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일반지성과 대중지성의 차이

‘일반지성’과 대중의 지성

진보평론  제28호
볼프강 프리츠 하욱󰋯Das Argument 편집자

* 옮긴이 해설

이번호 특집주제인 '대중multitude'은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 개념 및 대중 개념을 통한 현실분석을 둘러싼 논의들을 싣고 있다. 이 글은 하욱이 쓴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과 대중의 지성(Massenintellektualität)’을 번역한 것이다.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개념은 실은 맑스의 󰡔요강󰡕에 나오는 ‘일반지성’ 개념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 후기자율주의자인 네그리와 비르노 등은, 맑스가 󰡔요강󰡕에서 기계 등 고정자본과 노동자계급에게 ‘일반지성’을 귀속시킨 점을 달리 해석하여, 물질적 생산과정에서 벗어난 인텔리들에게 ‘일반지성’ 또는 ‘대중의 지성’이 집중된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에 따르면 물질노동자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편입되어 변혁적 잠재력이 약화되었고, 인텔리를 주축으로 하는 비물질노동자가 변혁의 주도세력이 된다. 물론 비물질노동자는 인텔리뿐만 아니라 전업주부, 실업자, 공무원, 소비자 운동을 하는 사람, 여성주의운동가 등 사실상 물질노동자를 제외한 사회의 대다수 성원을 포괄한다. 따라서 ‘일반지성’ 또는 ‘대중의 지성’은 물질적 생산과정에서 벗어난 비물질노동자에게 축적된다는 테제와 더불어, 전통적인 생산직 조직노동자들(그들이 보기에 물질노동자들)의 변혁적 위상을 전업주부 이하로 설정하는 정치적 전략으로 귀결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잉여가치와 이윤의 창출은 더 이상 직접적인 생산과정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사회생활과 ‘대중의 지성’에서도 창출되기 때문에 전체사회성원(그들의 용어로 사회적 노동자)의 무조건적인 생존권보장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들의 논의는 ‘대중의 지성’의 담지자인 대중에 대한 논의로 연결된다. 후기 자율주의자들은 이제 변혁의 주체가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대중이라고 본다. 이 때 대중은 계급과 달리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을 갖지 않고, 오히려 수많은 구체적인 특이성을 갖는다고 한다. 대중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갖는 구체적인 변혁적 주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을 둘러싼 논의는, 대다수 사회성원이 갈수록 단순노동자(여기에는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실업자도 포함된다)로 환원될 것이라고 본 󰡔자본󰡕에서 맑스의 노동자계급 개념이 갖는 이중성(적실성과 한계)을 드러내고 좀더 발전시킬 계기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맑스주의 변혁운동가들조차 노동자계급의 외연을 생산직 노동자로 축소시키거나 사무직‧전문직‧서비스직 노동자를 기회주의자들로 재단하는 속류적 경향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변혁주체로서의 대중은 변혁과 저항의 역동성과 변혁주체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포착하게 해주는 개념틀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맹목적인 신봉이 전통적인 맑스주의에만 해당하는 악덕은 아니다. 후기자율주의나 들뢰즈/가타리에 대한 또 다른 맹목적 신봉은 섬기는 대상만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점은 후기자율주의의 대중 개념을 둘러싼 논의를 비판적으로 나아가 대안적으로 발전시켜내는 변혁적 노력이다. 이와 관련하여 후기자율주의나 들뢰즈/가타리가 조직노동자를 오히려 체제에 갇힌 보수집단으로 일면화시켜 재단하는 난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그들이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저항 그리고 그들의 변혁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21세기의 변화과정을 못 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이 노동자계급보다 대학생이 저항의 주축을 이뤘던 68의 경험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를 동시에 봐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맑스의 논의는 폐기처분의 대상이 아니라 후기자율주의의 논의와 더불어 우리에겐 훌륭한 비판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출발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후기자율주의자들의 대중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일반지성’ 또는 ‘대중의 지성’이 맑스 특히 󰡔요강󰡕를 어떻게 해석하고 오해했는지를 비판하는 글이다. 