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서 - 사해 문서로 다시 보는
Daniel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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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서에 대해 알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 슬라브어Slavonic 에녹서라는 자료를 먼저 읽게 되었다. 놀라웠다. 이후 에티오피아어로 써진 제1 에녹서를 발견하고 열심히 그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다. 외경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신약성경 유다서에 짧게 기록된 그 내용의 확장이 제1 에녹서에서 기록되어 있다는 흥미가 이 책을 보도록 하였다. 또한 에녹의 영계 체험, 창세기14장, 히브리서 7장에서 언급되는 멜기세덱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창세기에서 말하지 않는 창조 이야기의 배후와 천사들의 세계, 천국과 지옥, 종말과 심판 등이 기록되어 있어 영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에녹서는 성경의 위경 중 하나로서 노아의 조상인 에녹이 승천해서 본 환상을 기록한 것이다. BC 1, 2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 불명의 문서로서 남아 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는 《에녹서》가 자주 읽혀졌고, 교부들도 이 책을 상당히 애용하여 많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타락천사들의 본질과 행위에 관한 표현으로 인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교부들이 이에 대해 분노하는 가운데 그 중 한 명인 필라스트리우스는 아예 공개적으로 에녹서를 이단이라고 규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랍비들 또한 굳이 수치를 무릅쓰고 천사에 대해 가르치는 에녹서에 신빙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에녹서는 맹렬히 비난 받고 금지되며 저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찢겨지고 불태워져 끝내 천년 동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신은 그 자료가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했다. 독자가 본 자료에 의하면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소수의 초자연적인 노력이 있었고, 200년 전부터 다시 에녹서가 유통되기 시작하게 된다. 1773년에 에녹서의 사본이 남아 있다는 소문이 스코틀랜드의 탐험가인 제임스 브루스의 발걸음을 먼 에티오피아로 이끌었다. 전해지는 풍문대로 에티오피아 교회가 자신의 성서 바로 옆에 에녹서를 꽂아 보관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그곳에서 에녹서 에티오피아 사본 세 권을 확보하여 영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1821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인 리처드 로렌스가 이 사본의 영어 번역본을 최초로 제작하면서 현대 세계가 금지되었던 비밀스러운 에녹서를 다시금 우리 손에서 펼쳐보게 되었다.

에녹서는 복음의 진리와 신앙을 위한 필독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 특히 요한계시록이나 그에서 드러나는 천년왕국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성경에 관한 자료를 더 확장 시키기 위해서는 에녹서를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잠깐 다뤘지만 유다서의 저자이며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는 유다서를 읽을 수신자들이 에녹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에녹서를 인용하며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하고 있다. 유다는 에녹1서 1:9을 유다서 1:14-15에서 직접 인용하였다. 그래서 에녹1서의 저자가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본 저자 Daniel의 『에녹서』는 에티오피아어 역본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기존 번역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사해 문서에서 발견된 아람어 단편과 그리스어 전승을 기본 자료로 삼아 번역하고 편찬하였다. 그래서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보다 가까이에서 조망해 주고 있다. 또한 신비주의적 외경으로 소비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텍스트 자체와 그 전승 환경을 중심에 두고 재해석한 번역·해설서이다.

저자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저자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공학적 분석력과 고대 문헌 연구를 결합해, 사해 문서의 아람어 단편과 그리스어 전승을 바탕으로 에녹서의 원형에 가까운 의미를 추적하는데 공을 들였다. 기존 번역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한 번역이다.

