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존재가 자기와 맺는 모든 관습과 때묻은 의미에서 제거될 때 현존앞에 놀라고 당황한다.이때 구토를 느낀다.우리 존재 또한 사물과 마찬가지로 우연성과 무상성 뿐이다.지드의 방종하지만 청명한 생의 활기와 공상의 감미로움에서 사르트르는 생의 비극성과 인간 존재의 숙명이라는 어두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334쪽사르트르와 카뮈의 논쟁, 그리고 결별을 속마음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두 존재를 나의 삶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사르트르에게서 ‘인간의 존재‘를 배웠고, 카뮈에게서는 로마네스크한 ‘인간의 고뇌‘를 배웠다고 자부한다. -348쪽꽃에 파묻혀 있는 그의 관 앞에서 혼자 서서 목도를 한 나의 심정, 그것은 생전에 사르트르가 가장 멸시했던 센티멘털리즘이었을지도 모른다. -350쪽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 실존주의에 대해 그간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관념을 떨쳐 버릴 수 있게 한 책이었다.실존주의를 주창하는 철학과 문학이 저마다 이렇게 다른데, 같이 묶어 두루뭉슬하게 머리에 집어넣어온 나의 가냘픈 지식이 부끄럽다.휴머니즘과도 다르고, 카뮈의 실존주의와도 다르고, 지드의 그것과도 다르다.노벨문학상을 거부하고 죽어서까지 장례식의 모든 의식을 거부한 그의 삶에 우리는 새로운 구토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존재에 붙어 있는 모든 관습과 의미를 해체하고 그것을 직관적으로 바라볼 때 역설적으로 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바로 그 ‘의미‘를 담고자 한다면 그의 저작을 읽는 수고로움은 지극히 향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