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군 어른을 일으키기 위해, 
집안 모두의 기원문이 필요하다고 하십시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것도요. 
그래서 우리가 쓴 기원문을 
각자 베끼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기원문에는 
모양이 비슷하여 사람들이 
잘못 쓰곤 하는 글자들이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과 부, 우와 석石, 
미와 말末, 토와 사±, 
오와우, 이와 기. 
일단은 기원문에 쓰여도 이상하지 않은 글자들로 골라봤습니다만."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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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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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자은의 낡고 장식 없는 상자들 안에는 
경전과 다른 책들이 들어 있었다. 
짐을싸는 동안 고작 이 종이 묶음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나 싶을 때도 있었고,
 한 권 한 권이 소중해서 품에 품고 
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상자 틈을 풀로 메우긴 했지만 그래도 
바닷물이 닿지 않도록 적당한 곳에 두었다.
"무겁네요. 뭐가 들었습니까?"
나르는 걸 도와준 선원이 허리를 펴며 물었다.
"다 책이오."
젊고 쾌활해 보이는 짐꾼에게 다른 의도는 없어 보였지만,
자은은 한 손으로 아직 잠그지 않은 상자를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귀중한 사람에게만 귀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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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그런 나를, 생판남인 주제에 친자식보다 더 자식 같았던 학수가 아버지처럼 무심한 눈으로,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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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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