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_ 통하였느냐? : 양생술과 쾌락의 활용

 

 

 

p 136

술을 물처럼 마시고 멋대로 행동하며 술에 취한 채로 성교하여 정을 고갈시키고 진을 소모하며, 정을 채워둘 줄 모르고 아무때나 신을 써서 마음의 쾌락에만 힘을 씁니다. 이렇게 양생의 즐거움에 역행하여 생활에 절도가 없기 때문에 50세만 되어도 노쇠하는 것입니다.(내경편_신형,14쪽)

 

 

p 137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수명은 120세다(내경편_신형, 20쪽)

 

 

p.139~140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있는 이 자연의 동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양생의 출발점이다.

(...)

핵심은 '형과 기가 맞는다'는 사항에 있다.(...) "기가 실하면 형도 실하고, 기가 허하면 형도 허한 것이 정상이다. 이것과 반대되면 병이다. 맥이 실하면 형도 실하고 형이 허하면 혈도 허한 것이 정상이다. 이것과 반대되면 병이다" (잡병편_변증, 920쪽)

(...)

따라서 태과(넘침)은 불급(모자람)만 못하다.

태과는 덜어내야 하고 불급은 채워야 하는데, 덜어내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것은 다 섭취하겠다는 발상도 양생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p.141

양생술의 첫번째 테제는 '정을 보호해야 한다'.

정은 생명의 물질적 기초라는 광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핵심은 신장에 저장되어 있는 정액(성호르몬)이다.

 

 

p.142~144

"늘 땅에 침을 뱉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땀이나 피나 눈물이나 정(액)은 나온 뒤에는 돌이킬 수 없지만, 오직 침은 돌리킬 수 있다. 돌이키게 되면 낳고 낳는 뜻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내경편_진액, 195쪽)

(...)

나를 태어나게 한 행위가 도리어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내경편_신형, 29쪽)

 

 

p. 146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입맛대로 맛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니 질병이 벌떼처럼 일어나 병에 걸리는 것이다.(내경편_신형,28~29쪽)

(...)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다. 술에 취하고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한껏 불린 다음 성생활을 하는 것(...)

손진인에 따르면 이렇게 하면 오장이 모두 뒤집힌다. 술도 화기요, 기름도 화기요, 성(sex)도 화기니 몸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격이다. 이렇게 하면서 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는 건 정말이지 어불성설이다.

 

 

 

 

 

p 147

미셸 푸코에 따르면 성이 과도하게 중시되면서 동시에 은밀하게 유통하게 된 것은 근대 국민국가와 임상의학의 합작품이다.

근대 규율권력에서 "섹스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섹스가 신체에 대한 감시와 인구통제, 이 두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성은 훈련, 강화, 힘의 분배, 그리고 에너지의 조정과 절약 등 인체에 대한 규율의 수단인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성이 유도할 수 있는 모든 글로벌한 효과와 함께 인구를 조절하는 수단이다.....사람들은 규율의 모태로서, 그리고 조절의 원칙으로서 성을 이용했다"(성의 역사1:앎의 의지,이규현 옮김, 나남 2004)

이렇게 국가가 성을 관장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쾌락을 활용하고 조절하는 능력과 권한을 잃어버렸다.

자본과 상품의 조종에 의거하여 방탕하게 놀아나거나 아니면 깊은 죄의식에 시달리거나, 즉 성적 들뜸과 차가운 금욕 사이를 대책 없이 오락가락할 따름이다.

 

 

 

 

p. 153

치열하게 사랑하지만 상대에 의존하지 않고, 그 사랑이 그 자체로 자유와 환희로 이어질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집착과 쾌락에서 벗어나 '지금,여기'를 오롯이 향유하는 원초적 생명력으로서의 에로스를 말이다.

 

 

p.158~160

즉, 일상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기를 조절하는 주체가 되는 것, 그런 점에서 양생이란 철두철미 자기배려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양기는 낮에는 몸의 외부를 주관한다. 새벽에 양기가 생겨나 정오에 융성해지고 해질 무렵에는 허해져 기분이 닫힌다. 그러므로 저녁에는 양기가 수렴되어야 내부에서 사기를 막을 수 있으니 근골을 움직이지 말고 안개나 이슬을 맞지 말아야 한다.

