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로컬, 브랜드 -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곽효정 지음 / 지금이책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정말, 제주에서 먹고살 수 있을까?

제주에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로컬브랜드의 이야기!


제주라는 공간은 한국인에게 준 신의 선물이다. 무언가 마음이 허전할 때, 마음이 얼마든지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제주인 것이다. 짧은 비행 시간을 통해 이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이지 않는 나라에 도착하여, 제주스러움을 우리는 보고 느끼며 힐링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제주스러움을 만들어 가는 즉 제주에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로컬브랜드에 관한 사람들의 얘기다.

저자는 제주 토박이는 아니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로컬 브랜드를 더 알리기 위해 살아왔다. '제주'라는 단어와 '브랜드'라는 단어가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하는데 앞장선 선봉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브랜드’라는 단어를 가지고 본인과 같이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제주 로컬매거진 <sarm>을 창간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뿐 아니라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쌓은 인터뷰 중 열여섯 개의 브랜드를 뽑아서 정말 제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제주, 로컬,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다시금 새로운 얼굴로 탄생이 되었고, 어쩌면 일본어로 '시니세(老舗, しにせ)'라 읽으며, 한국에서는 '노포'라고 불리는 브랜드를 저자는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각 브랜드 대표를 인터뷰한 매거진 <sarm>의 수익은 크지 않으나, 로컬매거진은 다른 일들을 불러주는 통로가 되었고, 다른 이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어 현재까지 계속 발행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동일하다.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오래 하는 것.” 그래서 제주에 생겼다가 무수히 사라지는 오로지 ‘수익’만을 위한 가게와 기업들 속에서도 오래 반짝이고 있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

독자는 제주도를 많이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제주도를 찾게되면 제주가 주는 색다른 느낌의 식당과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찾아가려고 한다. 육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색다른 삶과 인생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주라는 공간은 육지에서 벌어지는 경쟁구도와는 다른 삶의 각도를 가진 자들의 삶의 집합체라 생각된다. ‘제주도’라는 로컬에서 각 브랜드 대표들마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고유한 이야기가 그들 내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특히 자신만의 원리와 원칙으로 일과 삶을 지속해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저자가 보니 제주로 이주하면서 각 로컬브랜드들은 그전에 했던 일들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생계’와 ‘삶’을 연결하는 삶의 분투였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아 나섰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선택하는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어렵게 찾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자신만이 가진 철칙을 세웠고, 그 가치관을 통해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에는 열여섯 브랜드의 나열이다. 그 열여섯 브랜드의 대표들은 이미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 존재하며 자신들의 취향에 고객들이 매료되면 찾고, 그렇지 않으면 얼마든지 돌아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생계가 연결되어 있기에 돌아서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 못 시키고, 시대의 흐름이랄까? 그 시대 사람들이 요구하는 충족을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를 가진다는 것은 그 브랜드를 고객이라는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 자신을 마케팅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열여섯 로컬 브랜드들은 고객을 향해 당당히 자신들의 브랜드에 맞추라고 요구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각 대표들의 철학과 원칙과 삶의 가치관을 보니 더더욱 매력적이게 다가 오게 되고, 로컬 브랜드를 대하는 자세도 새삼 격식을 차리며 바라보게 된다.

첫 브랜드는 '라이스 나이스'라는 떡집에 관한 얘기다. 할머니, 이모, 손녀가 함께 만드는 '삼대三代'가 모인 떡집인데, 할머니라는 전통과 MZ라는 세대와의 작품을 통해 하나의 방앗간이 '라이스 나이스'라는 브랜드를 입게 되었다 한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콩팥앙금떡'이다. 제주 전통떡으로 '잔떡'이 있었는데 그 잔떡에 손녀가 생각해 낸 '콩팥앙금레서피'를 결합하여 만든 떡이다. 손으로 만들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떡인데, 그래서인지 네이버 리류에 보면 칭찬일색이다. 특히 '보리개역'이라는 떡이 맛있다고 평가되는데 다음 기회에 내려가면 한 번 맛보리라!

눈에 또 띄는 브랜드가 있는데 '제주로부터'라는 브랜드다. 어떤 브랜드냐 하면 미식 문화를 전달하는 브랜드다. 쉽게 설명하면 생산자를 만나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고 그것을 고객에게 보내주는 플랫폼이다. 여기 제주로부터 브랜드에 입점한 브랜드는 60개 팀이 있다. 최근에는 남해로부터 입점 브랜드가 성사되어 10개 정도가 함께한다. 상당히 큰 규모이다. 입점 기준은 딱 두가지인데 첫째 맛이 좋아야 한다. 둘째 '제주로부터'와 '결이 비슷해야 한다. 즉 제주로부터는 단순히 물건을 전달해 주는 중간 통로가 아닌 고객과 생산자의 꾸준한 소통으로 제주 생산자가 고객들로부터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아 생산품을 개선하는데까지 가는 것이다. 그러니 제품의 퀄리티는 더 좋아지고, 고객은 좀 더 나은 상품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속에서 브랜드 대표는 '관계가 전부구나'를 깨닫게 되었다는데 그것은 아무리 상품이 좋더라도 생산자와도 관계를 잘해야 하고, 고객과도 관계를 잘해야 모든 판매가 원활하게 진행됨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은 뭘까? 결국 판매란 사람을 판매하는 것이기에 사람 사는 세상, 서로가 함께 연대해서 사는 것이리라.

