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번역본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타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나의 경험이 
또 한차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한국에 계신 사랑하는 부모님과 자매들과의 
소중한 추억들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한국의 시시콜콜한 풍경들도 
이렇게 마음껏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더없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써준 미셸 자우너에게 
독자로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장담컨대 이 책덕분에 저자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 독자의 반짝이는 추억들도 
덩달아 발굴돼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언어 장벽 때문에 자우너가 한
국 혈육인 나미 이모에게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장면이 각별히 기억에 남는다. 
미흡한 번역으로나마 한국에 사시는 저자의 이모께 
부디 그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어서 
내가 저자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면 더바랄 게 없다.
2022년 2월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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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가 남긴 표식을 단서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오롯이 내 숙제가 되었다. 
이 얼마나 돌고 도는 인생인지, 
또 얼마나 달콤쌉싸름한 일인지. 
자식이 엄마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이, 
한 주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 보관인을 기록하는 일이.

나는 발효가 통제된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는 놔두면곰팡이가 피고 부패한다. 썩어 못 먹게 된다. 하지만 배추를소금에 절여두면 부패 과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당이 분해되면서 젖산을 만들어내 배추가 썩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나와 절임이 산성화된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질감이 변하고, 톡 쏘는 새콤새콤한 맛이 나게 된다. 요컨대 발효는 시간 속에 존재해 변화한다. 그러니 발효가완전히 통제된 죽음인 건 아니다. 사실상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거니까.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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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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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손바닥을 쫙 펴서 
거기에 상추 한 장을 올려놓고 
내 식대로 음식을 착착 쌓았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 한 조각, 
따끈한 밥 한 숟가락, 쌈장 약간 
얇게 저민생마늘 한 조각을 차례차례로 그런 다음 
그걸 얌전하게 오므려 입에 쏙 집어넣고는 
눈을 감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몇 달 동안 집밥에 굶주린 내 혀와 위는
그제야 깊은만족감을 되찾았다. 
밥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재회였다.
솥에서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은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가 기숙사에서 생존을 위해 먹던 
찐득한 즉석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엄마는 내 반응을 살피려고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맛있어?" 
엄마는 김봉지를 뜯어 내 밥그릇 옆에 놓았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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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좋아하는걸 평소에 잘 봐두었다

그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편안하게
배려받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식이었다. 
엄마는 누군가 찌개를 먹을 때 국물이 
많은 걸 좋아하는지, 매운 걸 잘 못 먹는지,
토마토를 싫어하는지, 해산물을 안 먹는지, 
먹는 양이 많은 편인지 어떤지를 
시시콜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제일 먼저 무슨 반찬 접시를 싹 비우는지를 
기억해뒀다가 다음번엔 그 반찬을
접시가 넘치도록 담뿍 담아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갖가지 다른 음식과 함께 내어놓는사람이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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