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운 지구인들에게 -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른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
홍예진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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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른

낯설고도 애틋한 삶의 풍경

책을 대할 때 표지 그림과 책 소개는 나에게 있어 어떤 물건을 심도있게 고르는 거와 같다. 책의 제목과 북디자인은 저자의 깐깐함이나 미적인 감각이 디자이너를 통해 묻어 있는듯하다. 그렇게 내 마음을 훔칠 정도로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 안의 문장들을 만나면서 또 다시 독자인 나는 저자가 가진 필력에 감탄을 하고, 저자의 (사물을 바라보는)시선에 마음을 빼앗겼다. 올해 초 고이어령 교수의 아내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책을 출판하였다. 그녀는 서울대 국문학과를 나오고, 숙명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才媛)이다. 국문학과를 나와서인지 글이 가진 품격이 달랐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런 필력 못지 않게 탁월한 문장과 글의 조합이 글을 써야만 하는 작가임을 단번에 알아보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문장과 단어를 썼을까? 한국 여성이지만 마치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던 문필가가 글의 세련미를 파리 패션쇼에서 런웨이하는 거 같다. 나의 기준으로는 미국적 냄새 보다는 프랑스적인 문필이 보인다. 프랑스적인 문필이 뭐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읽으면 그런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p.25 '강을 건너 폭설 속으로' 라는 글에 보면 프랑스 유학시절의 흔적이 있다)

암튼 독자는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서 빨려가듯 책을 읽었다. 저자의 관조적 시선이 보이고, 저자의 성격이 책 속에서 톡톡 튀어 올라, 어! 상당한 깐깐한 여성이며, 감성 짙는 여성이구나를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사물을 보는 관점은 분명 다르다. 똑같은 것을 남들과 다르게, 깊게, 예리하게 관찰하는 능력이 있다. 마치 거시적인 감정과 미시적인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나가는 하이에나 같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

"이방인의 정서로 살다 보니 늘 무언가가 그리웠다. 그 대상은 사람일 때도, 공간일 때도, 냄새와 맛일 때도 있었다. 떠나온 곳에서 맺은 이전의 관계성에 미련을 두고 있는 동안 같은 시간대에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에는 좀체 곁을 주지 않고 관조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책은 그때 싹을 틔운 것들에서 키워낸 열매가 아닐까 싶다. [...] 어째서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진 걸까. 커피를 사랑한다고 커피숍을 차리거나, 담배를 좋아한다고 담배를 심지는 않는데. 왜 어떤 이들은 글을 탐닉하는 취향에 기어이 심지를 꽂아 자기만의 문장을 제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열망의 불을 붙이고야 마는 걸까. 나를 둘러싼 공포이기도, 허무이기도, 압박이기도 또 동시에 행복이기도 한 것의 출발점에는 늘 문장이 있고, 써내고 싶은 것이 있고, 희망 비슷한 것도 있었다. [...] 대게는 휘발되거나 기억 창고에 머물다 희미해질 것들을 손에 잡히는 책으로 만들어놓는 이 행위의 의미를 묻는다면, 거시적인 것들에 가려진 미시적인 것들의 핍진함을 붙들려는 몸짓이라 답하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을 보려고 했던 이유는 저자의 시선을 통해 이방인의 삶을 엿보고 싶어서이다. 미국인의 일상과 문화에서 포착한 낯설면서도 익숙한 경계에 관해서 저자는 여지없이 이방인으로서 그들을 바라 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저자의 내면 안에 자기만의 수식어로 채워서, 걸러서, 씹어서 야근야근 씹어낼 것이다. 그러면 독자인 나는 작가가 본 세상을 통해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고, 새로움이라는 낯설음을 고이 간직하면서 나만의 이데아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첫 번째 글에서 저자는 ‘빵’이라는 소재로 미국에서의 외로움을 빵의 전달자를 통해 위로받음을 소개한다. 제니라는 여성이 바로 그 전달자이다. 미 중부 지역의 낯선 곳에 이사를 갔을 때 저자는 이방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제니는 저자의 집을 지나가면서 말을 건네 주었고, 초대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그 초대에 응하면서 교류 중 저자는 제니가 직접 구운 '펌프킨브레드'를 먹으며 마음의 온기를 느꼈다. 사람 냄새를 맡은 것이다.


"제니가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내 첫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제니가 끓여준 차를 마시고, 제니가 직접 구운 펌프킨브레드를 먹을 때의 실내 공기, 따뜻한 색감의 커튼, 식탁 옆 창가를 통해 들어오던 햇살 같은 것이 지금더 기억 속에 보송보송한 온기를 품고 저장되어 있다." p.14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서는 위안을 주는 사람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공존하헤 마련인데, 제니 같은 사람을 경험한 기억은 네 오랜 이국 생활에 배짱을 만들어주는 요긴한 자산이 되었다. 제니를 기억해내고 나면 사람에게 다친 마음이 조금 다독여지곤 한다." p.15

빵 하나를 통해 그려간 에피소드와 저자의 문장을 통해 왠지 모르게 따끈따끈한 펌프킨브레드를 씹고, 제니가 끓여준 차까지 마신거 같다. 그 온기를 문장을 통해 느낄 수 있다니 놀랍다.

