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뷰티 (완역본) 나와 모두의 클래식 1
애나 슈얼 지음, 위문숙 옮김 / 도토리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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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쓰고 버리는 물건처럼 여기던 시대에

동물 권리와 동물 보호에 대한 생각과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 소설

 

이 책은 색다른 느낌의 소설로서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소설이었지만 이제 내 손에 잡히게 되었다.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물 이야기의 고전인 이 책은 어린이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오래도록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영화까지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해 주고 있다. 블랙 뷰티가 얼마나 이슈가 되었냐를 보면 출간 2년 만에 미국에서 100만권 넘게 팔렸으며, 몇 년 사이에 세계에서 5천만 권 이상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이미 19세기의 작품인데 이제야 어른이 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는 블랙뷰티라는 말의 일대기만 아니라 동물을 대하고 다루는 인간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즉 동물에 대한 인간의 부당한 행동과 사회적 악습을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인 애나 슈얼은 블랙 뷰티작품에서 지주 계급과 노동 계급의 생활상을 묘사하면서 19세기 말의 영국 사회에 대한 예리하고도 균형 잡힌 시각도 드러내주고 있다.

 

이 책은 특히 미국의 저항적인 사회 소설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도 자주 비교 되는데 이는 노예 제도에 반대하여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처럼 블랙 뷰티역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분노를 이끌어내면서 사회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 애나 슈얼은 블랙 뷰티를 어른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즉 말이라는 존재에게 친절과 동정심과 이해심과 배려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썼다.

 

자라오면서 동물과 함께 커왔다. 시골 집에는 언제나 고양이와 개, 한우가 함께 했다. 1980년 당시 개는 집안을 지키는 개이면서 식용개로 집안에서 키웠다. 요즘 시대에 와서 반려견, 반려묘라고 하지만 당시까지는 그저 쥐를 잡기 위해 냥이가 필요했고, 집안을 지키면서 일년에 한 번 보신을 위해 강아지가 존재했다. 한우는 집안의 든든한 대학등록금이며 버팀목이었다. 돼지나 닭도 키웠는데 그들은 그저 인간에게 식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커나가면서 동물을 대하는 내 마음도 달라지고 특히 치킨을 현재도 먹고, 삽겹살도 좋아하며 돈까스, 스테이크도 좋아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한 여름에 닭장차에 수백마리가 갇혀 다니는 그 모습을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그렇게도 해도 되는가 하며 한참을 생각해 본다. 돼지를 실은 트럭도 마찬가지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그들은 자기 오물을 뒤집어쓴채 도살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어마어마하다. 아래 링크를 많이 걸어둔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동물을 단순한 먹이에서 인간을 향한 고마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래서이다.

 

무엇보다 이 자료를 보면 ☞《 [출처] 현재 육류 산업의 문제점- 동물 학대 닭의 도축 과정 속에서 기계식으로 목이 잘려지는 과정이 나온다. 또한 태어난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수평아리들을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수평아리는 계란을 낳지 않는 다는 이유로 믹서기에 갈리듯 산채로 갈려지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산업이며 어쩔 수 없는 구조라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땐 학대라고 생각된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 또한 노동으로 학대를 받아 왔지만 동물은 더 심각하게 마치 쓰레기처럼 취급받아 왔다.

 

그러나 인디안들은 그러지 않다. 우리가 인디안에 대해 오해를 하며 그들의 잔인함을 말하지만 그건 승리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미국의 시선이다. 류시화가 번역한 책을 보면 인디안에 대한 책이 여러권 있다. 그 중에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을 보게 되면 얼마나 우리가 선입견 속에 인디안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된다. 거기에서 본 것인지 모르지만 나의 기억으로는 인디안들은 동물을 먹어야할 때 그 동물을 향해 고마움을 표하면서 최대한 잔인하지 않게 죽인다.