원문은 후기자율주의의 맑스 해석에 대한 비판(1부)뿐만 아니라 후기자율주의 자체의 이론에 대한 비판(2부)도 포함하고 있지만 분량상 이번에는 1부만 번역 게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문자체도 맑스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대안적인 맑스적 이론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후기자율주의와는 다른 맑스적 관점에서 향후 대중에 대한 논의의 기초를 다지고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칼 맑스는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이라는 표현을 단지 한번만 사용한다. 바로 󰡔요강󰡕(MEW 42, 602쪽)에서이다. 수고에는 이곳의 가장자리에 두 줄이 그어져있다(MEGA II.1.2, 582쪽 이하).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은, 과학이 주요생산력으로 되는 경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이 질적으로는 생산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전략적 위치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개별 생산물과 관련해서 양적으로는 단지 미미한 크기에 지나지 않게 될 때, 맑스는 교환가치에 기반하고 있는 경제에 일어날 일에 대해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 속에 생산의 자동화와 과학화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중엽 이래 비판적 사회이론, 산업사회학 그리고 특히 자동화연구는 꾸준히 이러한 성찰에 주목했다.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은 맑스에게 고유한 망명자독일어이다. 맑스의 망명자독일어에는 프랑스어적인 표현들과 더불어 점증적으로 영어적인 표현들이 섞여있다(“한 생산분야에서 노동의 유지는 다른 생산분야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노동(co-existing labour)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유동자본(Capital circulant)의 속성으로 나타난다.”(MEW 42, 596쪽).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이’라는 용어가 일반적 지성(allgemeiner Verstand)이라는 번역보다는 더욱 강하게 일반적인 언어에서 벗어나서 생소하고 설명이 필요한 함의를 화석화하여 표현한다는 사실은 이 용어를 암호가 되게끔 운명지운 것 같다. 또는 맑스가 집단 정통고수에 상응하는 식별기호를 비웃었던 것처럼, “확신에 찬 신앙인들을 식별할 수 있는 서명”(MEW 19, 25쪽)이 되도록 운명지운 것 같다. 이탈리아의 후기자율주의자들의 언어는 그런 일련의 개념들 그리고 유사하게 기능하는 개념들을 끌어 모은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은 해석학적인 비밀을 보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드주의적인 대중노동자의 종말에 대해 구약성서적인 엑소더스(탈출)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고, ‘생명’에 대해 그리스어적인 비오스(생체)bios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다수 또는 다량에 대해 프랑스적이고 영어적인 대중(multitude)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다. 대중(multitude)은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독일어로 대중(Multitude)이라고 하여 수입되었다. ‘일반지성’이라는 단어가 코뮌주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강령적 단어인 ‘자기가치증식’이라는 용어처럼 생경한 용어인 것은 아니다. ‘자기가치증식’은 ‘가치법칙의 종말’ 후에 일어난다. 이러한 표현들은 주술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의 의미와 쓰임을 판단하려면, 첫째로 맑스에게서 ‘일반지성’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두 번째 부분에서는, 현재의 논쟁에서 ‘일반지성’이라는 개념에 위탁된 성과를 사실에 비추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이 두 번째 부분은 분량 때문에 이번 번역에서 제외되었다―옮긴이). 그 개념을 평가하는 문제는, 21세기 문턱의 사회경제적 조건들 아래서 사회적 해방의 전망들과 주체들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관계들을 포스트포드주의라고 지칭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토요타주의라고 지칭한다. 우리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정책의 기초인 초국적 자본주의의 고도기술적인 생산양식이라고 지칭할 것이다. 여기서 주도적인 생산력은 컴퓨터다(Haug, 1999 참조).