"결, 배려, 그리고 존중입니다. 모두 생산자와 관련된 단어인데, 우리가 생산자들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농사는 누군가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인데 특히 친환경 농사짓는 분들에게 존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아요. 수확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을 고집하고 땅을 살리려는 그분들을 만나면 존중할 수 밖에 없어요." p.102

이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가 자신만의 개성을 입고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철칙을 가지고 운영해 오고 있다. 여기에는 제주 원도심에 7평도 되지 않은 구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세계 곳곳의 연필을 파는 가게, 소리소문없이 오래도록 좋른 글, 좋은 책을 전하고 싶다는 '소리소문 책방', 주 3일은 비건버터를 만들고, 3일은 판매하는 시골 가게, 버려진 밀랍으로 만든 초를 파는 가게, 제주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어 사람이 살까 싶은 곳에 위치한 공연하는 술집…등등 이 가게들이 과연 삶의 전쟁에서 살아남을지 걱정도 된다. 그 이유는 그들만의 가치관과 철학으로 만들어진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가게를 보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이상 이 브랜드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 즉 ‘망하지’ 않고 제주를 누리고 있다.


이런 작지만 강한 소상공인들이 제주라는 지역에 특색을 만들고, 감성을 만들어 육지에 있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만의 색깔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연대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으니 아마도 당분간은 우리도 그분들과 함께 상생하며 존재하고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 저자가 한 몫을 하고 있으니 분명 여기에 소개된 브랜드만 아니라 다른 로컬 브랜드도 살아남아 우리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나의 고민은, 공간만 보러 온 분들이 어떻게 책에 관심을 갖고 읽게 만드는가예요. 그 고민을 풀어낸 코너들이 곳곳에 있는데요. 예컨대 ‘책방에 억지로 따라온 남자들을 위한 책 코너’가 그런 고민에서 나온 큐레이션이거든요. 책방 손님 성비가 8대 2예요. 여성고객이 월등히 많죠. 남성들 대부분은 여자 친구나 가족에 의해서 끌려왔고요. 여기 와서 책도 제대로 보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남자들을 보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도 어떻게 책의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죠. 서점이 재밌는 공간이 되어야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테고, 책 표지라도 한번 들춰보는 분이 한 분이라도 생기면 그 큐레이션은 성공한 거라고 봐요. 그런 고민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관광지에서 책방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일 거예요. 여기를 관광 명소로 보고 여행지 코스의 하나로서 오는 분들을 어떻게 책에 관심을 돌리게 할 것인가에 대해 늘 고민해요. P. 153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여닫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게 가장 중요해요.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여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P. 318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한옥 - 도심 속에서 다른 삶을 짓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EBS에서 건축탐구 집 <나를 닮은 집, 나를 담은 집>이란 방영이 있었다. 집에 관한 프로그램은 종종 나에게 힐링을 주며, 내 집을 그리게 만든다. 특히 그 중에 한옥이 방영이 될 때면, 전통적 한옥을 현대적으로 꾸민 것에 관심을 둔다. 한옥이 주는 매력이 있다. 김대균 건축가도 들어가는 말에 언급하듯이 50년 된 아파트를 상상하면 낡았다는 생각을 하는데 80년 된 한옥은 멋짐을 넘어 고풍스러운 미를 풍긴다. 즉 시간의 촉감을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한옥에서 쓰이는 나무, , 한지, 기와 등의 재료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적 건축도 좋지만 전통적 한옥의 차분함과 자연을 품은 건축미는 독자에게 계속 한옥을 품으라고 말한다. 실제 집이 지어지는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옥을 통한 설계도는 분명 내 건축 가운데 이미 들어와 선명한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첫 장을 열면 이미 디자이너 양태오의 계동 한옥에 정신을 잃어버린다. 없던 탐심도 생기게 만드는 그의 한옥은 어쩌면 독자인 내가 바라는 현대적 한옥 그것이다. ''자 한옥으로 지어진 이 집은 이미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될 정도로 현대적 한옥의 감각이 뛰어나다. 건축가 김영섭 선생이 해외로 떠나면서 새 주인이된 양태오 디자이너는 100살 된 한옥을 모던 한옥으로 너무나 근사하게 바꾸어 나갔다. 능소화와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능소헌과 청송재라 이름 지어 공간을 설명해 주는데 능소헌과 청송재는 두 채의 아담한 고택이 나란히 연결된 형태이다. 여기 능소헌은 사무실 겸 생활 공간으로, 청송재는 미국에 오가는 부모님이 머무는 공간이자 지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된다.

