로 각자의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는 나름 나름 너무 잘 사는 것만 같은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다. 왜일까. 어쩌면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서로에게 이방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수의 선택,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이 옳은 것이라 철석같이 믿으며 살아간다.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니 정작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의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인생에 맞는 단어를 찾는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여덟 단어>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꿈을 꿔라', '인생의 목표를 세워라'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꿈을 꾸고 있지 않을 땐 왠지 자신만 도태되는 것 같고 불안해질 때가 있다. 지나치게 목표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 보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기억에 남는 것조차 많지 않다. 저자는 '제발 꿈을 꾸지 말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꾸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살지, 그런 작은 꿈을 꾸면서 살자고 말이다. 목표를 가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목표만을 바라보느라 현재의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성실하게 산 하루하루의 결과가 곧 인생이 된다는 것을 잃지 말자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