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톱 조선왕조 - 한 권으로 끝내는 조선왕조 퍼펙트 지식사전
이준구.강호성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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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부터 몰락까지, 깔끔하게 압축한 조선의 역사

한 권으로 끝내는 조선왕조의 완벽한 지식사전!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게 된건 또 하나의 행운이다. 이 책은 역사책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교과서라고 본다. 그저 역사의 지식을 외워 정답을 쓰는 교육 방침에 대한 새로운 항거와 같은 책이라 너무나 반갑고 좋다. 교육부는 당장에라도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 교육과 한눈에 들어오는 역사 개념과 이해하기 쉬운 방식의 가르침을 채택하였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정말 조선왕조 500년을 한 눈에 꿰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KBS에서는 드라마 <이방원>이 방영되고 있다. 예전엔 이런 방송을 그냥 봤다면 요즘은 역사적 이해 속에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세자 자리는 당연히 이방원임이 자명했다. 그러나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는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운다. 조선건국에 대한 꿈을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이용한 것이다. 건국에 거대한 업적을 세웠지만 공을 인정받지 못한 이방원의 분노는 자식을 잃은 고통과 겹치면서 그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계모에게 아들의 예를 다했던 방원은 "사악한 여자"라는 표현조차 서슴지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연기를 하고 있는 신덕왕후 강씨는 결국 죽은 후 묘가 강제 이장되었고, 예우도 왕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이러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 더해지면서 실제 역사적 사실이 궁금하여 이 책을 더 손에 잡고 읽어 보게 되었다. ! 이렇게 역사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가? 조선의 개국부터 몰락까지 선명하게 한 눈에 보이는가 하면 필요한 부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역사적 상식을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WHO-TALK ABOUT

 

 

이 책에는 책의 흥미를 더하는 두 가지 흥미로운 쳅터를 두고 있다. WHO라는 쳅터를 통해 마치 작은 칼럼처럼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와 비하인드적 부분을 알게 해주고, 또한 TALK ABOUT라는 쳅터를 통해 그 시대의 궁금점에 대해 잘 긁어주고 있다.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한 내용들을 재미있게 구성해 주었는데 이러하다. 왕과 왕비에 대한 알고 샆은 각 10가지에 대해, 궁녀에 대해, 궁중 생활의 비밀에 대해, 궁궐에 관해 알고 싶은 것 8가지 등 궁금한 키워드를 잘 살려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씨라고 해서 모든 이씨가 왕조가 아니라 전주 이씨가 왕조이며, 현재 전주 이씨 혈족의 숫자까지(200만 명 이상) 기록해 두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이씨를 새롭게 보게 한다. 또한 ''와 종'''의 차이에 대해 기록했는데 조와 종의 차이는 왕이 재위 중에 세운 공적에 따라 공이 크면 '', 작으면 ''이라고 불렀다. 물론 1대 왕은 태조라 불린다. 그런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왜 ''을 붙였나? 그건 당시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들이 세종의 한글 창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무니다. 한편 제 23대 순조에게 조를 붙인 이유는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왕비의 외척이 권세를 휘두르는 시대의 왕이었으므로, 왕권이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었다. ''은 왕자들에게 붙인 호이다.

 

 

또한 세자가 받는 영재교육의 내용을 다루고, 왕과 왕비의 밥상에 대해서도 다뤄준다. 왕과 왕비는 당시 12첩 반상이었다. 밥 두 공기와 국 종류 다섯 가지를 겸해서 수라상이 되는 것이다. 수라상은 하루에 두 번이며 그 사이에 초조반, 점심, 소반이라고 하는 가벼운 식사를 했다고 한다. 하루에 다섯번이나 식사를 하니 수라간에 일하는 이들의 수고가 눈에 선하다. 왕의 하루 일과표는 보면서 왕자리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오전 5시부터 시작된 업무는 오후 11시 취침에서야 마치는데 쉴 시간이 없는 스케줄에다가 오후 9시가 되면 왕비를 포함한 후궁들에게도 시간을 써야하니 가히 왕이 오래살 수 없겠구나 싶다. 왕비에 대한 10가지 궁금증도 속시원하게 풀어주고, 궁녀에 대한 궁금증도 10가지 정도 알려주면서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도록 해주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기계적으로 서술한 지루한 역사 연대기가 아니라 핵심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역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해준다그 과정 가운데 이방원의 얘기가 가장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하다. 정몽주를 죽이게 되는 과정 속에서 부른 '하여가'는 학창시절 그냥 외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그리고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의 시조 또한 외우라고 하니 외웠다. 그만큼 역사 공부에 취미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책은 역사적 배경 지식을 이야기로 풀어주면서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오롯히 들려주면서 당시 이방원의 마음과 정몽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학창 시절 국사(역사)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지루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신진 사대부들에 관한 내용도 익히 재미가 있었다.