1. 맑스가 ‘일반지성’을 다루는 맥락

맑스의 ‘일반지성’에 관한 언급은 사실적, 이론적으로 일반노동의 개념과 유사성을 갖는다(󰡔역사적 비판적 맑스주의 사전(Historisch-Kritisches Wörterbuch des Marxismus)󰡕에 실린 동일한 제목의 논문을 참조하라). 맑스가 헤겔과 대결하면서 정립한 ‘일반노동’이라는 개념은 가치실체로서의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부분적으로는 (특히 나중에는 전적으로) 직접적인 ‘노동일반’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러한 ‘일반’은 칸트가 과학적 진술에 대해 요구한 ‘일반성의 형식’ 즉 형식적이고 ‘과학-이론적인’ 측면과 더불어 인류의 잠재력을 이루는 문화적이고 인지적인 요소들의 총체의 물질적인 측면을 갖는다. 이 복합적 의미에서 맑스는 ‘일반’에 대해 일련의 개념들을 만드는데, 이 개념들은 또한 미래의 공동체를 미리 예시한다. 이러한 개념작업은 잠정적이고 실험적이며, 종종 애매하거나 모순적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맑스 이론의 실험실에 놓이게 된다.
‘일반지성'을 언급하는 특정한 맥락을 이루는 것은 고정자본과 생산력발전에 대해 다루는 한 절이다. 기계들이 설비자본의 주요형태들이기 때문에, 그 절은 때로 (그리고 후기자율주의 그룹에서는 규칙적으로) ‘기계에 관한 단편’으로 지칭된다(Virno 1990, 9쪽 참조). 네그리는 1978년 이 절을 ‘기계에 관한 장(capitole sulle macchine)'이라고 칭했다. 이러한 제목은 󰡔붉은 노트(Quaderni Rossi - 이탈리아에서 1960년대 초중반 활동한 자율주의자 잡지)󰡕가 1961년 그 절을 해석하고 1964년에 번역했던 관점을 반영한다. 즉 기계의 중립성이라는 테제는 비판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칭은 혼란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절의 주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산자들, 다른 한편으로 문화적․인지적․기술적으로 축적된 잠재력(’일반지성‘), 그리고 종국에는 자본 사이의 관계들이 전략적인 삼각형을 이룬다. 그리고 이 전략적 삼각형 속에서 맑스의 분석은 결국 해방적이고 역사이론적인 차원의 심연을 측정하기 위해 전개된다. 맑스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선취하고 있는 전위(轉位)와 모순들 때문에, 예견적인 사회적 상상이, 󰡔요강󰡕의 이 작은 절에 탁월한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이 점화된다.
‘일반지성’을 언급할 때 “일반적 사회적 노동”(595쪽) 또는 “일반적 과학적 노동”(596쪽)을 드러내는 전체가, 그리고 기능들 전체가 중요하다. “지식과 숙련, 사회적 두뇌의 일반적 생산력의 축적”(594쪽), “일반적 사회적 진보”(595쪽), ‘인간 두뇌의 일반적인 역능의 발전’(601쪽), “일반적 사회적 지식, 앎”(602쪽)등. 여기서 관심은 “자연력이 사회적 지성에 종속”(605쪽)되는 도정에서 “생산과정의……과학적 과정으로의 전화”(596쪽)에 놓여있다. 한편으로 노동의 생산성은 점점 더 “과학의 일반적 상태와 기술진보, 또는 이러한 과학의 생산에의 적용”(600쪽)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으로 ‘발명’이 “사업”(600쪽)으로 전화되면서, 과학의 발전이 과학의 자본주의적 가치증식을 통해 선택적으로 “진전된다”(595쪽). 맑스는 이러한 과정과 그 잠재력의 자본주의적 형태규정성(Formbestimmtheit)을 분석한다. 또한 거꾸로 과학화가 자본관계에, 그리고 교환가치를 통한 사회적 생산의 규제에, 특히 노동하는 주체가 일반적 지식역능에 대해 갖는 위상에 미치는 반작용을 분석한다. 맑스에게 “생산과 부의 거대한 지주”는, “인간 자신이 수행하고” 시간으로 측정되는 “직접적 노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통한 “자신의 일반적 생산력의 전유가,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이해, 또 사회신체로서 자신의 현존을 통한 자연의 지배가”(601쪽) 결정적인 문제로 된다. 여기서 ‘사회적 개인’이라는 또 하나의 근본개념이 등장한다. 이 사회적 개인은 축적된 잠재력의 매체 안에서 지금까지 표현된 형태 아래서보다 더욱 무한히 전개됨으로써 개인화된다. 이 생각은 인간의 본질이 역사적인 “사회적 관계의 총체”속에서 자신의 현실성을 갖는다는 6번째 포이어바흐테제를 연상시킨다(MEW 3, 7쪽 참조). 이러한 총체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유산’이, 즉 언어와 문화, 또한 ‘기계환경’과 실천적인 조작지식을 갖춘 사회적 유산이 속한다. 이 사회적 유산은 일반적인 인간발전의 매체처럼 기능한다. 과학이 주요생산력으로 됨으로써 전통적인 계급적 접근기회와 전유기회는 경향적으로 주변화된다.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지 고도 기술적으로 조건 지워진 노동과정과 관련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이러한 사실들이 경험적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을 진단하는 맑스는, 항상 새로운 시도 속에서도 이러한 발전이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을 들추어낸다. 자본주의적 형식규정성은,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막대하게 성장하는 과학기술적 잠재력이 설비자본(고정자본)으로서 대립하고 “노동의 증가된 생산성이 오히려……노동 자체의 무기력함으로 정립되도록”(598쪽) 야기한다.