 

동물에 대해 인간은 이제는 다른 각도로 생명을 대해야할 때가 되었다. 이 책 블랙 뷰티는 동물에 대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독자들을 다가간다. 책을 보는 동안 마치 블랙 뷰티 말이 되어 슬픔과 고통, 기쁨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동물 학대, 동물 권리, 동물 보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주고 있다. 즉 말과 기르는 동물은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로 존중을 받도록 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말에게 씌우는 고삐나 재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영국에서는 멈춤 고삐의 사용을 금지하였고, 미국에서는 동물 학대 방지를 위안 법에 영감을 주어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이끌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자연적으로 관심이 갔다. 저자는 1820년 영국 노포크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 메리 라이트 슈얼은 시인이자 작가였다. 저자는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되었는데, 치료를 잘못하면서 평생 불편한 채로 살아야만 했다. 다리를 다친 뒤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말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진 그는 앞으로 얼마 못 산다는 선고를 받게 되는데 이때 죽기 전에 말을 위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아픈 존재였기에 말의 입장이 되어 충분하게 말들의 감정을 대변하며 아픔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참으로 이 책은 어린이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필독서로 읽혀져야만 하는 책으로 본다. 이 책이 지금도 필독서로 학생들에게 읽혀지는지 모르겠지만 교육계에 있는 자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하는데 사력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첫 부분에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쳅터 2번에 나오는 글인데 주인공 블랙 뷰티가 두 살 되던 해 사냥을 나가면서 접한 사건에 대해 말의 엄마인 '더치스'가 한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인간이 사냥개를 풀어 산토끼를 사냥하는 가운데 시냇가에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건 두 마리 멋진 말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말을 몰던 한 사람은 진흙투성이 상태로 물 밖으로 나왔지만 다른 사람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때 블랙 뷰티의 엄마가 말했다. "저 사람은 목이 부러졌어." 그때 어떤 망아지가 대꾸했다. "쌤통이네"

 

이때 블랙 뷰티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엄마는 의견이 달랐는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안 돼. 너희들 그런 말 하면 못 써. 나는 나이가 많아서 여러 일을 겪었지만 왜 인간 남자들이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구나. 고작 산토끼나 여우나 사슴 한 마리 때문에 자기 몸을 다치고 좋은 말을 망쳐 놓으며 밭을 헤집어 놓다니.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우리는 고작 말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 수 없구나. p18

 

어쩌면 말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블랙 뷰티처럼 "쌤통"이라고 말하며 인간을 비하하며, 오히려 잘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엄마라는 말은 오히려 인간의 입장에서 동물과 같은 인간을 대하고 있다. 이 말을 탄 젊은이는 대지주의 외아들이다. 그가 탄 말은 '롭 로이'라는 말인데 용감한 말이 었다고 한다. 말은 넘어지면서 다리 한쪽이 부러졌는데 그런데 수의사가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누군가 주인의 집에 달려가서 총을 가져와 그 말의 생명을 끊어 놓았다.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는가 싶다. 저자는 말 보다 못한 인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며 한 쳅터의 글을 마무리 한다.

 

사람들은 젊은 고든을 교회 묘지로 옮긴 뒤 묻었다.

 

고든은 말을 타지 못하리라. 롭 로이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쨎든 이 모든 일은 자그만 산토끼 한 마리 때문이었다. p19

 

이 책의 한 문장

 

제리의 집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일요일에 쉬는 것이었다. 우리는 평일에는 녹초가 될 정도로 일을 하니 쉬는 날이 없었다면 배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캡틴은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 친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p 213

 

내가 말했다. '넌 학대 받으면 가만히 안 있었잖아.' ! 전에는 그랬지. 그런데 아무 소용없더라. 사람들은 최고로 강하거든. 그런 사람들이 아무 감정도 없이 잔혹해지면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버텨야 해. 제발 끝이 나면 좋겠어. 그냥 죽으면 좋겠어. 죽은 말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분명히 아무런 고통이 없을 거야. 내 소원은 일하다 쓰러져 죽는 거야. 그러면 도살장으로 안 끌려가도 되잖아.” p 261-262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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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데이 스터디 바이블 (개역개정)
틴데일하우스 출판사 지음, 김명희.이철민.전의우 옮김 / 성서유니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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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책이 번역 되었군요. 지식을 넘어 삶의 차원까지 생각한 스터디 바이블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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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창심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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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즐거워지면 생기는

인생의 놀라운 변화들

 

똑똑한 뇌로 업그레이드해 드립니다.

 

진정한 명석함이란

'(판단력)', '(성의)', '(행동력)'으로 만들어진다.

