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을 관통하는 언어는 '사랑'이다. 작가는 <당신>을 통해 현실에서의 흔한 인스턴트 사랑이 아니라 진득하고 자기 성찰이라는 과정을 통해 사랑에 접근한다. 삶을 삶답게, 죽음조차도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곧 사랑임을 은밀하게 드러내 준다. 기억은 지속이다. 기억이 지속되는 한 사랑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기억을 더듬어 가며 그 기억의 지속을 확인하고 돌아보는 성찰의 기록이고 끝내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삶은 기억이고, 사랑이다. 사랑의 다른 이름, 당신이 있다.

 

"가슴이 마구 무너진다. 당신, 이란 말이 왜 이리 슬플까. 함께 견뎌온 삶의 물집들이 세월과 함께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눈물겨운 낱말이다. 그늘과 양지, 한숨과 정염, 미움과 감미가 더께로 얹혀 곰삭으면 그렇다, 그것이 당신일 것이다." (본문 267쪽)

 

치매에 걸린 주호백을 정성껏 간호하는 윤희옥, 어떤 사연인지 주호백이 죽자 아내 윤희옥은 주호백의 시신을 마당 한가운데 매화나무 아래 묻는다. 그리곤 경찰에 찾아가 실종신고를 하고 남편 주호백을 찾아 나서며 켜켜이 쌓인 삶의 실타래를 풀어놓는다. 그 기억은 남편 주호백의 것일 수도 있고 아내 윤희옥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연과 기억은 오랜 세월 그들의 삶을 이어주고 관통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윤희옥의 늦은 회한이기도 하고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미국에 살던 딸과 함께 주호백을 찾아 나선 길에 윤희옥이 왜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 했었는지 그녀에게 첫사랑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시대적 상실에 대한 내면의 보상이기도 했고 허무하게 잃어버린 첫사랑에 대한 자기 부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찾고 싶었던 것은 주호백이 아니라 그토록 주호백을 외면해 왔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아픔에서 극복한 자신을 만나고 늘 자신의 곁을 지켰던 진짜 사랑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첫사랑의 아픔이 있던 윤희옥에게 삶의 목적이 오로지 자신이었던 주호백의 사랑은 찌질함이었다. 그런 그가 치매에 걸려 시간과 공간을 혼동하며 그 둘을 과거로 돌려놓고 세월 여행을 하는 동안 희옥은 뒤늦은 사랑을 경험한다. 치매에 걸려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 주호백을 병간호하는 동안 경이로운 삶의 실체를 마주한다. 성찰이 가져다준 깨달음이었다. 치매에 걸려 주호백이 숨겨온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남은 시간 그를 돌봐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녀 나름의 사랑이었다. 주호백에게 남은 짧은 생을 위해 온전한 희생이야말로 그녀가 마침내 찾은 공평한 사랑이자 수평적 사랑이었다.

 

사랑의 영원성에 대해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엔 사랑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는 말도 하던데 지금은 공식적인 유효기간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사랑의 기준이 조건으로 바뀐듯하다. 조건만 맞으면 그 위에 사랑의 집을 지을 수도 있고, 무조건적 사랑보다 조건 위에 지어진 집이 현실적으로 더 튼튼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조건과 조건 위에 세워진 사랑이라,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내가 믿는 사랑 또한 현실적인 사랑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황혼 이혼의 증가율도 이제 사랑에 대해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 건지 답답해진다. 소설 속 주호백과 윤희옥의 사랑은 어딘지 우리가 하는 사랑과 너무나 다르다. 아내 윤희옥은 말한다. 주호백이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경이로운 각성은 없었을 것이라고.

 

"경이로운 삶의 실체, 어떤 심지, 뭐 그런 거. 딱 맞는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어떤, 그래, 삶의 어떤, 이를테면 여실한 뼈 같은 것, 그런 걸 네 아빠인 주호백, 그의 치매 때문에 만났다면 이해할 수 있겠니. 일흔이 넘어서야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거라고 여겨. 늦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 축복이 너무나 컸거든. 뭐랄까, 여실한 뼈 같은, 그런 사랑이거든. 치매가 아니었다면, 그가 평생 감추고 억눌러왔던 자신의 본능을 차례차례 내게 드러내 보여주지 않았다면, 죽기 전 절대로 도달하지 못 했을 각성에 도달했다고 나는 느껴. 나 자신도 몰랐던, 원래 내 안에 쟁여져 있던 사랑이 나날이 솟구쳐 나오는 그것. 경이로운 각성이라고 나는 생각해. 비극이면서 곧 축복인." (본문 249쪽)

소설에서 윤희옥은 고백한다. 회한이 있다면 사랑이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것이라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소중한 것을 우리는 너무 뒤늦게 깨닫는다. 작가는 소설 속 주호백과 윤희옥의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간절한 만큼이나 독자들에게 간절하게 말한다. 현재를 결코 부정해서는 안되며 더 많이 사랑하라고. 자기희생 없이 우리는 진짜 사랑을 다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이 아니면 못 볼 꽃을 그냥 지나쳐왔을까 하고 작가는 말하는 것이다. 되돌리기엔 지나치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차고 넘친다.

 

첫사랑이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미지라면 '사랑'은 보기 좋게 잘 익은 열매일지도 모르겠다. 설레는 맛이 강하지는 않지만 잘 익은 열매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당신>에서 주호백의 사랑과 윤희옥의 뒤늦은 사랑은 잘 익은 열매 같다. 어떤 수식어 없이도 그것이 사랑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단지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생명 자체를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의 숨결로서 생명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함을 소설을 통해 배운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 시고 떫은 맛을 이겨낸 잘 익은 열매여야 한다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