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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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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주적이고, 다원적이며, 포용적인 정치제도가 사회의 번영과 시민의 행복을 가져오는 제1의 조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치제도를 만드는 요소로서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이 중요하다는 대목은 우리 사회가 빈곤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착취적 정치제도로 나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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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 공황과 번영, 불황 그리고 제4의 시대
로버트 라이시 지음, 박슬라.안진환 옮김 / 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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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치밀한 이론적 전개는 아니지만, 소득불균형 문제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담겨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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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차가운희망보다뜨거운욕망이고싶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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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쩌면 김원영씨를 만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애인 이동권 집회에서인지 아니면 학내 장애인권연대사업팀 집회에서 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 대학시절 마주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한번도 김원영씨는 물론 그 주변의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고, 장애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경험도 별로 없었다. 장애인의 삶을 다룬 수 많은 책들이 있지만, 내가 읽은 최초의 책이 이 책이라는 점은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장애인과의 거리를 보여준다. 다행스러운 것이라면, 그 "최초의 책"이 김원영씨의 책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책의 "뜨거운 욕망"이라는 표현과 달리, 차분하게 자신의 경험을 풀어 놓는다. 좁은 공간에서 보낸 어린시절에서부터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무엇이 그의 삶을 가능하게 하였는가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개인이 가진 생물학적 손상이 필연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가진 힘,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촉발, 그리고 저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용기와 예리한 감수성. 이 모든 것이 그를 평생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저자는 자신의 개인적 용기를 부차적인 것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데 자신의 용기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김원영씨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야말로 그를 특별한 장애인으로 만들어 낸 힘이다. 저자는 재활원 학교와 일반계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내었고, 이는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장애인 친구와 선배, 자원봉사자,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동료, 사랑하는 여인 등과의 다양한 관계는 저자의 삶에 중요한 흔적과 기억을 남기면서, 저자를 변화시켰고, 저자와 세상과 맺는 방식을 변화시켰고, 또 세상을 변화시켰다. 저자 스스스로도 강조하고 있듯이, 다채로운 인간관계야말로 한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사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따라서 이 책은 한 장애인의 기적과 같은 삶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가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얼마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에서 그들을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배제하는 데 익숙하다.  장애인에게 적합한 생활환경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요양원이나 재활원, 또는 특수학교 등의 기관에 장애인을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 기관을 단순히 매도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장애인에게 일반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특수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자 역시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문제이므로.  그러나 한 장애인에게 일반인과 동일한 환경이 적합한가, 아니면 장애인을 위한 특수한 환경이 적합한가에 관한 선택은 장애인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여야 한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더 다채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며, 어떤 환경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할 것인가는 스스로 설정한 삶의 목표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 바탕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는 장애인이 일반인과 동일한 환경에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는 수 많은 장애물과 사회적 편견을 제거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장애인을 한정된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장애인을 "특수한 존재"로 간주하는데 그쳐버림으로서, 장애인이 일상적인 생활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그들을 계속해서 사회의 외부에 남겨두는 결과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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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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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영화 <의형제>의 강동원이 생각났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사람이 죽어가면서 던진 단말마는 우연하게, 또 정확하게 동일했다. 강동원이 생물학적으로 죽어가면서, 김용철이 사회학적으로 죽어가면서 던진 말. "나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특히나 김용철 변호사는 책의 전반부를 '배신'이라는 규정에 대한 자신의 해명으로 채워나가고 있을 정도다.)