전문적인 독자가 아니기에 그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나, 본 『에녹서』는 학문적이고도 전문서적 느낌이다. 그 부분은 차치하고 독자는 그저 신비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대하며,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영적 가르침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에녹서는 성경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사상적 배경 문헌으로서 필요한 것이지, 성서 정경 목록과는 구별되는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럼에도 에녹서는 특별한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읽은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시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본 『에녹서』는 에녹 1서 전체 108장을 수록하되, 각 부분의 형성 시기와 신학적 성격을 구분하여 읽을 수 있도록 주석과 해설을 덧붙여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에녹서의 핵심 주제는 "메시야의 재림과 회개,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따라서 『에녹서』를 통해 마지막 때와 회개, 심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함으로 좀 더 신앙적인 사람이 되면 그것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녹서는 읽음 너머의 세계를 언급하고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에녹서가 가지는 우주관이 성서와 현대 과학 모두와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도 사실 인간의 이해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에녹서는 기존 성경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들을 보충하고 있어 정경을 비추는 거울로서 훌륭한 자료다. 저자의 노고가 보이며, Side Notes 또한 다른 책과 다른 차별성을 두며, 에녹서를 더 이해하도록 해준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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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 잘 익어가는 인생을 위한 강원국의 관계 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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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사람이 가장 어렵다라는 말을 요즘은 여실히 느끼고 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라는 책이다. 이 책은 관계를 잘 맺는 요령을 알려주지만, 어른다운 관계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사람은 평생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통해 행복도, 즐거움도, 기쁨도 누리지만, 상처와 오해로 인해 사람이 싫어지기도 한다. 믿었던 관계가 말 한마디로 틀어지고, 선의로 건넨 마음이 아픔으로 돌아올 때 내 안에 이런 물음이 생긴다. 도대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저자는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부터 직장과 가족, 자신의 과거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대해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다. 직장에서 나와 홀로 서야 했던 쉰 살 무렵, 지난 삶을 돌아보며 문득 깨닫는 바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완벽한 관계가 아닌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현재 나에게 필요한 책이 도착했고, 독자인 나는 그것을 배우며, 책장을 넘겼다.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이 마음을 긁었고, 깨우침을 주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배움이 학교 '커리큘럼'에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만의 생각일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책은 각자도생으로서 읽어야 할 것이 아니라 교과과정으로서 꼭 필요함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다가 온 문장을 먼저 실어본다.

P. 9를 보면 "젊은 시절에는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인맥을 갖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확장이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 근력이다."

인맥을 위해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려고 사람들은 노력한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어떤 유형의 사람과는 친밀해지고자 다가간다. 그러나 거기에서 상처가 있었고, 마음 문이 닫혔다. 그러나 저자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확장이 아닌 그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며, 사람과의 관계를 닫기보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리라.


P. 25을 보면 "물은 산과 돌을 만나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 흘러간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삶은 그 강물처럼, 외부의 장애물을 만나도 자기 길을 찾아간다. 굽이쳐 흐르지만 끝내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저자 말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힘들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사는 것 또한 좋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자처럼 남을 의식하는 강도가 점차 옅어진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뭘해도 열 명 중 여섯 명은 관심이 없고, 두 명은 나를 싫어하고, 두 명만 좋아한다"고 하듯이 누군가에게 맞추는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때때로 고독해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 시달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지칠 때 고독은 안식처가 된다. 고독한 시간에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돌아본다.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에게 다정해지며 영혼이 성숙해진다"고 말한다.(P. 46)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우선, 홀로 서야 한다. 홀로 서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연결돼야 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감정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공자는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고 말했다. 즉 "가까이 가되 같아지려 하지 마라. 하나가 되고자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관계를 해친다"는 뜻이다.

우선, 홀로 서야 한다.

홀로 서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연결돼야 한다.

P. 55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많은 것을 수정하며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저자가 ‘편안한’ 사람과 ‘편한’ 사람은 다르다. [...]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고 싶다. 언제든 만나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면 좋겠다. 그러나 편한 사람이 되는 건 사양한다. 편한 사람은 쉬운 사람이 된다. 함부로 대해도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쉬운 사람이 되긴 싫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 관계를 위해 내 자신의 외로움을 덜고자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다보면 상대에게 편한 사람으로 다가 가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것을 위해 단단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한 문장이 생각이 나서 가져와 본다.

내 인생은 내가 산다

우리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얻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공허하고 덧없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누가 칭찬하든 말든,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며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사는 것이다.

- 조슈아 베커의 《삶을 향한 완벽한 몰입》 중에서 -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인생의 4분의 3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를 위해서는 너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불편한 사람은 멀리하고, 편안한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면 된다.

내 인생이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흔들리지 않도록 불필요한

관계는 훌훌 털어내자.

P. 215

관계는 정말 풀기 힘든 숙제이며 평생의 고민이라고 생각된다. 저자 말처럼 나이가 들면 좀 만만해질 법도한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어렵다. 그래서 상처받은 경험은 먼저 손 내밀기를 주저하게 만들고, 때로는 견고하다고 믿었던 관계가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부족함이고,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뒤틀어진 관계다.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든 관계가 계속된다. 왜 이런 관계의 틀어짐이 나에게 왔는지를 보며, 그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도 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곳에서의 삶에서도 고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인을 보면 세상만사가 편안한거 같다. 물론 나 보기에 그럴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자들에게 이 책은 단비처럼 많은 생각을 주고 있다. 좋은 책이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가 한 말을 되새겨 본다.