 

정도전이 살고 있던 고려 말의 정국은 안팎으로 혼란스러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려 정계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개혁의 흐름은 점점 속도를 더해 고려 왕조를 완전히 변화시키자는 역성혁명을 도모하는 세력까지 등장하게 된다. 당시 신진사대부들의 성향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고려 왕조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자는 온건파, 어예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급진파가 있었다. 온건파에는 정몽주와 이색 등이 있었고, 급진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정도전이었다. 승리는 아시다시피 정도전이었다. 왜 그는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세우고자 했을까? 그건 맹자의 영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맹자의 책은 어린 시절부터 동문수학하며 특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선배이자 벗 정몽주로부터 추천받아 읽은 것이다. ‘맹자는 민본 사상을 중시하여, 백성을 아끼지 않는 폭군은 몰아내도 된다고 여겼다. 이는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뜻하는 말로 왕다운 왕에게만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도전의 마음엔 이미 고려를 엎고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이성계는 단지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보게 된다. 참으로 이성계는 정도전이 없었다면 새 왕조의 임금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정도전은 이성계가 없었다면 이상 국가를 실현할 기회를 절대 얻지 못했을 것임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도전 역시 술이 취하면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고조 유방과 참도 장량(장자방)의 관계에 비유하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장량이 나라를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정도전을 통하여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을 보면 하늘이 정몽주를 버리고 정도전을 택하여 세운 이유가 보인다. 정도전은 경복궁을 설계하기도 했는데 경복궁과 기타 건물의 의미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다. 경복궁만 보자. '경복景福''큰 복을 누리라'는 뜻이다. 정도전은 시경의 한 구절인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 :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토록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경복'이라는 두 글자를 따왔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면 첫 건물인 근정전勤政殿이 나오는데 근정전은 조선 시대에 임금의 즉위식이나 대례 따위를 거행하던 곳으로, 이는 '천하의 일은 부지런히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들이 너무 많아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만한 책이 있을까하며 그 다음 시리즈를 괜히 기대해 본다. 역사의 재미를 못 느낀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조선을 넘어 한국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한 문장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왕권을 위협한다면 하물며 부인의 친족까지도 용서하지 않고 탄압한 태종. 자신을 왕으로 만든 아내 민씨를 매몰차게 대하는데 이 부분이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그 내용을 실어 본다. 그리고 백성을 위한 마음에는 왕의 아비로서의 마음이 보이는데, 그가 그렇게 피를 부르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태종의 왕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였는데, 민무구(閔無咎)를 비롯한 왕비의 친정 형제들이 권세와 부귀를 뽐내며 정권을 노리는 낌새를 보였다. 이를 예감한 태종은 그들을 추방했고 끝내 4형제 전원에게 사약을 내렸다. 왕권을 위협하는 악의 싹은 애초에 잘라 낸다는 태종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된 결과였다.

 

하지만 태종은 백성을 향해서는 공명정대한 정치를 했다. 왕궁 앞에 신문고(申聞鼓)를 만들어 백성이 직접 왕에게 상소를 올려 백성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가뭄에 대비하여 관개 사업을 충실하게 이행하였으며, 흉년에는 왕이 앞장서서 술을 끊고 절제하였다.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은 태종의 가슴속에 하나의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 1442(세종4)에 태종은 55년간의 일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때마침 가뭄이 계속되던 때였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태동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가뭄으로 온 백성이 슬프구나. 내가 하늘에 가면 하느님께 아뢰어 비를 내려 주겠다."

 

그의 유언대로 태종이 붕어하자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혼백이 되어서도 백성을 지킨 것이다. 백성들은 고마운 비를 가리켜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다. p. 84~85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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