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의 보루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유족과의 교류
야마카와 슈헤이 지음, 김정훈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평점 :
이 싸움에 참가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보루(양심)인 것이다.
일본에게 양심을 묻는
작가 야마카와 슈헤이의 자전적 에세이
위 사진 한 장이 이 책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들의 고통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도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동일하게 질문을 하고 있다.
고통은 본인이 당해보아야만 그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아파하고 사실을 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또한 시대적 사람이다 보니 "조선여자 근로정신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그들의 역사 속에 들어가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우리는 간접적인 인식을 가지리라 본다.
한국인이기에 꼭 읽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역사 속에 살아남아 한국인으로서 다시는 이런 수치와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기억의 저장고에 넣어둬야 할 것이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또한 함께)
“일본 가서 일하면 일하면 기숙사에 들어가 급료를 받으면서 여학교에 다닐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바다를 건너간 소녀들을 기다린 것은 군수공장의 가혹한 노동 현장이었다. 1944년 12월 7일에는 도난카이 지진으로 공장 건물이 무너져 6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에 건너간 14~16세 소녀 300여명. 이들의 이름은 ‘조선반도 여자정신대 근로봉사대’다. 이러한 노동은 일본이 패전할 그날까지 이루어졌다.
그리고 1945년 10월 맨몸으로 조국으로 돌와왔는데 일본인은 "조만간 임금을 보내주겠다"라고 말을 했지만 그들 손에 들린 것은 한푼도 손에 없었다. 양심도 없는 나라가 바로 우리 옆 동네에 사는 '일본'이다.
이 책은 일본 근로정신대 인권회복 운동과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의 활동을 하는 인권운동가가 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일본인이다. 그 이름은 "야마카와 슈헤이"로서 본명은 본명 지바 가츠야(千葉勝也)라고 한다. 작가인 그는 역사나 인권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러던 제주도로 여행을 와 우연히 근로정신대 희생자의 유족 김중곤을 만난 뒤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이 단체의 활약상과 창립배경, 재판과정 등을 세밀히 기록한 기록물은 ‘근로정신대 실록’으로서 존재해 일본인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이 책은 또한 일본 양심적 시민단체의 활약상과 창립배경, 그리고 재판과정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러 사람의 증언이 담겨있어 근로정신대에 관한 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인 것이다.
일본인이 진심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쓴 에세이기에 그 누구의 발언보다 호소력이 있다.
이 책이 전개되는 방식은 저자가 한국 여행을 갑자기 가고 싶은 유혹을 받으면서 한국에 머무는 중에 한국에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우연한 만남인 '김중곤' 씨와 만나게 되면서 한국의 역사성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가.
김중곤은 1944년 근로정신대로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가 불법노역에 시달리던 여동생 '순례'를 도난카이 지진으로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유족이다. 김중곤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기에 줄곧 일본에서부터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소송과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후반부에는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의 파행적 구조를 파헤치고, 어떻게 하면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에게 사죄와 배상을 받을 것인지, 각 전문가들의 지혜와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나아가 21세기 현시점에서 한일관계를 돌아보며 국가란, 인권이란, 인간의 양심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원고의 마음을 왜 헤아릴 수 없을까"하고 전 일찍이 분노하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여러분의 양심에 호소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야마카와 슈헤이의 말이다.
"일본 국민은 이웃나라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하다. 조선여자정신대 문제 하나 해결할 수 없는 원흉은 일본인의 무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8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원고인 피해자들의 승소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유가족과 나고야 지원회가 일본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낸 소송은 ‘한일조약의 청구권협정에 의한 배상·보상 문제 해결’을 이유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즉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근로 정신대 문제는 해결됐다는 일본정부의 논리만을 추종하며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다.
역시 일본인 다운 모습이다. 아베가 미운건 나만 아닐 것이다. 비록 양심적인 사람도 있지만 일본인은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양심을 버린 행동으로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이 당시 역사적 정황을 보면 "당시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간 여성들은 보통 12∼40세의 미혼여성으로, 약 7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과 한국 등의 군수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 당하였으며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이 끝날때까지 일본은 수십 만명의 조선 남성을 강제로 연행해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전쟁이 확대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들까지 징용해 갔다고 한다.
특히 1938~1942년 무렵에는 간호보조 ·군부대 잡역 ·여자 특수군속 등의 명목으로 동원하였지만, 일부 여성들은 일본군이 주둔하는 곳에 배치되어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것으로 알려진다.(네이버 지식 백과사전)
위 사진은 김봉순(金鳳順)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노무자로 미쯔비시(三菱)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동원되었을 당시 찍은 것으로, 사진 뒷면에는 ‘도야마현 본사무소 앞,
반도여자정신대(半島女子挺身隊) 졸업사진, 1945. 8. 28. 촬영, 2중대 2소대, 9월 12일 받음’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김봉순(당시 사진 맨뒷줄 오른쪽에서 8번째) 본인이 기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