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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휴식과 이안을 줄 것 같은 제목을 보고 잔잔한 에세이집이려나 어렴풋이 생각했던 이 책은 '잠을 통한 변신'이라는 아늑한 환상을 쓴 장편 소설이었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시끄러운 소음과 복잡한 일들이 얽힌 세상을 살면서 평온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자신 만의 노력과 방법으로 힘든 과정을 겪다보니 안으로 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우울함과 열등감, 무기력, 애정 결핍 등에 맞는 약들을 복용하고 깊이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 정신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면?
책과 함께 이어 플러그가 사은품으로 도착했다.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보였지만 집에서 이걸 쓰게 될까?하고 한쪽에 밀어 두었다. 머잖아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딸의 친구들이 놀 장소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몰려왔다.
음,,, 도무지 글자가 안들어와서 요녀석을 꺼내 귀에 꽂으니 아주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쓸모가 있으니 상품으로 나오는 거겠지^^
오테사 모시테그는 <아일린>이라는 소설로 미국의 최고 젊은 작가 상과 헤밍웨이상을 수상한 작가였다. 2016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작까지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신랄하고 솔직한 성적인 묘사에 당혹스러웠다.
주인공은 외적인 조건만 보면 아름답고 똑똑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 내면은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에서 비롯된 삭막한 감정과 무기력함,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문제에 사로잡혀 자식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결국 암과 알콜의존으로 세상을 떠나고, 헤어지고도 집착의 대상이 된 애인에게 병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그녀 주위에는 진정한 공감과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자신의 의식과 정신을 비워내길 바라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을 쓴 소설이다.
약물을 통해 동면하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이 약물남용처럼 보이고,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이 장치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애타는 심정을 담았다.
"엄마와 예전처럼 대화할 수 없어. 정말 슬퍼. 버림받은 느낌이야. 정말, 정말 외로워."
"우린 모두 외로워, 리바."
나는 말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그녀도, 나도 외로웠다.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그저 너무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날 안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그거 한심한 거니?"
"애정을 갈구하는 거지." 나는 말했다.
"괴롭겠구나."
깨어 있는 동안은 주로 영화를 보는 주인공과 절친 리바의 대화에서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법은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에는 귀기울여 최선을 다해 위로하는 것을 본다. 어쩌면 혼자가 되어 힘든건 나이고, 애정을 갈구하며 약을 먹으며 버티는 건 나인데...
나도 위로받고 사랑받고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은데...
"일 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약이 자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암에 산 채로 잡아먹혔다. 어머니가 뇌사 상태로 병원에서 온갖 관을 꽂고 있는 모습도 나는 보았다.
삶은 연약하고 찰나이며 사람은 물론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만, 나는 온종일 자는 생활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죽음을 감수할 참이었다. "
죽음을 감수하면서 위험한 시도를 하는 주인공은 염세적이다. 또한 끊어내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문장이 자주 나온다.
'사랑'측면에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리바는 자주 '정착'에 대해 얘기했다. 내게는 그게 죽음처럼 들렸다.
"누군가의 입주창녀가 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어." 나는 리바에게 말했다. 그런데도 전 남자친구 트레버에 대한 로맨틱한 충동은 이따금 고개를 들었다.
결혼하고 안착하려는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사랑없는 관계가 너무 무모하고 회의적으로 다가왔다.
사랑받지 못했거나 상처가 너무 크거나,,
"해야 할 일도 없었고 대응하거나 보상할 일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 무엇도. 그런데 나는 그 무를 인식했다.
잠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깨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행복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잠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내 인생 전부가 가능한 최악의 방식으로 눈앞에서 번쩍거렸고, 보잘것 없는 모든 기억, 그때 그곳에 나를 있게 한 모든 사소한 일들이 내 정신을 가득채웠다.
나는 언제나 여전히 나였다."
닥터 터틀을 만나기 시작하고 평일밤에 열네다섯 시간씩 자고 주말에는 하루에 겨우 몇시간만 깨어있었다. 약물중독으로 인한 어둠, 현실과 꿈 사이의 흐릿한 상태, 음울하고 멍한 뇌안개 상태로 산다는 것,,,
잠을 자지 않으면 불안해서 약을 먹고 또 먹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다면, 반대로 깨어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두렵고 골치아플까도 생각해본다.