 

이 책은 우리 부모들에게 고민거리인 자녀들의 공부에 관한 문제다. 자녀를 낳으며 기대하는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자녀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왕이면 명민하며, 건강하며, 인격적으로 훌륭하며, 사회에 공헌하는 존재로 내 아이가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개중에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며 자녀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주는 울타리와 같은 부모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듯이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집안의 아내를 만나 좋은 집에서 명망있게 사는 것이다.

 

물론 독자는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만 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때 내 아이가 '지혜롭게' 세상을 마주하며 인류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류라는 말이 조금 거창한가? 내가 말하는 인류란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하듯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로 정의 된다.

 

이 책은 단순히 공부를 잘하여 성적이 좋은 아이로 만드는 법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는 단지 공부만을 잘하는 아이일 뿐이다. 흔히 우리는 '저 사람은 머리가 좋아라든지 나는 머리가 나빠서라는 말을 하는데 그 근거는 무엇일까'라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어서 말하기를 "나는 애초에 머리가 좋은 사람과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식의 분류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머리가 좋다'란 뇌의 상태가 좋다는 의미다. 그 방증으로 무언가를 해낸 순간에 기분이 상쾌해지듯 그러한 상태가 머리가 좋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머리가 좋고 나쁨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부러워해도 우리는 오직 자신의 뇌로 살아가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시간에 내 머리를 좋게 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라고 한다. 바로 명석함에 대해 그는 말한다. 명석함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획득한 최고의 능력이며 행복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는데 이는 명석하게 사고함으로써 눈앞의 상황을 개척할 힘, 현실을 바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명석함은 '살아가는 힘'인 셈이다."

 

참으로 훌륭한 정의이다. 학교 공부를 끝나고 난 후 사회인이 되면 그 명석함의 정의는 확연히 바뀌는데 그건 바로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명석하의 지표로 바뀐다.

 

즉 학교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소위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하는 자들을 보면 결국 사회 부적응자가 아닌 사회에 적응자이다. 즉 인간관계를 잘하며, 삶의 기본 예의를 알며, 빠른 상황 판단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능력을 잘하는 자이다. 가령 일류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업했지만 주변사람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해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차 제대로 파악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럴 때 "공부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고학력 소유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았지만 불법을 저지르는 뉴스를 보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잘핻 인간으로서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에 근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학창 시절과 다르게 공부를 싫어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 엄청난 활약을 하며 큰 성공을 거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른이 되면서 갑자기 재능이 꽃피운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그렇지 않다. 유년기 때부터 시험 점수나 학교 성적으로는 측량하기 어려운 다른 방식의 명석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고안해내는 상상력이라든지, 남을 기쁘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 같은 것은 학교 성적으로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발휘하는 명석함은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다. p22

 

물론 저자는 공부 따위는 필요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흔히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따위, 일상생활에 아무짝에 쓸모없어. 간단한 산수만 할 수 있으면 충분해."라는 말을 한다. 아니 저자는 분명 일본인인데 지금 한국인과 다를바 없는 말을 하고 있다. 가까운 나라여서 그런지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런 말은 세계 공통어라고 그런지 모르지만 공부란 필요한 것이다. "공부는 나 자신을 넓혀주는 최고의 방법이다"고 말한다. 공부란 존재가 무익해 보이지만 해두면 나에게 분명 더 이득이 더 크다. 그 이유를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배우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다양성의 숲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자신을 지금보다 더 살기 편하게 해준다.

알고 생각하는 기쁨이 인생을 더 살레고 두근거리게 해준다.

 