 

이 집은 역사가 있는 집이라고 했다. 본디 1910년대에 지어진 보급형 생활한옥으로서 처음으로 개조가 이루어진 1997년에는 윗집 사랑채 능소헌과 아랫집 안채 청송재를 이어붙여 공간 면적을 넓혔 나갔다. 그리고 2012년에 양태오 소장은 자신의 취향에 맞춰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다.

 

어쩜 이리도 독자가 원하는 감각을 다 갖추고 있으니 부러울 뿐이다. 김대균 건축가가 말하듯 도시에 살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건물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어, 외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의 결핍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집 마당과 같은 사적인 외부 공간은 공원과 같은 공적인 외부 공간과는 쓰임이 다를 뿐 아니라 심적인 면에서도 다르다. 즉 집 마당에서는 닫힌 공간에서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수도 있다. 동시에 헤르만 헤세처럼 조그만 정원을 가꾸거나 바깥 공기를 느끼며 취미 활동을 할 수도 있어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다양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한옥의 구조적인 특징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안마당, 뒷마당, 사랑 마당, 행랑 마당 등과 같은 다양한 마당이 내외부적으로 교차된 풍경을 준다. 그래서 계절과 날씨를 느끼고 아침과 밤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 집은 몸과 마음이 하늘과 땅에 연결되도록 느끼게 해준다는 말이 너무 공감되어 진다.

 

한옥은 양태오 소장 말처럼 건축학적 요소를 제대로 갖춘 집임을 새삼 느낀다. 즉 아무리 평범한 한옥일지라도 공간 구성과 건축 요소가 유명 건축가가 지은 웬만한 현대 건축물보다 우수하다. 하늘이 보이고 땅을 밟을 수 있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집이면서 창과 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집 안팎의 구분을 개방적으로 확장시킨다. 또한 마당과 대청은 열려 있어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 주고, 대신 방은 아주 내밀해 사적인 적막을 즐기는 행복을 준다. 그래서 이 한옥 공간 안에 있으면 일에 더 집중하게 될 뿐 아니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든다.

 

한옥은 이제 21세기 힐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 이유에 대해 양태오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한다.

 

한옥에서는 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충실히 느끼면서 살아요. 계동 골목이 복작복작하잖아요. 한옥 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나만의 시간, 나만의 세계가 되죠. [...]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의 언어들이 있어요. 좁았다 넓어지고, 어두웠다 밝아지고, 높았다 낮아지고, 낮은 데서 높아지고. 그러한 일상의 건축 언어를 정말 잘 차용한 집이 바로 한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좁은 문을 통해 들어오면 큰 마당이 펼쳐져 먼저 자신을 낮추고, 작은 방에서 트인 대청으로 나가면 어깨가 절로 펴지니까요. 예전에는 디자인을 하면서 좀 더 다르게, 좀 더 잘하고 싶었다면 요즘은 그런 마음을 많이 털어 낸 것 같아요.” p.22-23

 

한옥이 좋은 것은 알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더더욱 매력을 느낀다. 사람마다 풍기는 모습이 다르듯 소개되는 한옥의 다양함은 한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느낌이다. 이미 한류 열풍을 통해 한옥이 가진 미가 세계적인 미로 탈바꿈하고 있는 시대다. 이제 한옥 카페, 한옥 호텔, 한옥 미술관 등은 한국적 미를 뽐내며 우리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고급스럽다 못해 독특하며, 차분함과 선비스러운, 고풍스러움이 풍겨나와 누구나 이곳에 살아가게 되면 대감마님이 되었다고 착각할 정도이다.

 

더 한옥에서는 이러한 대세를 담아 한옥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사람들의 한옥살이 계기, ·보수 및 신축 과정, 한옥 생활의 장단점 등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잘 담아 주었다.

 

그렇다. 한옥을 보면 눈이 즐겁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 자연과 가장 어울리는 집이면서, 평온하고 자적한 삶을 거주자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자연속에서 선적인 미, 공간적인 미, 세련된 미를 잃지 않는 단아하면서 고전적인 미를 매일 선사한다. 그러므로 다른 공간을 부러워할 시간도 없다. 단지 이 공간 안에서 삶을 향유하고 누리면 된다.

