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마르크스주의 이후 정치의 모험-현대 유럽의 정치철학

*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실릴 글을 한 편 올립니다. 논문은 아니고, 현대 유럽의 정치철학,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알튀세르나 푸코, 들뢰즈 또는 하버마스 이후 세대의 철학자들 중에서 국내에 그다지 많이 소개되지

않은 철학자들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시간이 더 있고 지면의 여유가 좀더 있었다면 한 2-3명의 정치철학자들을 더 보태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의 철학자 3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을 마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인용은 불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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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이후 정치의 모험 - 현대 유럽의 정치철학


 



  20세기 유럽 정치철학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벽두의 유럽 정치철학은 역사적인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상이한 응답의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유럽정치철학은 근본적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살펴볼 3명의 정치철학자들 중 누구도 더 이상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정치적 지배의 핵심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한 누구도 노동자 계급이라는 정치적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대신 이들은 모두, 근대 정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이나 마르크스주의 자신을 포함한 근대 정치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근대 정치 구조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결과라는 고발로 제시되거나(조르지오 아감벤), 정치란 평등의 원리에 대한 옹호라는 급진적인 선언으로 표현되기도 하며(자크 랑시에르), 또는 모든 정치 투쟁, 모든 권리에 대한 옹호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갈등과 다르지 않다는 규범적인 원리의 정초 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악셀 호네트).  

 

  따라서 이들의 이론적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이후에도 여전히 비판적 사회이론이 가능한지, 또 지배자들의 질서에 맞서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여부를 평가해보기 위한 좋은 시금석을 제공해준다. 현실의 가장 민감한 지점, 가장 깊고 예민한 상처를 진단하고 그 뿌리를 드러내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정치철학이 단지 철학의 한 하위분과에 그치지 않고, 철학과 현실의 마주침, 철학과 현실의 상호침투가 발생하는 자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 바탕이라면, 이들의 작업은 오늘날 정치철학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매우 드문 성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르지오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의 묵시록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1941~)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나 안토니오 네그리와 더불어 이탈리아가 배출한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정치철학자로서 아감벤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호모 사케르Homo Sacer󰡕(1995)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 관한 하이데거의 관점과 발터 벤야민의 종말론적인 폭력의 비판을 밑바탕에 두고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인권 개념에 대한 비판, 푸코의 생명권력론, 칼 슈미트의 주권 개념 등을 비판적으로 전유하여 정치 공동체의 구조와 정치적 주체의 본성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서양 근대정치철학의 규범적 기초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호모 사케르󰡕의 핵심 테제는 아감벤 자신이 요약하고 있듯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1) 원초적인 정치적 관계는 추방/배제ban(외부와 내부, 배제와 포함이 구분되지 않는 지대로서의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다.

2) 주권의 근본 활동은, 원초적인 정치적 요소이자 자연과 문화, zoē와 bios의 접합의 임계(臨界)로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의 생산에 있다.

3) 서구의 근본적인 생명정치의 패러다임은 도시가 아니라 강제수용소에 있다.

 

  이 세 가지 테제는 이 책 1, 2, 3부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벌거벗은 생명”이란 벤야민이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에서 사용한 “blosses Leben”이라는 개념에서 빌려온 것인데, 아감벤은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및 정치학의 논의와 직접 결부시켜 서양 정치철학을 관통하는 근본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감벤이 주목하는 것은 한편으로 “비오스bios”와 “조에zoē” 사이의 아리스토텔레스식 구분법인데, 전자는 인간에 고유한 생명/삶을 가리키고, 후자는 인간, 동물, 신에게 고유한 자연적 생명/삶을 가리킨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구분은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은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며, 따라서 비오스에 놓여 있다는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자로서의 존재자on hē on”를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제1 철학으로의 길을 열어 놓았는데, 여기서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는 바로 “순수 존재”, 곧 “온 하플로스on haplōs”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존재자들에 공통적인 삶/생명zoē을 추출해내려는 노력과 “순수 존재”를 분리하려는 노력, 곧 정치학과 형이상학 사이에는 체계적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의 최초의 법적 유래를, 고대 로마법에 나오는 “homo sacer”라는 표현에서 찾는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살인죄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희생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은 “sacer”가 종교적 의미에서 “성스러운”을 가리키지 않음을 의미하고(신의 법에서 배제), 그를 죽이는 게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호모 사케르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으며(인간의 법에서 제외), 그의 삶은 “비오스”가 아니라 “조에”에 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감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 비로소 이 “조에”, 호모 사케르가 법적ㆍ정치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아감벤은 푸코의 생명 권력의 문제설정과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결합하여 󰡔인권선언󰡕(1789)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인권선언󰡕이 제 1조에서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할 때의 “인간”은 인간주의적인 전통이 해석해온 것처럼 천부인권의 담지자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을 가리킨다. 곧 󰡔인권선언󰡕은 아무런 특질도 지니지 않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벌거벗은 생명체가 정치의 대상이 되었음을 공표한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민들이 누리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권리들은 우선 그들 각자가 인간=벌거벗은 생명체로서 주권자의 통치의 대상으로 포섭된 이후에 얻게 되는 특질들의 표현에 불과하다. 푸코가 말하듯 생명권력이 근대성의 문턱을 이룬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다.

 

  아감벤은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수행한 “민족국가의 위기와 인권”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여기에 결부시킨다. 아렌트는 1차 대전 이후에 특히 유럽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민족국가의 위기는 동시에 인권 개념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국가의 바깥으로 밀려남으로써 이 사람들은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시시각각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간주의적 전통에서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권 개념은 특정한 정치공동체에 선행하는 천부적인 권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인간은 주권적 권력에 포섭됨으로써만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감벤에게 󰡔인권선언󰡕은 근대 정치철학의 규범주의적 해석과는 정반대로 주권자의 생명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예속의 선언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아감벤은 나치즘이 근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서양 역사 전체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돌연변이적 현상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잠재력의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주권 개념에 대한 분석과 곧바로 연결되는데, 그는 주권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슈미트의 테제, 곧 “주권자는 법질서 바깥에 서 있지만, 그럼에도 이 질서에 속해 있는데, 왜냐하면 헌정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는 테제를 준거로 삼고 있다. 그가 이처럼 슈미트의 테제에 주목하는 것은 이 테제가 나치 독일이 수행한 생명정치의 핵심을 매우 정확히 드러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우선 나치 강제수용소의 법적 지위의 특이성에 주목하는데, 강제수용소는 나치 시대에 처음 설치된 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사실은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단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강제수용소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사항,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는 주권자가 국민들의 기본권을 잠정 중단시키고 “예외상태Ausnahmezustand”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에 관한 사항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던 데 비해, 나치 수용소의 경우는 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는 가운데 강제수용소를 설치, 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는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새로운 점이다. 우선 첫째, 이처럼 명시적인 규정 없이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예외상태에 돌입함으로써, 정상과 예외의 구분이 소멸하게 된다. 바이마르 헌법이 규정하는 예외상태는 정확히 헌법이라는 정상적인 법적 규범에 따라 자신의 효력을 얻게 되는 반면, 나치 법에서는 법적 규범에 대한 준거가 없이 예외상태가 성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에 따라 예외상태는 실질적으로 법질서 자체가 되는데, 이 예외상태는 바로 주권자(총통)의 결정에 따라 직접 성립하기 때문에, 이제는 단지 정상과 예외의 구분이 소멸할 뿐만 아니라 법과 사실 사이의 구분도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아감벤이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나치의 특이성, “예외성”은 사실은 전혀 예외가 아니라 서양 형이상학과 정치학의 성립 이래 존재해온 잠재적 경향의 발현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는 “조에”와 “하플로스” 사이의 내적 연관성과 고대 로마법에서 homo sacer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있는데, 나치가 정상화된 예외상태 속에서 설립한 강제수용소는 이를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곧 주권자(총통)의 권력은 기본권-인권의 “금지”와 이질적인 존재들의 “추방”의 권력이며, 이를 통해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일체의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낱 몸뚱아리로 환원되어, 그를 살해한다고 해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 “호모 사케르”가 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강제수용소란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대상으로 출현하는 장소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이제 수용소는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나 소련의 정치범수용소 같은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훨씬 보편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 된다. 예컨대 아감벤은 프랑스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난민 신청자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장소 역시 일종의 수용소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법적 기관에 넘겨지기 전까지 이 사람들은 “예외상태” 속에서 어떤 법적 지위나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벌거벗은 생명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얼마 전에 참사를 빚은 여수의 외국인보호소 역시 이런 의미에서 아감벤이 말하는 수용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감벤의 작업은 서양 근대 정치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적 토대인 인권의 원리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자 서양 근대 문명의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혁신적인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아감벤의 정치철학은 그가 원용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해석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들은 제쳐둔다 하더라도, 정치적 행위를 위한 규범적 기초의 여지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령 그는 법과 폭력을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고,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와 현대의 서구 자유주의를 본질적으로 등가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나치의 강제수용소와 현대의 난민 보호소 등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과연 어떠한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까, 또 어떤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악셀 호네트와 인정 투쟁