“과학은 노동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고 기계를 통해 낮선 역능으로서, 기계자체의 역능으로서 노동자에게 작동한다.……생산과정은, 노동이 생산과정을 지배하는 단위로서 생산과정을 관장한다는 의미에서의 노동과정이기를 중단하였다. 오히려 노동은 단지 의식된 기관으로, 기계적인 체계의 많은 지점에서 개별적인 살아있는 노동자들 속에서 현상한다. 산발적으로, 기계자체의 총과정에 포섭된 채로.”(593쪽).

사회적 지식과 일반적 지성은 이렇듯 “고정자본의 속성”(594쪽)으로 작동하며, “일반적으로 사회적 노동으로 서술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 속에서이다.”(595쪽). 왜냐하면 자본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노동의 성과를 공짜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노동시간을 “유일한 가치결정 요소”로 설정하는 반면, “사용가치 창출의……결정적인 원리로서 직접적인 노동과 그것의 양은 소멸한다. 직접적인 노동은 양적으로 미미한 비율로 전락한 만큼이나 질적으로도 불가결하긴 해도 일반적 과학적 노동, 자연과학의 기술적 응용에 비해 하위의 계기로 전락하였다.”(596쪽). 동시에 “개별적” 노동이 생산적으로 되는 것은 이제 “자연의 폭력을 종속시키는 공동의 노동 속에서”이다. 이 때 자본관계는, “직접적인 노동의 사회적인 노동으로의 이러한 승격이 개별노동을, 자본 속에 대표되고 집중된 공동성에 반해, 무용한 것으로 환원하여 나타내도록”(596쪽) 만든다.
여기까지 맑스의 분석은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이미 고전적인 비판적 서술을 발견할 정도로 진전된 발전들과 관계된다. 󰡔요강󰡕의 이 절은 앤드류 유어(Andrew Ure) 저작의 프랑스어 번역판(1836년)에서의 인용에서 시작한다. 이는 맑스가 1845년 브뤼셀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그리고 맑스는 산업생산의 기존 형태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부터 갑작스럽게 기존 관계들을 넘어선 분석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분석은, 일반적 사회적 지식과 지성의 해방적 잠재력이 자본을 통한 기술적 사용을 넘어서서 예견적으로 심연까지 측정되는 세밀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고정자본에서 읽어낼 수 있는 발전은 가치론을 특정한 방식으로 의문에 부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방식 속에서 노동을 임금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필수적인(충분하지 않은) 전제조건들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가 시야에 들어온다. 자본은 “진행 중인 모순”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자본은 노동시간을 유일한 척도로 그리고 부의 원천”, 간단히 말해서, “사용가치의 교환가치”로 설정하는 반면, “노동시간을 최소한으로 감축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601쪽). 자본은 “그렇게 생산을 지배하는 형식으로서 자신을 해체한다.”(596쪽). 만약 순전히 양적으로 측정되는 노동, 그리고 더불어 사회적 부의 생산을 위한 임금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이 부수적으로 되면, 교환가치에 기초한 조절은 “붕괴된다”(601쪽).
이처럼 경제내적으로 논증된 붕괴론과 더불어, 맑스는 두 가지 선들을 더 추적한다. 이 두 가지 선들은 오히려 정치적 해방적 행위조건들을 지적한다. 첫 번째 선은 노동시간단축의 양적인 측면을 지적한다. 두 번째 선은 노동자들이 사회적 지식잠재력 및 생산과정의 통제에 대해 맺는 관계에서 그들의 전략적 재배치의 질적인 측면을 지적한다.
양적인 측면에 대해서 보자. 개별 생산물과 관련하여 자본이 “힘의 지출로서……인간의 노동”을 최소화시킨다는 것은 “해방된 노동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노동해방을 위한 조건이다.”(598쪽). 이제 잠재적으로 개인이 “단순한 노동자로 강등되는 것” 즉 개인이 “노동에 포섭되는 것”은 종말에 이른다(604쪽).
질적인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간이 생산과정 자체에 대해 오히려 감시자와 규제자로서 관계하는 만큼, 노동은 더 이상 그렇게 생산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인간이 산업적인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자연과정을, 그는 자신과 자신이 규제하는 비유기적 자연 사이의 수단으로 돌린다. 인간은 생산과정의 주요중개인이기보다는, 그 옆에 등장한다.”

