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대화 - 성령으로 들여다본 신통섭의 솔루션
김병윤 지음 / 광문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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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그대가 어느 민족인지 출생지가 어디인지 관심이 없고

생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페르시아 격언-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면 아마도 두 가지 부류로 갈라질 것이다. 한 부류는 이 책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가지며 마치 리처드 도킨스의 책처럼 생각할 것이다. 또 한 부류는 이 책이 기존의 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닌 새로운 차원 속에서 말해지는 하나님이기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에게 조금의 희망적인 책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 책이 과연 저자가 말하듯 예수께서 말하셨던 존재의 본질, 사후 세계,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깨우치고 사랑의 원심력을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종교의 방향타를 잡게 되는가이다.

 

물론 읽는 자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신이 쓴 글을 통해 모든 이들이 자신과 같은 신의 진리를 깨닫고 그가 원하는 경지에는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즉 이 말은 저자의 말 또한 신존재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나 철학적 추론이나 가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어 나가면서 기존 종교에 매우 화가 나있고, 종교가 저지른 실수나 죄악들을 보고 종교의 근간이 되는 신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저자 나름 종교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책을 읽으며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증조부모께서 돌아가실 때 처음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고, 그러던 가운데 1977년 봄 대학교 정문을 넘어설 때 마른 하늘의 벼락을 맞고 살아나는 희한한 경험까지 하였다. 정신 없이 쿠사(KUSA, 유네스코학생회)라는 학회의 사무실로 뛰어들어간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무언가를 적게 된다. 그때의 쪽지는 잊어 버렸지만 적힌 내용은 이러하다. “모든 존재는 육체, 정신 그리고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로를 느끼는 육체와 정신은 사라진다. 하지만 태초부터 있었고 영원히 존재하는 영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며, 이것은 결코 죽지 않고 존속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저자는 무수한 세월 속에 종교 책들을 섭렵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경전을 접했으며, 또한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를 연구하며 동서양 철학 책들을 골고루 읽고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배경 속에 그는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정신이 배제된 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후 저자는 비교종교학 책인 '영과 영'이라는 책을 출간 했으며, 출간 직후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법칙 속에 종교적 질문을 포함한 사회과학 분야의 담론에 대한 해답이 있을 거라는 확신 속에 하나의 문구를 발견하며 본 책을 저술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 문구는 이러하다.

 

"모든 물질은 그에 대응하는 반물질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교류하면 원래의 상태인 영(, zero)으로 사라진다"

 

불교의 공() 사상과 흡사한 개념이다. 아무튼 저자는 스티븐 호킹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간구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또다시 얻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종교를 포함한 사회과학의 법칙과 자연과학의 법칙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꿈꿔오던 책을 준비하며 약 3개월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가운데 하루에 15-18시간씩 집필을 하게 된다. 그때 저자는 특이한 경험을 또 한 번 하게 되었는데 그건 잠시 머리를 식히는 동안 지속적으로 단어나 짧은 문장이 발상이나 착상을 통해 뇌리에 전달되고, 이를 찾으면 문장이 완성되는 경험을 한다. 꿈을 통해서도 책의 내용과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재시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 설명이면 저자에 대한 선이해가 되었을 거라고 본다. 존재 본연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정은 가히 어떤 신학자보다, 종교인보다 열성적이다. 많은 지식들을 섭렵한 가운데 책을 구성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문제는 저자가 생각한 하나님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근간이 되는 구약을 배제한다.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이나 쿠란과 함께할 수 없는 교리이며 이 책(구약성경)과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구약성경에 대한 모순을 분석하는데 많은 할애를 하며 예민하게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짚어낸다. 더불어 신약성경에 관해, 예수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 바울의 사상이 어떻게 기독교의 기본 교리로 자리 잡게된 사실을 설명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의 기존 개념은 허구이며, 예수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이승에 천국을 실현'하는 것이기에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잘못 가르침을 받아온 고대 우화와 같은 얘기에서 빨리 집착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은 기존의 기독교가 가르쳐온, 창조론, 동정녀 탄생, 부활에 대한 개념을 사그리 무너뜨린다. 소위 또 다른 안티 기독교의 모습이다. 예전 마르키온파(Marcionism)란 이단이 있었다. 그는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분이라고 말했다. 즉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복수의 잔인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용서의 신이라고 말하며 구약성경을 배제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런 그의 사상은 7세기경에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여 신에 대해 정리를 내리며 기존 기독교에 대해 따끔한 충고와 오류를 짚어주는 저자의 노고에 기독교는 무언가 귀담아 들을 내용들이 충분히 있다. 그 어느 책보다도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으려고 노력한 책이며, 구약성경을 근간으로한 종교를 완전히 짓밟아 감으로 종교 본연의 모습을 가져오려고 하였다. 문제는 성경이 가진 문장을 인간적 이해나, 지성으로 파헤친다고 해서 그가 성경에 대한 전지적 이해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베드로후서 3: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함부로 성경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오류에 대해 무조건 눈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종교는 기존 종교에서도 타파하고자 한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맹목적인 사람들은 존재한다. 문제는 저자처럼 성경을 재단하며 성경을 비판적으로 대함으로 성경이 정말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진리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중에 20세기 시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에즈라 파운드라는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책은 그 내용의 일부를 실제로 보거나 체험하기 전까지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며 오류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모든 것에서 신의 옷자락을 만지며 신의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구약의 하나님이 마치 유대나라의 민족신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성경이 그렇게 조약하게 적혀 있지 않다. 언젠가 저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신적 체험을 하게 되는 날, 그는 성경을 달리보는 눈을 가지리라 생각된다.