  아감벤이 근대성(또는 더 나아가 서양 역사 전체)의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면, 독일 비판이론의 제 3세대 대표자로 불리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1949~)의 “인정투쟁Kamp um Anerkennung” 이론은 반대로 근대성이 이룩한 핵심적인 성과, 곧 계몽주의 이래 서양 사회가 이룩한 합리적ㆍ도덕적 진보에 대한 긍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하버마스가 제안한 이론적 전회, 다시 말해 주체 중심적인 철학에서 상호주관성 철학으로의 전회에서 출발한다. 곧 이들에게 주체는 타인들과의 관계 이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며, 주체가 지닌 언어적ㆍ실천적ㆍ반성적 자율성은 상호주관적 규준들을 내면화함으로써 형성된 산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호네트는 하버마스의 상호주관성이 지나치게 보편적 화용론에만 의지하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규범적 토대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곧 주체들 사이의 상호주관적 관계는 언어적 소통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관계 및 구체적인 욕구들을 포함하는 주체들의 정체성의 실현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하버마스의 이론에는 이러한 차원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하버마스는 구체적인 사회적 투쟁들 속에 담겨 있는 규범적 쟁점들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하버마스 이론의 이러한 난점 내지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1990년대 이래 호네트는 헤겔 철학에서 유래한 인정투쟁 이론을 발전시켜왔으며, 이는 그가 하버마스의 이론적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철학자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호네트의 출발점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서나 사회가 성립하는 데서 주체들 사이의 상호 인정 관계가 핵심적이라는 데 있다. 곧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자기 긍정은 이 개인에 대한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또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ㆍ발전될 수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그는 인정의 세 가지 차원을 구별한다. 곧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이나 연인들 간의 사랑과 상호배려에서 표현되는 정서적 차원의 인정의 관계가 있고, 또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른 성원들을 동등한 법적 주체로서 인정하고 배려하는 법적 인정의 관계가 존재하며, 분업적으로 조직된 사회 단체 내부에서 동료들에 의한 사회적 평판이라는 인정 관계가 존재한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인정은 각각의 개인들이 하나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체들의 정체성 형성에는 역시 독립된 주체로서의 타인들의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는 또한 상호주관적인 사회화의 조건으로서도 기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정관계의 정치적ㆍ사회적 함의는 어떤 것인가? 호네트가 주목하는 것은 인정의 반대, 곧 무시의 경험이다. 인정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 및 사회적 유대관계의 형성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역으로 개인이 타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그 개인의 정체성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기대한 만큼 또는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은 그에 대해 저항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무시가 특수한 한 개인에 대해 우발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 대해 구조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이는 곧바로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가령 식민지 주민들이 정복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나, 소수 인종, 소수 종족들이 한 사회의 지배 인종, 종족들에게 멸시받고 차별받는 것, 또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 대우를 받고 무시당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멸시와 차별대우, 따돌림 등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할 때 인정투쟁은 정치적 투쟁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인정투쟁 이론은 피지배자들이 지배에 맞서 저항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그것이 합당한 규범적 근거를 지니고 있는지 해명해줄 수 있으며, 역으로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도 제시해줄 수 있다. 각각의 사회 성원들이 억압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인 반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사회 또는 특정한 집단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사회는 병리적이고 부당한 사회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가령 영미권에서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나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등이 발전시킨 “인정의 정치학”보다 좀더 규범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이론은 1980년대 다문화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의 맥락에 따라 전개된 인정의 정치학과 달리 적절한 인정을 받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본질적이며, 따라서 이는 초역사적ㆍ초문화적인 규범적 기초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하버마스의 화용론 중심의 상호주관성 모델을 인간학적으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피지배자들의 부정적 경험을 자신의 비판이론의 원천으로 삼으면서 비판이론이 지닌 해방론적 함축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방론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호네트 자신은 인정투쟁 이론이 지닌 정치철학적 측면들을 발전시키지 않은 채, 인정투쟁 이론의 규범적인 측면을 좀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호네트의 작업에서는 인정투쟁 이론이 사회구조 또는 사회제도들의 형성과 개조, 변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인정투쟁 이론이 비판이론의 진정한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ㆍ사회적 차원에 대한 논의를 보완ㆍ확장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호네트는, 스승인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 문명의 가장 어두운 측면, 곧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적절한 이론적 해명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얼마간 맹목적이다. 한나 아렌트 이래 또는 비판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아도르노 이래 현대 철학자들 중 상당수가 근대성에 내재한 도착성의 뿌리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정투쟁 이론이 정치철학으로서의 이론적 완결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점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와 평등의 원리로서 정치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철학계에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1940~)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스승인 알튀세르에 대한 지적 반역을 감행한 인물로 기억되어 왔다. 1965년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저술한 저 유명한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에 공저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가, 1974년 󰡔알튀세르의 교훈La leçon d'Althusser󰡕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에서 알튀세르의 엘리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독립선언”을 했던 만큼 이러한 평판은 얼마간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1980년대부터 󰡔무지한 스승Le maître ignorant󰡕(1987), 󰡔불화La mésentente󰡕(1995) 같은 독창적인 저작들을 발표하면서 알튀세르의 그늘에서 벗어나 곧바로 현대 철학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은 하나의 근본적인 통찰, 곧 정치는 평등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통찰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랑시에르는 “정치la politique”와 “치안/통치la police”를 구별하면서 출발한다. 치안/통치는 한 사회를 위계적으로 조직하고 통치하는 구조 일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식인 내지 철학자와 대중 사이의 근원적인 불평등을 가정한다. 반면 정치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누구나 다 동등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심지어 지적인 능력에서도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철학은 한 사회의 구조와 성립 근거를 밝히고 그것을 가장 합리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원리를 해명하는 것, “치안/통치”를 확립하는 것, 곧 위계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정치철학”이란 용어모순이며,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와 “치안/통치”,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와 근원적인 불평등의 질서 중에서 우선하는 것은 바로 정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불평등을 가정하는 “치안/통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는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로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피지배자들이 지배자를 지배자로서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지배자와 근원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근원적인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는 “치안/통치”의 질서는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를 자신의 존립의 기초로 삼고 있는 셈이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잘못/왜곡tort”이라는 중의적인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인 이유는 “치안/통치”의 질서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치안/통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별이 근원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평등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또한 “왜곡”되고 “뒤틀린” 것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공동체의 성원들은 모두 동등함에도 불구하고, 또 그러한 동등성 때문에 비로소 “치안/통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치안/통치”의 질서는 사회 성원들에게 자원과 권한을 불균등하게 배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치안/통치”의 질서에 대해 저항하는 것, 이를 전복시키거나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제 3의 용어, 곧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정치와 “치안/통치”가 조우하는 장소, 곧 “치안/통치”의 잘못과 왜곡이 드러나는 장소를 “정치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정치적인 것은 기존의 “치안/통치”의 질서에서 배제되어 있는,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자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저항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치안/통치”의 균형잡힌 질서를 뒤틀고 균열을 낼 때, 그것의 잘못을 보여줄 때 나타난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고정된 불변의 장소,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몫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등장할 때마다, “치안/통치”의 도덕적 잘못을 드러내고 이로써 그 존재론적 질서의 왜곡을 보여줄 때마다 형성된다. 아니 그러한 보여줌의 사건 자체가 바로 정치적인 것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랑시에르에게는 “정치적 주체” 역시 어떤 객관적인 속성에 따라 (예컨대 노동자 계급인지 여부)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아테네의 자유 빈민들(“데모이demoï”)이 민주주의의 실시를 요구하면서 나섰을 때 그들이 곧 정치적 주체였으며, 또 1871년 파리에서 노동자들이 봉기했을 때, 1968년에 학생-노동자들이 “우리 모두는 독일의 유대인들이다”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 역시 정치적 주체들이었다. 그에게 정치적 주체란 어떤 존재론적 규정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치안-통치”의 질서에 따라 규정된 존재론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정치적 투쟁이 전개될 때 비로소 정치적 주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랑시에르는 “주체화”를 “탈정체화”, “탈분류화”의 과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볼 때 그가 현재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일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랑시에르는 의회주의적인 자유민주주의를 “탈민주주의post-démocratie”라고 부른다. 곧 “치안-통치”의 “잘못/왜곡”을 드러내줄 수 있는 여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정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집단들의 산술적 합의(“선거”)로 환원되는 곳, 전문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통치하는 곳이 바로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가 자유민주주의(또는 근대성) 일체를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감벤이나 알랭 바디우와 달리 랑시에르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지닌 긍정적인 함의들을 인정하는데, 이는 이 제도들이 바로 과거 정치적 주체들의 투쟁의 산물이며, 그러한 투쟁을 자기 내부에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제도들 덕분에 이전에 일어났던 정치적 투쟁의 사건, 민주주의의 사건은 언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특정한 제도, 어떤 특정한 정치유형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모든 정치 제도 속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해주는 규범적 원리로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이 지닌 강점은 바로 이처럼 혁명적 전통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규범적 측면을 함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정치를 사회적 질서와 대립시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에 관한 사고를 실재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사회과학적 탐구와 근본적으로 절연시키고 있는 것은 랑시에르의 철학이 지닌 중대한 문제점 중 하나다. 게다가 이는 민주주의적 제도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도 얼마간 모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평가는 제도들에 대한 객관적 규정의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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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긴즈부르그 이야기

요즘 당면한 과제 때문에 두통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자투리 시간에 읽는 책들이다(일종의 '당의정'이다). 엊그제부터 붙들고 있는,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를 담은 <탐史>(푸른역사, 2007)가 그런 책이다. 이미 책이 출간되었을 때 소개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지만, 불만스런 제목과 포맷에도 불구하고 책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며 내용 또한 알차다. 나는 이 탐할 만한 책을 도서관에서 몇 주 전에 대출해놓고 바로 며칠 전부터야 한두 페이지씩 읽고 있다.

 

 

 

 

아홉 명의 역사학자들 중 가장 먼저 읽고 있는 건 <치즈와 구더기>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이다. "카를로 긴즈부르그(1939년생)는 현재 활동 중인 역사가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그만큼 글을 잘 쓰는 경우를 찾기 힘들며, 게다가 엄청나게 폭넓은 관심사를 따라갈 사람도 거의 없다."(464쪽)는 게 서두이다.

사실 긴즈부르그에 관해서라면, 주경철 교수의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문학과지성사, 1999)에서인가 처음 이름을 접해보고 <치즈와 구더기>(문학과지성사, 2001)도 구입했었지만 아직 읽어보진 않았기 때문에 명성만을 알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눈길을 잡아끈 건 그가 러시아계라는 사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1939년 토리노에 정착한 러시아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아래 사진의 부부가 그의 부모이다). 

"아버지 레오네 긴즈부르그(1909-1944)는 러시아 문학 교수였는데, 카를로가 다섯 살이었던 1944년 파시스트 치하의 감옥에서 죽었다. 반면 어머니 나탈리아 긴즈부르그(1916-1991)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이탈리아 작가들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가로서 카를로가 풍부한 문학적/문필가적 재능을 어디에서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그의 아버지는 소설가인 어머니의 편집자이기도 했다). 대담 중에 카를로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아버지 레오네는 고골(리)의 <대장 불(리)바>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했으며, 어머니 나탈리아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권('스완네쪽으로')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대단한 집안 아닌가?!).

호기심에 나는 그의 가계에 대한 뒷조사(?)를 좀 해봤는데, 이유는 긴즈부르그란 이름에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자 리디야 긴즈부르그(1902-1990)가 카를로의 인척이 되지 않나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리디야의 저작은 내년쯤에 우리말로 출간될 것이다). 리디야는 카를로의 아버지 레오네보다 46년을 더 살았지만 나이는 7살이 더 많다. 두 사람은 모두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오데사 태생이다(20세기초반에 '오데사 마피아'가 유명했다). 정확한 촌수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모두가 '긴즈부르그 패밀리'에 속했을 거라는 건 미루어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가계에 속하는지라 카를로는 어린시절 문학에 투신하겠다는 생각을 품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역사학이었으며 일찍부터 학계를 놀라게 할 독창적인 업적들을 내놓게 된다. 그가 27세에 펴낸 첫 저작이 바로 <베난단티>(1966)이다. 우리말로는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길, 2004)라고 옮겨진 책인데,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의식'이 그 부제이다.

나도 아직 구입하지는 않은 책인데(이번 여름방학에 읽어볼 계획이다)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미시사 방법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1966년 작을 한국어로 옮긴 책. 널리 알려진 <치즈와 구더기>보다 10년 앞서 발표된 것으로 긴즈부르그 저술세계의 출발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책은 1618년에 일어난 마리아 판초니의 재판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민중문화가 기독교로 대표되는 엘리트 문화의 탄압을 받으면서, 어떻게 '이단'으로 규정되고, 마법으로 동화되어 갔는지를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단히 논쟁적이면서 혁신적이라는 평을 얻은 이 데뷔작에 이어서 그를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국제적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세계관에 대한 연구인 <치즈와 구더기>였다."(465쪽) 이 작품을 통해서 긴즈부르그는 '미시사'의 선두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며 그뒤 '미시사'란 이름은 곧 유행의 물결을 타게 된다(긴즈부르그 자신은 미시사와 거시사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시사와 거시사, 사건과 구조를 상호 보완하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동안 긴즈부르그는 개척자적인 연구의 많은 부분을 책이 아니라 에세이 형태로 간행해왔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경우가 <징후들>이라는 그야말로 뒤엉킨 실타래 같은 인상의 이름을 가진 글인데, 무려 13개 국어로 번역된 바 있다."(468쪽)

이에 대해 역자인 곽차섭 교수는 "아마 이제는 적어도 14개 국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왜냐하면 2000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곽차섭 엮음, <미시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0), 제4장('징후들: 실마리 찾기의 푸리')"라고 주석을 붙였는데, 보충하자면 이 에세이가 포함된 책 <신화, 상징, 징후>(1986)가 지난 2004년에 러시아어로도 번역이 됐으므로 '적어도 15개 국어'라고 해야 할 듯싶다(현재로선 유일하게 러시아아어로 번역된 책이며, 오래전에 모스크바 통신에 적어놓은 바 있지만 데이비드 로웬덜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개마고원, 2006)와 함께 지난 2004년 한 러시아 언론이 뽑은 역사부문 '올해의 책'이었다).

