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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어나서부터 작년까진 단 한 번도 여름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어요.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땀이 나는데, 땀 흘리는 것을 발작적으로 혐오했거든요. 특히나 흠뻑 땀을 흘리고 나서 자연풍이나 에어컨 때문에 땀이 차가워지고 곧이어 말라버리는 그 느낌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불쾌했습니다. 장마도 오지 않았을 무렵, 지인들에겐 한두 번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6월만 해도 그렇게 덥지 않았잖아요? 지금은 이제, 중복도 훌쩍 지난, 본격적인 무더위의 초입이구요. 이 시기, 이 맥락에서 말해야만 비로소 일말의 진실성이 더해지는 겁니다. 네, 전 여름이 정말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제 손으로 에어컨이나 선풍기에 손을 댄 적이 없을 뿐더러, 너무 지쳐 무기력해지거나 갑작스레 화내는 일도 없었으니, 아마 맞을 거예요.
<유지니아>는 한여름입니다. 연일 작열하는 태양과 지독한 습도만으로도 체력이 달려오는데, 갑작스레 거무칙칙한 구름이 기습적으로 몰려와서 대기는 물론, 사람의 마음까지 무겁게 해요. 그러다가 장대비가 후두둑 솓아지는 곳. 이런 계절의 이런 장소가 <유지니아>의 배경입니다. 여태까지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유지니아>는 이 배경을 촉각적, 후각적,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려는 데 주력해요. 실내 구석구석까지 잠식하며 짙게 깔린 어둠으로 가득 찬 시각적 이미지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코로 들어오는 건 공기를 강하게 짓누르는 습기의 냄새고, 피부는 이미 끈적한 땀투성이입니다. 바깥으로 나와도 별 차이는 없어요. 강렬한 원색은 아름답기보다는 무섭게 느껴지고, 한껏 달궈진 대기는 실내보다도 폭력적이에요. 비가 한차례 쏟아져도, 높은 습도 때문에 달라질 건 없습니다. 제가 <유지니아>를 에어컨 덕분에 적절히 온도 유지가 되고 있는 곳에서 읽어서 그렇지, 혹여 야외에서 읽었더라면 철저하게 질린 채 덮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유지니아>의 한여름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치니까요.
어떤 분께서 "책을 읽고 이렇게 복잡한 심경에 빠지는 것도 오랜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든, 일단 저도 동의하고 싶습니다. 400페이지가 살짝 넘는 분량의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들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문장의 밀도가 빡빡해서 어쩔 수 없이 읽는 속도가 더뎌진다든가, 아니면 그저 지루할 뿐이었다면 차라리 그냥 말을 안 하겠어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지만, 표지의 저 소녀, 정말 인상이 강하지 않나요? 사실, 제가 <유지니아>를 가장 (올 여름 온다 리쿠 출간작 중) 마지막으로 미뤄둔 건 순전히 이 표지 탓이라고 해도 좋아요. 독서를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인상이 강렬한 표지는 처음 봤거든요. 그게 나쁜 의미든, 좋은 의미든 간에 말이에요. 결국, <유지니아>를 읽는 동안, 십수 번씩은 다시 표지로 돌아가 저 소녀를 보고서 숨을 골라야 했어요. 독서가 한 발짝씩 진행될 때마다 저 소녀는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아릅답게도, 섬뜩하게도, 잔혹하게도, 추레하게도 보였습니다. 몇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그림에서 이만큼 복잡한 인상을 받은 기억은 전무해요.
앞서 <유지니아>가 이미지에 유난히 집착한다는 점에서도 여태껏 출간된 온다 리쿠의 소설들과도 궤를 달리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문체뿐만 아니라, 구성에서도 <유지니아>는 이질적이에요. 분명 온다 리쿠가 구성미에 공을 크게 들이는 작가인 것은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긴 하지만,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에 이어 <유지니아>까지,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최근의 온다 리쿠는 <굽이치는 강가에서>를 쓰던 그녀와 꽤나 달라보입니다. <굽이치는 강가에서>만 해도 플롯을 짜는 아이디어는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진실 또한 백 가지", 혹은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등에서 착상한 듯한 면모가 보이지만, 분명 후반에 근접할수록 '좀 더 순수한 진실'에 가까워졌어요. 뒤쪽의 정보가 앞쪽의 정보를 일부 부정하며 자리를 굳건히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구성이었죠. 하지만,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부터는 정말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에 무게를 실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예전보다 화자도 늘었고, 구성도 복잡해졌어요. 거짓말에 대한 거짓말,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굳이 규정을 하자면 메타픽션의 냄새가 짙어졌습니다. '메타픽션'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소리로 몰이해를 이해하는 척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게 아니에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을 읽으며 '진실/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뭉개버리고 시니컬한 투로 즐거워하는 온다 리쿠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리더니, 이번 <유지니아>를 읽을 땐 아예 인간 한 명의 존재를 싸그리 지워버리고,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지워버리며 놀려는 의도가 슬쩍 엿보이더군요. 온다 리쿠의 다른 소설이였다면 분명 주인공이자 화자였을 저 소녀는 결국 끝까지 단 한 번도 무대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건의 핵심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소녀는 매번 타인의 시선을 빌려 피상적이고 유동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이에요. 그러므로, 우스운 일이지만 <유지니아>엔 저 소녀가 없습니다. 표지의 저 소녀에게서 복잡한 인상을 받은 것 또한 다 이런 구성 탓일 겁니다.
그렇다고 <유지니아>에서 온다 리쿠의 냄새가 전혀 안 나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썩 신경을 쓴 시각적, 후각적, 촉각적 이미지 또한 그 사용법은 다분히 온다 리쿠다워 보입니다. 문체가 너무나 세세해서 당장 곧이곧대로 영상화되는 스타일 같진 않습니다. 각 이미지에 대응하여 독자들이 제각기 품고 있는 기억의 '핵'에 온다 리쿠가 '중성자'를 하나 삽입해 주는 식처럼 보여요. 그럼 그 '핵'은 독자들 제각기의 추억과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터져 나오겠지요. 뭐, 이젠 온다 리쿠 앞에 붙는 상투적 수식어가 됐지만,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칭호도 다 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쩌다 보니, 너무나도 많은 추측을 전제한 글이 돼버려서 감당이 잘 안 되는군요. 막상 써넣고 보니 걱정입니다. 하지만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나 <유지니아> 같은 온다 리쿠의 최근작을 대하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면 꽤 즐거워서 할 말도 많아지거든요. 누구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대하고 있던 거다"라고 환호하는 반면, 또 누구는 "온다 리쿠에게 점차 실망하고 있다"라고 투덜거리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데, 여하튼 뭔가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이란 소리겠지요. 저야, 열렬히 환호하고 있는 편에 속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