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대해서 하루키는 보기 드물게 해설과 창작 과정의 에피소드까지 밝혔습니다.


그리고 젊은 날의 상처를 치유하는 구원의 길을 제시한 최초의 작품으로


결말에 대해서는 그의 아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여러 번 고쳐 썼다 하네요.


해설에 있다시피 "현재의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과거라는 것에 영향 받지 않고, 현실 생활


에 긍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소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루키 답지 않은 소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실의 결말은 죽음 뿐, 구원을 받거나 아니면 


"그래서 오래 오래 잘 살았다" 라는 식은 없습니다.


우린 번뇌와 상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연속적인 삶에서 


결국 그것을 고민하다가 죽어갑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완벽을 추구하는 결핍의 존재로서 그것을 채우려고 서둘수록 더 멀어지는 


신기루를 안고 사는 것을 인간의 삶으로 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을 읽고 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든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혼자서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맥주를 마시고 보통 사람과는 약간 다른 사고를 


가진 인물을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이는 하루키의 모습과도 닮아있겠지요) 사람


들과 잘 어울리는 소위 "사회성"이 좋은 사람을 '善'의 가치로 내세우는 현실에, 작아지는 내 


신을 위로 받은 적도 꽤 있었습니다.


하루키의 에세이나 단편, 장편소설까지 


다이내믹한 스토리와 구성을 크게 기대한 적이 없습니다.


평이한 문장에 소소한 이야기, 다 읽고 나면 이게 뭐지? 하는 모호함이 최고의 장점이었습니다.


하루키의 저작에서 여러번 나온 말 중에 "글을 쓰다 보면 결말은 그냥 쓰여진다"는 말이 


참 근사했는데 결말을 여러 번 고쳐서 연애-실연 이라는 모티브에 확연한 결론을 내린 시도, 


그것도 아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썼다고 하니..괜한 걸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번도 독자들에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가르친 적 없는 하루키가 


"현실 생활에 긍정해야 한다"는 분명한 교훈으로 끝을 맺은 것은 별로이네요  


이번에도 독자들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결말 부분 아쉬운 거 빼고는 간만에 하루키의 "연애소설"을 읽어서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간이란 건 어떤 경우에는, 그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 46쪽

모두 점점 사라져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떤 것은 끊어져 버린 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떤 것은 시간을 두고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그리고 남는 것은 사막뿐이다. - 128쪽

타인을 위해서 울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었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나이 들어 있었다. - 243쪽

우리는 늘 완벽함을 갈망하지만, 막상 그런 삶이 이루어지면, 그 삶이 주는 평화를 참지 못하는 이상한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341쪽

일본의 젊은 신예작가 이누카이 교코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리믹스>판에 관한 것이다.-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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