Мифы - эмблемы - приметы. Морфология и история.

1998년 볼로냐에 있는 긴즈부르그의 자택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질문자인 '마리아 루시아 팔라레스-버크'가 처음 던진 질문은 "당신의 생각과 관심사를 이해하는 데 출신과 교육의 어떤 측면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470쪽)였다.

긴즈부르그는 "한 개인이 어린애로부터 어른으로 가는 식으로 역사를 일직선적으로 보는 목적론적 접근방법에는 회의적"이라는 단서를 먼저 단 후에 자신의 성장배경에 대해서 자세하게 답한다. 이미 언급한 부분이지만 "내 외할머니를 제외하고는 아버지나 어머니 쪽 모두 유대계입니다. 아버지는 오데사 출신으로 어릴 때 이탈리아로 건너와 토리노에서 성장하여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시민이 되었어요. 그는 자신이 러시아 출신이라는 것만큼이나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에 대단히 집착했습니다." 아버지의 반파시스트 활동은 그러한 정체성과 연관된 것일 텐데, 그 결말은 감옥에서의 이른 죽음이었다.

해서 소설가인 어머니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긴즈부르그의 이런 고백은 자연스럽다. "젊은 시절 나는 어머니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곧 그쪽에 별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쨌든 나는 지금도 그와 같은 글쓰기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치 역사 서술을 향한 열정이 소설을 쓰는 데 대한 열정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죠."(472쪽)

유려한 번역서이지만 강조한 대목은 문맥상 맞지 않는데(역자의 방심이겠다), 긴즈부르그가 결국엔 소설가가 아니라 역사가가 됐으므로 '소설을 쓰는 데 대한 열정'이 '역사 서술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문도 확인해보니 "...as if my passion for writing fiction was diverted to my passion for historical writing."(187쪽)이라고 돼 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댐이나 도랑같은 것이라 할까요. 어딘가를 억지로 막아놓으면 옆으로 더 세게 뿜어져 나오니까요. 어떤 것이든 아무리 길을 막아놓아도 결국에는 새로운 길의 일부가 되는 법이지요." 사실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그걸 억지로 막아놓으면 '댐'만 터질 뿐이다!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또 다시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할 때 그동안 그린 그림 전부를 남겨둔 채 그냥 떠나버렸어요.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역시 내 일부로 되었습니다. 마치 잘못된 행마가 결과적으로 오히려 좋은 행마로 바뀌듯이 말이죠. 나는 미술사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도 한 적이 있습니다만, 결국 나중에 조금은 그것을 이룬 셈이 되었지요."(474쪽)

그렇다는 것은 긴즈부르그가 따로 미술사가로서의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티치아노, 장 푸케 등 미술과 관련한 여러 편의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긴즈부르그 왈 "전쟁은 너무 중대한 일이라 장군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했다는 클레망소의 말을 당신도 알고 있겠지요.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미술은 너무 중요한 일이라 미술사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거지요."(491쪽)

그의 미술 사랑? "난 단순히 그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림을 사랑하죠. 난 정말로 그림을 사랑합니다. 실제로 나는 도서관에서 요청한 책이 올 동안 역사 잡지가 아니라 미술사 잡지를 읽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예요.(...) 화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나에게 중요한 경험이지요. 꽤 오래 전의 일인데요. 루벤스에 무지한 상태에서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느낀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는 새로운 장소, 작은 마을과 교회들을 찾아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그때 난 죽을 때까지도 이탈리아 대부분을 여전히 알지 못할 것이라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모든 것을 다 보려면 아마 서른 번 정도를 살아야 될 겁니다. 하물며 이탈리아 바깥 세계는 또 어떻겠어요."(491쪽)

해서, 긴즈부르그를 읽는 데만도 수년은 걸릴 것이다. 하물며 다른 저자들은 또 어떻겠는가...

07. 05. 07.

P.S. 본문에서 러시아어로 번역됐다고 한 <신화, 상징, 징후(Miti, emblemi, spie)>('징후'보다는 '실마리'가 더 적합한 번역이겠다)의 영역본은 지난 1992년에 나온 <실마리, 신화, 그리고 역사학의 방법>이다. 서문을 포함하여 248쪽인데, 348쪽 분량인 러시아어본과 대비된다(대조해봐야겠다). 책은 러시아어본이 나왔을 때 이미 10개 국어로 번역된 상태였다. 한국어본은 언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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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일반지성과 대중지성의 차이

‘일반지성’과 대중의 지성

진보평론  제28호
볼프강 프리츠 하욱󰋯Das Argument 편집자

* 옮긴이 해설

이번호 특집주제인 '대중multitude'은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 개념 및 대중 개념을 통한 현실분석을 둘러싼 논의들을 싣고 있다. 이 글은 하욱이 쓴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과 대중의 지성(Massenintellektualität)’을 번역한 것이다.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개념은 실은 맑스의 󰡔요강󰡕에 나오는 ‘일반지성’ 개념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 후기자율주의자인 네그리와 비르노 등은, 맑스가 󰡔요강󰡕에서 기계 등 고정자본과 노동자계급에게 ‘일반지성’을 귀속시킨 점을 달리 해석하여, 물질적 생산과정에서 벗어난 인텔리들에게 ‘일반지성’ 또는 ‘대중의 지성’이 집중된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에 따르면 물질노동자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편입되어 변혁적 잠재력이 약화되었고, 인텔리를 주축으로 하는 비물질노동자가 변혁의 주도세력이 된다. 물론 비물질노동자는 인텔리뿐만 아니라 전업주부, 실업자, 공무원, 소비자 운동을 하는 사람, 여성주의운동가 등 사실상 물질노동자를 제외한 사회의 대다수 성원을 포괄한다. 따라서 ‘일반지성’ 또는 ‘대중의 지성’은 물질적 생산과정에서 벗어난 비물질노동자에게 축적된다는 테제와 더불어, 전통적인 생산직 조직노동자들(그들이 보기에 물질노동자들)의 변혁적 위상을 전업주부 이하로 설정하는 정치적 전략으로 귀결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잉여가치와 이윤의 창출은 더 이상 직접적인 생산과정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사회생활과 ‘대중의 지성’에서도 창출되기 때문에 전체사회성원(그들의 용어로 사회적 노동자)의 무조건적인 생존권보장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들의 논의는 ‘대중의 지성’의 담지자인 대중에 대한 논의로 연결된다. 후기 자율주의자들은 이제 변혁의 주체가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대중이라고 본다. 이 때 대중은 계급과 달리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을 갖지 않고, 오히려 수많은 구체적인 특이성을 갖는다고 한다. 대중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는 구체적인 변혁적 주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을 둘러싼 논의는, 대다수 사회성원이 갈수록 단순노동자(여기에는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실업자도 포함된다)로 환원될 것이라고 본 󰡔자본󰡕에서 맑스의 노동자계급 개념이 갖는 이중성(적실성과 한계)을 드러내고 좀더 발전시킬 계기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맑스주의 변혁운동가들조차 노동자계급의 외연을 생산직 노동자로 축소시키거나 사무직‧전문직‧서비스직 노동자를 기회주의자들로 재단하는 속류적 경향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변혁주체로서의 대중은 변혁과 저항의 역동성과 변혁주체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포착하게 해주는 개념틀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맹목적인 신봉이 전통적인 맑스주의에만 해당하는 악덕은 아니다. 후기자율주의나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또 다른 맹목적 신봉은 섬기는 대상만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점은 후기자율주의의 대중 개념을 둘러싼 논의를 비판적으로 나아가 대안적으로 발전시켜내는 변혁적 노력이다. 이와 관련하여 후기자율주의나 들뢰즈/가타리가 조직노동자를 오히려 체제에 갇힌 보수집단으로 일면화시켜 재단하는 난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그들이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저항 그리고 그들의 변혁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21세기의 변화과정을 못 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이 노동자계급보다 대학생이 저항의 주축을 이뤘던 68의 경험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를 동시에 봐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맑스의 논의는 폐기처분의 대상이 아니라 후기자율주의의 논의와 더불어 우리에겐 훌륭한 비판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출발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일반지성’ 또는 ‘대중의 지성’이 맑스 특히 󰡔요강󰡕를 어떻게 해석하고 오해했는지를 비판하는 글이다. 원문은 후기자율주의의 맑스 해석에 대한 비판(1부)뿐만 아니라 후기자율주의 자체의 이론에 대한 비판(2부)도 포함하고 있지만 분량상 이번에는 1부만 번역 게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문자체도 맑스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대안적인 맑스적 이론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후기자율주의와는 다른 맑스적 관점에서 향후 대중에 대한 논의의 기초를 다지고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칼 맑스는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이라는 표현을 단지 한번만 사용한다. 바로 󰡔요강󰡕(MEW 42, 602쪽)에서이다. 수고에는 이곳의 가장자리에 두 줄이 그어져있다(MEGA II.1.2, 582쪽 이하).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은, 과학이 주요생산력으로 되는 경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이 질적으로는 생산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전략적 위치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개별 생산물과 관련해서 양적으로는 단지 미미한 크기에 지나지 않게 될 때, 맑스는 교환가치에 기반하고 있는 경제에 일어날 일에 대해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 속에 생산의 자동화와 과학화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중엽 이래 비판적 사회이론, 산업사회학 그리고 특히 자동화연구는 꾸준히 이러한 성찰에 주목했다.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은 맑스에게 고유한 망명자독일어이다. 맑스의 망명자독일어에는 프랑스어적인 표현들과 더불어 점증적으로 영어적인 표현들이 섞여있다(“한 생산분야에서 노동의 유지는 다른 생산분야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노동(co-existing labour)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유동자본(Capital circulant)의 속성으로 나타난다.”(MEW 42, 596쪽).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이’라는 용어가 일반적 지성(allgemeiner Verstand)이라는 번역보다는 더욱 강하게 일반적인 언어에서 벗어나서 생소하고 설명이 필요한 함의를 화석화하여 표현한다는 사실은 이 용어를 암호가 되게끔 운명지운 것 같다. 또는 맑스가 집단 정통고수에 상응하는 식별기호를 비웃었던 것처럼, “확신에 찬 신앙인들을 식별할 수 있는 서명”(MEW 19, 25쪽)이 되도록 운명지운 것 같다. 이탈리아의 후기자율주의자들의 언어는 그런 일련의 개념들 그리고 유사하게 기능하는 개념들을 끌어 모은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은 해석학적인 비밀을 보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드주의적인 대중노동자의 종말에 대해 구약성서적인 엑소더스(탈출)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고, ‘생명’에 대해 그리스어적인 비오스(생체)bios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다수 또는 다량에 대해 프랑스적이고 영어적인 대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다. 대중(multitude)은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독일어로 대중(Multitude)이라고 하여 수입되었다. ‘일반지성’이라는 단어가 코뮌주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강령적 단어인 ‘자기가치증식’이라는 용어처럼 생경한 용어인 것은 아니다. ‘자기가치증식’은 ‘가치법칙의 종말’ 후에 일어난다. 이러한 표현들은 주술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의 의미와 쓰임을 판단하려면, 첫째로 맑스에게서 ‘일반지성’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두 번째 부분에서는, 현재의 논쟁에서 ‘일반지성’이라는 개념에 위탁된 성과를 사실에 비추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이 두 번째 부분은 분량 때문에 이번 번역에서 제외되었다―옮긴이). 그 개념을 평가하는 문제는, 21세기 문턱의 사회경제적 조건들 아래서 사회적 해방의 전망들과 주체들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관계들을 포스트포드주의라고 지칭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토요타주의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정책의 기초인 초국적 자본주의의 고도기술적인 생산양식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여기서 주도적인 생산력은 컴퓨터다(Haug, 1999 참조).


