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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꼴통에, 로리콘의 자질마저 보이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신 실로 훌륭한 자식분 덕분에 마음에도 없는 사체 유기까지 감행하는 가족이 등장한다. 읽으면서 '어이쿠'를 연발할 정도로 도무지 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날카롭게 제시하는 작가의 시선만큼은 괜찮다고 인정해 주겠다. 문제는 '열혈과 근성, 그리고 감동으로 점철된 60년대 감성'을 미치도록 사랑하시는 이 '남성' 작가께서 슬슬 '모성'을 들먹일 때부터 슬슬 발동이 걸린다. 물론, 이런 것 정도는 흔히 볼 수 있는 남성 판타지니까,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붉은 손가락>은 애초에 범인과 트릭이 공개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 따윈 조금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제목부터 <붉은 손가락>이라니, 어쨌든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만큼 솔직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와의 게임 따윈 아무려면 상관 없다는 것이다. 포커스를 어디에 두고 쓰는지도 다 알려 주겠고, 범인과 트릭도 모조리 알려 줄 터이니, 그저 독자들은 작가가 준비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나 철철 쏟으시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시면 그만이라는 게다.
그런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난 감동적인 이야기 따위엔 조금도 관심 없는데, 정말 큰일이 아닌가. 아저씨, 슬슬 예전보다 이야기의 힘도 떨어지신 것 같은데, 제목부터 스포일러를 남발하시는 건 이제 '대담'한 게 아니라 '만용'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