우울증 환자들이 잠을 자는 이유를 알 것같다. 잠으로 도망가는 일종의 회피이다.
이전의 나도 아이 학교 보내놓고 안그래도 어두운 1층 집에 커튼을 치고 오전내내 잠만 잤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거실의 커튼부터 걷어냈다.
어둠에 길든 사람은 어둠이 익숙해서 잘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롭거나 지루하거나 그리움을 느낄 때면 그 사진들을 훑어보며 그곳이 얼마나 시시한 곳인지-갈라진 계단, 물이 새는 지하실, 페인트가 벗어진 천장, 부서진 찬장-확인하며 역겨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면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모님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더라도 내게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그들은 친구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내게 위안이나 좋은 충고를 해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나를 거의 알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죽느라 바빴고 어머니는 자기답게 사느라 바빴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그게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나빠 보였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늘 술에 취한 어머니는 어떤 책임도 져주지 않았다. 유년기에 방치된 삶이 내내 그늘진 삶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언제나 영화속 환상처럼 현실에서는 마음을 두지 못하고 슬픔이 공기 중에 종일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다양해서 잠의 깊이에 따라 빠르기도 느리기도 했다. 나는 수도꼭지에서 받아 먹는 물맛에 아주 예민해졌다. 물이 때로는 뿌옜고 부드러운 광물질의 맛이 났다. 거품이 많고 역한 입냄새 같은 맛이 날 때도 있었다. 소파에 푹 쓰러진 채 나무바닥 위의 먼지가 외풍에 회오리처럼 밀려가는 모습을 숨죽이고 빤히 바라보는 나 자신을 문득 의식하고 살아있음을 잠시 기억한 뒤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난 슬픔에 압도당한 것 같아. 너무 힘들었거든. 하지만 어쩐지 아름답기도 해. 이렇게 슬프고 평온하게. 엄마가 돌아가시지 전에 뭐라고 했는지 아니?
'모두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되려고 너무 안달하지 마. 그냥 재미있게 살아' 그 말이 정말 와닿더라. '모두에게 인기 있는 사람.' 사실이거든. 난 정말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거든. 너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난 이만하면 괜찮다고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 지금 인생을, 그러니까, 나 혼자서 직면하게 된 일이 아마 내겐 이로울거야."
<친구 리바는 엄마와의 추억이라도 있었다>
"하늘은 희부옇고 내 귀를 때리는 바람의 거센 일렁임에 도시의 소음은 지워졌다. 그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렵기는 했다. 미친 짓이었다. 잠을 통해 새 인생으로 들어간다는 이 아이디어는.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의 깊은 영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계속 숲 속을 헤매고 있었던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동굴의 입구에 다가가고 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의 역한 냄새가 난다, 동굴에서 다시 빛으로 나오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 모든 세상이 다시 새로워지겠지."
엄마가 잠이 오지 않을 때 알려준 방법으로는
양을 세지말고 중요한 것을 세라는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을 대는 먹을 것 이름이나
대통령의 이름 꽃이름 등을 세었다.
이 부분이 그나마 따스한 부분이었다.
약물 중독에 빠진 고아가 된 주인공은 누구든 호감을 갖는 사람은 아니다. 사랑스럽고 자기 일을 잘하는, 누구가 좋아하는 캐릭터로서가 아닌 비호감형인 인물을 내세워 어두운 일면을 알고나면 응원하며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나는 기분이 든다.
반쯤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는 글들 속에서 염세적이지만 세상의 고요함을 위해 나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잠을 자는 해로 만든다는 발상이 특이했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는 지금, 그렇다고 약물에 의지하는 방법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시도한 주인공은 그만큼 다급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글들은 섬세하고 진솔해서 인용하고 필사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처음엔 읽히지 않고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드러내놓고 아파할 수 없는 젊은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게 느껴졌다.
결국 알약을 먹고 사흘간 잠을 자고 , 일어나서 피자 한조각과 물에 약을 먹고 또 사흘간의 잠을 자는 반복이 몇달간 지속된다.
그런 휴식기를 갖고 나서 세상은 달라졌을까?
나는 원하는 새로움을 장착하고 눈을 떴을까?
여전히 그대로인 나와 여전히 그대로인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