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315~382쪽 : 449a~480a)


제5권에서는 플라톤의 이론 중에서 가장 폭탄적인 선언을 하는 대목이다.

처자, 즉 아내의 공유라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처자의 공유와 그것에 따른 혼인 및 출산의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하고 소크라테스가 이에 답하는 대화를 다루고 있다.

소크라테스도 여기서 비롯되는 3가지 질문에 대해 세 차례의 파도로 비유하며 감당하기 힘든 답변에 곤혹스러워한다.




"첫번째 파도는 여성 수호자들과 그들의 교육문제(451c~457b)였으며, 두번째 것은 처자의 공유 문제(457b~466d)였다. 세번째 것은 그런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세 차례의 파도 중에서 세번 째 것이 가장 크고 감당하기에 가장 힘든 것이라는 표현을 그들은 속담처럼 말한 것 같다." - 361쪽





사실인즉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수호자가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 우생학적인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공유는 곧 남편의 공유를 의미하므로, 모든 것과 관련해서 성향 또는 자질이 같은 남녀의 평등한 권리와 의무가 강조된다.

언뜻 보기엔 상당히 남녀차별적인 변론을 펼치는 듯 하지만, 플라톤만큼 남녀평등권에 대해 가히 혁명적인 사상을 가진 이도 드물다.


"그러고 보면, 여보게나,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일(업무)로서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것인 것은 없고, 남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것인 것도 없다네. 오히려 여러 가지 성향이 양쪽 성의 생물들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서, 모든 일(업무)에 여자도 '성향에 따라'(kata physhin)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모든 일(업무)에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약하기는 하이."-330쪽


즉, 나라를 경영하는 데 있어 어떤 여자는 수호자의 자질을 갖추었으나, 다른 여자는 그렇지 못하고, 남자 중에서도 수호자의 자질을 갖춘 이도 있고 성향이 맞지 않는 남자도 있다는 말이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비추어 볼 때 기원전에 이런 혁명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지 않은가? 소위 고위 공직자나 기업의 임원들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갖고 유리천장(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니 하는 소리가 지금도 진행중인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이 책에서 남녀의 역할에 대한 변론을 펼칠 때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여자의 성향과 남자의 성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 묶어 인간의 성향으로 나누었다는 데 있다.

직장 생활을 하거나 여타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남자인데도 성향상 여리거나 섬세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성인데도 화통하거나 그 마음 씀씀이가 큼직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말은 남녀 성향의 본질적인 부분이 사회적 역할 분담이나 전통적 제도속에서 규정되어 구성원간 내면화되었다는 말이지, 원래 남성은 이렇다, 여성은 저렇다 할 것으로 단순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누진 말자는 뜻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처자의 공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선의 남자들은 최선의 여자들과 가능한 한 자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하지만, 제일 변변찮은 남자들은 제일 변변찮은 여자들과 그 반대로 관계를 가져야 하고, 앞의 경우의 자식들은 양육되어야 할 것이로되, 뒤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네. 만약에 우리의 무리가 최상급이려면 말일세" - 338쪽





누가 만약 강단에서, 아니면 학습 현장에서, 또는 직장에서 이러한 발언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끔찍한 말일 것이다. 특히나 "최선"과 "변변찮은" 그리고 "최상급" 이런 말들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당장 먹고 살일을 제쳐두고 이 사회를 정면으로 한번 쳐다보라.

겉으로 공정한 사회, 민주적인 제도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실상은 호롱박처럼 가운데가 쪽딱하게 들어간 신분제가 공고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전체 국민의 부가 10%의 부자들이 움켜쥐고 있고, 그 10%안에서도 엄청난 격차로 상위 클래스가 갖고 있다. 자칭 상위 클래스가 내뱉은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변변찮은 여자"와 하등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뒷담화로 치면 욕 얻어먹는 사람만 모르고, 그 주변 사람은 다 안다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가진 자들이 민중을 하대하고 하찮게 여긴 역사가 한두해이던가.





그렇다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혼인과 출산을 제한하는 데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혼인이 통치자에 의한 정교한 추첨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플라톤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단순히 이상적인 목적에 부합된 인간을 많이 출산하려는 목적에서 나왔다. 남녀의 혼인과 출산의 적령기는 여자는 20~40세이고, 남자는 25~55세이다.이때는 남녀가 모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절정기에 있다. 그래서 이들보다 나이가 더 많거나 나이가 더 적은 사람이 출산을 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이 시기가 지난 후에, 즉 여자는 40세, 남자는 50세 이후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나면 자유로운 결혼 생활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의 장점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부모와 형제로 인식하게 되어 서로를 타인들로 생각하지 않고, 서로 공경하고 순종하며 우애를 지킬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분열 상태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들을 '내 것'과 '네 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 함께 나누어 가지며, 모든 일에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재물이나 아이들 및 친족들의 소유로 인해 분쟁을 하거나 소송을 일으키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또한 그들 간에 강제 행위나 폭행으로 인한 소송도 없으며, 서로 난폭해지거나 모욕을 주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논란이 많은 처자의 공유, 그리고 우생학적 출산 등 제5권은 현실의 제도와 비교해서 다시 한번 사유할 수 있는 꺼리를 던져주는 장이다. 특히 수호자집단(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에 사유재산을 제한하고, 재산에 대한 욕심, 신체의 감각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는 자세를 엄하게 요구하는 대목은 값진 문장들로 넘친다.

2020년을 시작하며 내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자세에 겸허함을 다짐한다.

내 삶에 대해 항상 궁구하고 반성하는 자세, 즉 맹자가 이야기하는 인의로 나를 다스린다면 

호수가에 동심원이 퍼져나가듯이, 개개인의 인의가 이 사회에 동그라미처럼 서로 만나 모나지 않는 교집합을 이루어간다면 미래는 밝지 않을까?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이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들인 반면에, 그건 파악하지 못하면서 잡다하고 변화무쌍한 것들 속에서 헤메는 이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니, 도대체 어느 쪽이 나라의 지도자들이어야만 하겠는가?" - 6권 385쪽(48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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