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의 이웃들

세 아이의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선고 18시간만에 사형당할 때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죽었습니다.
1975년 당시 45세이던
우홍선님의 이야기는 그의 배우자, 딸, 아들의 기억으로 시작합니다.
늘 꿈에선 살아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착각하고, 또 잠에서 깨면 눈물을 쏟았다지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은 이런 꿈 많이들 꾸시자나요. 깨고나면 너무나 헛헛하고 아련한 기분 아시죠~
빨갱이의 가족으로 감시받고, 냉대받던 처절한 인생을 그 누군들 실감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2005년도에 과거사진실규명워원회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과장됐다는 결과가 났고 2007년도에 재심에서 32년만에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만..

박정희와 민복기(1913년 친일파 민병석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판사가 되었으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 당시 대법원장이었다)가 우홍선님의 가족을 갈가리 찢었습니다.
민복기는 94살까지 장수했고, 아주 화려한 친일경력에 2000년대는 자랑스런 서울대 법조인으로 뽑혔다네요~
아주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요즘은 현충원에 계신답니다.


두번째 김용원님의 스토리
읽을 자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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