 

 

리처드 도킨스, C.S. 루이스 그리고 삶의 의미라는 책의 글귀를 끝으로 이 책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각각은 삶의 일부를 밝혀주지만, 전부는 아니다. 과학은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으며, 기독교는 자연의 기초물리상수의 가치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둘을 합쳐 생각한다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서로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 (40)

 

이 책의 한 문장

 

"모든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신의 현현으로 창조됐다. 이 형상은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신의 형상은 인간의 본성 안에 존재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는 신의 형상이며, 바로 신이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하 존엄성의 기초라는 것이다. 인간은 신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신의 형상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신에 대한 사랑의 완성이다." -p447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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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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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이다

 

이 한 문장에 1984의 사상이 다 담겨있다!

 

작금의 세상을 보라. 오늘 실제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가서 QR코드를 접했다.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접종자입니다'라고 그렇게 말한것 같다. 입구 초입에 줄을 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다 나와 버렸다. 그렇다. 나는 미접종자이다.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건 낙인 찍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듯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고 분명 이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인데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며 더 화가 났다. 개인의 자유를 지금의 정부는 독재 형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세뇌하고 길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이 글을 읽는 자들 가운데 접종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걸 왜 하지 않느냐며 이미 비딱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1984가 치료약이 되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자료를 보면 오미크론(감기 수준)에 대해 부스터샷에 대해 추가 접종은 오히려 면역성을 떨어뜨린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미생물학 및 면역학과장인 Ehud Qimron 교수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공개 서한이 발표 되었다. 한 마디로 "보건부, 실패를 인정할 때"라는 말을 했다.(https://www.mako.co.il/news-columns/2022_q1/Article-dfd99ca599e2e71026.htm)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동료들을 비방하고, 국민을 적대시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담론을 양극화시켰습니다. 과학적 근거 없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중의 적으로, 질병을 퍼뜨리는 사람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당신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의학적 선택을 내릴 권리를 부정하고 사람들을 차별하는 가혹한 정책을 펼칩니다. 역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텔아비브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Udi Qimron / https://cafe.naver.com/querdenkenkorea/24986

 

 

분명한 빅브라더의 세계가 도래 했다. 백신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불나방이 불에 달려들듯 사람들의 정신은 이미 생각(판단) 기능을 상실했다. 영화 아일랜드(SF 2005)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왜 국가나 권력자를 믿으면 안되는지를 명확하게 알 것이다.

 

 

빅브라더란, 1984에서 모든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전지전능한 가상의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일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감시·통제하는 관리권력 또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로, '감시자'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다."(시사상식사전)

 

 

조지 오웰의 ‘1984은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국민에 대한 통제와 독재를 풍자한 소설이다. 그가 쓴 '동물농장'과 더불어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정부의 감시 카메라 설치나 개인정보 사용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주 쓰는 말인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바로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최고 권력자의 호칭이다. 한 기사에서 보았는데 '오웰리언(Orwellian전체주의적인)'들은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처럼 정부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1984년에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코로나19 유행으로 대한민국과 중국에서 몇몇 나라에서 현실이 됐다. 중국 공안은 이미 2020년도 초에 각 사람의 핸드폰에 부착된 QR코드를 검사해 춘절에 우한을 떠나 북경이나 상하이 등지에 온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봉쇄된 우한으로 돌려보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있는 후베이 출신들이나 우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강제 격리다. 좋은 말로 '거리두기'.

 

 

그러나 엄연한 통제사회이며 사람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감시 받는 사회 체제이다.

 

중국은 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택시기사나 음식배달원은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자신의 휴대폰 속 수이션마(隨申碼)’를 제시하고 있다. 수이션마란 개인별 휴대폰 QR코드를 말한다. 개인별 진료기록, 위치정보 및 통신내역, 결제정보 등을 종합 반영해 자신의 휴대폰 QR코드 색깔로 위험여부를 표시해주는 장치인데 어떤면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감시되고 있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내용들을 이미 조지오웰을 통해 1984년에 예견되었다. 그는 선각자와 같으며 이 시대를 꿰뚫어보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작년 10월경 조지 오웰 산문선을 보면서 오웰이란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자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은 섬찟할 정도로 현재의 세계를 보여주는 안경이 되어 주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트럼프의 취임식 전후로 조지오웰 소설 1984판매량이 무려 9500% 증가했다고 한다. 왜곡된 보도들이 즐비함으로 미디어 정치에 놀아나는 세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형태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 대선도 보면 네거티브 전쟁을 하고 있다. 사실과 거짓이 섞인 자료와 유트브가 판을 치고 있다. 이미 우리는 미디어 세상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믿지 못하고, 거짓을 말해도 진실인 것처럼 생각되는 사회 속에서 과연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매우 걱정이 된다.

 

 

책 안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이러하다.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브라더'를 내세워 체제를 유지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소설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 도청장치를 이용하여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러한 절대 권력에 대항하여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지만, 호된 고문 끝에 결국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과의 투쟁을 끝내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주인공에게 일어났다.

