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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평점 :
생을 헐어 쓴 글의 힘
소설만이 아니라 산문도 그렇다.
위화의 산문은
그의 다른 일가이다.
신형철
지은이 위화는 1960년 중국에서 태어나 1983년 단편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 <인생>으로 확실하게 작가로서의 기반을 잡는다. 특히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 작품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중국의 국어 교과서에 실리고 매년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화라는 중국의 작가의 이름에 매료되었고,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사"라는 시적인 제목이 끌어 당기고, 신형철님의 추천사가 제대로 도장을 꾸욱!! 찍어버렸다.
글로 서술하는 작가들과 음으로 음악을 만드는 두 예술을 화성악처럼 겹겹이 쌓아 자신의 빛으로 분석해 나간 책이다. 흥미롭게 읽은 작가들의 책의 가치와 음악가들의 작품들을 예민하게 분석하고 써내려간 위화 작가는 언제부터 고전음악에 심취하게 되었을까?
음악과 소설을 서술적인 작품으로 이해하고 소설보다 음악의 서술에 신비한 체험을 함께 담았다. 예를 들면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교향곡>과 너새니얼 호선의 <주홍글자>를 대비시켜 서술의 클라이맥스에 대해 논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라며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작가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브루노 슐츠나 히구치 이치요가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지 짚어보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식으로 다채로운 변주를 펼친다.
보르헤스, 마르케스, 카프카, 볼가코프 , 매큐언 등 탁월한 작가는 물론 말러,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 위대한 작곡가까지 두루 이야기한다.
그의 놀라운 음악 세계와 함께 소설가들을 논하는 새롭고 방대한 글의 지평에 놀라며 읽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작가들의 이야기의 나열에 입이 떠억 벌어진다^^;;;
평소에 황현산님이나 신형철님의 깔끔한 문체를 선호하고 장석주님의 방대한 독서력을 추앙하는 것 못지않게 놀라운 충격과 대단한 존경심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음악 서술 속의 화성이 참 부럽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소리가 여러 악기에서 동시에 연주될 때면 그 소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얼마나 요원한지. 심지어 작곡가마다 달라서 슈베르트의 화성에서는 높낮이 다른 소리들이 서로에게 호의적이지만 메시앙의 화성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듯하다. 그리고 호의적이든 경쟁적이든 그들은 한데 어우러져 같은 방향으로 전진한다.
언어로 쓰인 작품에서는 개방성이 열독의 방식과 화성을 결정짓는다. 한꺼번에 연주되는 음표의 활기찬 움직임과 달리 글자는 한 줄 한 줄 조용하게 배열돼 있다. 그런데 독서는 겉으로만 조용해 보이지 사실은 거세게 일렁이는 물결같다. 이것이 바로 독서의 화성이다.
대조와 비교가 너무 멋스럽다. 하나하나 모든 문장이 명문들이라 필사를 다 하고싶어진다
독자는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과 느낌으로 책을 읽는다. 작품의 원뜻에 독자의 이런 느낌들과 연상을 더하면서 다채롭게 거듭난다. 이런 과정들을 음악의 화성으로 비유함이 탁월하다.
모르던 작가들에 대한 작품세계를 알게 되니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묻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포크너는 이런 작가이다. 그의 뛰어난 문장은 우리를 매혹하고 감탄시키는 동시에 그것들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근사한 문장들이 우리 삶과 별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시종일관 삶과 나란하고자 했고 문학이 삶보다 대단할 수 없음을 증명한 매우 드문 작가이다.
문학 속의 영향은 식물에게 쏟아지는 햇살같다. 식물은 햇살을 필요로 하지만 스스로 햇살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식물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자라나려 할 뿐이다. 작가의 창작도 이와 비슷하다. 다른 작가의 영향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견해 창작의 독립성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문학을 확장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제시한
독서의 네가지 방식
첫째는 내용을 아주 쉽게 체내로 흡수하고 아주 쉽게 내보내는 '스펀지'식 독서
둘째는 한권씩 연이어 읽지만 모래시계에서 한바탕 모래를 흘려보내는 것처럼 끝나는 '모래시계'식 독서
셋째는 폭넓게 읽은 뒤 머리에 단편적인 기억만 남는 '여과식' 독서
넷째는 자신도 혜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타인도 자기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찬란한 보석처럼 귀하고 드문'독서
네번째 독서가 되기위해 우리는 얼마나 깊은 독서을 해야할까.
저자는 음악에 심취하고 배워가면서 삶이 음악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음악의 서사를 알아가며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더욱 깊이있게 이해하게 되었나보다. 고전음악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어 자신 만의 색채로 글을 쓰고 화성을 완성해 가는 위화작가님의 산문은 보배같다. 배울 것이 많고 경이로움을 경험한 귀한 산문집이었다.
음악의 역사는 끝없는 심연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만 그 풍부함을
알 수 있고 경계가 없음을 느낄수 있다.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작가와
작품 뒤에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선율과 리듬이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p.238 음악이 내 글쓰기에 미친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