1. 맑스가 ‘일반지성’을 다루는 맥락

맑스의 ‘일반지성’에 관한 언급은 사실적, 이론적으로 일반노동의 개념과 유사성을 갖는다(󰡔역사적 비판적 맑스주의 사전(Historisch-Kritisches Wörterbuch des Marxismus)󰡕에 실린 동일한 제목의 논문을 참조하라). 맑스가 헤겔과 대결하면서 정립한 ‘일반노동’이라는 개념은 가치실체로서의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부분적으로는 (특히 나중에는 전적으로) 직접적인 ‘노동일반’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러한 ‘일반’은 칸트가 과학적 진술에 대해 요구한 ‘일반성의 형식’ 즉 형식적이고 ‘과학-이론적인’ 측면과 더불어 인류의 잠재력을 이루는 문화적이고 인지적인 요소들의 총체의 물질적인 측면을 갖는다. 이 복합적 의미에서 맑스는 ‘일반’에 대해 일련의 개념들을 만드는데, 이 개념들은 또한 미래의 공동체를 미리 예시한다. 이러한 개념작업은 잠정적이고 실험적이며, 종종 애매하거나 모순적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맑스 이론의 실험실에 놓이게 된다.
‘일반지성'을 언급하는 특정한 맥락을 이루는 것은 고정자본과 생산력발전에 대해 다루는 한 절이다. 기계들이 설비자본의 주요형태들이기 때문에, 그 절은 때로 (그리고 후기자율주의 그룹에서는 규칙적으로) ‘기계에 관한 단편’으로 지칭된다(Virno 1990, 9쪽 참조). 네그리는 1978년 이 절을 ‘기계에 관한 장(capitole sulle macchine)'이라고 칭했다. 이러한 제목은 󰡔붉은 노트(Quaderni Rossi - 이탈리아에서 1960년대 초중반 활동한 자율주의자 잡지)󰡕가 1961년 그 절을 해석하고 1964년에 번역했던 관점을 반영한다. 즉 기계의 중립성이라는 테제는 비판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칭은 혼란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절의 주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산자들, 다른 한편으로 문화적․인지적․기술적으로 축적된 잠재력(’일반지성‘), 그리고 종국에는 자본 사이의 관계들이 전략적인 삼각형을 이룬다. 그리고 이 전략적 삼각형 속에서 맑스의 분석은 결국 해방적이고 역사이론적인 차원의 심연을 측정하기 위해 전개된다. 맑스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선취하고 있는 전위(轉位)와 모순들 때문에, 예견적인 사회적 상상이, 󰡔요강󰡕의 이 작은 절에 탁월한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이 점화된다.
‘일반지성’을 언급할 때 “일반적 사회적 노동”(595쪽) 또는 “일반적 과학적 노동”(596쪽)을 드러내는 전체가, 그리고 기능들 전체가 중요하다. “지식과 숙련, 사회적 두뇌의 일반적 생산력의 축적”(594쪽), “일반적 사회적 진보”(595쪽), ‘인간 두뇌의 일반적인 역능의 발전’(601쪽), “일반적 사회적 지식, 앎”(602쪽)등. 여기서 관심은 “자연력이 사회적 지성에 종속”(605쪽)되는 도정에서 “생산과정의……과학적 과정으로의 전화”(596쪽)에 놓여있다. 한편으로 노동의 생산성은 점점 더 “과학의 일반적 상태와 기술진보, 또는 이러한 과학의 생산에의 적용”(600쪽)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으로 ‘발명’이 “사업”(600쪽)으로 전화되면서, 과학의 발전이 과학의 자본주의적 가치증식을 통해 선택적으로 “진전된다”(595쪽). 맑스는 이러한 과정과 그 잠재력의 자본주의적 형태규정성(Formbestimmtheit)을 분석한다. 또한 거꾸로 과학화가 자본관계에, 그리고 교환가치를 통한 사회적 생산의 규제에, 특히 노동하는 주체가 일반적 지식역능에 대해 갖는 위상에 미치는 반작용을 분석한다. 맑스에게 “생산과 부의 거대한 지주”는, “인간 자신이 수행하고” 시간으로 측정되는 “직접적 노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통한 “자신의 일반적 생산력의 전유가,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이해, 또 사회신체로서 자신의 현존을 통한 자연의 지배가”(601쪽) 결정적인 문제로 된다. 여기서 ‘사회적 개인’이라는 또 하나의 근본개념이 등장한다. 이 사회적 개인은 축적된 잠재력의 매체 안에서 지금까지 표현된 형태 아래서보다 더욱 무한히 전개됨으로써 개인화된다. 이 생각은 인간의 본질이 역사적인 “사회적 관계의 총체”속에서 자신의 현실성을 갖는다는 6번째 포이어바흐테제를 연상시킨다(MEW 3, 7쪽 참조). 이러한 총체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유산’이, 즉 언어와 문화, 또한 ‘기계환경’과 실천적인 조작지식을 갖춘 사회적 유산이 속한다. 이 사회적 유산은 일반적인 인간발전의 매체처럼 기능한다. 과학이 주요생산력으로 됨으로써 전통적인 계급적 접근기회와 전유기회는 경향적으로 주변화된다.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지 고도 기술적으로 조건 지워진 노동과정과 관련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이러한 사실들이 경험적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을 진단하는 맑스는, 항상 새로운 시도 속에서도 이러한 발전이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을 들추어낸다. 자본주의적 형식규정성은,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막대하게 성장하는 과학기술적 잠재력이 설비자본(고정자본)으로서 대립하고 “노동의 증가된 생산성이 오히려……노동 자체의 무기력함으로 정립되도록”(598쪽) 야기한다.

“과학은 노동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고 기계를 통해 낮선 역능으로서, 기계자체의 역능으로서 노동자에게 작동한다.……생산과정은, 노동이 생산과정을 지배하는 단위로서 생산과정을 관장한다는 의미에서의 노동과정이기를 중단하였다. 오히려 노동은 단지 의식된 기관으로, 기계적인 체계의 많은 지점에서 개별적인 살아있는 노동자들 속에서 현상한다. 산발적으로, 기계자체의 총과정에 포섭된 채로.”(593쪽).

사회적 지식과 일반적 지성은 이렇듯 “고정자본의 속성”(594쪽)으로 작동하며, “일반적으로 사회적 노동으로 서술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 속에서이다.”(595쪽). 왜냐하면 자본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노동의 성과를 공짜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노동시간을 “유일한 가치결정 요소”로 설정하는 반면, “사용가치 창출의……결정적인 원리로서 직접적인 노동과 그것의 양은 소멸한다. 직접적인 노동은 양적으로 미미한 비율로 전락한 만큼이나 질적으로도 불가결하긴 해도 일반적 과학적 노동, 자연과학의 기술적 응용에 비해 하위의 계기로 전락하였다.”(596쪽). 동시에 “개별적” 노동이 생산적으로 되는 것은 이제 “자연의 폭력을 종속시키는 공동의 노동 속에서”이다. 이 때 자본관계는, “직접적인 노동의 사회적인 노동으로의 이러한 승격이 개별노동을, 자본 속에 대표되고 집중된 공동성에 반해, 무용한 것으로 환원하여 나타내도록”(596쪽) 만든다.
여기까지 맑스의 분석은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이미 고전적인 비판적 서술을 발견할 정도로 진전된 발전들과 관계된다. 󰡔요강󰡕의 이 절은 앤드류 유어(Andrew Ure) 저작의 프랑스어 번역판(1836년)에서의 인용에서 시작한다. 이는 맑스가 1845년 브뤼셀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그리고 맑스는 산업생산의 기존 형태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부터 갑작스럽게 기존 관계들을 넘어선 분석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분석은, 일반적 사회적 지식과 지성의 해방적 잠재력이 자본을 통한 기술적 사용을 넘어서서 예견적으로 심연까지 측정되는 세밀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고정자본에서 읽어낼 수 있는 발전은 가치론을 특정한 방식으로 의문에 부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방식 속에서 노동을 임금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필수적인(충분하지 않은) 전제조건들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가 시야에 들어온다. 자본은 “진행 중인 모순”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자본은 노동시간을 유일한 척도로 그리고 부의 원천”, 간단히 말해서, “사용가치의 교환가치”로 설정하는 반면, “노동시간을 최소한으로 감축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601쪽). 자본은 “그렇게 생산을 지배하는 형식으로서 자신을 해체한다.”(596쪽). 만약 순전히 양적으로 측정되는 노동, 그리고 더불어 사회적 부의 생산을 위한 임금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이 부수적으로 되면, 교환가치에 기초한 조절은 “붕괴된다”(601쪽).
이처럼 경제내적으로 논증된 붕괴론과 더불어, 맑스는 두 가지 선들을 더 추적한다. 이 두 가지 선들은 오히려 정치적 해방적 행위조건들을 지적한다. 첫 번째 선은 노동시간단축의 양적인 측면을 지적한다. 두 번째 선은 노동자들이 사회적 지식잠재력 및 생산과정의 통제에 대해 맺는 관계에서 그들의 전략적 재배치의 질적인 측면을 지적한다.
양적인 측면에 대해서 보자. 개별 생산물과 관련하여 자본이 “힘의 지출로서……인간의 노동”을 최소화시킨다는 것은 “해방된 노동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노동해방을 위한 조건이다.”(598쪽). 이제 잠재적으로 개인이 “단순한 노동자로 강등되는 것” 즉 개인이 “노동에 포섭되는 것”은 종말에 이른다(604쪽).
질적인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간이 생산과정 자체에 대해 오히려 감시자와 규제자로서 관계하는 만큼, 노동은 더 이상 그렇게 생산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인간이 산업적인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자연과정을, 그는 자신과 자신이 규제하는 비유기적 자연 사이의 수단으로 돌린다. 인간은 생산과정의 주요중개인이기보다는, 그 옆에 등장한다.”