맑스는 구체적인 형태로서의 컴퓨터화에 대한 표상을 갖고 있지 않다. 컴퓨터화는 과정기술적인 설비와 공구기계를, 측정제어술과 결합되어 더 이상 살아있는 노동이 들어가 있지 않은 거대한 ‘물리적 체계’로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기반위에서, “더 이상 그렇게”라는 정식화가 당시의 주어진 상황으로부터의 분리가 제한됨을 예고하듯이, 맑스의 예측적 분석은 사후적으로 서술적인 내용을 획득한다.
맑스는 1840년에 오웬이 한 비판을 인용한다. 여기서 오웬은, 인간이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기계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영혼이 없는 메커니즘”에만 투자가 이루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의 과학화는 이제 경향적으로 생산자의 과학화를, 나아가서 “최대의 생산력으로서……개인의 전면적 발전을” 요청한다. 이를 통해 처분가능하게 되는 시간도 사실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현실적인 경제가……노동시간의 절약”에 있다면, 이는 “결코 향유의 단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능력 즉 힘의 발전을 따라서 능력과 더불어 향유수단의 발전을”(607쪽) 의미한다. 개혁주의적인 기업가 오웬의 사고과정과 연계해서 맑스는 그러한 인간발전의 자본주의 내적인 범주화를 성찰한다. 1세기 후 인간발전의 자본주의적 범주화는 ‘인간자본’에 대한 투자로 불린다.

“이는 직접적인 생산과정의 관점에서 고정자본의 생산으로 고찰될 수 있다. 이 고정자본은 인간 자신이다.”(607쪽).

기계적 설비들은 “인간의 손으로 창출된 인간 뇌의 기관, 즉 대상화된 지성”(602쪽)이다. 고정자본이 필연적으로 사물적인 설비들 속에서 표현된다면, ‘지성’이 필연적으로 고정자본인 것은 아니다. 비록 자본이 인간의 노동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인간들은 결코 자본이 아니다. 노동이 놀이가 될 수 있다는 푸리에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맑스는 자유시간과 노동시간의 변증법을 소묘하고 노동하는 주체의 전화를 강조한다.

“자유시간은 여가시간이자 좀더 고도의 활동을 위한 시간이다. 이 자유시간은 그 소유자를 당연히 다른 주체로 변화시켰다. 그리고는 이처럼 다른 주체로서 자유시간의 소유자가 직접적인 생산과정에도 들어간다. 형성되는 인간과 관련해서 고찰할 때, 직접적 생산과정은 규율이자 실험과학이며, 형성된 인간과 관련해서는 물질적으로 창조적인 과학이며 대상화되는 과학이다. 사회의 축적된 지식은 이 형성된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한다.”(607쪽).

아래 인용문과 더불어 ‘일반지성’이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테두리의 윤곽이 그려져 있다.

“고정자본의 발전은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Wissen), 앎(knowledge)이 어느 정도로 직접적인 생산력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고정자본의 발전은 따라서 사회적 생활과정의 조건들 자체가 어느 정도로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들어왔으며 또 일반지성에 맞게 변형되었는가를 보여준다.”(602쪽).