저자가 결국 여기에서 말하는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게 해주는 비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석한 사고방식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아이가 마주하는 학교생활에나, 사회 생활에서 삶의 지혜로서의 머리를 말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듯 '명석함의 바탕에는 정열이 있다"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알고 싶다', '어떻게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계속 생각하는 힘이 되고, 행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즉 정열은 머리를 좋게 하기 위한 불씨다. 아주 멋진 정의다. 일본어를 잘하는 아이의 근원에는 일본어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서려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반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아이였는데 심지오 돌대가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의 아이였는데 엄마의 지혜로운 응원으로 그는 훗날 세계 최초로 샴 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하며,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는 최고의 소아 신경외과 의사 벤카슨이 된다. 그는 30대 초반에 흑인으로는 최초로 존스홉킨스 대학의 신경외과 과장이 되었다. 나 또한 그의 책 "크게 생각하라"라는 책을 읽으며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은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읽어나가면 좋겠다. 공부만 잘하는 머리 좋은 아이가 아닌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머리 좋은 아이로 이 책은 당신의 자녀를 분명 더 나은 존재로 만들 것이다. 이 책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 이유, 공부의 목적과 방식 인간관계의 비결을 전수하며 진정으로 머리를 개발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진정한 명석함이란 무엇인가 할 때 저자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 책은 그런 진정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공부에 관한 한 마디를 더하고 싶다. 퇴계 이황이 공부에 대하여 논한 글을 보았는데 왜 그가 훌륭한 사람이며 참된 명석함을 가진 자인지 알게 되었다. 우린 진정 머리 좋은 사람이란 정의를 다르게 할 때가 되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사고에서 오로지 명석한 사고를 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녀를 만들기 원한다면 아래의 글도 면밀히 읽어주길 바란다!

 

공부란 그저 천자문을 줄줄 외우고, 적절한 때에 논어, 맹자를 인용해 잘났음을 과시하거나, 과거에 급제해 평생을 고생 없이 사는,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삶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대로 평생을 살아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사실, 그것이 바로 선생이 태극도설을 통해 배순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었다. (p. 44~45)

 

 

"아침저녁으로 책읽기에 몰두하고, 경전을 제대로 해석해낸다 해서 과연 공부를 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네. 공부를 하고도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건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네.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의 마음, 사랑의 마음, 공부한 자의 마음일세. 그 인이 어디 멀리 있던가? 주변에서 능숙히 비유를 취할 수 있다면 인의 길에 접어든 것이지. 이 군, 자네는 지금 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자네 주변에서 능히 취할 수 있는가? 정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p.142)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이 책의 한 문장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잘되지 않아도 길은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명석함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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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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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대표지성이라고 하면 으레 이어령 교수를 꼽는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석학이다. 이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현재 88세의 나이다. 그런데 그에겐 암이 함께하고 있다. 소위 암투병 중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뛰어난 석학이라서 다른가? 아니면 무엇이 그의 이런 신념을 만들어 내었을까 궁금하다.

 

 

이 책은 이어령이라는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이다.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처럼 암투병 가운데 죽음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진실을 얘기해 주고자 한다. 그래서 솔깃하다. 또한 간절하다. 과연 어떤 삶이 가장 중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여서인가. 그는 죽음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이미 마음으로 준비를 다하고 있다. 신호만 내리면 냉큼 달려갈것처럼 말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는데 이 대목이 너무 멋지다. 그건 죽음은 그만 돌아오라는 엄마의 부름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p154

 

 

그는 또 죽음을 말하기를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 죽음이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듯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남편이 42세로 림프암으로 세상을 떴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도 림프암으로 돌아가셨다. 본인 또한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굉장히 침울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울어버려서인지 담담하게 아무런 일 없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것을 보며 생각했다. 내 아내가 혹시 저러면 나의 죽음은 무엇인가? 너무 쉽게 남편이라는 존재를 떠나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이란 존재는 죽을 사람은 죽는 것이며 산 사람은 살아야 되기에 장례식 가운데 밥을 챙겨먹고 화장실도 가 볼일을 보는 것이다. 혹시나 배탈이 나면 죽은 사람 보다 내 자신의 배탈이 더 중요해 약을 간곡히 찾아 편안함을 찾는다.

 

 

어쩌면 죽음과 삶은 결코 두렵지만 않은 잠시잠깐의 이별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어령 교수를 안다면 그의 회심 사건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딸 이민아를 통해 신 앞에 무릎 꿇고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환생, 부활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아. 기독교인이니 겉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사실 낫싱(nothing)이야.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면 삶이 이렇게 절실할까. 끝이라고 생각하니 절실한 거야.”라고 말한다.

 

그렇다.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김지수 기자가 묻고 이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관한 책이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그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깊은 우물속에 건져내고 있다.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렸나하면 그 무게는 상당한 무거움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생에 마지막 수업이 될 수 있음으로,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그렇다.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을 묻는 애잔한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답이다.” 삶과 죽음, 사랑, 용서, 종교, 과학, , 돈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면서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는데 매 쳅터마다 주옥같은 진리의 메세지가 펼쳐지면서 독자를 삶의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준다. 제자로서의 질문도 뛰어나고 스승으로서의 대답도 무언가 형이상학적이지만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저자가 말하듯 제자들이 길을 헤맬지라도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길 바라는 이런 스승과 함께라면 어쩌면 우리는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따뜻함으로 지성과 마음, 영혼에게 전해진다.

