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는 그들의 몰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야망이 많지 않다. 나는 차라리 압도적인 특수성 혹은 매혹적인 주관성이고 싶다.(...)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존경하는 분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행운이다.
(...)
2008년 12월
신형철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
말에 배반당하기 때문에 다른 말들을 찾아헤메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들은 말들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그 실패를 한없이 곱씹는다.
그 치열함이 시인의 시적 발화를 독려한다.
한편 행동이 통제불능이라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려는 자들이 소설가다. 소설가는 법과 금기의 틀을 위협하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창조하고 그 순간이 욕하는 진실을 오래 되새긴다. 그것이 소설가의 서사 구성을 추동한다.
요컨대 문학의 근원적 물음은 이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고/없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없는가?˝
말하자면 나의 진실에 부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날그날의 효율을 위해 이 질문을 건너뛸 때 우리의 정치, 행정, 사법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문학이 불가피한 것은 저 질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제도와 거기서 생산되는 문학 상품들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저 질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모험들이 불가피한 것이다. 시적인 발화의 실험과 소설적인 행동의 감행이 불가피한 것이다. p14
이런 시인들은 ˝시를 삶에 대한 가벼운 복수로 여기는 사람들˝(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에게 충고한다.
제 안의 심연에서 솟아나오는 한 줄의 발화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기념비‘(들뢰즈,가타리)가 시라고 말이다.p15
문학은 구축하는 초자아의 총체성이 아니라 배제되는 무의식의 총체성이기 때문이다 p18
시는 발화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틈에서 출몰하는 진실을 겨냥하고, 소설은 행위가 감행되고 철회되는 틈에서 발생하는 진실을 조준한다.
(.....)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다.. 몰락의 에티카다. p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