 

 

이 책 3부로 바로 가서 보면 윈스턴은 경찰에게 잡혀간다. 그건 빅브라더가 금지하는 생각을 하고, 지하 투쟁단체에 가입하고, 섹스로 쾌락까지 느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윈스턴은 끔찍한 고문을 받는다. 고문의 과정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3부 쳅터 2에 그 내용들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권력자들을 증오하며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현실에도 보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 경찰에 의한 강제적 자백으로 인해 죄인이 되고 죽일놈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당사자의 고통과 잃어버린 시간들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전혀 보상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말 최악의 고통이다. 이런 현실이 또 우리 삶에 보편적으로 실제 나타날까봐 매우 두렵다. 그렇다. 이 책에서 고문의 목적은 빅브라더를 의심하는 마지막 인간의 사상을 개조하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울부짖던 윈스턴은 결국 당이 원하는 것에 굴복하고 만다. 빅브라더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고 믿던 주인공은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를 처형하지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를 다시 만드는 거야. 그에게서 모든 사악함과 환상을 불태우는 거야. 우린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그저 외관상이 아니고 진심으로,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거라고. 죽이기 전에 그를 우리 일원으로 만드는 거지.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든 잘못된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아무리 은밀하고 무력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일세.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일탈도 허용할 수 없단 말이야. [...] 예전 전제 정치 시절의 명령은 '하지 말라'였네. 전체주의 명령은 '해야 한다'였지. 우리가 내리는 명령은 '그렇게 되거라'라는 것일세. 우리가 이곳에 데려운 어떠 사람도 우리에게 맞서지 못하네. 모두가 깨끗하게 세뇌되거든. 자네가 한때 무죄라고 여긴 저 세 명의 비참한 배신자들, 존스, 애런슨, 리더포드의 경우에도 결국 우리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지. [...] 나는 그들이 차츰차츰 지쳐서 흐느껴 울고 굽신거리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네. 결국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라 속죄로 끝맺었지. 우리가 심문을 마쳤을 때쯤엔 그들은 그저 빈껍데기만 남게 됐다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후회와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 _본문 p.389-390

 

 

자네는 두 번 다시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네 안의 모든 것이 죽어 버릴 테니까. 자네는 두 번 다시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맛보거나 삶의 기쁨을 누리거나 웃거나 호기심을 느끼거나 용기를 낸다거나 정직성 같은 것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넨 텅 빈 인간이 될 거야. 우린 자네를 쥐어짜서 속을 비울 테고, 그런 다음 우리 것으로 자네의 속을 채울 걸세.” _본문 p.392

 

위의 내용은 너무나, 너무나 무서운 내용이다. 등골이 오싹하며 마치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가 생각하듯 당장에라도 가서 그들을 죽여 그들의 독재를 끝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마저 결국 증오의 대상인 빅브라더를 사랑함으로 끝맺게 되는데 가슴 한 켠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이 세상의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을 꿈꾸는 '아나키즘'이 떠오른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콧수염 아래 숨겨진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데 40년이 걸렸다. , 모질고도 부질없는 오해였다! , 저 애정 어린 품속을 벗어나 고집스럽고 아집에 찬 유형의 삶을 살았다니! 술 냄새가 배인 두 줄의 눈물이 콧날 양옆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_본문 p.456

 

마지막 말이 이렇게도 씁쓸한 것은 뭘까? 그의 마지막 말은 결국 세뇌된 존재의 외침인가? 투쟁의 시간은 끝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아마도 두 가지를 말하지 않나 싶다. 죽음으로서 이런 악의 세계에 벗어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말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공산당과 같은 빅브라더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개인의 주관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성과 군중심리에 함몰되어 개인의 가진 자유마저 분명 통제되고 그 당들이 원하는대로 살고 있는데 이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말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영국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명문 학교인 웰링턴과 이튼학교를 졸업했는데 이튼에서 그를 가르친 교사 중에 그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도 있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하는 대신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버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 경찰의 부지휘관으로 근무했다. 여기서 그는 제국주의에 혐오를 느껴 1927년 영국으로 휴가를 나오면서 그만두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2세가 되던 1945년에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그는 펴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큰 명성과 함께 경제적 안정도 얻게 된다. 그러나 그해 아내를 잃고 자신의 지병인 폐결핵도 악화돼 요양과 입원을 거듭하는 가운데 고통과 불행 속에 마지막 작품이자 명작인 ‘1984’를 쓰게 된다. 오웰이 사망하기 5개월 전 출간된 이 소설은 이렇게 디스토피아 소설의 전형이 되었다. 이 책은 전체주의 권력의 생리에 대해 필사적인 경고를 담은 셈이다. 두 작품의 소재는 대부분 당이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스탈린주의 치하의 소련에서 가져왔다. 정확히 말해서 오웰은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부패한 사회주의를 비판한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글을 쓰던 시기는 세기적 대공황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발호한 시기와 일치하며 사회주의 수많은 갈래로 나뉘면서 '진정한 사회주의'의 확립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다. 그는 파시즘의 전체주의, 압제적 자본주의보다 오도된 사회주의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그 자신이 '최후의 경고'라고 말했던 1984였다.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현재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결코 이 경고를 우습게 들으면 안 될 것이다.