우선, <의형제>의 강동원 경우 : 그는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공작원으로서 자신을 가르치고 키워준 당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죽이는 것이든, 자신에게 인간적인 면모로 다가와 주었던 사람을 죽이는 것이든 상관없다. 당의 명령과 조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며, 괜한 낭만에 도취되어 당을 위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곧 '배신'이다. 그렇지만 강동원은 그 '배신'을 택한다. 자신의 부모가 죽어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아이를 감쌌다. 당을 배신한 친구의 삶에 대한 몸부림 앞에서, 그 몸부림에 공감했다. 북한에서 남겨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남한의 '반동분자'나 '예수쟁이'와 손을 잡고 가족의 탈출을 기획한다. 자신과 어느새 의형제가 되버린 사람을 위해 살인 명령에 대해 주저하고 거부한다. 그의 행동은 영화 내내 휴머니즘적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선택으로 그려지며, 수 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남긴다. 강동원의 행동은 '배신'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의 행동에 배신이라는 딱지를 남기고자 하지 않는다. 또는 배신이라는 말로 강동원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이전에 사람을 죽이고, 북한을 위해 간첩활동을 수행한 잘못이 있다. 그렇지만 그의 과거는 그의 휴머니즘적 선택에 의해 모두 사면되었으며, 강동원이 퍼스트 클래스로 대변되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에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다음, <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의 경우 : 그는 삼성의 구조조정본부 팀장으로서 삼성 그룹 전체의 유지와 이건희 일가의 경영권 방어에 전념해야 했다. 그것이 법조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일이건,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건 상관없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괜한 정의감에 도취되어 그룹 총수에 대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곧 ‘배신’이다. 그렇지만 김용철은 그 ‘배신’을 택한다. 그는 삼성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전전하던 중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삼성 비자금과 불법 경영권 승계, 그리고 법조계와 언론계에 대한 삼성의 뇌물 공여 사실을 폭로했다. 자신도 검찰의 수사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언론을 통해 삼성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부패시켰는가에 대해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배신과 매국적 선택으로 그려졌으며, 주류 언론과 사법부, 검찰에 의해 먹칠되었다. 김용철의 행동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계속해서 배신이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내부고발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긍정되지도 못했다. 물론 그는 과거에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핵심인사로서 법조계와 언론계에 뇌물을 제공한 잘못이 있다. 그런데 그의 과거는 양심선언 과정에서 사면되기는커녕, 사건 흐름의 전면에 부각되었으며, 그의 고발 내용을 주류 언론이 왜곡하기 위해 사용한 주된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그의 선택을 냉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강동원과 김용철의 경우 :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각하는 더 숭고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선택하기 위해 자신이 소속되어 있었던 조직을 배신했다. 그런데 우리는 강동원의 배신에 대해서는 감동하고 심리적으로 지지한 반면, 김용철의 배신에 대해서는 냉담했고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내었다. 검찰은 법과 정의를 짓밟은 기업을 고발한 사람을 배은망덕하고 믿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언론은 ‘삼성공화국’의 권력을 비판한 사람을 양보와 인내를 모르는 ‘한국판 탈레반’으로 규정했다. 전라도 사람 중 일부는 그의 선택 때문에 더 이상 삼성이 전라도 사람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일부 시민단체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김용철 양심선언은, 국가기관과 언론, 대중들의 비난과 무심함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강동원의 배신에 대해서는 감동받는 바로 그 사람들이, 김용철의 배신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냉담하고 백안시하는지를. 조직의 이익과 휴머니즘 또는 사회정의 사이의 선택에서, 강동원의 선택은 지지를 받고, 김용철의 선택은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대체 이 두 사람의 선택 간에는 어떤 차이가 근본적으로 존재하는지, 또는 이 두 사람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의식구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한 가지 설명 : 삼성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주류 언론과 국가기관이 내세운 이유는 “삼성의 이익=대한민국의 이익”이라는 등식이다. 불법이건 합법이건 삼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사람들에게 이익이라는 인식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따라서 김용철의 양심선언을 하는 순간 대중은 순식간에 스스로를 삼성과 자신을 동일시하였으며, 따라서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그의 행위는 대중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또는 주류 언론에 의해 그렇게 간주되었다.) 삼성의 부정부패에 대한 그의 고발은, 삼성을 배신하고 한국 사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성과 동시에 한국 사회를 배반한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김용철은 우리를 배신한 것이며, 그렇기에 강동원이 그들(북한)을 배신하고, 우리(휴머니즘적인 남한?)에게 돌아온 것과는 명백히 다른 행위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한 강동원의 배신은 그들집단에 대한 우리집단의 우위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는 반면, 김용철의 배신은 우리집단이 가지고 있는 취약함과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패함,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도 동일한 구조를 가진 두 가지 배신을 대중이 다르게 인식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이 제기하는 다양한 물음 자체를 이해하고, 또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법조계나 기업이나 정치권이나 모두 썩었다는 단순한 인식에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입히기 위해서도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나올 제 2, 3의 김용철이 더 이상 냉담함과 비난 속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삼성이 중앙일간지에 광고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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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이산의 책 42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 이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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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아론'과 '10,000엔'으로 알려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 새해 들어 읽은 두 권은 모두 그에 관한 것이다. 사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를 먼저 접했고, 이를 통해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과 문체에 적지 않은 흥미가 생겨 그의 자서전을 챙겨보았다. 

  가난한 하급무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게이오대학의 창립자로, 그리고 일본 학사원의 초대 의장이 된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담박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일신의 독립정신"을 삶의 신조로 삼아 자신이 행했던 선택과 결정의 배경을 보여준다. 그가 불효자라는 오명을 무릎쓰고 홀로남은 노모를 떠나 오사카로 유학을 간 일, 당대 최고의 서양학자임에도 정계에 진출하는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일, 메이지 유신 당시 도쿠가와 막부와 천황세력 누구에게도 가담하지 않은 일 등이 그것이다.  

  후쿠자와는 <문명론의 개략>에서 서양 문명의 본지(本志)는 철도나 대포와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독립정신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일신의 독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려한 후쿠자와의 태도는, 일본에 서양문명으로 소개하여 일본을 문명화하겠다는 그의 학문상 신조와 공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 흔들림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간 한 지식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메이지 시대의 일상사는 물론 문명교류과정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후쿠자와는 도쿠가와 막부의 외교 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정부 사절단을 따라 구미지역에 3차례 시찰을 다녀왔고, 당시 일본에서도 가장 빠르게 영미식 학문을 받아들인 인물이다. 즉, 메이지유신 전후에 일본이 서양문명과 교류하는 최일선에 위치하고 있었던 만큼, 그는 두 문명 간 교류 과정에서 발생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상당 부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쿠자와는 이 자서전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에피소드(최초로 서양학문을 공부하던 사람들은 택한 학습법, 일본을 방문한 영국 왕자가 일본 황국에 들어가기 위해 정화의식을 치렀던 일, 미국에 도착한 최초의 일본 사절단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 등)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당시 자신의 생각은 물론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인이 서양문명과 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사건들과 일본인의 반응 등을 "인류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살펴보려면 <문명론의 개략>이나 <학문의 권유>를 독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테지만, 자신의 삶을 담박하게 써 내려간 이 책도 후쿠자와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후쿠자와의 문체가 리드미컬하다는 점에 그렇겠지만, 그의 자서전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번역한 역자의 노고도 이 자서전을 좋은 자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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