 

"주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옥은 만만하고 편한 집은 아니지만 '호텔'로 접근하면 단점이 모두 장점으로 바뀌어요. 주차할 필요가 없고 냉난방 전기료 걱정 없이, 기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며칠의 불편함은 낭만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한옥은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죠." p191

 

"한옥을 선택한 사람들이 현대인의 편의에 맞춰 설계된 아파트를 떠나 한옥의 단점들에 적응하기도 하고, 개선해 나가거나 없애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한옥을 꾸며 나가는 이유는 경제적 가치와 실용성보다도 더 큰 의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옥은''의 의미를 충실히 담아내는 그릇이다. 하늘을 보고 땅을 밟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고, 큰 창과 문을 통해 안과 밖을 연결하면서도 내밀한 방은 고요한 적막을 선사한다. 공간을 바꾸면 자신도 저절로 바뀌므로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꾸라는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말처럼 한옥에서의 삶은 나만의 세계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한옥이라는 책은 한옥이 주는 매력을 다 발산해 보이는 책이다. 소개되는 집마다 다 독자의 마음을 훔치고, 그 집에 대한 사연을 통해 그 집이 더 살아나는 느낌이다. 살고 싶은 집, 앞으로 한국에 더 많이 건축되어야 하는 집은 바로 한옥이다. 독자의 개인적 의견이지만 아파트는 흉칙한 물건 덩어리다. 편리성을 주는 공간이지만 인간의 탐욕이 서린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점점 더 삭막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옥이라는 예술적 주택을 편집자를 통해 너무나 멋지게,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소장하면서 이 책을 바탕으로 한옥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한옥에 살리라!!


"배고프면 밥 먹고해 뜨면 눈뜨고목마르면 물 마시고과거에 읽은 선시禪時 속 삶이 이제야 와닿는 것 같아요일상이 도라더니한옥에 와서야 오롯이 느끼네요." p.147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처음 철학 공부 - 소크라테스부터 쇼펜하우어와 니체까지 형이상학부터 유머의 철학까지 세상의 모든 철학 지식 인생처음 공부시리즈 1
폴 클라인먼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이란 글자는 매우 매력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철학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어 보고는 한다. 그러나 어떤 철학책 같은 경우는 난해할 뿐 아니라, 도대체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이냐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쉽게 정리되는 철학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이버에 나온 저자의 책은 머리를 싸매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핵심 개념과 내용이 간결하게 실렸다.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군더더기 같은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정말 필요한 지식과 정보만 명쾌하게 정리를 해주고 있다. 그래서 약간은 고마우면서도 더 설명해 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

이 책은 저자가 혼자서 철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노하우를 녹여낸 결과물이다. 그런데 저자가 철학적인 지식이 결여된 자라면 이 책에 대해 신뢰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 신뢰할만한 지식인이다. 그는 이미 대중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답게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글을 써온 작가이다. 그래서 그가 녹여낸 지식은 전문적인 지식과 더불어 독자의 이해에 맞춘 교양 입문서이다.

책에 대한 평가는 일단 읽는 것이다. 읽어 보면 스스로 독자는 알게 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생 처음 철학 공부』이다. 처음으로 철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사람이 쉽게 노크하여 들어올 수 있는 문이다. 그러므로 전문 철학자는 시시하여 거들떠도 안 볼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에 대한 이해를 원하고, 기본적인 철학 지식을 원하는 자에게는 안성 맞춤의 책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24명의 철학자가 소개된다. 2부에서는 철학자들이 펼쳐놓은 23개의 이론이 소개되고, 마지막 3부에서는 철학사를 빛낸 7가지 난제를 다룬다. 1부와 2부는 철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두 가지 방법에 따라 구성되어 있어 독자에겐 고마울 따름이다.

1부에서는 철학자별로 그들의 생애와 사상, 업적에 대해 나온다. 소크라테스부터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 철학사에 길이 남을 자들을 엄선하여 다뤘다. 특별히 각 철학자를 다룬 챕터는 출생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어, 철학사 안에서 이어지는 사상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

2부에서는 철학의 세부 영역들에 대한 나열이다. 즉 철학자들의 이론과 논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재론, 형이상학, 이원론, 인식론, 공리주의, 미학과 같은 철학의 큰 줄기라 할 수 있는 하위 학문부터 다른 철학책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색다른 분야까지 충분하게 다루고 있다.

3부는 철학사를 빛낸 일곱 가지 철학적 난제를 다룬다. 철학에 대한 관심있는 자는 플라톤의 동굴 이론을 알고 있을 것인데 매우 쉽게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 준다. 또한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았을 때 대머리가 되는 걸까?’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러게 대머리는 숫자도 숫자이지만 딱 보면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책은 여기서 모래 더미를 비유드는데 예를들어 100만개의 모래 더미가 있다고 치자. 그 모래 더미는 100만개의 알갱이로 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를 빼면 역시 더미이다. 두 개를 빼도 더미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래 알갱이를 야금야금 뺄 때에 어떤 지점에서야 더미가 아닐까? 머리카락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준점이 어디냐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더미의 역설을 풀어내기 위해 크게 네 가지의 방식을 쓰는데 1. 더미의 역설에 논리가 적용가다는 것을 부정하는 방식 2. 이 역설에 포함된 전제를 일부 부정하는 방식 3. 더미의 역설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방식 4. 더미의 역설을 건전한 논증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봤을 때 궤변스런 방식이라서 다 탐탁치가 않다. 궤변으로 어떤 방식을 비판한다면 어떤 것도 옳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준점은 사람들의 상식과 문화에 따라 직감적으로 정해지는 것으로서 그것을 그 문화에 맞게 적용하면 될 것이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난제를 가져와 설명해 주는데 역시나 철학은 골치아픈 궤변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철학사를 쉽게 정리하여 머리에 그려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일단 필요적절한 책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떤 책장에서는 머리를 싸매고 깊이 사고하며 읽어야 한다. 정신근육에 도움을 주는 매우 실용적인 도서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철학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만 서로 끝없이 질문을 주고받았던 게 아니에요(물론 철학의 발전에 그들이 이바지한 부분이 있긴 합니다). 정부 정책에서 불거지는 윤리적 문제들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요구하는 논리적 형식들까지, 철학은 실제로 우리 삶에 유용한 매우 쓸모 있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비롯한 지식, 도덕성, 실재, 신의 존재, 의식, 정치, 종교, 경제, 예술, 언어학 같은 개념들을 탐구하 수 있습니다. 철학에는 경계가 없거든요. p.8-9


