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토록 엉성하고 가벼운 문체인데도 60페이지를 읽는 데 무려 40분이나 걸렸으며, 두 번씩이나 졸았으니, <도쿄 타워> 완독을 향한 여정이 매우 험난하리라는 건 끔찍할 정도로 자명한 일이었다. 그럼 어디, 두말할 것 없이 오소리에게 올해 최악의 책으로 꼽힐 <도쿄 타워>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몇 자 적어보자.
 
일단, 천박한 띠지에 주목해야 한다. 에쿠니 카오리의 <도쿄 타워>가 50만부 팔렸는데,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는 200만부 팔렸다. 그러므로, 당신은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를 읽으셔야 한댄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올해 1월, 이 책을 받는 순간 띠지의 저 문구를 읽고 벌써 빈정이 팍 상해버려 한동안은 쳐다 보지도 않을 생각으로 구석에 박아뒀다. 업자들 입장에서는 당장 한 부라도 더 팔아먹는 게 중요하다지만, 논리적 오류까지 동원하면서 팔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비참하고도 안쓰러운 일이다. 아아, 그럼 이젠 띠지 뒤쪽을 한 번 볼까.
 
"웃다가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으면 전철 안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
 
근데, 뭐 어쩌라고? 난 안 울었는 걸? 살짝 웃기는 했다. 아무리 내가 책을 마구잡이로 사대는 정신빠진 인간이라 해도, 어떻게 이런 황당한 소설을 샀는지 혼이 빠져나갈 것 같아서. 농담이 아니라, 이 책을 반으로 가르지 않은 채 다 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이지 나 스스로가 엄청나게 관대한 인간으로 성장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정신없이 화가 났다. 그래, 졸면서 60페이지를 겨우 넘기며 아무래도 이 소설의 작가는 남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하긴 했다. 독서 경험상, 모성 같은 걸 운운하며 눈물 질질 짜는 소설 따위를 쓰는 작가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50페이지 정도를 남겨두고, 이게 릴리 프랭키라는 인간의 자전적 이야기인 것이 확실하게 밝혀진 이후는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견뎌야 했다. '등처가'라는 말을 한 번 들어보셨나. 아내를 등쳐 먹는 남자를 그렇게 말하더라. 혹시라도 '등모가'라는 표현이 허락된다면, 가장 첫 번째로 <도쿄 타워>의 주인공에게 선사하고 싶다. 이런 쓰레기. 그래, 안 그래도 고생스러웠던 인생인데, 노년 이후의 삶마저, 네가 삽질하다가 여기저기 뿌려놓은 배설물 뒤치닥거리나 하고는 고작 암이나 걸려 죽는 게 그토록 훌륭해 보이더냐? 아무리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도 끝없는 신용을 보내며 안쓰러워하는 '열렬한 모성의 어머니'라니, 주인공이나,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나(물론 동일 인물이다만), 진부하고 짜증나는 건 둘째치고, 몹시 한심하다.


이딴 책이 일본에서 200만부나 팔렸으며, 한국에서도 꽤나 팔렸고 대체적으로 호평이라는 사실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혼자서는 요리, 빨래, 청소 중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적당히 마누라 하나 얻어서 평생 공짜로 노동력이나 착취하고 팔자좋게 살아보자는 인간들이 바글바글한 세상에, 굳이 '경제적-성적' 재화를 재공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나를 보살펴 줄 '엄니'께서 워낙 쓰레기 같이 사느라 홀로 늙어버린 아들을 위해 '애프터 서비스'까지 제공해 주시려고 강림하신 게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인가?(오오, 거룩하도다!)

ps. 옮긴이가 본문에서 '된장녀'라는 표현을 썼다. 근데, 이처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대상도 불명확할 뿐더러, 특정 집단에 대한 지독한 악감정을 담고 있는 표현을 이토록 가볍게 쓸 수 있다는 게 꽤나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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