 

 

코로나 19는 그런 무서운 세상이 도래할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미 국민들은 정부와 이상한 비전문가에 의해 세뇌된것마냥 '백신 찬양자'가 되어 버렸고, 20세 이하 코로나 사망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통계가 나왔는데(혹 사망자가 있다면 그 사망자의 실제 죽음은 정부가 말하는 코로나 환자가 아닌 다른 병에 의한 병일 것이다. 물론 백신 추종자들은 그걸 굳이 믿으려 하지 않지만...그럴 때는 통계만이라도 봐라. 아이들은 맞지 않아도 충분히 지나가는 감기정도로 끝나 버린다. 지인 중에 코로나 확진자를 보았다. 격리 시설에 갔지만 코로나 치료에 대한 약은 없었고 특히 퇴실 때에 PCR 검사 조차 없이 돌려 보냈다. 즉 시간이 되면 없어지는 병이다.) 자녀들에게 백신을 맞추지 못해 안달이 나버렸다. 언제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TV에서 말하는 것은 뭐든지 믿어 버리는 형국이 되어 버렸나. 다른 전문가들(이왕재 교수, 함익병 원장 등)의 말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1984년은 우리 사회 현실로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다시금 정독하고 봐야 될 책으로서 나 또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도서 100안에 집어 넣고자 한다. 아직도 순전하게 정부가 우리의 삶을 지켜주며 안전하게 해줄거라고 믿는가?

 

 

2+2=4인가?

 

아니면

 

2+2=5인가?

 

여기에 대해 바르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살아 있다고 하지만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의 한 문장

 

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뭔가 하나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항하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무리가 여기저기에 생기고……. 작은 무리들이 한데 뭉쳐서 점차 그 수가 늘어난다면, 나아가 얼마간의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다음 세대가 우리가 떠난 그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p.240

 

 

"그들은 당신의 마음속까지 들어가지 못해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속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자네에게 일어나는 일은 '영원히' 계속될 걸세." 오브라이언은 그렇게 말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자신이 한 행동에서 회복될 수는 없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죽임을 당했다. 불태워지고 마비되고 말았다.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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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톱 조선왕조 - 한 권으로 끝내는 조선왕조 퍼펙트 지식사전
이준구.강호성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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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부터 몰락까지, 깔끔하게 압축한 조선의 역사

한 권으로 끝내는 조선왕조의 완벽한 지식사전!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게 된건 또 하나의 행운이다. 이 책은 역사책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교과서라고 본다. 그저 역사의 지식을 외워 정답을 쓰는 교육 방침에 대한 새로운 항거와 같은 책이라 너무나 반갑고 좋다. 교육부는 당장에라도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 교육과 한눈에 들어오는 역사 개념과 이해하기 쉬운 방식의 가르침을 채택하였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정말 조선왕조 500년을 한 눈에 꿰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KBS에서는 드라마 <이방원>이 방영되고 있다. 예전엔 이런 방송을 그냥 봤다면 요즘은 역사적 이해 속에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세자 자리는 당연히 이방원임이 자명했다. 그러나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는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운다. 조선건국에 대한 꿈을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이용한 것이다. 건국에 거대한 업적을 세웠지만 공을 인정받지 못한 이방원의 분노는 자식을 잃은 고통과 겹치면서 그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계모에게 아들의 예를 다했던 방원은 "사악한 여자"라는 표현조차 서슴지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연기를 하고 있는 신덕왕후 강씨는 결국 죽은 후 묘가 강제 이장되었고, 예우도 왕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이러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 더해지면서 실제 역사적 사실이 궁금하여 이 책을 더 손에 잡고 읽어 보게 되었다. ! 이렇게 역사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가? 조선의 개국부터 몰락까지 선명하게 한 눈에 보이는가 하면 필요한 부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역사적 상식을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WHO-TALK ABOUT

 

 

이 책에는 책의 흥미를 더하는 두 가지 흥미로운 쳅터를 두고 있다. WHO라는 쳅터를 통해 마치 작은 칼럼처럼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와 비하인드적 부분을 알게 해주고, 또한 TALK ABOUT라는 쳅터를 통해 그 시대의 궁금점에 대해 잘 긁어주고 있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한 내용들을 재미있게 구성해 주었는데 이러하다. 왕과 왕비에 대한 알고 샆은 각 10가지에 대해, 궁녀에 대해, 궁중 생활의 비밀에 대해, 궁궐에 관해 알고 싶은 것 8가지 등 궁금한 키워드를 잘 살려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씨라고 해서 모든 이씨가 왕조가 아니라 전주 이씨가 왕조이며, 현재 전주 이씨 혈족의 숫자까지(200만 명 이상) 기록해 두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이씨를 새롭게 보게 한다. 또한 ''와 종'''의 차이에 대해 기록했는데 조와 종의 차이는 왕이 재위 중에 세운 공적에 따라 공이 크면 '', 작으면 ''이라고 불렀다. 물론 1대 왕은 태조라 불린다. 그런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왜 ''을 붙였나? 그건 당시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들이 세종의 한글 창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무니다. 한편 제 23대 순조에게 조를 붙인 이유는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왕비의 외척이 권세를 휘두르는 시대의 왕이었으므로, 왕권이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었다. ''은 왕자들에게 붙인 호이다.