스피노자가 말하는 덕은 적합한 관념과 인식을 추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신에 대한 인식(제3의 인식, 직관지)을 바라고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신에 대한 인식은 사물들에 대한 사랑을 낳고, 이 사랑은 정념이 아니라 지복이다. 이것은 우주에 대한 이해이자 덕과 행복이다.

-덕과 행복 p. 73

칸트는 악한 행동은 자기 자신의 이성이 만든 격률을 위배하거나 보편 법칙에 들어맞지 않는 파행적 격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악은 이성의 법칙이 침해당한 결과다. 부도덕도 이성의 법칙이 침해당한 상태, 사실상 일종의 비합리성이다. 따라서 칸트의 윤리학은 그 행동 너머의 동기를 바탕으로 도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p.106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 -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른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
홍예진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른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

책을 대할 때 표지 그림과 책 소개는 나에게 있어 어떤 물건을 심도있게 고르는 거와 같다. 책의 제목과 북디자인은 저자의 깐깐함이나 미적인 감각이 디자이너를 통해 묻어 있는듯하다. 그렇게 내 마음을 훔칠 정도로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 안의 문장들을 만나면서 또 다시 독자인 나는 저자가 가진 필력에 감탄을 하고, 저자의 (사물을 바라보는)시선에 마음을 빼앗겼다. 올해 초 고이어령 교수의 아내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책을 출판하였다. 그녀는 서울대 국문학과를 나오고, 숙명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才媛)이다. 국문학과를 나와서인지 글이 가진 품격이 달랐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런 필력 못지 않게 탁월한 문장과 글의 조합이 글을 써야만 하는 작가임을 단번에 알아보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문장과 단어를 썼을까? 한국 여성이지만 마치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던 문필가가 글의 세련미를 파리 패션쇼에서 런웨이하는 거 같다. 나의 기준으로는 미국적 냄새 보다는 프랑스적인 문필이 보인다. 프랑스적인 문필이 뭐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읽으면 그런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p.25 '강을 건너 폭설 속으로' 라는 글에 보면 프랑스 유학시절의 흔적이 있다)

암튼 독자는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서 빨려가듯 책을 읽었다. 저자의 관조적 시선이 보이고, 저자의 성격이 책 속에서 톡톡 튀어 올라, 어! 상당한 깐깐한 여성이며, 감성 짙는 여성이구나를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사물을 보는 관점은 분명 다르다. 똑같은 것을 남들과 다르게, 깊게, 예리하게 관찰하는 능력이 있다. 마치 거시적인 감정과 미시적인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나가는 하이에나 같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

"이방인의 정서로 살다 보니 늘 무언가가 그리웠다. 그 대상은 사람일 때도, 공간일 때도, 냄새와 맛일 때도 있었다. 떠나온 곳에서 맺은 이전의 관계성에 미련을 두고 있는 동안 같은 시간대에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에는 좀체 곁을 주지 않고 관조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책은 그때 싹을 틔운 것들에서 키워낸 열매가 아닐까 싶다. [...] 어째서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진 걸까. 커피를 사랑한다고 커피숍을 차리거나, 담배를 좋아한다고 담배를 심지는 않는데. 왜 어떤 이들은 글을 탐닉하는 취향에 기어이 심지를 꽂아 자기만의 문장을 제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열망의 불을 붙이고야 마는 걸까. 나를 둘러싼 공포이기도, 허무이기도, 압박이기도 또 동시에 행복이기도 한 것의 출발점에는 늘 문장이 있고, 써내고 싶은 것이 있고, 희망 비슷한 것도 있었다. [...] 대게는 휘발되거나 기억 창고에 머물다 희미해질 것들을 손에 잡히는 책으로 만들어놓는 이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면, 거시적인 것들에 가려진 미시적인 것들의 핍진함을 붙들려는 몸짓이라 답하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을 보려고 했던 이유는 저자의 시선을 통해 이방인의 삶을 엿보고 싶어서이다. 미국인의 일상과 문화에서 포착한 낯설면서도 익숙한 경계에 관해서 저자는 여지없이 이방인으로서 그들을 바라 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저자의 내면 안에 자기만의 수식어로 채워서, 걸러서, 씹어서 야근야근 씹어낼 것이다. 그러면 독자인 나는 작가가 본 세상을 통해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새로움이라는 낯설음을 고이 간직하면서 나만의 이데아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첫 번째 글에서 저자는 ‘빵’이라는 소재로 미국에서의 외로움을 빵의 전달자를 통해 위로받음을 소개한다. 제니라는 여성이 바로 그 전달자이다. 미 중부 지역의 낯선 곳에 이사를 갔을 때 저자는 이방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제니는 저자의 집을 지나가면서 말을 건네 주었고, 초대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그 초대에 응하면서 교류 중 저자는 제니가 직접 구운 '펌프킨브레드'를 먹으며 마음의 온기를 느꼈다. 사람 냄새를 맡은 것이다.


