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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꿇는다 - 김정숙 시집
김정숙 지음 / 책나물 / 2021년 6월
평점 :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끓는다』 서평
직지문학상을 수상한 김정숙 작가님의 첫 시집 『햇살은 물에 들기 전 무릎을 끓는다』를 서평단 선정이 되면서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시집을 접했을 때는 문보영 시인의 추천사가 책 뒤편에 실려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아주 자신의 삶을 흠씬 깊이 있는 정조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추천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의 솔직함에, 상상력에,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넉넉하고 강인한 마음에 놀란다.” 이 말이 박혔습니다. 왜 이 말에 집중이 되었을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롯이 살기에도 수십 년간 살아왔던 삶의 시간, 순간들이 모여 그녀의 시로 이끌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특히나 이 책이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바로 10여 년간 편집자로 일했던 딸과 수십 년 시인으로 살아왔던 시인이자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직접 출판사를 차려 ‘책나물’이라는 아주 정겨운 이름이 돋보이고, 어머니를 향한 마음도 따뜻하게 다가 왔습니다. 시인에게는 첫 시집 역시 그동안 모은 시편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했을지 선연히 나타나 보였습니다. 시는문학의 한 장르로서 기능도 하지만,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마음의 중심을 들여다보게 하는 한 편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마음에 투영되었던 시 2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쓰레기
밟힐수록 파닥거리며
꼭꼭 눌러도 꺾이지 않을
날개를 달고
거리에 나선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간간이 묻어나는
역한 비린내 얼른 털고
바람으로 온몸을 헹군다
아침을 열고 떠나야 하는 길모퉁이
달리는 차에도 겁 없이 올라탄다
다져질 대로 다져진
서글픔은 이미
먼지기 되어 부서져 내렸고
새로운 생성을 위하여
사력을 향해 달려본다
30쪽에 있는 <쓰레기>라는 시는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흔한 대상의 물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쓰레기는 우리의 삶과 인간의 삶 역시 닮아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게 됩니다. 사람은 가능성의 존재로서 모든 일을 수행합니다. 회사나 기관에서 소속된 사람들은 소속감을 갖고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라도 때로는 수많은 일들에 사로잡혀 하나의 존재를 뭉개버리거나 대상화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고, 쉽게 회복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쓰레기가 가진 특성인 쓸모없음으로 치환되어 버리면 우리의 존재를 잃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그만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회복해야 할까요? 이 시를 읽으면서 여러 감상과 생각이 듭니다.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찾아가고, 자신이 의미 있는 바를 하나의 행위를 통해서 점점 인식해가면 그 중심을 회복해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치
검은 엿처럼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늪에 빠진 여치
모시고 나와 방생하니
외할머니 모시옷 닮은 여치의 날개에서
비파 소리 난다
풀밭이 술렁거린다
두 번째 시는 <여치>라는 시입니다. 여치는 농촌이나 시골 고향집에 내려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곤충입니다. 여치는 메뚜기 과의 종류입니다. 그래서 흔히 메뚜기와 여치를 닮아서 쉽게 혼동하기도 합니다. 저도 어릴 때 살던 고향집은 뒤에 숲이 있어 여치가 아주 많이 있어서 잡고 놓아주기도 했어요. 이 시를 읽으면 여치를 통해서 자신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치가 내는 소리를 외할머니의 모시옷과 닮았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도 재밌는 표현임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저에게도 할머니, 외할머니에게는 정말 오랜 시간 같이 살기도 하고 정을 나누던 가족 구성원의 한 존재였습니다. 깊은 정과 사랑을 나누어 주시고 만들어 주신 음식이며, 할머니를 따라 구경 간 절의 풍경 등 다양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시인도 그러했겠죠? 어딘가를 가서 들었던 소리가 외할머니의 모시옷으로 떠올렸을 것 같아요. 왠지 짧은 시에서 더욱 진한 여운을 느끼는 것은 저만 그런 것은 아니죠? ^^ 감각의 전이는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법 같은 효과를 냅니다. 삶은 늘 최선을 다해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아쉬움도 가득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의 삶을 온전하게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과 경험들이 체화되어 녹아진 시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피어나는 그 물결에 자연스레 휩쓸리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시’란 한 편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으로 스며들게 합니다. 시인이 들려주는 작은 시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주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