 

 

또한 세자가 받는 영재교육의 내용을 다루고, 왕과 왕비의 밥상에 대해서도 다뤄준다. 왕과 왕비는 당시 12첩 반상이었다. 밥 두 공기와 국 종류 다섯 가지를 겸해서 수라상이 되는 것이다. 수라상은 하루에 두 번이며 그 사이에 초조반, 점심, 소반이라고 하는 가벼운 식사를 했다고 한다. 하루에 다섯번이나 식사를 하니 수라간에 일하는 이들의 수고가 눈에 선하다. 왕의 하루 일과표는 보면서 왕자리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오전 5시부터 시작된 업무는 오후 11시 취침에서야 마치는데 쉴 시간이 없는 스케줄에다가 오후 9시가 되면 왕비를 포함한 후궁들에게도 시간을 써야하니 가히 왕이 오래살 수 없겠구나 싶다. 왕비에 대한 10가지 궁금증도 속시원하게 풀어주고, 궁녀에 대한 궁금증도 10가지 정도 알려주면서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도록 해주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기계적으로 서술한 지루한 역사 연대기가 아니라 핵심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역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해준다그 과정 가운데 이방원의 얘기가 가장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하다. 정몽주를 죽이게 되는 과정 속에서 부른 '하여가'는 학창시절 그냥 외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그리고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의 시조 또한 외우라고 하니 외웠다. 그만큼 역사 공부에 취미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책은 역사적 배경 지식을 이야기로 풀어주면서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오롯히 들려주면서 당시 이방원의 마음과 정몽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학창 시절 국사(역사)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지루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신진 사대부들에 관한 내용도 익히 재미가 있었다.

 

정도전이 살고 있던 고려 말의 정국은 안팎으로 혼란스러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려 정계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개혁의 흐름은 점점 속도를 더해 고려 왕조를 완전히 변화시키자는 역성혁명을 도모하는 세력까지 등장하게 된다. 당시 신진사대부들의 성향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고려 왕조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자는 온건파, 어예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급진파가 있었다. 온건파에는 정몽주와 이색 등이 있었고, 급진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정도전이었다. 승리는 아시다시피 정도전이었다. 왜 그는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세우고자 했을까? 그건 맹자의 영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맹자의 책은 어린 시절부터 동문수학하며 특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선배이자 벗 정몽주로부터 추천받아 읽은 것이다. ‘맹자는 민본 사상을 중시하여, 백성을 아끼지 않는 폭군은 몰아내도 된다고 여겼다. 이는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뜻하는 말로 왕다운 왕에게만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도전의 마음엔 이미 고려를 엎고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이성계는 단지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보게 된다. 참으로 이성계는 정도전이 없었다면 새 왕조의 임금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정도전은 이성계가 없었다면 이상 국가를 실현할 기회를 절대 얻지 못했을 것임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도전 역시 술이 취하면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고조 유방과 참도 장량(장자방)의 관계에 비유하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장량이 나라를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정도전을 통하여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을 보면 하늘이 정몽주를 버리고 정도전을 택하여 세운 이유가 보인다. 정도전은 경복궁을 설계하기도 했는데 경복궁과 기타 건물의 의미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다. 경복궁만 보자. '경복景福''큰 복을 누리라'는 뜻이다. 정도전은 시경의 한 구절인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 :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경복'이라는 두 글자를 따왔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면 첫 건물인 근정전勤政殿이 나오는데 근정전은 조선 시대에 임금의 즉위식이나 대례 따위를 거행하던 곳으로, 이는 '천하의 일은 부지런히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들이 너무 많아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만한 책이 있을까하며 그 다음 시리즈를 괜히 기대해 본다. 역사의 재미를 못 느낀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조선을 넘어 한국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한 문장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왕권을 위협한다면 하물며 부인의 친족까지도 용서하지 않고 탄압한 태종. 자신을 왕으로 만든 아내 민씨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이 부분이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그 내용을 실어 본다. 그리고 백성을 위한 마음에는 왕의 아비로서의 마음이 보이는데, 그가 그렇게 피를 부르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태종의 왕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였는데, 민무구(閔無咎)를 비롯한 왕비의 친정 형제들이 권세와 부귀를 뽐내며 정권을 노리는 낌새를 보였다. 이를 예감한 태종은 그들을 추방했고 끝내 4형제 전원에게 사약을 내렸다. 왕권을 위협하는 악의 싹은 애초에 잘라 낸다는 태종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된 결과였다.

 

하지만 태종은 백성을 향해서는 공명정대한 정치를 했다. 왕궁 앞에 신문고(申聞鼓)를 만들어 백성이 직접 왕에게 상소를 올려 백성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가뭄에 대비하여 관개 사업을 충실하게 이행하였으며, 흉년에는 왕이 앞장서서 술을 끊고 절제하였다.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은 태종의 가슴속에 하나의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 1442(세종4)에 태종은 55년간의 일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때마침 가뭄이 계속되던 때였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태동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가뭄으로 온 백성이 슬프구나. 내가 하늘에 가면 하느님께 아뢰어 비를 내려 주겠다."

 

그의 유언대로 태종이 붕어하자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혼백이 되어서도 백성을 지킨 것이다. 백성들은 고마운 비를 가리켜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다. p. 84~85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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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클래식 - 삶에 쉼표가 필요한 순간
전영범 지음 / 비엠케이(BMK)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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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클래식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져와 지적인 유희와 감상을 곁들인 음악을 소개하는 책이다. 프롤로그와 목차를 읽으면서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QR코드로 되어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카타빌레>의 음악을 들어 보았다. 이 책은 이 한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값진 보석을 얻은 셈이다. 이렇게도 좋은 음악을 모르고 살았으니 내 인생의 여정이 무엇을 위한 분주함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첫 곡을 들은 후 내용을 잠깐 보고는 두 번째 QR코드를 바로 눌렀다. <자클리의 눈물>이라는 곡이 첼로의 악기를 통해 내 마음을 또 감동시켰다.