"제니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내 첫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제니가 끓여준 차를 마시고, 제니가 직접 구운 펌프킨브레드를 먹을 때의 실내 공기, 따뜻한 색감의 커튼, 식탁 옆 창가를 통해 들어오던 햇살 같은 것이 지금더 기억 속에 보송보송한 온기를 품고 저장되어 있다." p.14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서는 위안을 주는 사람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공존하헤 마련인데, 제니 같은 사람을 경험한 기억은 네 오랜 이국 생활에 배짱을 만들어주는 요긴한 자산이 되었다. 제니를 기억해내고 나면 사람에게 다친 마음이 조금 다독여지곤 한다." p.15

빵 하나를 통해 그려간 에피소드와 저자의 문장을 통해 왠지 모르게 따끈따끈한 펌프킨브레드를 씹고, 제니가 끓여준 차까지 마신거 같다. 그 온기를 문장을 통해 느낄 수 있다니 놀랍다.

'강을 건너 폭설 속으로'라는 글을 통해서는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보았다. 프랑스에도 우리와 같은 파업과 집회가 있다. 저자가 살았던 그때 한 달 가까이 전국의 대중교통이 일제히 멈췄는데 어느 한 사람도 거기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거나 흥분한 어조를 띄운 사람이 없단다. 우리나라의 파업과 집회에 대해 시민들이 가진 태도와는 사뭇다른 풍경이었으니 저자 자신이 충격적인 문화체험이라고 했을만 하다. 얼마 전 태국에 다녀 왔는데 방콕 같은 경우 세계적인 교통 지옥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봤는데 '아무도 클랙션을 누르지 않는 다는 사실!' 이다. 그것이 극심한 교통체중이 있는 곳이든, 시골이든 동일하게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교통 신호등도 특이했다. 신호등이 초단위로 카운트 된다.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다 보니 기발하였다. 그런데 그 기발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호체계가 더 선진국 형태인줄 알았는데 태국이 오히려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가져와 쓰면 좋겠다. 암튼 태국은 미소의 나라답게 여유와 낙천적인면들로 인해 나에게 좋은 점수를 땄다.

이방인으로서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늘 관조적인 경험일 것이다. 물론 같은 민족 안에서 살아가면서 타인을 만날 때도 우리는 사람과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 본다. 그러나 타국에서 지내는 삶의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로움이며, 낯선 성찰일 것이다. 더군다나 외로움이라는 것을 지닌 고독한 인간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외로움과 상실의 흔적, 낯선 세상을 글로서 녹여내는 저자의 탁월함에 책이 주는 향취로 인해 취해 버렸다. 저자는 중고교 시절부터 서점을 통해 삶의 도피처를 삼고 위안을 받으며 지냈는데 그래서일까? 몸에 베인 문학적 구도와 단어의 구성 능력이 상당히 탁월함을 보게 된다. 저자에게 광화문 교보문고는 천국의 향취며 일종의 향락이었다.

"책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어 돌아가는 길에는 내 껍데기 안쪽의 공기가 바뀌어 있는 거 알 수 있었다. 새론 산 책을 읽고 싶다는 기대가 찰랑대는 마음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방구석에 구겨져 있넌 이불을 햇볕에 널었다 거둬들일 떼처럼 따뜻하게 소독된 냄새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줬다... 친구와 다퉈 냉전 중일 때도, 연예가 실패로 끝났을 때도, 교보문고를 치료제로 써먹었다." p.232

언어적 유희와 함께 문장의 적절한 조합은 다른 작가에게서 보지 못한 특유의 냄새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하며, 단어와 문장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능력자일까 하며 감탄하면서 책을 보았다. 파친코의 저자인 이민진 작가를 친구 통해 전해 들으면서 저자는 부러움과 질투를 시사해 주었는데, 그녀가 누군가 싶어 보니 상당한 작가였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로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말에 괜한 자부심을 느끼며 몇 문장을 보았다. 정말 탁월하다!!

