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은지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혼 전에 배우자와 미리 얘기 하세요
안 그러면 명절마다 싸웁니다.

여자들이 일하고, 남자들은 절하고, 그 탓에 부부끼리 마음이 상해 다투는 날에 가깝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명절 때문에 양 집안의 우선순위가 갈리고 서로의 견해 차이 때문에 싸움만 난다면 이런 날은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

아기를 안 낳으려면, 제사를 안 지내려면, 시부모님에게 며느리 도리를 다하지도 않으려면 왜 결혼했냐고 묻는 사회가 정말 당연할까? 이미 기존의 결혼 제도에 문제의식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왜 결혼했느냐는 말 한마디로 모든 논의를 무시한다. 이 말에는 고전적인 결혼 제도를 바꿔나갈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전제가 깔렸다. 결혼을 했으면 자유로웠던 발목에 족쇄를 묶고 집안의 조신한 며느리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발상은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사회의 잔재로 남아 있는 특정 지위의 여성으로서 살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다. 결혼했다고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전통에까지 묵묵히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며느리로 일하는 명절을 보내는 게 싫으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니. 시부모님을 섬기고 남편에게 내조하는 삶이 싫다면, 여성으로서 집안의 불합리한 제도의 부속품으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도대체 결혼을 왜 했느냐고 묻는 사회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해야 할까.

왜 결혼하면 싫은 것까지 해야 하는 게 당연해요? 싫어하는 걸 잔뜩 짊어져야 한다면, 그럴 거면 도대체 왜 결혼을 하죠?

결혼하면 두 사람은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님 세대의 가치관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의 판단이 아닌 기성세대의 고정 관념을 따른다면 결과적으로 결혼 생활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갈등은 피곤하지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다. 결혼 제도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거라면 왜 결혼했냐고? 그 질문, 너무 어리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