 

 

한 쳅터마다 읽고 나누고 싶은 주제이다. 죽음은 가장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친절한 철학자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쓴 글과 책이 많은데 암이라는 죽음을 실제 앞에 두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말에 더욱더 겸허한 자세로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는 말한다. 자신의 말은 "듣는 귀가 필요하네...왜냐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즉 듣는 다는 것은 죽음을 실제 앞에 두고 들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책에 언급되었듯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했다고 한다.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장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햐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p30

 

이 말을 보면서 톨스토이가 쓴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생각 났다. 거기에 보면 주인공 이반 일리치 자신도 사실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죽음은 죽어가는 당사자의 고통이며 무게감이다. 아래는 거기에 나오는 글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각자에게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까운 친지가 죽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 였다. 특히 표트로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에게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내한테 이반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처남을 이쪽 재판 관할구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자신의 짐작을 털어놓았다. -이문열의 죽음의 미학 중에서 p27-28

 

죽음,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이 책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런 말을 했는데 나도 언제가는 이런 말을 할 때가 올 것이다.

 

 

"내년 삼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 그때 이 책을 내게"

 

 

결론적으로 이 책은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선물'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요즘 따님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습니다. 암 선고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까닭도 따님과 관련이 있는지요?

 

 

“(미소 지으며) 우습지만, 성경에는 나중 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내 딸이 그랬어요. 그 애는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았어요. "지금 나가면 3개월, 치료받으면 6개월" 선고를 듣고도 태연하니까, 도리어 의사가 놀라서 김이 빠졌어요. [...]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도 함께 밝아진 거지.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쫓고 있어요(웃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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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 모든 권력에 반대한 창조인 아나키스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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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있으면 자유 없다.” 1921년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1842~1921)의 장례식에서 사용된 검정색 만장에 쓰였던 만사다

 

평등 없이 정의 없고,

정의 없이 모럴 없다!

 

오래된 미래를 거부하고 새로운 미래를 제안한 위대한 사상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즐겁게 일하고 쉬고 나누는

푸르른 세상을 꿈꾸었던 희망의 아나키스트

 

이 책은 이 한마디가 내 마음을 동요시켰다. 그건 내가 좋아한 톨스토이가 손으로 쓴 것을 크로포트킨은 몸으로 살았다”(로맹 롤랑)는 말이다. 톨스토이는 회심 후 새로운 인생과 삶을 만들어 간 존재이다. 그가 추구한 가치관은 어쩌면 현시대에 맞지 않는 이상적 세계관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무정부적이며 비폭력적인 세상을 꿈꾸고 살고 있다. 톨스토이는 작가이자 기독교 사상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권력·억압·강제를 거부하고 사랑·평화·자유를 받아들이는 사회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가 쓴 책 가운데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라는 책은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아나키즘이 집약된 책이라고 한다. 독자는 그의 소설과 함께 2007년도에 출판된 '인생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더더욱 톨스토이에게 빠져들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그를 일컬어 가장 위대한 소설가라고 평가했듯이 나는 톨스토이가 쓴 글과 함께 그가 추구한 사상과 삶을 동경한다. 물론 톨스토이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를 비판적 입장에 보는 분도 있지만 그는 신의 사람이 되고자 고군분투한 인물이다.

 

 

그런 가운데 크로포트킨이란 인물을 접하는 기회를 가지며 그에 관한 평전을 읽게 되다니 독자로선 반가울 따름이다. 정말 폴 애브리치니가 말한대로 크로포트킨은 신 없이도 성인이 되는 과업을 달성한 존재인가? 또한 그는 "지배자 없음"을 뜻하는 아나키즘의 세상을 만들고자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나의 목적이다.