'강을 건너 폭설 속으로'라는 글을 통해서는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보았다. 프랑스에도 우리와 같은 파업과 집회가 있다. 저자가 살았던 그때 한 달 가까이 전국의 대중교통이 일제히 멈췄는데 어느 한 사람도 거기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거나 흥분한 어조를 띄운 사람이 없단다. 우리나라의 파업과 집회에 대해 시민들이 가진 태도와는 사뭇다른 풍경이었으니 저자 자신이 충격적인 문화체험이라고 했을만 하다. 얼마 전 태국에 다녀 왔는데 방콕 같은 경우 세계적인 교통 지옥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봤는데 '아무도 클랙션을 누르지 않는 다는 사실!' 이다. 그것이 극심한 교통체중이 있는 곳이든, 시골이든 동일하게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만의 교통 신호등도 특이했다. 신호등이 초단위로 카운트 된다.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다 보니 기발하였다. 그런데 그 기발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신호체계가 더 선진국 형태인줄 알았는데 태국이 오히려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가져와 쓰면 좋겠다. 암튼 태국은 미소의 나라답게 여유와 낙천적인면들로 인해 나에게 좋은 점수를 땄다.

이방인으로서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늘 관조적인 경험일 것이다. 물론 같은 민족 안에서 살아가면서 타인을 만날 때도 우리는 사람과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 본다. 그러나 타국에서 지내는 삶의 모든 것은 언제나 새로움이며, 낯선 성찰일 것이다. 더군다나 외로움이라는 것을 지닌 고독한 인간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외로움과 상실의 흔적, 낯선 세상을 글로서 녹여내는 저자의 탁월함에 책이 주는 향취로 인해 취해 버렸다. 저자는 중고교 시절부터 서점을 통해 삶의 도피처를 삼고 위안을 받으며 지냈는데 그래서일까? 몸에 베인 문학적 구도와 단어의 구성 능력이 상당히 탁월함을 보게 된다. 저자에게 광화문 교보문고는 천국의 향취며 일종의 향락이었다.

"책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실어 돌아가는 길에는 내 껍데기 안쪽의 공기가 바뀌어 있는 거 알 수 있었다. 새론 산 책을 읽고 싶다는 기대가 찰랑대는 마음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방구석에 구겨져 있넌 이불을 햇볕에 널었다 거둬들일 떼처럼 따뜻하게 소독된 냄새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줬다... 친구와 다퉈 냉전 중일 때도, 연예가 실패로 끝났을 때도, 교보문고를 치료제로 써먹었다." p.232

언어적 유희와 함께 문장의 적절한 조합은 다른 작가에게서 보지 못한 특유의 냄새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하며, 단어와 문장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능력자일까 하며 감탄하면서 책을 보았다. 파친코의 저자인 이민진 작가를 친구 통해 전해 들으면서 저자는 부러움과 질투를 시사해 주었는데, 그녀가 누군가 싶어 보니 상당한 작가였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로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말에 괜한 자부심을 느끼며 몇 문장을 보았다. 정말 탁월하다!!

그러나 저자의 책 속에서 그런 미래가 보인다. 문장력과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만져내는 솜씨가 국문학과 이상으로 뛰어나 보인다. 색다른 에세이,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단연 추천하는 바이다. 그리고 작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의 문제에 대한 갈증을 함께 풀어가고자 한다면 이 책은 위로라는 형태로 어쩌면 해답을 줄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언젠가 동생이 보내준 소설책 한 권을 재미나게 읽고 난 뒤였다. 내 연령대의 정서에 꿀처럼 달라붙으면서도 여운과 질문의 무게함은 적지 않았던 구성이 돋보여서 작가 이력을 다시 들여다보며 머물러 있었다. [...] 비범한 구석은 없을 거라고 치부되기 십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의 소설을 읽고 나는 느닷없는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작가가 되겠다고 도전해본 적이 없으니 그건 분명 뜬금없는 질투였는데, 어쨎거나 그 순간의 나는 뭔가 놓친 것도, 빼앗긴 것도 같은 기분이 당황스러워 아랫입술을 깨문 채 집안을 서성댔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건 아마도 그때 생겨난 상실감이 내면의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결과일 것이다. 내 열망의 줄기는 허겁지겁 자라나 사방에 문장을 뻗으며 무수한 꽃들을 피워냈다. 《에필로그》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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