새벽, 정보, 해질 무렵의 시간에 거슬러 살면 몸이 힘들어진다"(내경편_기,60쪽)

그러니 밤낮을 뒤바꾼 삶이 얼마나 양생에 치명적인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기의 조절은 우선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루는 곧 일생의 축소판이다.

 

 

 

 

 

p. 162

"인생의 주로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번만 가게 되어 있네.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완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둬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키케로_노년에관하여/우정에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2005)

 

 

 

 

p 163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한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고, 일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고, 평생의 금기는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내경편_신형,26쪽)

 

 

p.168

명리와 희로, 소리와 색, 기름진 음식, 신이 허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 이 다섯가지를 비워야 한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건 다 비우라는 말씀? 그렇다. 비움 혹은 내려놓음의 과정에는 끝이 없다.(...)

게다가 양생의 테크닉이라는 것도 평범하기 그지 없다. 가장 좋은 음식은 '밥물이 걸죽하게 고인'것, 가장 훌륭한 삶은 담백하고 진솔한 일상, 수련법은 이빨을 맞부딪히는 고치법, 맨손체조, 식후 100보 걷기,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p.169

젊을 때 철학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고, 또 나이가 들어서 철학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는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있을 수 없다.

철학을 아직 시작할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나 철학을 할 때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는 자는 행복에 아직 도달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거나 행복에 더 이상 도달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자는 자와 같다.

따라서 젊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사람은 철학을 해야 하며, 후자의 경우 신과의 접촉을 통해, 또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회춘하기 위해 철학을 하고, 전자의 경우 어리더라도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앞에서 확고해지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에피쿠로스_쾌락, 오유석 옮김, 문학과지성사,1998)

 

 

 

 

p.175

"사람은 각자 평생 먹을 양만큼의 식록을 갖고 태어나므로 서둘러 먹어 치울수록 빨리 병들어 죽는다는 미즈노 남보쿠의 가르침은 미신이 아니라. 소식해서 남은 음식을 남에게 베풀면 팔자에 없던 복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에까지 미친다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은 인과의 법칙에 따른 진리다"(손영기,_별난 한의사 손영기의 먹지마 건강법, 북라인, 2005,167쪽)(...)

 

그렇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가진 물질적 부의 순환이다. 이 점이 생략된다면 어떤 양생술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왜냐하면 우리 존재는 이미 자본의 그물말에 꼼짝없이 얽혀 있다. 자본이란 일찍이 맑스가 설파했듯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를 흘리며 등장한다".

다시 말해 수많은 타자들의 죽음 위에서 구축된 것이다. 고로 그 인과의 그물망에서 벗어나려면 증여의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를 조절하는 것이 최고의 자기배려라고 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윤리적 실천과 긴밀하게 조응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있어 자기배려의 윤리란 바로 자본에 누적된 소유와 집적-기의 울체-의 인과를 해체하는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주변을 잠깐만 돌아봐도 부가 주는 번뇌의 장은 엄청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번뇌의 원천이 돈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도덕적 결함이나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여길 뿐이다. 돈에 들러붙어 있는 무겁고 탁한 기운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해소하지 않고서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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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 책모임으로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만났다.

다양한 직종(의대생,자영업,공무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연령대(20대,30대,40대)의 지인들은 언제나 나에게 갇혀 있는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삶의 활력을 준다.

이야기 도중에 동의보감을 읽은 소회를 피력하다 마침 의대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다.

사실 양방과 한방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갈등의 골이 깊은 줄 알았으나 이야기를 꺼내는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한의학에 대해 불신과 우려의 입장을 토로했다. 반대로 한의학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모임 자체의 멤버들이 워낙 사고 자체가 유연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기본기가 탄탄한지라 민감한 분야의 주제에 대해서도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돌이켜 생각하니 또 짧은 지식으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격인지라..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동의보감에서는 탐진치를 조심하라 했거늘, 게다가 말까지 많았으니..말탐..아~어렵구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토요일 저녁이라 일요일 아침까지 상쾌하다.

게다가 책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꼬.

정성스레 읽고 소감을 남기는 것이 보답의 길이라 생각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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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0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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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19: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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