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포퍼 논쟁 -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
스티브 풀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포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일반독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더욱이 과학철학에 관해 문외한인 나는 포퍼에 대해 그 이상을 알지는 못했다. 더욱이 포퍼와 쿤 사이에 1965년에 있었던 한차례의 만남을 기점으로 팽팽한 과학철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였다. 더욱이 나는 쿤이라는 사람의 이름조차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포퍼라는 이름은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의 적들’에서 사용된 ‘열린사회’라는 단어의 매력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일부분만이 받아들여졌었다. 포퍼는 나찌독일의 전횡을 보면서 제기한 개념 ‘열린사회’를 통해 그가 망명한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개념으로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대하는 균형 잡힌 진정한 포퍼의 모습은 상당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의 과학발전 개념에 대응해서 소개된 쿤의 과학발전 개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은 자세히 읽어보면 그다지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이 책이 가지는 난해한 문체와 난삽한 개념의 과잉사용이 책을 쉽게 읽히지 않게 만들지만, 포퍼와 쿤의 개념이 가지는 차이와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 쿤을 권위적으로 포퍼를 실증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쿤을 시류에 영합한 성공적인 학자와 포퍼를 과거의 패러다임에 얽매인 고답적인 학자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두사람을 보는 서로 다른 입장의 다양한 관점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면을 대비 시키면서도 주로 포퍼의 관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저자는 그토록 쿤과 포퍼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비교와 분석을 통해서 더 선명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논쟁을 선점하고 잊혀진 이슈를 세상에 부각시키면서 그들에 대해 더 나은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이 구축한 사회를 보는 인식의 방법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관점의 차이는 명백하고 뚜렷해 보인다. 과학을 긍정하고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더 튼튼한 뿌리를 내려가는 학문적 방법을 지지하는 것이 포퍼의 입장이라면, 쿤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전재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그 전재(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가 오면 사람들이 과학을 탐구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외한인 내가 보이기에는 쿤과 포퍼 두 사람의 관점이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관점은 서로 양립할 수 있으며 상호보완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포퍼의 과학발전론은 쿤이 말하는 정상상태에서의 과학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이 될 수 있으며, 포퍼식의 발전이 이루어지다 여러 가지 근본적인 오류가 생겨 과학적 방법론 자체가 비판을 받게 되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과학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패러다임의 전환 후에는 다시 포퍼류의 과학의 자시 비판이 통용되는 정상상태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나는 오히려 저자의 지나치게 복잡한 관념의 희롱이 거슬리게 느껴진다. 오늘날은 자연과학의 빠른 진보를 인문과학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연과학철학이란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인문학의 비판과 감시를 통해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자연과학 단독의 발전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과학철학의 첨단에서 일하는 인문학자들이 내놓은 책이 이렇게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관념들로만 짜여져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을 듯 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려운 국내 독서시장의 여건에서도 이 좋은 책을 소개한 출판사에 감사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책이 소개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도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고, 인문학내에서 과학을 받아들이고 감싸고 비평하는 움직임이 더 강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과학과 인문학적 저작 모두가 대중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여지게 될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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