이 문장에는 세기적인 긴장이 응축되어 있다. 즉 사회적인 생활조건들이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들어왔으며 또 일반지성에 맞게 변형되었음”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통제와 변형이 사회적인 생활조건들에 관련되는 만큼이나 자연적인 생활조건들에도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가 “사회적 생활과정”의 물질적 기술적 “조건들”, 곧 사회에서의 기계공원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파악은 1857/8년 수고에 적혀있는 변증법적인 실험적 사고방식을 오해하고 있다. 󰡔요강󰡕에서의 맑스는 경향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잠재적인 가능성들을 읽을 수 있는 경험적인 표지들에 대해 질문한다. 맑스는 자연과정에 대한 과학적 기술적 지배가 계급대립적인 사적인 전략들 안에, 그리고 지식이 비밀로 유지되고 타인에 의한 사용이 배제되는 체제하에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적인 전략들 안에 갇히는 것을 간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는 여기에서 ‘일반지성’에 의한 통제의 객관적인 가능성을 본다. 얼마만큼 생산력들이 고정자본과 더불어 “사회적 실천의 직접적인 기관들”로서 생산되는가 라는, 고정자본에서 읽혀지는 “정도”는 잠재성을 의미한다. 물론 이처럼 잠재적으로 증대된 가능성은 자족적인 가치증식과정에 얽매여 있고, 이 가치증식과정은 유(Gattung)의 자연적인 생활조건들을 사회적인 생활조건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빠르게 파멸시킨다.
파올로 비르노(Paolo Virno)는, 맑스가 여기서 “별로 ‘맑스주의적’이지 않은 테제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엇보다 과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것만은 아닌 추상적인 지식이 바로 생산으로부터의 자립성에 기반하여 주요생산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1990, 10쪽, 동일하게 1996b, 22쪽). 하지만 어째서 과학화테제가 별로 맑스주의적이지 않은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적으로 응용된 지식이므로, 맑스에게 귀속된 자립성에 대한 테제는 “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의 자기추동적 성장”(Virno 1996b, 21쪽)에 대한 테제만큼이나 별로 설득력이 없다. 비르노는 이밖에도 노동하는 개인이 진입하는 전략적인 위치, 즉 자동화노동으로부터 맑스가 끌어낸 예측에 합당한 전략적 위치를 간과한다. 나아가 비르노는, 맑스가 “일반지성(내지 주요생산력으로서의 지식)을 끊임없이 고정자본과 동일시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맑스가 다른 한편으로 ‘일반지성’이 “산노동으로, 과학적 기술적 인텔리겐챠로, 대중의 지성으로 나타남”을 간과했다고 주장한다(1990, 12쪽). 이러한 항변 역시 설득력이 없다. 첫째로 비르노가 진단의사로서의 맑스를 질병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지성’은 현실적으로 “‘죽은 노동’으로 신속히 전환가능”(Rossanda, 1991/96, 71쪽)하다. 둘째로 비르노는, 네그리가 1978년에 행한 강의들에서 특히 강조했던 󰡔요강󰡕의 구절들을 무시한다. 이 구절들에 따르면, 개인적인 주체들은 “사회적 지성의 일반적 역능들”의 매체 속에서 “다른 주체”로 변화되며, 이처럼 변화된 주체로서 “직접적인 생산과정 안으로도” 들어간다(MEW 42, 589쪽). 생산과정은 다시금 맑스에게는 이제 “실험과학, 형성된 인간과 관련해서 물질적으로 창조적이며 대상화되는 과학이다. 축적된 지식은 이 형성된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한다.”(앞의 곳). 즉 맑스는 결코 축적된 지식을 고정자본의 현존형태로 환원하지 않는다. 헤겔이 사변적으로 ‘보편정신(allgemeinen Geist)'에 대해 언급했던 지점이, 󰡔요강󰡕에서는 사회적인 것으로 번역되어 일반적 지성 또는 '일반지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물론 이 은유법, 사변적 응축은 엄밀히 말해서 허용될 수 없는 인격화이다. 주체로서 맑스의 일반지성은 루소의 일반의지만큼이나 현존하지 않는다. 단지 개인적으로 발전되는 일군의 지성들만이 존재한다. 이들의 발전은 늘 획득되고 분배되며 접근 가능한,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저장된 지식들을 전제한다. 또한 이 지식들을 영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전승을 전제한다. 󰡔자본󰡕 3권에서 맑스는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고찰하면서 ‘보다 현세적으로’ “연합된 지성”(MEW 25, 267쪽)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자유롭고 동등해진, 공동의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생산자들의 연합”(MEW 18, 62쪽)이라는 정치적인 목표에 상응한다.

옮긴이 곽노완󰋯명지대 강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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