맑스는 구체적인 형태로서의 컴퓨터화에 대한 표상을 갖고 있지 않다. 컴퓨터화는 과정기술적인 설비와 공구기계를, 측정제어술과 결합되어 더 이상 살아있는 노동이 들어가 있지 않은 거대한 ‘물리적 체계’로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기반위에서, “더 이상 그렇게”라는 정식화가 당시의 주어진 상황으로부터의 분리가 제한됨을 예고하듯이, 맑스의 예측적 분석은 사후적으로 서술적인 내용을 획득한다.
맑스는 1840년에 오웬이 한 비판을 인용한다. 여기서 오웬은, 인간이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기계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영혼이 없는 메커니즘”에만 투자가 이루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의 과학화는 이제 경향적으로 생산자의 과학화를, 나아가서 “최대의 생산력으로서……개인의 전면적 발전을” 요청한다. 이를 통해 처분가능하게 되는 시간도 사실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현실적인 경제가……노동시간의 절약”에 있다면, 이는 “결코 향유의 단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능력 즉 힘의 발전을 따라서 능력과 더불어 향유수단의 발전을”(607쪽) 의미한다. 개혁주의적인 기업가 오웬의 사고과정과 연계해서 맑스는 그러한 인간발전의 자본주의 내적인 범주화를 성찰한다. 1세기 후 인간발전의 자본주의적 범주화는 ‘인간자본’에 대한 투자로 불린다.

“이는 직접적인 생산과정의 관점에서 고정자본의 생산으로 고찰될 수 있다. 이 고정자본은 인간 자신이다.”(607쪽).

기계적 설비들은 “인간의 손으로 창출된 인간 뇌의 기관, 즉 대상화된 지성”(602쪽)이다. 고정자본이 필연적으로 사물적인 설비들 속에서 표현된다면, ‘지성’이 필연적으로 고정자본인 것은 아니다. 비록 자본이 인간의 노동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인간들은 결코 자본이 아니다. 노동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푸리에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맑스는 자유시간과 노동시간의 변증법을 소묘하고 노동하는 주체의 전화를 강조한다.

“자유시간은 여가시간이자 좀더 고도의 활동을 위한 시간이다. 이 자유시간은 그 소유자를 당연히 다른 주체로 변화시켰다. 그리고는 이처럼 다른 주체로서 자유시간의 소유자가 직접적인 생산과정에도 들어간다. 형성되는 인간과 관련해서 고찰할 때, 직접적 생산과정은 규율이자 실험과학이며, 형성된 인간과 관련해서는 물질적으로 창조적인 과학이며 대상화되는 과학이다. 사회의 축적된 지식은 이 형성된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한다.”(607쪽).

아래 인용문과 더불어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테두리의 윤곽이 그려져 있다.

“고정자본의 발전은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Wissen), 앎(knowledge)이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생산력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고정자본의 발전은 따라서 사회적 생활과정의 조건들 자체가 어느 정도로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들어왔으며 또 일반지성에 맞게 변형되었는가를 보여준다.”(602쪽).

이 문장에는 세기적인 긴장이 응축되어 있다. 즉 사회적인 생활조건들이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들어왔으며 또 일반지성에 맞게 변형되었음”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통제와 변형이 사회적인 생활조건들에 관련되는 만큼이나 자연적인 생활조건들에도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가 “사회적 생활과정”의 물질적 기술적 “조건들”, 곧 사회에서의 기계공원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파악은 1857/8년 수고에 적혀있는 변증법적인 실험적 사고방식을 오해하고 있다. 󰡔요강󰡕에서의 맑스는 경향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잠재적인 가능성들을 읽을 수 있는 경험적인 표지들에 대해 질문한다. 맑스는 자연과정에 대한 과학적 기술적 지배가 계급대립적인 사적인 전략들 안에, 그리고 지식이 비밀로 유지되고 타인에 의한 사용이 배제되는 체제하에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적인 전략들 안에 갇히는 것을 간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는 여기에서 ‘일반지성’에 의한 통제의 객관적인 가능성을 본다. 얼마만큼 생산력들이 고정자본과 더불어 “사회적 실천의 직접적인 기관들”로서 생산되는가 라는, 고정자본에서 읽혀지는 “정도”는 잠재성을 의미한다. 물론 이처럼 잠재적으로 증대된 가능성은 자족적인 가치증식과정에 얽매여 있고, 이 가치증식과정은 유(Gattung)의 자연적인 생활조건들을 사회적인 생활조건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빠르게 파멸시킨다.
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는, 맑스가 여기서 “별로 ‘맑스주의적’이지 않은 테제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엇보다 과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만은 아닌 추상적인 지식이 바로 생산으로부터의 자립성에 기반하여 주요생산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1990, 10쪽, 동일하게 1996b, 22쪽). 하지만 어째서 과학화테제가 별로 맑스주의적이지 않은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적으로 응용된 지식이므로, 맑스에게 귀속된 자립성에 대한 테제는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의 자기추동적 성장”(Virno 1996b, 21쪽)에 대한 테제만큼이나 별로 설득력이 없다. 비르노는 이밖에도 노동하는 개인이 진입하는 전략적인 위치, 즉 자동화노동으로부터 맑스가 끌어낸 예측에 합당한 전략적 위치를 간과한다. 나아가 비르노는, 맑스가 “일반지성(내지 주요생산력으로서의 지식)을 끊임없이 고정자본과 동일시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맑스가 다른 한편으로 ‘일반지성’이 “산노동으로, 과학적 기술적 인텔리겐챠로, 대중의 지성으로 나타남”을 간과했다고 주장한다(1990, 12쪽). 이러한 항변 역시 설득력이 없다. 첫째로 비르노가 진단의사로서의 맑스를 질병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지성’은 현실적으로 “‘죽은 노동’으로 신속히 전환가능”(Rossanda, 1991/96, 71쪽)하다. 둘째로 비르노는, 네그리가 1978년에 행한 강의들에서 특히 강조했던 󰡔요강󰡕의 구절들을 무시한다. 이 구절들에 따르면, 개인적인 주체들은 “사회적 지성의 일반적 역능들”의 매체 속에서 “다른 주체”로 변화되며, 이처럼 변화된 주체로서 “직접적인 생산과정 안으로도” 들어간다(MEW 42, 589쪽). 생산과정은 다시금 맑스에게는 이제 “실험과학, 형성된 인간과 관련해서 물질적으로 창조적이며 대상화되는 과학이다. 축적된 지식은 이 형성된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한다.”(앞의 곳). 즉 맑스는 결코 축적된 지식을 고정자본의 현존형태로 환원하지 않는다. 헤겔이 사변적으로 ‘보편정신(allgemeinen Geist)'에 대해 언급했던 지점이, 󰡔요강󰡕에서는 사회적인 것으로 번역되어 일반적 지성 또는 '일반지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물론 이 은유법, 사변적 응축은 엄밀히 말해서 허용될 수 없는 인격화이다. 주체로서 맑스의 일반지성은 루소의 일반의지만큼이나 현존하지 않는다. 단지 개인적으로 발전되는 일군의 지성들만이 존재한다. 이들의 발전은 늘 획득되고 분배되며 접근 가능한,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저장된 지식들을 전제한다. 또한 이 지식들을 영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전승을 전제한다. 󰡔자본󰡕 3권에서 맑스는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고찰하면서 ‘보다 현세적으로’ “연합된 지성”(MEW 25, 267쪽)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자유롭고 동등해진, 공동의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생산자들의 연합”(MEW 18, 62쪽)이라는 정치적인 목표에 상응한다.

옮긴이 곽노완󰋯명지대 강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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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장치란 무엇인가?

 * 아래의 글은 푸꼬의 사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장치(dispotif)'에 대한 아감벤의 해석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어로 씌여진 원래 제목은 <Che cos'è un dispositivo ?>를 양창렬 님께서 불어본 <Qu'est-ce qu'un dispositif >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나도 이 번역본을 www.commun -e.cyworld.com에서 퍼 왔고, 이 번역본은 초벌 번역이므로 무단으로 전제하거나 복제는 삼가주시고 부득이하게 인용하시는 분들은 이를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들뢰즈의 푸꼬의 장치개념에 대한 글(심지어 제목도 똑같다.)도 있으니 비교해서 보시면 좋을 듯싶다.

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

원본 : Giorgio Agamben, Che cos'è un dispositivo ?, Nottetempo, 2006.
번역 대본 : Giorgio Agamben, Qu'est-ce qu'un dispositif ?, Éditions Payot & Rivages, 2007.


1. 철학에서 용어론적 문제들은 중요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한 철학자가 말했듯이, 용어론은 사유의 시적 순간이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전문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것을 정의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플라톤은 그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용어인 이데아를 결코 정의한 적이 없다. 다른 이들, 가령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그들의 용어론을 more geometrico(기하학적 방법에 따라) 정의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나의 가설에 따르면, 장치(dispositif)라는 단어는 푸코의 사유 전략에서 결정적 용어다. 그는 특히 70년대부터 그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때 그는 '통치성'이나 '인간들에 대한 통치'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결코 고유한 의미에서 그 단어에 대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지만, 1977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것에 근접한다.

"제가 이 이름 하에서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 담론들, 제도들, 건축 정비들, 규칙 결정들, 법들, 행정 조치들, 과학적 언표들, 철학적, 도덕적, 박애적 명제들을 포함하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집합입니다. 요컨대 말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해지지 않은 것의 집합. 바로 이것이 장치의 요소들입니다. 장치 자체는 우리가 이 요소들 사이에 세우는 네트워크인 것이죠. [...] 장치란 어떤 주어진 순간에, 어떤 긴급성에 답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일종의 - 말하자면 - 형성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장치는 지배적인 전략 기능을 갖는 것이죠 ... 저는 장치가 본성상 본질적으로 전략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거기에서 관건이 되는 것이 힘관계들에 대한 모종의 조작, 이 힘관계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계산된 개입 - 그것들을 어떤 방향으로 전개시키기 위해서, 혹은 그것들을 봉쇄하거나, 안정시키거나, 활용하기 위해서 - 이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장치는 항상 권력게임에 등록되지만, 그것은 또한 권력게임에서 나오기도 하고, 그것을 조건짓기도 하는 지식의 하나 혹은 여러 제한들에 연결됩니다. 바로 이것이 장치입니다. 여러 지식 유형들을 떠받치기도 하고, 그것들에 의해 떠받쳐지기도 하는 힘관계들의 전략들."(<말해진 것과 쓰여진 것Dits et écrits>, 3권, 299쪽 이하)

위의 이야기를 세 가지로 간략히 요약해보자.
1) 어떤 것(담론들, 제도들, 건축물들, 법들, 질서유지(police) 조치들, 철학적 명제들)이 담론적이든 아니든, 그것을 잠재적으로 포함하는 이질적인 집합이 관건이다. 그 자체로 가정된 장치는 이 요소들 사이에 세워지는 네트워크다.
2) 장치는 항상 구체적인 전략적 기능을 가지며, 항상 권력 관계 안에 등록된다.
3) 그 자체로, 장치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들의 교차의 결과다.

