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내 첫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제니가 끓여준 차를 마시고, 제니가 직접 구운 펌프킨브레드를 먹을 때의 실내 공기, 따뜻한 색감의 커튼, 식탁 옆 창가를 통해 들어오던 햇살 같은 것이 지금더 기억 속에 보송보송한 온기를 품고 저장되어 있다." p.14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서는 위안을 주는 사람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공존하헤 마련인데, 제니 같은 사람을 경험한 기억은 네 오랜 이국 생활에 배짱을 만들어주는 요긴한 자산이 되었다. 제니를 기억해내고 나면 사람에게 다친 마음이 조금 다독여지곤 한다." p.15
빵 하나를 통해 그려간 에피소드와 저자의 문장을 통해 왠지 모르게 따끈따끈한 펌프킨브레드를 씹고, 제니가 끓여준 차까지 마신거 같다. 그 온기를 문장을 통해 느낄 수 있다니 놀랍다.
'강을 건너 폭설 속으로'라는 글을 통해서는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보았다. 프랑스에도 우리와 같은 파업과 집회가 있다. 저자가 살았던 그때 한 달 가까이 전국의 대중교통이 일제히 멈췄는데 어느 한 사람도 거기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거나 흥분한 어조를 띄운 사람이 없단다. 우리나라의 파업과 집회에 대해 시민들이 가진 태도와는 사뭇다른 풍경이었으니 저자 자신이 충격적인 문화체험이라고 했을만 하다. 얼마 전 태국에 다녀 왔는데 방콕 같은 경우 세계적인 교통 지옥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봤는데 '아무도 클랙션을 누르지 않는 다는 사실!' 이다. 그것이 극심한 교통체중이 있는 곳이든, 시골이든 동일하게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교통 신호등도 특이했다. 신호등이 초단위로 카운트 된다.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다 보니 기발하였다. 그런데 그 기발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호체계가 더 선진국 형태인줄 알았는데 태국이 오히려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가져와 쓰면 좋겠다. 암튼 태국은 미소의 나라답게 여유와 낙천적인면들로 인해 나에게 좋은 점수를 땄다.
이방인으로서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늘 관조적인 경험일 것이다. 물론 같은 민족 안에서 살아가면서 타인을 만날 때도 우리는 사람과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 본다. 그러나 타국에서 지내는 삶의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로움이며, 낯선 성찰일 것이다. 더군다나 외로움이라는 것을 지닌 고독한 인간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외로움과 상실의 흔적, 낯선 세상을 글로서 녹여내는 저자의 탁월함에 책이 주는 향취로 인해 취해 버렸다. 저자는 중고교 시절부터 서점을 통해 삶의 도피처를 삼고 위안을 받으며 지냈는데 그래서일까? 몸에 베인 문학적 구도와 단어의 구성 능력이 상당히 탁월함을 보게 된다. 저자에게 광화문 교보문고는 천국의 향취며 일종의 향락이었다.
"책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어 돌아가는 길에는 내 껍데기 안쪽의 공기가 바뀌어 있는 거 알 수 있었다. 새론 산 책을 읽고 싶다는 기대가 찰랑대는 마음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방구석에 구겨져 있넌 이불을 햇볕에 널었다 거둬들일 떼처럼 따뜻하게 소독된 냄새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줬다... 친구와 다퉈 냉전 중일 때도, 연예가 실패로 끝났을 때도, 교보문고를 치료제로 써먹었다." p.232
언어적 유희와 함께 문장의 적절한 조합은 다른 작가에게서 보지 못한 특유의 냄새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하며, 단어와 문장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능력자일까 하며 감탄하면서 책을 보았다. 파친코의 저자인 이민진 작가를 친구 통해 전해 들으면서 저자는 부러움과 질투를 시사해 주었는데, 그녀가 누군가 싶어 보니 상당한 작가였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로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말에 괜한 자부심을 느끼며 몇 문장을 보았다. 정말 탁월하다!!
그러나 저자의 책 속에서 그런 미래가 보인다. 문장력과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만져내는 솜씨가 국문학과 이상으로 뛰어나 보인다. 색다른 에세이,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단연 추천하는 바이다. 그리고 작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의 문제에 대한 갈증을 함께 풀어가고자 한다면 이 책은 위로라는 형태로 어쩌면 해답을 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