“사람의 행복은 90%가 인간관계에 달려있다.”


이 책의 한 문장

사이가 좋아야 관계가 좋다. 사이가 좋다는 건 거리가 적당하다는 의미다. P. 73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평판이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평판은 관계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P. 130

남의 말을 깎아내리는 뺄셈 대화보다는 그 말을 보완하고 보충해주는 덧셈 대화를 하자. 편을 가르는 나눗셈 대화가 아니라 연결하고 결합하고 융합하는 곱셈 대화를 해야 한다. P. 167~168

친절한 사람은 감정이 죽 끓듯 하지도 않는다. 감정의 기복은 누구나 겪지만, 여유 있는 사람은 감정이 끓어오르는 임계점이 높아 대체로 평온함을 유지한다. P. 175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용기는 용서다. 용서가 관계를 완성한다. 용서는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강함의 증거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용서를 거친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견고해진다. 서로의 약점을 알되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 성숙함을 갖게 된다. P. 227-228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상대를 인정하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게 바로 관계의 여백을 만든다. 여백이 없는 관계는 언제든 부딪힐 수 있고, 부딪히면 쉽게 부서진다. 하지만 여백이 있는 관계는 충돌해도 다시 회복된다. P. 273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의 시작이다. 인간관계의 성숙은 다름으로 차별하지 않는 데서 완성된다. -칼 융

다름은 우리를 확장한다.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선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 나와 다른 의견, 다른 취향, 다른 세계를 접할 때 우리는 넓어진다. P.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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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인생 수업
알베르 카뮈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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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일찍이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에서 나온 두 아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큰 기둥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느 때에 아버지가 대화 중에 갑자기 힘든 시절을 말씀하시고는 이런 시를 읊어주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지은 시인데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또렷이 기억이 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내 삶에도 여러 번 아버지가 읊었던 것이 생각날 때가 많았다. 삶은 우리를 속이고, 아프게하고, 심하게 때린다. 이럴 때 참으로 슬프고 노여움이 일어 난다. 그런데 이 시는 참고 견뎌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만다나...ㅠㅠ

삶이주는 괴로움은 누구나 겪는다. 쇼펜하우어가 인생에 한 부분을 말하길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하는 인생이라니...

참 쉽지 않는 인생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울고, 괴로워하고,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한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부조리한 세상' 때문일 것이다. 세상살이는 부조리함을 겪는 자들로 가득차 있다. 아니 세상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모두가 부조리한 삶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철학책을 읽고, 상담을 하고, 종교를 찾아서 이 문제를 해결함 받고자 노력한다. 이것을 해결함 받지 못하면 어떤 이는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이 때문에 미친 사람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나머지는 고통에 직면하면서 그저 버텨내고 살아내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책 뒷편에는 그래서 "세상이 부조리해 보인다면, 불안과 공허에 지쳤다면 카뮈를 만나자!"라고 소개한다. 부조리 앞에서 고독에 무너져 가짜 인생을 살아가지 않기 위해선 이 책이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세상이 던지는 무의미함 속에서 길을 잃고 불안할 때 이 책을 펼쳤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시할 용기를 주었고, 카뮈의 언어가 이렇게 쉽고 명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껴안는 것이 진정한 반항이자 자유라는 메시지에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책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가장 든든한 철학적 길잡이입니다."라며 추천사로 적극 이 책을 권한다. 그렇다 인생을 볼 때 마치 시지프의 형벌처럼 무거운 바위를 매일 들어 올려야 하는 이유가 뭘까하며, 인생 자체를 원망하며 저주할 때 카뮈는 오히려 부조리한 세계가 우리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삶의 의미는 없지만

사는 것 자체는 의미 있다.