그러나 저자의 책 속에서 그런 미래가 보인다. 문장력과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만져내는 솜씨가 국문학과 이상으로 뛰어나 보인다. 색다른 에세이,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단연 추천하는 바이다. 그리고 작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의 문제에 대한 갈증을 함께 풀어가고자 한다면 이 책은 위로라는 형태로 어쩌면 해답을 줄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언젠가 동생이 보내준 소설책 한 권을 재미나게 읽고 난 뒤였다. 내 연령대의 정서에 꿀처럼 달라붙으면서도 여운과 질문의 무게함은 적지 않았던 구성이 돋보여서 작가 이력을 다시 들여다보며 머물러 있었다. [...] 비범한 구석은 없을 거라고 치부되기 십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의 소설을 읽고 나는 느닷없는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작가가 되겠다고 도전해본 적이 없으니 그건 분명 뜬금없는 질투였는데, 어쨎거나 그 순간의 나는 뭔가 놓친 것도, 빼앗긴 것도 같은 기분이 당황스러워 아랫입술을 깨문 채 집안을 서성댔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건 아마도 그때 생겨난 상실감이 내면의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결과일 것이다. 내 열망의 줄기는 허겁지겁 자라나 사방에 문장을 뻗으며 무수한 꽃들을 피워냈다. 《에필로그》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방인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카뮈의 이방인은 그를 순식간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 그가 쓴 최초의 소설인데 당대에 출간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사건으로 언급되었다니 호기심 가득한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며 실존주의 철학자인 작가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아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이렇게 찬사를 받나 하며 읽을 기회를 노렸다. 이 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써놓은 서평을 읽어서 대충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물론 깊이 있게 알지 못했다. 책을 읽어보니 단순한 책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변광배 교수의 작품 해설을 그래서 읽어 보았다. 아뿔싸 이해되는 것은 이해되고, 도무지 굳이 그렇게까지 어렵게 해석해석을 해야하느냐는 카뮈의 반항이 자연적으로 꿈틀되었다. 그 이유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사실 그림을 보는 논객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그림을 이해하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의도나 사상이 아니다. 그것을 감상하며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다.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작품을 통해 보면서 때론 주인공 뫼르소의 소시오패스적이며, 반항적인 자기 고집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카뮈가 세상을 향해 전혀 '길들여지고 싶지 않다'고 호소하면서 사물을 관조적이며 주관적으로 바라보고자 생 발악을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방인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해석이 시도되었다. 그러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어쩌면 전문가적인 시선도 필요하겠지만 너무 한쪽 편향의 해석으로 치우칠 수 있는 해석들을 차치하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면 어떨까 싶다. 이방인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네 가지다. 사회학적 관점, 형식적 관점, 정신분석학적 관점, 탈식민주의적 관점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철학적 관점이 있다. 그러나 독자에게 마음 닿는 것은 사회학적 관점과 철학적 관점이다. 정신분석학점 관점에서의 해석도 이해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이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구조까지 들먹이면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카뮈의 의도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 독자는 작품 해설을 통해 몇 가지 관점을 자신 위주로 취하면 되고, 결국 독자 스스로가 소설을 읽고 느끼며, 생각하는 바가 이 책에 대한 주해석이라고 보면 좋겠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소설을 이해해 보자. 이 관점에서 보면 때론 노인 문제, 여성 문제, 재판 문제가 다뤄진다. 그러나 노인 문제나 여성 문제는 그저 소설에 대한 배경 설명이지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어느 사회나 일상적으로 표출되는 문제다. 카뮈가 이거까지 생각해서 이 소설을 적지 않았을 거다. 또한 재판에 대한 사회적 문제는 시대마다 있어온 것이다. 그렇기에 카뮈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세지는 단순하게 보이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다.

 

