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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해 큭큭 거리면서 책을 읽어본지가 얼마나 지났지?
아마 박민규 이후로는 없었을 거야. 맞아, 이 소설, 박민규와 비슷한 느낌! 물론 '박민규 소설 같다'라는 표현은 일절 삼가하도록 하겠어. 엄연히 다른 두 소설을 두고 느낌만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같다'라고 말하는 건 그 소설 고유의 매력에 대한 모욕이지. 게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이 소설을 쓴 건 무려 88올림픽 시절 이야기잖아? 민규 씨의 첫 소설과 비교해 봐도 무려 10년이 넘게 차이나는 걸.
어디까지나 '느낌이 비슷한' 거지, '~같다' 따위는 아닌 거야.
잡설 따윈 이제 그만. 각설하고 제목부터 그 멋스러움이 물쓴 풍기는 소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 대해 몇 마디 해볼게.
누구는 이걸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이라 분류하고, '만만해보이는 제목에 얇팍한 두께와는 달리 난해하기 짝이 없다' 라는 무서운 소문까지 들려오더라구. 너무하잖아? 나같은 허접쟁이한테 읽기도 전에 겁부터 잔뜩 주다니, 아아!
책을 읽기도 전에 잔뜩 쫄아서는, 길일(吉日)을 택해 용모를 단정히 하고,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허리를 쭉 편 상태에서 어깨에 힘을 가득 주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했지.
옷, 그런데 이게 뭐야? 푸훗, 너무 웃기잖아. 다들 잠자는 새벽에 혹여 놀랄까봐 숨죽이면서 키득 거리다가 나중에는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형편 없이 흐트러져버렸지. 사람들이 하도 어렵다, 어렵다 해서 바짝 긴장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 내가 남들보다 잘나서 그런 게 아니야. 글쎄,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 책을 어렵게 봤을까, 나중에 책장을 덮고 곰곰히 생각해보긴 했는데, 하나 두 개로 이유를 한정하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갑자기 뜬금없는 소릴지도, 나중에는 본문과 크게 관련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난 상상력이란 말을 참 좋아해. 이렇게 말하면 너무 비약이 되긴 하지만 이건 내가 페미니스트 정희진의 팬인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정희진은 언어를 곧 권력이라 규정하는데 난 전적으로 동감하거든.
왜, 한국전쟁 이후를 한 번 생각해보자구.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의 영원한 친구인 줄 알았던 미군과 남한 정부군이 한국전쟁 당시에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는 게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지난 50년 간 '북한과 중국 = 양민이나 학살하는 잔혹한 빨갱이들', '남한과 미국 = 남한 국민들의 영원한 친구들'이란 허구적인 등식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어. 별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지극히 단순하지. 당시 어떤 '언어'를 '사실로 규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던 권력층들이 친미파였고, 그들에게 '미국은 선하다'라는 언어의 대칭점에 있는 이야기는 단순한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언어는 모조리 수용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지닌 이들의 이득에 따라, 그들의 힘을 한층 더 탄탄하게 할만한 것들로만 취사선택되어 '사실'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지. 그 '취사선택된 사실'이 미디어를 타면 그걸로 게임 끝 아니겠어? 그 속에서 "미군과 정부군에게 친척들이 몰살당했다!" 따위의 이야기는 진실이 어찌되었든 한낱 미친자의 울부짖음밖에 안되는 거고.
슬프고 괴롭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게 상상력이라고 봐. '북한과 중국 = 양민이나 학살하는 잔혹한 빨갱이들', '남한과 미국 = 남한 국민들의 영원한 친구들'이란 지배층의 언어를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믿었다면, 50년이 지나든 100년이 지나든 진상이 밝혀지기나 하겠어? 아니잖아. 99명이 기존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할 때, 단 1명이라도 상상력을 발휘했을 때 뭔가가 자그마한 빛이 보이고 언젠가는 권력의 불균형을 깰 수 있는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이제야 책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지만, 내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이유도 이와 비슷해. 정말이지 눈이 돌아갈만큼 멋지고 유쾌한 언어로 가득한 소설이거든.
작가는 움베르토 에코나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진 않아. 겉으로만 보면 정말이지 장난스러운 표지나 제목보다도 훨씬 가벼운 문장들뿐이야. 무슨 말장난도 아니고 농담 따먹기처럼 보이는 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 너무나도 가벼워서 과연 이걸 소설로 분류해야 하나 의구심까지 들게 할 정도면 정말 할 말 다 한 거지.
그렇지만, 이런 가벼움 하나하나에 의도된 흔적이 가득 묻어난다면 이건 또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통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의도적으로 어렵게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그렇다고 내가 움베르토 에코나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폄하하는 건 절대로 아니야. 그들의 글도 난 눈물나게 좋아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쓴 시를 읽어본 적 있어? 아마 읽어봤다면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리라 생각해. 정말 난해하기 그지없어. 고은 할아버지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미친 듯한 상징이 지면 전체를 가득 채워. 아마 그 시를 쓴 본인조차도 해설할 수 없을 거야. 그에 비해서 의도적인 가벼움은 어휘나 표현에 있어서 그 반응까지 하나하나 고려하며 적어가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든 작업이 될지도 몰라.
기존의 언어를 버리고 반응을 하나하나 고려해가면서 적어가는 힘든 작업, 이게 또 상상력 아니겠어? 이걸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읽어나간다면,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이책을 덮는 순간까지 이야기의 부재를 문제 삼는 독자라면 아마 끝까지 당황스럽겠지), 작가가 의도한 재미는 어느 정도 넉넉하게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야 서평에는 '기존 일본 문단의 형식미를 거부한 신랄한 비평성'이라 쓰여있긴 하지만, 당시의 일본 문단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그 재미까지는 모르겠더군.
참, (일본)야구에 대한 얕은 지식이나 기타 잡스러운 지식이 조금 있다면 이 책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거야.
'기발한 상상력'이란 수식어가 멋드러지게 들어맞는 소설이었어. 기존의 억압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그 틀을 깰만한 참신한 생각을 해낸다는 거, 언제 봐도 감탄이 절로 터져나오는 광경임에 틀림없어.
정말, 책 제목 그대로, 참 우하하고 감상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