이 책은 알베르 카뮈의 사유가 121개의 명쾌한 아포리즘 형태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버리고 있다. 특히 『카뮈의 인생 수업』은 소설과 에세이, 수첩, 철학적 성찰 등 그의 방대한 전작에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만을 선별하여 작업해낸 책이다. 저자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압축해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카뮈의 '이방인'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카뮈라는 작가의 책에 관심이 가졌다. 그런데 이번에 '부조리'에 근거한 그의 삶의 철학을 이렇게 직접 선별된 글을 통해 맛보게 되니 카뮈가 얼마나 깊은 관념과 주시(注視, gaze)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더욱 알게 된다. 삶은 얼마나 '응시'하느냐에 따라 삶의 성숙을 이룬다. 현대인들은 그저 살아가고 있지만 철학자들은 삶을 깊게 관조하며 산다. 종교인 또한 관조를 하지만 그것은 신에게 귀의하며 맡기는 차원이라면, 철학자는 고민과 원인을 따지며 고통의 인과관계를 끝없이 추구하는 자이다. 그래서 인간적 차원으로 뭔가를 풀어내려고 노력하며 풀어낸다. 물론 이것을 읽는다고 해서 속 시원하게 세상의 만사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부조리한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만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뇌와 가슴을 파고든다. 그리고 점점 부조리한 세상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그동안 시지프 신화를 언뜻 설명으로 들었을 때, 인간은 그렇게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고통에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시지프의 신화가 주는 메세지가 오히려 인간에게 희망적 서사임을 알게된 것이 큰 소득이다.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대하며 살아야 한다. 부조리가 끊임없이 삶에 들이 닥쳐도 인간은 그것을 밀어 내버리려는 야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 인간은 고통에 짓눌리기도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카뮈는 책 본문에서 "바다의 파도처럼, 인간은 무의미한 운명에 맞서 매 순간 새로운 의지로 반항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바다는 모든 것이 항상 다시 시작된다는 증거라는 거다. 그러므로 부조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역설한다. 인간은 살아있는 모순이며, 삶의 의미는 없지만, 사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카뮈의 역설적 진리는 우리의 삶을 더욱더 숨쉬게 만든다.

세상이 부조리한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불합리해 보이는 세상을 보며 화를 내며, 이해가 되지 않는 다고 해서 삶의 의욕을 꺾고 주저 앉거나 불평과 원망을 하기 보다는 카뮈가 전해주는 책으로 한 벌 발을 담궈보면 좋겠다. 불안과 공허함을 다잡아주는 훌륭한 철학적 에세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합니다. 세계는 우리의 질문에 침묵하고, 죽음은 모든 기획을 무너뜨리는 피할 수 없는 한계 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의 무관심 앞에서 근원적인 고독에 홀로 남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고독 속에서, 우리는 반항을 결단합니다. 초월적 구원이나 거짓 희망에 의탁하지 않고, 부조리와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실존적 자유가 열립니다.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아니오'라고 외치는 이 고독한 반항은, 결국 부조리한 삶 자체를 열정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태양과 바다, 대지를 동반자로 삼아 현재의 삶을 끝 까지 밀어 올리고, 이 현세적 충실함 속에서 비로소 타인과 연대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p.178

매일 아침, 빛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사한다.

이것이 자연의 충실함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는 행복의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은 영원한 구원에 대한 신적인 보증이 아니라,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 오늘 하루를 다시 한번 긍정하겠다는 인간 스스로의 반항적인 의지에서 비롯된다. 자연의 변함없는 충실함처럼, 우리도 현재의 순간에 모든 것을 바치는 관대함을 통해 삶의 무한한 가치를 획득한다. 매일의 빛 속에서 삶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부조리에 대한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이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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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입문 -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기 위해
이찬용 지음, 배세진 감수 / 오월의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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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라는 허상에 빠진 인간들이 많구나 ㅠㅠ 그러면 공산주의자들의 나라로 가면 되는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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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라틴어 문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티나 씨.야마자키 마리 지음, 박수남 옮김 / 윌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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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을 만난다는 건 인생의 큰 안내자를 만나는 거와 같다. 인생 문장이란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특히 지적인 거인들은 명문장을 만들어 내어 읽는 이들을 탄복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세네카, 에픽테토스, 에머슨, 니체, 쇼펜하우어, 헤세, 정약용, 채근담 등등 수많은 이들은 마치 명문 제조기처럼 명언들을 쏟아 낸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니체의 말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를 붙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었다. 에머슨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만난 문장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이와 같이 명문장을 만날 때는 희열을 느끼며, 큰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라틴어 문장은 한 번씩 여러 책에서, 또는 TV를 통해 인용되기도 하는데 마침 『당신에게 라틴어 문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이 출간되어 관심이 갔다. Carpe Diem카르페 디엠은 너무나 많이 알려진 문장이다. "오늘을 즐겨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루를 따서 거두라"이다. 즉 매일매일 열매를 따서 거두듯 순간을 최대한 즐기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앞날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는 말이다. 금세 사라질 인생을 우리 모두가 살고 있으니 즐김을 미루지 말고 지금 누리는 것이 지혜롭다.

