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독서모임의 선정 도서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이다. 

202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과 마지막까지 경합했으니 이번 선택이 더욱 반갑고 뜻깊게 다가온다.

피천득 선생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에게 아마도 낯선 이름은 아닐 것이다. 

아사코를 그리워하며 인연의 아련함을 노래한 수필 〈인연〉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테니 말이다. 

민음사 출판부가 선생의 수필들을 골라 469번 책으로 엮어낸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한때 읽었던 글들을 다시 만나는 반가움도 크지만,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글과 생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은 기대 이상이다.


이미 읽었다고 여겼던 문장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를 발견하고, 처음 만나는 수필에서는 뜻밖의 감동을 얻는다. 독서의 즐거움이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익숙한 것들 사이에 숨어 있던 낯선 빛을 발견하는 일. 오래 알고 지낸 문장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오고, 그 문장 앞에서 나 또한 조금 달라져 있음을 깨닫는 일 말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더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볼 줄 알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던 피천득 선생을 민음사 덕분에 다시 만난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때의 피천득과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다시 마주한 피천득과 지금의 나는 또 얼마나 달라졌을까.


같은 글을 읽어도 읽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마음에 닿는 문장은 달라지고, 같은 작가도 세월의 깊이만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책 속의 문장을 다시 만나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을 읽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마주 앉는 일인지도 모른다.




피천득 선생을 다시 읽으며, 나는 고등학생때의 나를 만나고 중년의 나를 마주한다. 

책은 그대로인데 읽는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 그것이 다시 읽는 책이 내게 주는 쓸쓸함이자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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