그건 더 큰 그림에서의 사회학적 문제이다. 즉 재판하는 과정 속에서 뫼르소는 아랍인 살해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이 죄목에 대해서만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예심판사나 검사 같은 이들은 뫼르소의 살인이 아닌 뫼르소라는 인간 자체를 심판하려고 든다. 그들은 무신론자이자 어머니 장례식에서 상주다운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뫼르소를 살인자로 규정하고 단죄하고 있다. 즉 기득권자들에게 의해 살인 예정자로 '재단된' 뫼르소를 재판하며 한 인간을 특정한 존재로 매도, 규정화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같은 사건은 단순한 살인죄로만 치부될 문제는 아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삶적 요소가 내재되어 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요소가 있다. 그래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부모와의 관계, 사회적 관계를 조사하며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된 이유까지 밝히려는 작업을 형사들과 프로파일러들이 하고 있다. 좋은 의도이며 사건을 이해하는 열쇠를 준다. 그러나 몇가지의 행동들이 그러하기에 한 존재가 그런 존재라고 단정짓는 것은 심각한 시선일 것이다. 사람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 사건을 만나는 방식은 다르다. 그렇기에 기득권에 의한 매도, 군중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시선이 꼭 정답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카뮈는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소설을 보면 뫼르소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 불편한 점은 있다. 이것은 결국 카뮈의 의도된 반항이며 사회적 규정화에 대한 거부감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소설을 통해 뫼르소를 그런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독자로서 보건데 그 사회가 담고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과 윤리관에 대해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며 외칠 때에 그것이 언제나 '사랑과 정의'의 틀 안에서 다가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뫼르소와 그의 어머니 관계를 저자는 보여주지 않는데, 그래서 뫼르소의 행동 이면을 우리는 오해하게 된다. 그래서 독자는 뫼르소가 과연 '사랑과 정의'의 틀 안에서 행동을 하고 있는 가를 묻고 싶다. 장례식을 가보면 알듯 우리는 톨스토이가 쓴 '이반일리치의 죽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장례식을 통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깊이 생각지 않는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이고, 나는 살아 있으며, 그래서 오늘과 내일의 할 일을 생각하며 고민거리에 잠기던지, 휴일에 있을 여행을 떠올린다. 죽음은 언제나 타자이며, 내가 죽을 때만이 죽음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뫼르소는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죽음을 타인의 죽음처럼 받아들였던 것일까? 아니면 엄마와의 관계가 친밀성과는 거리가 멀게 자라와서 일까? 그는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반려견보다 더 못하게 엄마라는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시체를 처리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그 사회의 권력, , 제도, 언어, 종교 입장에서 보면 '오염된, 적합하지 않은, 길들여지지 않은, 다시 말해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윤리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읽으면 주인공 뫼르소는 그저 '부모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줄 모르는 '소시오패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심각한 문제적 존재이다. 그러나 카뮈는 이 사회를 향해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고 외치고 싶어 비정상적인 존재 같은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또 하나의 관점인 철학적 관점에서 이 책을 보자. 카뮈의 사상과 문학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시기는 부조리의 시기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 오해 등이 이 시기에 속한다. 두 번째 시기는 '반항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 페스트, 반항하는 인간 등이 속한다. 세 번째 시기는 '사랑의 시기'이다. 카뮈 사후에 유작으로 출간된 최초의 인간이 여기에 속한다. 이 시기는 카뮈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방인의 시기는 부조리의 시기다. 부조리에 해당하는 프랑스 단더 'absurde'에는 '귀가 먹은, 들리지 않는' 등의 의미를 가진 'sourd'가 포함되어 있다. 즉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는 어느 순간 ''라는 의문이 들면서 이 세계와 인간 사이가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다. 보통의 경우는 이 세계는 인간의 질문을 받고 답을 주는데 어느 순간 답이 주어지지 않는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그런 '부조리'에 대한 징후를 느끼며 괴로워하는 시기다. 이때 카뮈는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종교를 통한 위로를 강하게 거부한다. 그리고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책으로 '반항'을 제시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패러디해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카뮈는 삶을 통해 부조리를 맛보고 보았고, 처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걸 극복하기 위해 이 세계와 단절하여 사는 것이 아닌 이 세계를 다시 끌어 안으며 회복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이 세계와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인간은 이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거기에 시지프 신화의 주인공인 시지프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뮈의 눈에는 시지프가 ''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비록 산 꼭대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또 다시 위로 올려야 하는 벌을 받지만, 바위를 산 꼭대기로 미는 쳇 바퀴적 삶이라도 살아있는 존재 의식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카뮈는 젊은 시절 불치의 병인 당시 기준으로 폐결핵을 앓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남들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즉 삶이 부조리한 것을 마구 던져주어도, 삶은 살아갈 의미가 있으며,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고 성찰하면서 매일 존재의 의미를 의식하며 새로운 하루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보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사형되는 날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드면 좋겠다"고 끝을 맺는데 이것은 결국 죽는 순간까지 반항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내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적 외침이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왠 미친 존재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뫼르소를 통해 카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어차피 이방인으로서 살다가 세상을 마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이방인과 같은 삶을 허용해보며 이해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것이 독자인 내가 이방인을 이해하며 바라본 내용이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책은 양장본으로서 부드러운 촉감의 고급스러운 벨벳 코팅 표지로 되어 있어 책의 고결함을 느끼게 한다. 소설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이 품는 겉옷도 중요한 시대다. 영원한 고전을 영원히 품는 기회가 되어 감사하다. 어려운 내용이기에 더 많이 읽으면서 사회적 시선과 내적인 시선을 키우면서 다시 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깊게 생각하며 읽지 말자!

 

카뮈가 그렇게까지 생각 안했는데 그걸 의미화하고 문어발식 해석화시키면 카뮈가 이게 바로 '부조리'라고 무덤에서 뛰쳐나올지 모른다.

 

이 책의 한 문장

 

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늘 과장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은 단순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