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 석굴 중수 상동문


바라옵나니 상량 후에 불일(佛日)은 더욱 살아 빛나고, 
도량(道場)은 갈수록 무게를더하소서.
낭원(苑)이 하늘높이 우뚝함은 신중(神衆)이
자비로 보호한 것이요,
금강(金剛)이 하늘가에 거꾸로 섬은 선려(呂)가
지성으로 공양(供養)을 올렸기 때문이다.
경을 읽어 뜻을 보는 성사(聖士)는
마음을 기울여 힘써 배우고,
열반(淫樂)을 찾아 진실을 구하는
원인(願人)은 읊조리며 흥돋운다.
이로써 법륜(法輪)은 항상 구르고,
향해(香海)는 길이 맑으리라.
성상즉조(聖上即) 이십팔년 (1891년)신묘(卯)사월
(四月)조선국(朝鮮國)영좌(黃左)경주부(慶州府) 동해상(東海上) 구지산거사(九山居士)
손영기(孫永善) 지음.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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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본존 아미타여래좌상

신라의 성인인 의상조사는 677년 문무대왕의 명을 받들어 부석사를 신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태백산에 창건했는데, 그 본당에는 아미타불오직 한 분만을 본존으로 봉안하고 있다. 불상의 양식에서 그리고 그 배치법에서 석굴암과 너무나 같은데, 이 사실 또한 그 시대의 방식과 믿음을오늘에 전해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략 위의 몇 가지 이유에서 이곳 본존의 명호는 봉안 당초부터 아미타불 곧 무량수불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쪽에서 들어와 반드시 서쪽을 향해 대불에 예불하고 있다. 상기한 부석사에서는 남에서 들어와 90도 몸을 서쪽으로 돌려 서쪽간에 봉안된 본존에 예배한다. 그러므로 동방불이 아니라 모두 서방불을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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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영 글
안장헌 사진

석굴암은 옛 기록에도 표현하고 있듯이,
‘돌로써 비단을 짜는 것과 같이 감실을 조성한 것이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건축상의 큰 특색으로크고 작은 각 모양의 화강암을 재료로 삼아이와같이 우미하게 석굴을 조성한 예가일찌기 없던 일을 비유한 말이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은모두 자연의 암벽을 뚫어서 내부공간을 만들었고,
또 긴 세월에 걸쳐서 같은 장소에여러 개의 석굴을 완성한 것들이다.
이와 반대로, 석굴암은 자연암벽을 직접 뚫은 것이 아니라크고 작은 석재로써 차례로 쌓아올려인공적으로 석굴을 조립하였다.
바로 이 점이 석굴암 건축상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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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봉토 위에 기와를 얹은 모습, 1910년경 수리 전






특히 석굴의 정상부는 처음부터 전면에 기와를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중략)
금세기초까지도 전실이 남아 있어서, 일정 초기의 대규모 중수 직전까지도 볼 수가 있었다. 지난번 공사 기간중 공사 현장을 찾은 인근 부락의 노인들은 공사 현장에 이르러 새로운 전실을 보고, 옛날에 그들이 보았던 집보다 한층 훌륭하게 지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 석굴이 천 수백년 동안 거친 주변의 자연환경 속에서 버텨온 것은 그 앞에 목조건물이
보호해 준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제 때 수리하면서 이같은 원형을따르지 않았고, 전실의 존재를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복원하지 않았으며,석굴의 전면을 개방해서 그대로 외부에 노출시켜 온 것이 석굴에 가장 큰타격을 준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 석굴은 이같이 그 앞에 예불과 공양을 위한 전실 구조가 딸려 있어서 그 석감 속 깊이 마련된 본존을비롯한 석굴 봉안의 보살·천부·나한 그리고 신장상들이 보존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실과 석굴 사이의 아치 입구에는 또 나무 문짝이마련돼 있어 이중으로 석굴 내부를 보호하도록 돼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져, 옛 사람의 주도한 용의는 우리로 하여금 깊은 감명을 느끼게 한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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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자에서 바라는 것은 석굴 그 자체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관심의 지속이라고 하겠다.

머리말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 안 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 高裕燮(고유섭) 1934년 10월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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