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지식의 불확실성: 근대적 지식 체계의 균열과 붕괴

* 세계-체계론(world-system theory)으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인 임마뉴엘 월러스틴의 신작 <지식의 불확실성>이 번역되어 나왔다. 작년에 학술대회에서 매우 가깝게 보고 느낀 점이 많은 바 있는데, 이번의 신작은 나름 반갑다. 리뷰를 대충 읽어본 바로는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사회과학의 개방>의 연장선상에 있는 저서라고 생각이 된다. 이제 연세도 있고하니 그의 평생의 역작인 <근대 세계체제>시리즈를 하루 빨리 완성해 주시길 바란다(작년에 직접 본 바로는 건강은 아직 걱정이 없으신 듯하다).

* 한겨레(2007. 4. 27) / 학문의 ‘난혼’을 위하여

 

확실성 바탕해 나누고 쪼갠 분과학문은 권력에 복무
불확실성 바탕 둔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통합해야
브로델·프리고진·화이트헤드 빌려 월러스틴 이론 설파
한겨레  한승동 기자
» <지식의 불확실성>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희석 옮김. 창비 펴냄. 1만5000원
세계체제 분석으로 유명한 사회과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지식의 불확실성>(창비)은 페르낭 브로델, 일리야 프리고진, 앨프리드 화이트헤드 세 사람을 인상적으로 등장시킨다.

“내게는 단일한 인터싸이언스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와 지리학, 또는 역사와 경제학을 결혼시키려고 한다면, 그건 시간낭비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동시에 말이다. …학문간 연계를 인접한 두 분과학문의 합법적인 결혼이다. 나 자신은 전체적인 난혼을 지지한다. 하나의 과학을 다른 과학과 결혼시킴으로써 인터싸이언스를 실행하는 신봉자는 너무 신중한 것이다. 나쁜 도덕이 퍼져야 한다. 전통적인 학문, 즉 철학, 문헌학 등을 포함해 모든 학문들을 뒤섞어 보자.”

아날학파를 이끈 브로델은 이처럼 1960년에 19세기 초반 정전(교과서) 지위에 오른 뉴턴물리학이 지배한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19세기식 분과학문의 통폐합을 주장했다. 보편성으로 치장된 정전이란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지배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월러스틴은 지적한다. “자기중심적인 정전들이 보편적 규범으로 제시된 건 근대세계체제의 불평등한 위계구조의 한 산물이며, 이 체제의 권력자들을 유지시키는데 복무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화학자 프리고진 역시 근대물리학이 주도한 단순명쾌한 결정론적 세계관, 주류 과학주의에 반기를 든 ‘복잡성 과학’을 들고 나와 뉴턴식 ‘확실성’을 비판한 <확실성의 종말>, <새로운 통합(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을 썼다. 화이트헤드 얘기(역자 인용)는 더 쉽고 분명하다.

“교육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재능들로 한때는 생기 넘쳤던 배움의 학파들이 다음 세대에 가면 현학과 진부함만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런 학파들이 죽은 생각들로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죽은 생각들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무용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해롭다. 최고의 것이 타락하는 것은 최악이다. 지적 활력으로 충만한 몇몇 희귀한 시절을 제외하고 과거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죽은 생각들로 오염되었다. …인간을 자극해 위대하게만든 모든 지적 혁명은 죽은 생각들에 대항하는 열정적인 싸움이었다. 안타깝게도 인간심리의 가련한 무지와 함께 그런 지적 혁명은 이후에는 스스로 만들어낸 죽은 생각들로써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일종의 교육적 도식에 의해 진행되었다.”

죽은 생각들로 인간을 구속

남의 나라 다른 시대가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를 두고 한 얘기 같다. 어쨌든 이들의 주장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으로 나뉘고 다시 끝없이 쪼개져 나간 분과학문들을 비뉴턴적, 하이젠베르크적 불확실성에 바탕을 둔 ‘역사적 사회과학’으로 통합할 것을 제안해온 월러스틴의 생각과 상통한다. “역사적 사회과학자들은 근대와 전근대, 문명과 야만, 선진과 후진 사이에 선을 긋는 대신(우리는 그토록 많은 미묘한, 그리고 그다지 미묘하지 않은 방법으로 계속 그렇게 해왔다.)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긴장을 작업의 핵심으로 흡수하고 모든 지역, 모든 집단, 모든 계층에 동일한 종류의 비판적 분석을 가해야 한다.” ‘역사적’이란 “상황의 구체성뿐만 아니라 연구대상인 구조의 연속적이며 끝없는 변화를 고려”한다는 의미고 ‘사회과학적’이란 “장기지속에 관한 구조적 설명을 추구하지만 그것 또한 그런 설명이 영원하지도 영원할 수도 없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원래 일상을 불안에 시달리게 한 삶의 불확실성을 완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인류는 처음 마법이나 신, 종교와 사제들, 공동체적 권위 등에 의존했다. 근대의 시작과 함께 본격화한 자본주의체제 작동은 훨씬 더 정교하고 신뢰도 높은 장치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근대과학이 마법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위기 대응책

과학의 무대에 먼저 등장한 것은 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논리를 앞세워 기존의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부정했다. 지난 500년간 ‘근대성’으로 통칭되는 그런 인식상의 변화가 세계를 장악했다. 그러나 진리주장의 검증 능력과 도덕적 권리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철학자들 자리를 넘겨받았다. 신학, 의학, 법학, 철학으로 정립해 있던 대학 학부는 철학 외의 분야들이 힘을 잃으면서 철학부 중심으로 진화하게 되고 철학은 18세기에 다시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사회과학으로 분화했다. 철학과 과학의 ‘이혼’이었고 인문학과 자연과학, 이른바 ‘두 문화’가 지배하는 지식기반이 형성됐다. 19세기에야 분과학문으로 등장한 사회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끼여 맥을 추지 못하다가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경제고도성장과 함께 사회학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왕좌는 뉴턴과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이 차지했으며 인문학과 사회과학조차도 그걸 닮으려 애썼다.

» <지식의 불확실성>의 저자 이매뉴얼월러스틴
이처럼 진보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 위에 선 세계는 1968년 국가구조의 정당성을 민중이 거부해 봉기한 ‘68혁명’으로 산산조각 났다. 소수인종, 여성,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68혁명은 냉전해체와 제3세계 재편이라는 세계체제의 지각변동과 무관하지 않았고 인문학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선형적인 시간가역의 결정주의 세계관”에 금이 갔으며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의 인식론적 단절을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프리고진의 ‘복잡성 과학’, 같은 취지의 인문학 쪽 ‘문화연구’가 그것이다. 68혁명은 “정전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의 창조적 성취들이 제국주의 경영의 문화적 인프라로 활용됐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사회과학’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체제를 한층 더 심화된 자본주의체제의 전면적인 위기국면으로 파악하는 월러스틴적 대응이라 할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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