 

 

이럴수가.... 클래식은 내 마음을 고요의 만찬으로 초대하여 무언가 모를 희락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클래식한 느낌으로 나를 초대해 주어 너무 감사하여, 내 자녀를 음악가로 키우고 싶은 욕심마저 생긴다. 클레식이란 용어는 "완전하고 조화롭고 완벽한 형식을 갖추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클래식 음악은 리듬, 선율, 형식, 화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완벽한 선물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단연 클래식 음악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트롯트가 대세이다. 음악으로 치면 인스턴트 식품처럼 우선 배를 채워주며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런데 클래식은 최고의 요리사가 정성껏 만든 요리로서 깊은 맛과 함께 건강까지 챙겨주는 영혼을 위한 음악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고풍스럽고 품격이 묻어나며 영혼이 고결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막스 메크만이 말했다.

"예술은 가장 흥미로운 유희 중 하나다. 이런 유희가 인간을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클래식은 가장 큰 상위급 예술로서 보여진다. 클래식의 역사와 함께 풀어가는 이모저모의 다양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데 행복한 교양 수업을 받게해 주고 있다.

 

책은 총 4개 챕터로 구성되었다. 작가의 인문학적 안목과 함께 작가의 소소한 경험담이 실려 있으며 또한 많은 문헌을 보고 또 많이 듣고 많이 느껴야 쓸 수 있는 내면의 언어가 매우 정갈하게 잘 실려 있다. 책은 클래식이라는 역사를 흩기도 하지만 무미건조한 내용이 아닌 마치 음악을 듣듯이 물흐르듯 재미있게 읽어진다. 클래식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방송인 이상협은 이렇게 말한다.

 

작가의 글은 단박에 쓴 글이 아닌 듯하다. 클래식 사랑의 세월만큼이나 긴 시간에 숙성시킨 생각들이 켜켜이 책 속에 쌓여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은 아주 쉬운 입문 단계의 곡들로 구성되었다. 입문이 이 정도이면 다음 단계는 얼마나 장엉함이 서려 있는 음악일까 생각해 본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주제의 에피소드가 풍성하다. 그래서 가독성이 매우 좋다. 즉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책을 읽어 나가기 전에 반드시 QR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어라. 어쩌면 클래식이라는 음악에 대한 선이해가 없어도 음악 자체가 주는 선율이 영혼을 잠식할 것이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듯 "해설은 평론가의 몫, ‘덕질덕후의 몫으로 남기고,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면 충분하다"는 말로 이 책을 대하면 되리라 생각된다. 특히 이 책은 기존의 수많은 클래식 교양도서들처럼 클래식 감상법, 곡 해석 관련 방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단순히 소개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제시해 준다. 저자의 말이다. “클래식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숭배할 필요도 없지만 클래식 음악은 이해타산에 찌든 마음을 순수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아는 것을 지적知的 권력 같은 것으로 여기는 세태에 반기를 든다. ”

 

저자는 이 책을 읽는 클래식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클래식에 대한 자료가 각장마다 풍부히 펼쳐져 있다. 천재는 없다라는 글을 보면 우리가 어딘가 책에서 또는 라디오에서 들었던 얘기를 해준다. 우리는 위대한 음악가들은 원래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19세기 스페인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를 통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내가 천재라고요? 나는 3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4시간씩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95세의 카잘스에게 어떤 기자가 "위대한 첼리스트이신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매일 6시간 정도 거르지 않고 연습하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묻자 이런 말로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내 연주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TV를 보면 생활의 달인들이 많이 나온다. 하나 같이 연습에 연습이 달인을 만든다는 진리를 우리는 클래식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 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이렇게 과연 열심으로 하고 있을까를 되돌아 보게 된다. 그 가운에 피아노의 거장 아르투루 루빈스타인의 말이 압권이다. 그는 여행을 가거나 자동차로 이동 중에도 소리가 나지 않는 작은 피아노를 들고 다니며 연습한다고 한다. 한 번은 제자가 "피아노의 대가인 선생님이 대체 뭐하시는 거죠?"하고 물었다. 이때 그는 클래식 음악계에 그 유명한 명언을 남긴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동료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

-p44

 

천재는 바로 여기에서 다른거 같다. 바로 노력하는 근성 말이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저자는 단명한 음악가를 소개한다. 바로 우리가 잘아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이다.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기량을 600여개나 되는 작품 속에 펼쳐 냈지만, 신이 질투했느니 안타깝게도 35세에 생을 마치게 된다. 슈베르트 또한 600여 곡이나 남겼는데 그는 모차르트보다 더 젊은 나이인 31세에 요절을 했다. 그만큼 열정적이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삶에 있어 이만큼 노력을 하고 열정을 다한다면 우리 또한 어떤 부분에 달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천재와 일반인의 다른 점은 천재는 집중도가 높고 열정과 노력이 일반인에 비해 사실 월등하다. 물론 일반인이 그만큼 연습한다고 해서 천재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천재적인 음악가는 열정도 매우 뛰어났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특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함께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모차르트를 추앙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는 신학자이지만 장차 천국에 가면 먼저 모차르트를 만나 안부를 묻고 그 다음 신학자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고 말하며 모차르트를 성인의 경지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말하기를 "한편으로 모차르트가 단명한 것도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혹독한 음악 활동 때문이라고 짐작한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베토벤에 관한 저자의 얘기도 재미가 있고 흥미롭다. 베토벤은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강했다. 한 번은 후원자인 영주 레하노프스키가 자신을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하며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영주님, 당신이 영주인 것은 우연과 출생 덕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에 왔소. 세상에 영주는 수천이 넘지만 베토벤은 단 하나뿐이오.”