사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라틴어를 나도 모르게 쓰고 있고 알고 있다. 그 중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라틴어인 "Omnia viae quae ad Romam duxerunt"가 있다. 이게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는지 오늘 정확히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인 "Dilige et fae quod vis."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또한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특히《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즉 "감시인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라는 라틴어 격언을 보면서 라틴어의 새로운 맛을 보게 된다. 이 격언은 사회 질서와 치안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들이 권력을 남용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말의 탄생에는 의외의 진실이 있다. 바로 ‘불륜에 대한 문구’였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가 쓴 시에 나오는 구절로, 바람피우는 아내를 어떻게 바람 못 피우게 할지 고민하는 글에서 나왔다. 즉 아무리 지키는 사람을 세운들 아내는 그 사람마저 유혹할 것이라는 말이다. 불륜에 대한 문구가 새롭게 재밌게 들려진다.

그런데 이 말은 결국 사람이란 존재를 믿어서는 아니된다는 말로 들리게 된다. 어떤 사람을 믿었는데 결국 그 사람마저 엉뚱한 마음으로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윤리를 담은 종교나 민간 신앙 같은 게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들이 어릴 때 "나쁜 짓을 하면 바다 괴물이 나타나서 바다로 끌고 간다"라고 말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아들은 문밖에 괴물이 나타날까 봐 겁이 나서 매일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처럼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있듯이 하늘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지키는 진정한 감시자가 아닐까?

그런면에서 성경을 보면 이런 명문장이 나온다. 구약성경인 전도서 12:1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신약성경인 히브리서 9:27절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또한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과 함께 삶을 감시하는 자가 존재함을 가르쳐 준다.

이어서 또 하나의 멋진 문장을 만났다. 로마 공화정 시대에 활동한 극작가 플라우투스는 "우리 인간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서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tum denique homines nostra intellegimus bona, quom quae in potestate habuimus ea amismus》

정치와 관련하여 말해보면, 새로운 통치자로 바뀌고 나면 전임자가 얼마나 관대했는지 알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인간은 모두 후회를 한다. 좀 더 찾아뵙고 효도할걸 하면서 말이다. 학창 시절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해둘 걸 하는 그런 후회 또한 누구나 가진다. 인간은 잃음을 통해 깨달음의 확장을 이룬다. 그래서 잃음은 결핍이 아니라, 더 깊은 내가 되는 통로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일이나 정체성을 잃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하며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multa docet Fames라는 명문장이 만들어졌다. 즉 "배고픔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참으로 멋진 라틴어 문장을 만나서 마음껏 문장을 씹고, 음미하며, 머리에 그리며,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서양 문명의 깊은 뿌리가 된 역사적으로 위대한 철학자에게 영향을 준 무수한 라틴어 문장 65가지가 실려 있다. 과거에 쓰여진 라틴어 격언을 보면서 인간의 생각과 삶이 어느 시대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생각과 고민으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문명이 크게 발전했다지만 인생에 대한 삶의 아픔과 시련, 고난들은 인간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다. 이때에 이런 라틴어 문장 하나쯤 알고 가는 것은 삶에 큰 도움이 된다.

키케로가 말한 라틴어 문장으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historia vitae magistra》 이 말은 "역사는 인생의 스승이다"는 뜻이다. 인간이 살아온 삶의 궤적들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안겨준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올더스 헉슬리는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운 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고 말했다. 헤겔 역시 "경험과 역사가 가르치는 것은 국민과 정부는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거나, 역사에서 끌어낸 원칙에 따라 결코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는 말을 했다. 인간의 무지함이기보다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러한 것에 쉽게 동요되는 존재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나오는 오래된 문장은 어떤 이에게 통찰력과 위안을 충분하게 안겨준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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