2. 나는 이 용어의 간략한 계보를 추적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푸코의 저작 내에서, 그 다음 보다 폭넓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60년대 말, 대략 푸코가 자신의 연구 대상을 정의하기 위해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을 썼을 당시에, 그는 장치(dispositif)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그와 어원적으로 가까운 '실증성(positivité)'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렇다고 그가 '실증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더 많이 정의내린 것은 아니다. 나는 자주 푸코가 이 용어를 어디에서 찾아낼 수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장 이뽈리트(Jean Hyppolite)의 에세이, 『헤겔 역사 철학 입문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de l'histoire de Hegel』(1948)을 다시 손에 들기 전까지 말이다. 푸코와 이뽈리트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푸코는 때때로 이뽈리트를 그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이뽈리트는 먼저 앙리 4세 고등학교의 고등 사범 학교 입시 준비반에서, 그 다음에는 고등 사범 학교에서 푸코의 선생이었다.

이뽈리트의 에세이의 3장 제목은 「이성과 역사. 실증성과 운명의 이념들」이다. 저자는 거기에서 1795년과 1796년을 아우르는 '베른과 프랑크푸르트' 시기의 두 저작을 분석하는데 집중한다. 첫 번째 저작의 제목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관심을 갖는 용어가 거기에서 나오는데, 바로 「기독교의 실증성(Die Positivität der christliche Religion)」이다. 이뽈리트에 따르면, '운명'과 '실증성'은 헤겔 사유의 두 열쇠 개념이다. 특히, '실증성'이라는 용어는 '자연 종교'와 '실증 종교' 사이의 대립 속에서 그것의 고유한 장소를 찾는다. 자연 종교가 인간 이성과 신성의 직접적이고 일반적인 관계와 관련되는 반면, '실증적' 혹은 역사적 종교는 신앙들, 규칙들, 의례들의 집합을 포함하는 바, 그것들은 한 주어진 사회에서, 그 역사의 한 주어진 순간에 외부로부터 개인들에게 부과된 것들이다. 이뽈리트가 인용하는 어느 구절에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실증 종교는 영혼 안에 다소 강제로 새겨진 감정들, 그리고 명령의 효과이자 복종의 결과이며, 직접적인 이득 없이 완수된 행위들을 함축한다."(『헤겔 역사 철학 입문』, 43쪽)

이뽈리트는 어떻게 자연과 실증성의 대립이 이런 뜻에서 자유와 강제의 변증법, 이성과 역사의 변증법에 상응하는지를 보여준다. 푸코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을 한 구절에서, 장치 개념의 간단한 전조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한 구절에서, 이뽈리트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실증성 개념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질문들의 고갱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순수 이성(이론적이고, 특히 실천적인)과 실증성, 즉 역사적 요소를 변증법적으로 - 아직 그 자체로 의식되지는 않은 변증법 - 연결시키려는 헤겔의 계속적인 시도들을 본다. 어떤 의미에서, 헤겔은 실증성을 인간의 자유에 대한 장애물로 간주하며, 그래서 그 자체로 실증성은 비난받는다. 한 종교의 실증적 요소들, 그리고 우리가 덧붙일 수 있다면, 한 사회 상태의 실증적 요소들을 연구하는 것은 그 안에서 인간에게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것, 이성의 순수성에 얼룩을 묻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헤겔의 발전 과정에서 더 우위를 점하게 되는 실증성은 추상적 성격을 상실하고, 삶의 구체적 풍요로움에 적합하게 되는 이성과 화해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왜 실증성 개념이 헤겔의 관점의 한 가운데에 있는지를 본다."(위의 책, 46쪽)

이뽈리트의 말마따나, '실증성'이란 청년 헤겔이, 규칙, 의례, 제도의 무게와 더불어, 외부의 권력에 의해 개인들에게 부과되었으며, 또한, 말하자면, 신앙과 감정체계 속에 내부화된 역사적 요소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푸코는 그 자신에게 고유하게 속하는 결정적 문제 - 생명체이자 역사적 요소로서의 개인들 사이의 관계 - 에 대해 입장을 취한다. 만일 우리가 실증성을 권력 관계가 그 안에서 구체화되는 제도들, 주체화 과정들, 규칙들의 집합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푸코의 최종 목적은 헤겔에서처럼 이 두 요소들을 화해시키는 데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 두 요소들을 대립시키는 갈등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푸코는 오히려 구체적인 양식들 - 그것들을 통해 실증성들(혹은 장치들)이 관계 속에서, 권력의 메커니즘과 개인 안에서 작용하는 - 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3. '장치'라는 용어가 푸코의 사유의 본질적인 전문 용어라고 내가 주장했던 이유가 이제 분명해졌으리라. 그것은 여러 다른 권력 기술 중 하나를 지칭하는 특수 용어가 아니라, 이뽈리트의 해석에서 청년 헤겔의 '실증성'이 갖는 만큼의 폭을 갖는 일반 용어다. 푸코의 전략에서, 이 용어는 그가 비판적인 방식으로 보편자라고 정의하는 것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잘 알려진 바대로 푸코는 항상 그가 '보편자'라고 부르는 일반 범주나 합리적 단위 실체들, 가령 국가, 주권, 법, 권력을 다루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푸코의 저작에서 일반적인 효과를 내며 작동하는 개념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푸코의 전략에서, 장치들은 정확히 이 보편자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호출된 것이다. 장치들은 이런 저런 질서 유지 조치나 이런 저런 권력 기술에 상응하지 않으며, 추상을 통해 획득된 일반성에는 더더욱 상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1977년 인터뷰에서 "이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라고 지시되었던 것에 상응한다.

우리가 이제 흔히 사용되는 프랑스어 사전에 있는 '장치'라는 용어의 정의에 관심을 쏟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 구분을 발견하게 된다.
1) 엄밀한 뜻에서 법적 의미 : "판결 주문(注文)이란 판결 이유와 달리 결정을 담고 있는 판결의 일부분". 즉 결정하고 규정하는 판정(혹은 법)의 일부분.
2) 기술적 의미 : "기계나 메커니즘의 부품들이 배치되는 방식, 넓게는 그 메커니즘 자체".
3) 군사적 의미 : "하나의 계획에 맞게 배치된 수단들 전체".

이 의미들 각각은 어떤 의미에서 푸코가 그 단어를 썼던 용법에 현존한다. 그러나 사전들, 특히 역사적이고 어원학적인 성격이 없는 사전들은 그저 한 용어의 상이한 의미들을 나누고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 [의미의] 분열은 일반적으로 원래는 하나였던 의미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절합되는 것에 상응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장치'의 경우, 이 원래의 의미란 무엇일까? 분명하거니와 그 용어는, 일상적 용법이나 푸코가 제안하는 용법에서, 솔직히 담론적, 비담론적, 법률적, 기술적, 군사적 실천과 메커니즘의 집합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실천과 메커니즘의 목적은 긴급성에 직면하여 다소 직접적인 효과를 얻어내는 데 있다. 그러나 장치라는 근대적 용어는 어떤 실천(praxis) 전략과 사유 전략 안에, 어떤 사회적 맥락 안에 그 기원이 있을까?

4. 나는 지난 3년간 한 연구에 몰두했고, 이제야 그 끝을 어렴풋이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연구를 대략 경제와 통치의 신학적 계보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교회사 초기에(소위 2-6세기 사이),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용어는 신학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는 희랍어에서 oikonomia가 oikos(가정)의 관리, 보다 일반적으로는 경영, management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듯(『정치학』, 1255b21), 지식의 패러다임이 관건이 아니라, 실천, 어떤 문제나 개별 상황에 그때그때 대면해야 하는 실천적 활동이 관건이다. 왜 교부들은 이 용어를 신학에 도입할 필요를 느꼈을까? 어떻게 신의 경제에 대해 말하는 데 도달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학사에 있어서 극히 미묘하고 중대한 문제인 삼위일체를 언급해야 한다. 2세기 당시에, 예수의 형상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가 논의되었을 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이성적인 사람들은 교회 내에서 아주 강력한 저항을 표시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삼위일체를 도입하면] 기독교 신앙에 다신론과 이교적 태도(paganism)를 다시 도입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불안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완고한 상대들(그들은 나중에 '군주론자(단일신론자)', 즉 일인 통치의 옹호자들이라고 불리게 된다)을 물리치기 위해,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이레네우스 같은 신학자들은 오이코노미아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신은 그것의 존재와 그것의 실체에 있어서 분명 하나다. 그러나 그것의 오이코노미아, 즉 그가 그의 가정, 그의 삶 그리고 그가 창조한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는 셋이다. 좋은 아버지가 자신의 권력과 단일성을 전혀 상실하지 않고도 그의 아들에게 어떤 직무나 과제에 대한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은 예수에게 인간들에 대한 '경제'. 관리, 통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오이코노미아라는 용어는 성자의 강생, 대속과 구원의 경제를 의미하기 위해 전문화된다. 때문에, 일부 영지주의 분파(그노시스파)에서 예수는 '경제의 인간(ho anthropos tès oikonomias)'이라고 불린다. 신학자들은 점차 '신학 담론(logos)'과 '경제 로고스'를 구별하는 데 익숙해진다. 오이코노미아는 삼위일체 교리와 세계에 대한 신의 섭리적 통치가 그것을 통해 기독교 신앙에 도입되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신학자들이 존재의 구도 위에서 신에게서 피하고, 또 억압하려 했던 분열이 신 안에서 존재와 행위, 존재론과 실천을 나누는 휴지(休止)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행위(경제, 그러나 또한 정치)는 존재 안에 어떤 토대도 갖지 않는다. 그것이 오이코노미아 교리가 서구 문화에 유산으로서 남겨준 분열증이다.

5. 이 간략한 설명 덕분에 우리는 오이코노미아 개념이 기독교 신학에서 떠맡을 수 있었던 기능의 중심적 성격과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서부터, 오이코노미아 개념은 섭리 개념과 혼동되며, 결국 세계와 인간들의 역사에 대한 구원적 통치를 의미하게 된다. 라틴 교부들이 이 핵심적인 희랍 용어를 번역하기 위해 선택한 용어가 무엇이었을까? Dispositio다. 우리의 용어 'dispositif'가 그로부터 파생된, dispositio라는 라틴 용어는 결국 신학적 oikonomia의 모든 의미상의 복잡함들을 떠안게 된다. 푸코가 말하는 '장치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 신학적 유산과 연결되어 있다. 장치들은 신 안에서 존재와 실천, 자연(혹은 본성)과 그가 피조물들의 세계를 관리하고 통치하는 작업을 분리하고 결합하는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장치란 용어는 존재 안에 최소한의 토대 없이도 순수 통치 활동이 그것으로, 그것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명명한다. 때문에, 장치들은 항상 주체화 과정을 함축해야 한다. 장치들은 그것들의 주체를 생산해야만 한다.