 

 

그에 관한 수식어가 상당히 많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서 보면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혁명가,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정치학자, 지리학자, 아나르코 코뮤니즘을 옹호한 철학자, 행동가, 에세이트, 조사가, 작가라고 한다. 번역가 박홍규는 여기에 더 보태어 생물학자나 지질학자, 또는 과학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상호협력은 진화의 원리에는 생존경쟁만이 아니라 상호협력이라는 측명도 있다고 주장한 생물학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과학자 아나키스트라는 것이다.

 

그는 학문의 경계를 넘어 실험정신과 도전정신으로 끊임없이 통합적이고 연계적인 사유를 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사회를 추구한 창조의 인간이었다.

 

 

아나키즘이란 부당한 권력이나 권위를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자는 것으로서 스스로 창조하는 정신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창조력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소수의 지배계급과는 거리를 두고 인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 갔다. 젊어서 한때 장교로 복무했지만 역시 인민의 일원으로 살았고, 제대 후에는 죽을 때까지 어떤 권력의 자리에도 오르지 않으며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의 출생을 보면 러시아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즉 이런 상태라면 예정된 출세의 길을 가며 기득권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대신 아나키스트이자 혁명가이자 과학자로서 일생을 바치며 재산과 지위를 버리고 평생을 아나키즘 운동에 헌신하며 살아 갔다. 그래서인지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열정을 불사른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는 영웅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채호(1880!1936)는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이고 혁명가이며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이며 소설가이다. 그는 크로포트킨을 매우 존경했을 뿐 아니라 그의 사상과 행동을 따라 살아갔다. 한 자료에 보면 신채호는 1936년 사망하면서 서적 몇 권을 감옥에 남겼는데, 그 중에는 러시아 아나키즘의 선구자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이 쓴 '세계 대사상 전집'이 있었다.

 

 

그렇다. 크로포트킨은 신체와 지성 전체가 마치 알레르기에 반응하듯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언제 어디서든 상호협력하는 사상으로 똘똘뭉친 자이다. 어린시절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그러니 서로 공평하게 나누고 도우며 살자"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평생 한순간도 잊지 않고 이를 실천하며 살았다.

 

 

세상은 여전히 권력히 존재하며 민주주의 시대이지만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하며 의문을 가질 정도로 아직도 약자는 짓밟히고 아파하고 있다. 현 시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얼굴로 국민들 위에서 여전히 약자의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귀는 닫혔으며, 그의 눈은 국민이 아닌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다. 오로지 이것을 위해서 그는 지금 국민을 짓밟고 있다. 사실 그의 정치적 행태를 보면서 아나키즘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가 아닌가 싶지만 아시다시피 아무리 지배자 없는 세상을 주장해도 지배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어떤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그러한 권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 아나키즘은 여전히 필요하다. 얼마 전 "서울대에서 환경미화원이 사망했는데 사망 원인 중에 한 가지를 보니 청소 업무와는 무관한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는 시험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개관 연도, 현재 학생수 등 객관식 문제를 주며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공개하며 수치심을 주었다고 하는데 서울대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한 자료를 또한 보았는데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입학의 90%는 부모의 경제력이라고 한다. 또한,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역시, "상위 1%만이 더 좋은 대학과 직업을 구하며, 학생의 고득점은 가족의 경제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험이란 사실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현실에서는 불평등한 사회의 기득권을 대물림하는 것" 라고 말을 하였다. 즉 현시대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이다. 북유럽에서의 행복의 비결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대학교에서도 서열화 문화를 만들게 되고 사회 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게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지식으로, 얼굴로, 옷차림으로, 생활수준으로, 지역으로, 인종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며 그들 위에 서고자 한다.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어쩌면 완전한 경쟁 없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은 이상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호 협력하며 서로 돕고 나누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상대와 같은 눈높이로 그 영혼을 바라보며 어떤 형태로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단호히 거부하며 내려놓으려 해야 한다. 그건 바로 '사랑'에 기반한 능동적 실천이다.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언제 어디서든 상호협력하라고 외친 크로포트킨의 외침은 우리 사회를 좀 더 행복한 사회로 만들어 나가게 할 것이다. 끝으로 틀스토이의 글이 좋아 남겨본다.

 

참사랑-톨스토이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보다 큰 행복은 단 한 사람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향락을

사랑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그와의 관계를 끊을 만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누구도 지배자일 수 없고 서로 도와야 한다.

 

모든 권력에 반대하고, 언제 어디서든 상호협력하라!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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