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너무 흔한 이야기라서 맥없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첫 편은 광개토대왕비를 답사하고 시대별 탁본에 관한 특징과 오류, 그 의도를 통해 고구려의 위상을 보고자 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 비문을 해석하는 것은 다양한 문헌과 역사적 실상에 관한 포괄적인 통찰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일본군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본학계의 근본적인 문제점, 그리고 호태왕비를 구실삼아 그들이 전개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조선사에 관한 편견의 필연성에 관한 핍진한 이해가 없다.
읽다 보니 저명한 동양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찌(1865~1942)의 개소리가 눈길을 끈다.
육군참모부는 이 광개토대왕비를 통째로 일본으로 반출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 책동을 집안현 지사가 알고 이 계획을 저지시켰다.(1907년)
일본인의 범죄행위의 수준은 이와 같았던 것이다.
이반출을 책동은 사람은 동경제국대학 교수로서 만선사,한학,지나어학의 강좌를 담당했던 시라토리였다. 그는 1905년 8월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고도 추저분한 논설을 펼치고 있다.
˝이 비문이 유명한 이유는 조선남부에 치우쳐있는 신라,백제,임나의 세 나라가 일본의 신민이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써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상 매우 가치가 높은 물건이다. 물론 일본의 역사에도 이 세 나라가 일본에 조공을 했다든가, 혹은 속국이 되었다는 일이 이야기는 되고 있지만, 일본의 역사라는 것은 이른바 전설에 속하는 것이며 역사상의 가치는 희소한 것이다. 그러한데 비하여 이 비문은 당시의 정황을 알려주는 너무도 신용할 수 있는 역사유물이다. 이 비에 의하여 일본이 조선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비는 아국의 역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 비를 일본에 가지고 와서 박물관이나 공원에 세워놓는 일은 실로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이나, 독일이나, 불란서라면 몇 만원(수십억)의 돈이 든다 해도 반드시 자국에 옮겨놓을 것이 틀림없다. 단지 이 비에는 일본에 재미없는일도 쓰여져 있다. 당시 일본은 삼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했었는데, 북부의 고구려와는 반대의 지위에 서있었다. 고구려라고 하는 것은 마침 지금의 러시아와 같은 존재였으며, 일본이 조선반도의 남부에 세력을 확립하려는 기획을 고구려는 좌절시키곤 했던 것이다...그 관계는 마치 지금 일본이 현금의 조선을 충분히 제어하기 위해서는 북방의 러시아를 정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일본은 조선을 세력권에 집어 넣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지나와 싸웠고 지금은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이 발언 당시 러일전쟁이 진행중이었다. 거의 일본의 승리가 굳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과 같이 정치상의 관계상 일본은 고구려와 전쟁을 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라토리는 총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문의 당시 정황을 보면 고구려에게 일본이 패하여 일본의 세력이 크게 떨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 대륙의 전쟁에서 진다고 한다면 또다시 대륙을 석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현재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러시아에게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 - 28쪽~29쪽
도올은 대석학이라는 자의 논설치고 가소롭고 황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지성계가 동아시아 고대사상을 어떻게 보아왔고 그 원형에 대한 패러다임이 어떤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를 확립하기 위해 이 광개토대왕비를 반드시 활용하고자 했던 일본지성계의 추잡스런 열망을 엿볼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