이 신학적 계보에 비추어볼 때, 푸코의 장치들은 청년 헤겔의 '실증성들' 뿐만 아니라 후기 하이데거의 몰아세움(Gestell) - 그것의 어원 역시 dis-positio, dis-ponere(독일어 stellen(세우다)은 라틴어 ponere에 해당한다)와 무관하지 않다 - 이 교차했던 맥락 속에서 훨씬 더 큰 중요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하이데거가 『기술과 전향』에서 Ge-stell이 일반적으로 '장치(appareil)'(Gerät)를 의미한다고 적을 때, 하지만 그가 이 용어를 인간을 몰아세우는, 즉 인간에게 주문 요청(bestellen) 방식에 대한 실재의 탈은폐를 명하는 닦아세움(stellen)에 대한 묵상으로 이해할 때, 이 용어와 신학자들의 dispositio의 근접성, 뿐만 아니라 이 용어와 푸코의 장치들 사이의 근접성은 명백해진다. 이 모든 용어들을 아우르는 끈이 바로 경제에 대한 참조, 즉 실천, 지식, 조치, 제도의 접합 - 그것들의 목적은 인간들의 행동들, 몸짓들과 생각들을 유용하길 바라는 뜻에서 경영, 통치, 통제, 유도하는 것이다 - 에 대한 참조다.

6. 내가 연구하면서 끊임없이 적용한 방법상의 원리 중 하나는, 내가 작업하는 컨텍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텍스트 안에서도 포이에르바하가 철학적 요소라고 불렀던 것, 즉 텍스트들의 Entwicklungsfähigkeit의 지점, 텍스트들이 밀어부쳐질 수 있는 장소와 순간을 식별해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한 저자의 텍스트를 해석하고 전개시킬 때, 우리가 해석학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들을 어기지 않고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늘 오기 마련이다. 이것은 연구된 텍스트의 전개가 결정불가능성의 지점 - 거기에서는 저자와 해석자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비록 그것은 해석자에게는 특히 행복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제 자신이 분석에 회부한 그 텍스트를 버리고 자신을 위한 성찰을 이어나가야 할 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푸코의 저작에 대한 문헌학적 맥락을 버리고, 이제 장치들을 새로운 맥락에 위치시켜야 한다.

나는 아주 단순하게 존재를 두 커다란 집합 혹은 종류로 일반적이고 대대적으로 분할할 것을 제안한다. 한 편에는 생명체들(혹은 실체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장치들 - 그 안에서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포획된다 - 이 있다. 따라서 신학자들의 용어론을 다시 쓴다면, 한 편에는, 피조물들의 존재론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그 피조물을 통치하고, 선(善)으로 인도하려는 장치들의 오이코노미아가 있다.

이미 푸코의 장치들이 가졌던 아주 폭넓은 종류에 훨씬 더 큰 일반성을 부여함으로써, 나는 어쨌든 생명체들의 몸짓들, 행동들, 의견들, 담론들을 포획하고, 유도하고, 결정하고, 차단하고, 만들고, 통제하고, 보장하는 능력을 가진 모든 것을 장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감옥, 수용소, 판옵티콘, 학교, 고백, 공장, 규율, 법적 조치들 - 이것들과 권력의 절합은 어떤 의미에서 명백하다 - 뿐만 아니라, 펜, 글쓰기, 문학, 철학, 농업, 담배, 항해, 컴퓨터, 핸드폰, 그리고 언어 자체도 장치이다. 언어는 아마도 가장 오래된 장치로서, 이미 수 천 년 동안 영장류 - 아마도 그를 기다렸던 결과들을 고려할 수 없었던 - 는 그 장치 안에 스스로를 붙들리게 만드는 무의식을 가졌다.

그러므로 두 종류, 즉 생명체(혹은 실체)와 장치들이 있다. 이 둘 사이에 제 3항으로서 주체들이 있는 것이다. 나는 생명체와 장치가 서로 맞대면하는 관계로부터 따라나오는 것을 주체라고 부른다. 자연히, 고대 형이상학에서처럼, 실체들과 주체들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서로 혼동되는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한 동일한 개체, 한 동일한 실체가 여러 주체화 과정의 장소일 수 있다. 휴대폰 사용자, 인터넷 사용자, 시나리오 작가, 탱고 애호가, 대안 세계화 운동가 등. 우리 시대의 장치들의 무한한 발전에, 역시 무한한 주체화 과정들의 발전이 상응한다. 이 상황은 우리 시대의 고유한 주체성 범주가 동요하고, 그것의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하자면, 그것은 소멸이나 지양이라기보다는, 모든 개인적 정체성에 끊임없이 수반되었던 가면극의 차원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산종(散種)의 과정인 것이다.

7.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 단계를 장치들의 거대한 축적과 증식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분명, 장치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로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개인들의 삶의 한 순간에서만, 장치에 의해 만들어지고, 영향을 받고,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상황에 맞설 수 있을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 장치들과 대면할 때,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까? 그 장치들을 단순히 파괴하거나, 일부 순진한 사람들이 제안하듯, 올바르게 그 장치들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즉 개인들의 몸짓과 행동이 완전히 핸드폰에 의해 재가공된 나라에 살면서, 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훨씬 더 추상적으로 만들어버린 이 장치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품게 되었다. 비록 나는 수차례에 걸쳐 어떻게 핸드폰을 파괴하거나 제거할 수 있을지 자문하면서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십중팔구 장치들은 인간들이 우연히 부딪히는 사고가 아니다. 인간들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범주하에 우리가 모아놓는 동물들을 인간으로 만든 '인간화' 과정 자체 안에 그것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간을 만들어낸 사건은 사실 생명체에게는 일종의 분열을 구성한다. 그 분열은 어떤 의미에서 오이코노미아가 신 안에서 존재와 행위 사이에 도입한 바 있는 분열을 되풀이한다. 이 분열은 생명체를 그 자신으로부터 분리해내고, 또 생명체가 환경 - 윅스퀼(Uexküll)과 그 이후 하이데거가 le cycle récepteur-désinhibiteur[수용체-억제를 풀어주는 회로?]라고 부르는 것 - 과 맺는 직접적인 관계로부터 그것을 분리해낸다. 이 관계가 깨지고 중단되는 일이 벌어질 때, 생명체는 권태(즉, 억제를 풀어주는 것들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중단시킬 수 있는 능력)와 열림(즉, 존재로서의 존재를 알고,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가능성과 더불어, 이 열림을 도구들, 사물들, 신기한 기구들, 기계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술들로 가득 채우는 장치들의 가능성 역시 즉각적으로 주어진다. 장치들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로부터 분리되고, 그럼으로써 열림 그 자체, 존재로서의 존재를 향유하는 것으로부터 분리된 동물적 행동들을 헛돌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모든 장치의 근저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욕망이 있으며, 분리된 영역 내에서의 이 욕망의 주체화와 마찬가지로 포획은 장치의 종별적 힘을 구성한다.

8. 우리가 장치들과 대면할 때 채택해야 하는 전략은 단순할 수 없다. 사실상 장치들에 의해 포획되고 분리된 것을 해방시키고, 그것을 공통적 사용에 돌려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나는 이제 내가 최근에 작업하기에 이른 한 개념으로 방향을 돌리고 싶다. 로마법과 종교 영역에서 나온 용어인(법과 종교는 비단 로마에서만이 아니더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속화가 그것이다.

로마법에 따르면, 어쨌든 신들에게 속한 사물들은 신성하거나 종교적이었다. 그 자체로, 그런 사물들은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용이나 상업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팔 수도, 담보를 위해 그것을 빌려줄 수도, 용익권으로 그것들을 양도할 수도, 혹은 그것들을 예속시킬 수도 없었다. 하늘의 신들(우리가 '신성하다'라고 불렀던)이나 지옥의 신들(우리가 간단히 '종교적'이라고 말했던) 전용으로 예비된, 이 특별한 사용불가능성을 해치고, 위반하는 것은 신성모독이었다. 신성화하는 것(sacrare)이 인간 법의 영역 밖으로 사물들이 나가는 것을 지칭했던 반면, 세속화는 반대로 그 사물들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용에로 반환되는 것을 의미했다. 위대한 법률가 트레바티우스(Trebatius)는 다음과 같이 적을 수 있었다. "고유한 의미에서, 세속적인 것이란 신성하거나 종교적인 것이었다가 인간들의 사용과 소유에로 반환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종교란, 사물들, 장소들, 동물들 혹은 사람들을 공통적 사용에서 뽑아내서 그것들을 분리된 영역 한 가운데로 옮기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분리 없이 종교는 없을 뿐 아니라, 모든 분리는 진정으로 종교적인 핵심을 수중에 포함하거나 간직하고 있다. 분리를 작동시키고 조절하는 장치는 희생이다. 희생이란 각각의 경우에 세세한 일련의 의례들 - 다양한 문화에 따라 상이한, 허버트와 모스가 면밀히 조사한 바 있는 - 을 통해 세속적인 것에서 신성한 것에로, 인간들의 영역에서 신들의 영역에로의 이행을 표식한다. 두 영역을 분리하는 휴지(休止)는 본질적인데, 이는 희생양이 이런 저런 뜻에서 통과해야 하는 문턱이 본질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의례에 의해 분리되었던 것은, 의례에 의해 세속적 영역에로 반환될 수 있다. 세속화는 희생이 분리하고 분할했던 것을 공통적 사용에 반환하는 대항-장치(contre-dispositif)다.

9.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권력의 근대적 형상들은 종교를 정의하는 분리 과정들을 일반화시키고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만일 우리가 방금 검토한 장치들의 신학적 계보, 그리고 그 장치들을 오이코노미아라는 기독교 패러다임(즉, 세계에 대한 신의 통치)으로 연장시킬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계보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근대적 장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장치들과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차이 때문에 근대 장치들을 세속화하는 일은 특별히 어려워진다. 사실, 모든 장치는 주체화 과정을 함축하며, 그 과정이 없으면 장치는 통치 장치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순수한 폭력 행사에 그치게 된다. 푸코는 어떻게 규율 사회에서 장치들이 실천과 담론의 계열, 지식과 실행의 계열을 통해 유순하지만 자유로운 신체 - '세속화 과정' 속에서 주체의 정체성과 자유를 받아들이는 - 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지 보여주었다. 따라서 장치는 무엇보다 주체화들을 생산하는 기계이며, 이를 통해 장치는 또한 통치 기계인 것이다. 고백의 예는 특히 명확한 것으로 드러난다. 서구 주체성의 형성, 분할되었지만, 동시에 그 주체성에 대한 능숙하고, 확실한 형성은 고해 성사 장치의 수 백 년에 걸친 작용과 분리할 수 없다. 그 장치에서 새로운 자아는 이전의 자아의 부정과 회복을 통해 구성된다. 고해 성사 장치에 의해 작동되는 주체의 분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원죄인으로서의 자아라는 비진리 속에서 그것의 진리를 찾아내는 새로운 주체를 생산한 것이다. 감옥 장치에 대해서도 유사한 고찰들을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감옥 장치는 다소 예기치 못한 결과로서 범죄 주체와 범죄 환경을 구성했고, 이것들은 이번에는 다시 완전히 계산된, 새로운 통치 기술의 주체가 된다.

현 자본주의 단계에서 우리가 다뤄야 하는 장치들을 정의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더 이상 장치들은 주체의 생산이 아니라, 우리가 탈주체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작용한다. 탈주체화의 순간은 물론 모든 주체화 과정에 포함되어 있고, 고해성사하는 자아는 우리가 본 것처럼,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만 실제로 구성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주체화 과정과 탈주체화 과정은 상호 무차별적으로 되는 것 같고, 비전형적 증상의(잠재적) 형태, 즉 유령적 형태 하에서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주체의 재구성에 더 이상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주체의 비-진리 속에서는, 더 이상 어떤 경우에도 주체의 진리가 중요하지 않다. '핸드폰' 장치에 붙들리도록 본인을 놔두는 자는, 그를 그 장치로 떠민 욕망의 강도가 어떻든 간에, 새로운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그저 전화 번호 하나를 획득할 뿐이다. 그것을 수단으로 그는 경우에 따라서 통제될 수 있다. 텔레비전 앞에서 저녁을 보내는 관객은 자신의 탈주체화의 대가로서 욕구불만으로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는 자의 가면을 받거나, 시청률에 포함될 뿐이다.

