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그런 나를, 생판남인 주제에 친자식보다 더 자식 같았던 학수가 아버지처럼 무심한 눈으로,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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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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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로 뻗어 있는 신작로를 보았다.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며 
성장기의 나는 먼 데서 기적이 울릴 때마다 
그 기차가 가닿을 서울을 꿈꾸었다.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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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언니는 말을 참 예쁘게도 한다.
내가 저런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지금쯤 정교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 말에는 칼이 숨어 있다.
 그런 말을 나는어디서 배웠을까?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사이 
나는 말 속의 칼을 갈며 견뎌냈는지도 모르겠다.
"나가 자네 속을 모리겄능가. 고맙네이. 참말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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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되었다. 사회주의자로서의 아버지는 
제법 근사할때도 있었으나
 농부로서의 아버지는 젬병이었다. 
사회주의자답게 의식만 앞선 농부였다.
 아버지는 일삼아 새농민을 탐독했고
 새농민의 정보에 따라
 파종을 하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농사를
‘문자농사‘라 일축했다.

"새농민이 원제 김을 매라고 하면 
풀이 암만, 허고 그때꺼정 잘도 지둘레주겄소. 
새농민이 뭐라거나 말거나 
풀이 나먼 난 대로 뽑아야제, 
워디 농사가 문자로 지어진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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