 

멋지지 않는가? 한 번은 베토벤이 굍와 산책을 즐기는데 한 귀족이 가까이 지나가자 괴테는 옆으로 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튜벤은 오히려 팔짱을 끼고 대로 한복판을 당당하게 걸어가서 귀족이 오히려 피해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음악가는 신분상 귀족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재정적 후원이 없다면 예술가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클래식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책을 읽기 어려운 분들은 음악 먼저 들으면 좋겠다. 독자인 나는 두 번째 곡인 <자클리의 눈물>이라는 곡만으로도 1면의 감성을 다 얻은 기분이다. 음악이 먼저이다. 해석과 이야기는 나중이다. 북디자인마저 클래식한 느낌에 소장용으로도 행복하다. 펜데믹 시대에 영혼만이라도 여행을 하고프다면 단연 이 책 한 권을 들고 커피 한 잔과 함께 감성의 숲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이 책의 한 문장

 

"예술의 본질은 안락함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매달리는 정신이 아닐까?" -p27

 

오케스트라를 꾸려서 운영해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일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 금전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단원들을 조화롭게 이끄는 리더십이 필수입니다.” - p49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분명 바흐를 연주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모여서 즐길 때는 단연코 모차르트를 연주할 것이다.” -p80

 

나에게는 클래식이라는 언어가 있습니다.

클래식은 세상에 상처받았을 때

위로받은 너무나 고마운 언어였습니다.

 

오페라 아리아의 노랫말,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곡목과 악기의 구성은 몰라도

우리의 귓가에 울리는 클래식 선율은

아마도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 것입니다.

 

"이 음악을 이해하라고 당신께 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때로는 의미를 찾지 않고 들어도

좋은 소리가 있다고 느꼈다면 그만입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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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하는 일 - 지난 시간이 알려 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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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에세이 책 중에 내 마음에 꼭! 저장하고픈 책이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의 책이라고 소개하는데 읽어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매우 큰 힐링을 받게 되리라 생각된다. 루이스 헤이의 책처럼 권미선 작가의 책에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의 상처를 저 멀리 시간 속으로 떠내보내게 하는 마법이 있다. 일상에서 겪을수 밖에 없는 사소한 상실에서부터 두려워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의 상처,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아픔에 대해 독자들을 위로하고 치유를 해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볍게 읽히지만 전혀 가볍지 않는 깊은 삶의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얻을뿐 아니라 행복해질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미래가 불안정한 라디오 작가이자 프리랜서의 삶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가 담긴 채이다. 그녀는 일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20년 가까이 매일 글을 쓰며 인생의 절반을 일하다 잘리고, 다시 일하고 잘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삶의 불안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왔다. 책 소개에 언급되듯이 저자는 늘 현재는 답답하고 미래는 불안했다고, 안정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또한 항상 전전긍긍하고 긴장했으며, 선택하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후회했고,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매일 조금씩 더 초라해지고 불행해졌다고 고백한다. 위태로운 밥벌이, 갑과 을이 분명한 인간관계, 영양가 없는 생활, 고단한 세상살이에 치였던 그녀는 몸과 마음이 망가진 후 그제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본다. 그리고 무엇을 발견한다.

 

 

그건 바로 그 삶에 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삶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이라서 이 책이 더 잘 읽혀지는 걸까? 아니면 작가의 삶이 굴곡져서 그런걸까? 아니면 역시 글을 쓰는 작가라 글을 매우 잘 쓰기 때문에 이 책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건데 이 세 가지가 다 맞을 거라 생각된다.

 

 

작가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글을 쓰듯 독자인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반추하며 삶의 대응 방식을 배워 나간다. 정말 정말 이렇게 귀한 작가를 몰라보는 걸까? 왜 그렇게 고용불안을 겪으며 그녀는 불안한 미래를 살아갈까?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처럼 드러내지 않지만 모든 이들은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서 작가의 삶에도 굴곡이 많은 걸까? 그것이 무엇이든 아마도 신은 그녀를 통해 삶의 모든 쓴맛을 체험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혜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겪었던 힘든 시간은 나에게 다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쳅터마다 줄을 칠 수밖에 없는 명언과 같은 삶의 지혜가 내 영혼을 감쌈으로 나는 환호했고, 위로 받았고, 멋진 조언을 받았으며 시간이 주는 그 힘을 나도 누리게 되었다.

 

조급만 마음이 들 때면 시간의 힘을 믿어 보기로 한다.

 

시간에서만큼은 낙관주의자가 되어 보기로 한다.

 

현대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거의 다 다루고 있으니 매일 애쓰고 치열하게 살며, 작은 것에도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 힘들어 하는 자들이여 다 여기로 오라. 그녀의 책이 위로해 주리라!!