이 때문에 기술에 대해 좋은 의도들로 채워진 담론들은 공허한 것이다. 그러한 담론들에 따르면, 장치들의 문제는 장치들의 좋은 사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담론들은 다음의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한데, 만일 하나의 주체화 과정(그리고, 우리가 언급한 사례에서 하나의 탈주체화 과정)이 각각의 장치에 상응한다면, 장치의 주체가 '올바른 방식으로' 그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런 담론의 지지자들은 흔히 그들이 사로 잡혀 있는 미디어 장치의 결과물일 뿐이다.

10. 현대 사회는 이처럼 거대한 탈주체화 과정 - 어떤 실재적인 주체화도 그것에 응답하지 못한다 - 에 의해 관통되는 무기력한 신체처럼 나타난다. 그로부터 실재적인 주체와 정체성(노동자 운동, 부르주아지 등)을 전제하던 정치가 쇠퇴하고, 그 자신의 재생산 이외에는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 순수한 통치 활동인 경제가 승리한다. 이리하여 오늘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권력을 경영하는 우파와 좌파는, 그들을 지칭하는 그 용어들이 유래했던 정치적 맥락과는 거의 무관하게 되어버렸다. 우파와 좌파는 단순히 동일한 통치 기계의 두 축(한 축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탈주체화를 지향하고, 또 한 축은 그 탈주체화를 민주주의의 좋은 시민이라는 위선적 가면으로 뒤덮으려 하고 있다)의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특히 권력은 그것이 인류 역사상 결코 출현한 적 없는 가장 온순하고 가장 복종된 사회체와 마주하게 된 순간에, 기묘한 걱정을 하게 된다. 후기산업사회 민주주의의 위험하지 않은 시민(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불렀던 것처럼 블룸bloom), 그에게 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수행하는 시민, 가장 일상적인 그의 몸짓들 - 가령 그의 건강, 자신의 활동으로서의 도피 가능성, 자신의 욕망으로서의 영양섭취 - 이 가장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장치들에 의해 명령받고, 통제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시민, 이 시민이 따라서(그리고 아마도 정확히 위의 이유 때문에) 마치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되는 것은 단지 외견상의 역설에 불과하다. 유럽의 규범들은 모든 시민들에게, 19세기에 재범자들을 식별하기 위해 발명되었던 인체 감식 기술들(디지털 지문에서부터 인상 기록 사진에 이르기까지)을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만드는 생체 인식 장치들을 부과하고 있다. 감시 카메라는 우리의 씨떼의 공적 공간들을 거대한 감옥 내부로 변환시킨다. 당국이 보기에 (아마 옳을 텐데) 일반인보다 더 테러리스트와 비슷한 것은 없다.

장치들이 우리의 삶의 각 부문에 그것들의 권력을 확산되게 놔두고, 또 흩뿌려질수록, 통치는 유순하게 그것에 복종하기 보다는 그것의 포획으로부터 벗어나는 듯이 보이는 파악 불가능한 요소와 더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이 파악 불가능한 요소가 그 자체로 혁명적 요소를 대표한다는 뜻이 아니다. 또 그것이 통치 기계를 멈추거나 혹은 단순히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쉼 없이 예고하는 역사의 종말 대신, 우리는 오히려 공짜로 통치 기계 - 일종의 신학적 오이코노미아의 그럴듯하지 않은 패러디 속에서, 세계에 대한 섭리적 통치의 유산을 떠안았던 - 의 대규모 곡예를 구경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계를 구하는 대신, 그 유산은 섭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종말론적 사명에 충실한 채 머물 것이며, 그 기계를 파국으로 이끌 것이다.

장치들을 세속화하는 문제(즉, 장치들 속에 포획되고 분리되었던 것을 공통적 사용에 반환하는 문제)는 그 어느 것보다 시급하다. 장치를 탈취한 자들이 주체화 과정이나 장치에 개입하여, 모든 정치의 시작점인 동시에 탈주 지점인 이 통치 불가능한 것을 빛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한, 이 세속화 문제는 결코 올바르게 제기될 수 없을 것이다. (양창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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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지식의 불확실성: 근대적 지식 체계의 균열과 붕괴

* 세계-체계론(world-system theory)으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인 임마뉴엘 월러스틴의 신작 <지식의 불확실성>이 번역되어 나왔다. 작년에 학술대회에서 매우 가깝게 보고 느낀 점이 많은 바 있는데, 이번의 신작은 나름 반갑다. 리뷰를 대충 읽어본 바로는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사회과학의 개방>의 연장선상에 있는 저서라고 생각이 된다. 이제 연세도 있고하니 그의 평생의 역작인 <근대 세계체제>시리즈를 하루 빨리 완성해 주시길 바란다(작년에 직접 본 바로는 건강은 아직 걱정이 없으신 듯하다).

* 한겨레(2007. 4. 27) / 학문의 ‘난혼’을 위하여

 

확실성 바탕해 나누고 쪼갠 분과학문은 권력에 복무
불확실성 바탕 둔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통합해야
브로델·프리고진·화이트헤드 빌려 월러스틴 이론 설파
한겨레  한승동 기자
» <지식의 불확실성>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희석 옮김. 창비 펴냄. 1만5000원
세계체제 분석으로 유명한 사회과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지식의 불확실성>(창비)은 페르낭 브로델, 일리야 프리고진, 앨프리드 화이트헤드 세 사람을 인상적으로 등장시킨다.

“내게는 단일한 인터싸이언스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와 지리학, 또는 역사와 경제학을 결혼시키려고 한다면, 그건 시간낭비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동시에 말이다. …학문간 연계를 인접한 두 분과학문의 합법적인 결혼이다. 나 자신은 전체적인 난혼을 지지한다. 하나의 과학을 다른 과학과 결혼시킴으로써 인터싸이언스를 실행하는 신봉자는 너무 신중한 것이다. 나쁜 도덕이 퍼져야 한다. 전통적인 학문, 즉 철학, 문헌학 등을 포함해 모든 학문들을 뒤섞어 보자.”

아날학파를 이끈 브로델은 이처럼 1960년에 19세기 초반 정전(교과서) 지위에 오른 뉴턴물리학이 지배한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19세기식 분과학문의 통폐합을 주장했다. 보편성으로 치장된 정전이란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지배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월러스틴은 지적한다. “자기중심적인 정전들이 보편적 규범으로 제시된 건 근대세계체제의 불평등한 위계구조의 한 산물이며, 이 체제의 권력자들을 유지시키는데 복무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화학자 프리고진 역시 근대물리학이 주도한 단순명쾌한 결정론적 세계관, 주류 과학주의에 반기를 든 ‘복잡성 과학’을 들고 나와 뉴턴식 ‘확실성’을 비판한 <확실성의 종말>, <새로운 통합(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을 썼다. 화이트헤드 얘기(역자 인용)는 더 쉽고 분명하다.

“교육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재능들로 한때는 생기 넘쳤던 배움의 학파들이 다음 세대에 가면 현학과 진부함만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런 학파들이 죽은 생각들로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죽은 생각들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무용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해롭다. 최고의 것이 타락하는 것은 최악이다. 지적 활력으로 충만한 몇몇 희귀한 시절을 제외하고 과거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죽은 생각들로 오염되었다. …인간을 자극해 위대하게만든 모든 지적 혁명은 죽은 생각들에 대항하는 열정적인 싸움이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심리의 가련한 무지와 함께 그런 지적 혁명은 이후에는 스스로 만들어낸 죽은 생각들로써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일종의 교육적 도식에 의해 진행되었다.”

죽은 생각들로 인간을 구속

남의 나라 다른 시대가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를 두고 한 얘기 같다. 어쨌든 이들의 주장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으로 나뉘고 다시 끝없이 쪼개져 나간 분과학문들을 비뉴턴적, 하이젠베르크적 불확실성에 바탕을 둔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통합할 것을 제안해온 월러스틴의 생각과 상통한다. “역사적 사회과학자들은 근대와 전근대, 문명과 야만, 선진과 후진 사이에 선을 긋는 대신(우리는 그토록 많은 미묘한, 그리고 그다지 미묘하지 않은 방법으로 계속 그렇게 해왔다.)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긴장을 작업의 핵심으로 흡수하고 모든 지역, 모든 집단, 모든 계층에 동일한 종류의 비판적 분석을 가해야 한다.” ‘역사적’이란 “상황의 구체성뿐만 아니라 연구대상인 구조의 연속적이며 끝없는 변화를 고려”한다는 의미고 ‘사회과학적’이란 “장기지속에 관한 구조적 설명을 추구하지만 그것 또한 그런 설명이 영원하지도 영원할 수도 없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원래 일상을 불안에 시달리게 한 삶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인류는 처음 마법이나 신, 종교와 사제들, 공동체적 권위 등에 의존했다. 근대의 시작과 함께 본격화한 자본주의체제 작동은 훨씬 더 정교하고 신뢰도 높은 장치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근대과학이 마법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위기 대응책

과학의 무대에 먼저 등장한 것은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논리를 앞세워 기존의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부정했다. 지난 500년간 ‘근대성’으로 통칭되는 그런 인식상의 변화가 세계를 장악했다. 그러나 진리주장의 검증 능력과 도덕적 권리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철학자들 자리를 넘겨받았다. 신학, 의학, 법학, 철학으로 정립해 있던 대학 학부는 철학 외의 분야들이 힘을 잃으면서 철학부 중심으로 진화하게 되고 철학은 18세기에 다시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사회과학으로 분화했다. 철학과 과학의 ‘이혼’이었고 인문학과 자연과학, 이른바 ‘두 문화’가 지배하는 지식기반이 형성됐다. 19세기에야 분과학문으로 등장한 사회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끼여 맥을 추지 못하다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경제고도성장과 함께 사회학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왕좌는 뉴턴과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이 차지했으며 인문학과 사회과학조차도 그걸 닮으려 애썼다.

» <지식의 불확실성>의 저자 이매뉴얼월러스틴
이처럼 진보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 위에 선 세계는 1968년 국가구조의 정당성을 민중이 거부해 봉기한 ‘68혁명’으로 산산조각 났다. 소수인종, 여성,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68혁명은 냉전해체와 제3세계 재편이라는 세계체제의 지각변동과 무관하지 않았고 인문학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선형적인 시간가역의 결정주의 세계관”에 금이 갔으며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의 인식론적 단절을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프리고진의 ‘복잡성 과학’, 같은 취지의 인문학 쪽 ‘문화연구’가 그것이다. 68혁명은 “정전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의 창조적 성취들이 제국주의 경영의 문화적 인프라로 활용됐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사회과학’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체제를 한층 더 심화된 자본주의체제의 전면적인 위기국면으로 파악하는 월러스틴적 대응이라 할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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