 

 

이 책은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자기관리론), 루이스 L. 헤이의 심리적 치료의 마법같은 메시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과 같은 삶의 메세지들이 골고루 다 들어있다. 지나온 삶의 안팎을 돌아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치고픈 독자와 미래라는 보이지 않는 길을 불안하게 걷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깊고 단단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니 독자의 서평을 믿고 이 책은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어떤 책은 그냥 읽히지만 이 책은 가슴으로 읽힌다. 조용하지만 힘 있는 위로를 듬뿍 받고 돌아갈 것이다. 삶을 대하는 혜안은 커지고 더이상 누군가로 인해 과거 속에 머물며 미움이라는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다. 철학적 메시도 곁들어 있다. 철학이란게 뭐 있나. 삶의 문제를 건드려 주며 삶을 깊이 보게 해주는 것이 철학이 아니던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 그게 없으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없어도 살아졌고, 익숙해졌고, 괜찮아졌다. 그것밖에 보이지 않아서 겁을 먹었던 것일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면 보인다. 없어도 되는 것이. 꼭 그거 아니어도 되는 것이. p38

 

위의 글은 쳅터 1에 나오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던 때가 있었지에 나오는 글이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막내 작가로 일한 적이 있다. 저자의 할 일은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을 섭외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 배우, 제작사 대표는 거의 다 포함되었다고 한다. 당시 저자는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몇명쯤 인터뷰를 거절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당시는 그거 밖에 보이지 않아 섭외가 잘 되면 하루 종일 기뻐 어쩔 줄 몰랐고, 거절당하면 밥까지 먹지 못했다. 퇴근하는 발걸음도 여기에 따라 달라졌다. 하루는 당시 가장 유명한 감독을 섭외하는 일이 찾아 왔는데 심호흡을 백 번쯤 하고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되는가 싶더니 말에 오해가 생겨서 다시 전화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세상이 끝난 기분이었으며 그래서 눈물이 불쑥 치솟아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대로 도망을 가면 영영 작가 일은 못할거 같아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간절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화를 내고 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가득 찼지만 절박하기에 전화를 했는데 다행히 응대를 잘 해주었고 성사가 되었다. 울음이 썩힌 목소리를 듣고 감독은 이렇게 말해줬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이 안 되면 세상이, 인생이 끝나는 것 같죠? 살아 보니 안 그래. 세상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일은 없어요. 조금 느긋해져도 좋을 거예요."

 

 

이 말은 사실 당시에 마음 깊이 새기지 못한 말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지 자신은 절박했기에 늘 긴장했고, 걱정이 많았고, 웅크리고 잠을 잤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 작가가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섭외한 영화인은 백명이 넘었다. 하지만 다큐에는 그들 중 겨우 몇 명의 인터뷰만 들어가쓰며, 심지어 중간에 기획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자신이 섭외 한 섭외는 거의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ㅠㅠ 그 뒤로도 일은 거짓말쟁이 애인처럼 종종 작가를 배신했는데, 여기서 작가는 이런 것을 깨닫는다. "애쓴다고 꼭 결과가 좋은 것도,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일이 잘못되면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그때의 나는 자주 불안했고 불행했다."

 

 

그 감독의 인생 조언이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며 글을 조근조근 써내려 가는데 내 삶도 돌아보니 그랬다. 그거 하나가 틀어지면 죽을거 같았고, 더이상 나에겐 미래가 없을거 같았다. 그래서 조바심을 가졌고, 열심히 더 애쓰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하는 것은 좋겠지만 거기에 목숨걸듯이 불안해 하는 것은 삶의 다채로움을 몰라서일 것이다. 그렇다. "고개를 들어 보면 보인다. 없어도 되는 것이. 꼭 그거 아니어도 되는 것이...."

 

 

이 책은 이렇게 우리 삶의 언저리에 있는 현실을 가져와 삶의 문제를 사르르 풀어준다.

 

인간관계로 인해 힘든가? 이곳에 오라. 쫒기듯 삶을 사는 자가 있는가? 이 책을 손에 들라. 무언가로 더 채워서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나로서만 충분하며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다고 말하는 이 책으로 와 잠시 하루에 15분만 할애하고 읽어보라. 그러면 어느 새 삶의 무게가 조금씩 벗겨져 가벼운 인생이 될 것이다.

 

 

단 하루도 쉬운 날이 없는 이에게

 

건네는 찬찬한 문장들

 

 

나는 여전히 지지 않기 위해서 애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삶과 비교해서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고, 누군가 불쑥 내던진 무례함에 감정이 휩쓸려 가지 않는 것. 마음을 좀먹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삶을 망가뜨리는 것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p.78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그는 나를 미워했지만 나를 다치게 하지 못했다. 그가 상처 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누군가 미워질 때, 그래서 마음이 괴로울 때 나는 그 미움을 멈추려고 애쓸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p104

 

 

착하게 살겠다는 말은 적어도 노력하고 싶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겠다는 것.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지 않겠다는 것. 누군가의 것을 함부로 빼앗지 않겠다는 것. 나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세상에 나쁨을 보태고 싶지 않다는 것. 기본적인 인간의 예의를 갖추고 살고 싶다는 것.”p108

 

 

삶이 어디에든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고 무엇이든 준 대로 돌아오는 일이라면, 조금 덜 이기적이고 조금 덜 해를 끼치고 조금 덜 나쁜 삶을 살고 싶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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