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2 20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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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월호>에 대한 단상 。◕‿◕ 。


위선이 무법보다 낫다?는 표제와 폴란드 영화 ‘The Two Mr.N’의 불가리아 포스터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매거진이다. 


요즘 출판계는 그리 녹록한 분위기가 아니다. 

제작비는 자꾸 오르고 시장 회전율은 심각하게 좋지 않다. 게다가 구매 독자의 눈은 자꾸 높아지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디자인이나 재질면에서 책을 적당히 만들수도 없다.

권두에  성일권 발행인이 한  이야기가 너무 와 닿는다. 

"정치인의 후원금 받는 용도로 쓰이는 책 때문에 종잇값이 오른다. 출판 기념회를 위해 급조해 만든 책보다는 각자의 정치철학에 맞는 기존의 책을 구매해서 건네는 것은 어떨까."

일만배 공감하는 말이다..

 

이번 2월호도 이전 못지 않게 읽을 거리가 많았다.

책을 받자마자 나의 눈길을 끌었던 페리 앤더슨의 글 '서구 강대국이 만든 국제법의 위선'에서 국제법의 위선을 확인하며 고구마를 한입에 밀어 넣은 듯 답답함을 느껴졌다. 

국가 간 인정관계를 전제로 보편적 당위의 형식적 측면과 인륜의 내용적 측면이 필요하지만 국제법은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멋대로 모양 지어진다. 

강대국은 국제법을 위반해도 책임은 커녕 당연하게 자신의 입장에서 법해석을 한다. 부자와 빈자에게 다른 법이 적용되는 이런 형상을 보면 현실적인 시각에서 국제법은 실제로 국제적이지도 한고 실질적이지도 않은 괴상한 법이다. 국제관계를 개별 주권 국가들의 대립적이며 적대적인 관계로만 보지 않고, 인륜의 관점에서 그들의 상호 인정과 연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지만 국제법에서는 강대국의 입김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국제법 옹호자들은 ‘위선이란 악이 미덕에 바치는 경의’라는 라로슈쿠토의 말을 인용하며 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태보다는 남용되는 법이라도 없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지만 위선이란 악의적인 의도를 감추기 위한 가짜 미덕이다.


윌 세르게이 페디우닌 & 엘린 리샤르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식민지전쟁인가?'와 레일라 쇠라의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주도권을 노리는 하마스', 샤를 앙데르랭의 '이스라엘의 전략적 오류'에서는 지금 진행중인 전쟁과 분쟁에 대한 또다른 층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적 지역적 사회적 층위는 사건을 다방면으로 고찰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특히 릴리아 샤바가나 라일라 사와, 조 틸슨의 작품이 삽화로 제시되어 텍스트외애 또 다른 시각적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누군가는 동상에서 물리적인 형태만을 보지먼 다른 누군가는 그 안의 상징적인 의미를 읽어낸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라는 말처럼 현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각자의 몫이고 다층적으로 보아낼 수 있는 시각도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세상을 얼마나 다각도로 비판할 수 있는지, 내 앞의 정보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이 나의 위치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장제스가 영웅인지 독재자인지, 말리 투아레그족의 장기간의 반란의 결과는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지역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는지, 프랑스 인구의 1/10에 불과한 불가리아에서 프랑스 버금가는 민간 경비산업 종사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 흥미로운 시선의 글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오늘날 사회는 과거의 절대적인 사회와는 다르다. 

피라미드나 다이아몬드의 꾝지점에 절대적인 갑이 존재하던 시대는 사라졌다. 갑과 을의 위치가 여러가지 기준으로 전환이 빈번하개 일어나고, 갑이라는 계층 안에서고 또다른 갑과 을이 존재한다. 

이런 무한 경쟁의 시대에 나는 어떤 위치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인가? 이 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하나의 돌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𖦹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는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lediplo.kr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르몽드 #세계를여는창 #국제법의위선 #분쟁을보는시각 #내가사는세상보기 #진실만을말하라 #진실을간파하는눈 #새로운세상은가능하다 #책추천 #정기구독추천 #홍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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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1 202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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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말고 다름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이나 가치관을 나만의 잣대로 재기 전에 그것을 존중하는 눈으로 보아야 한다. 각 개체의 다름이 사회를 다원화시키고 발전시키기 때문에 문화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수용되면 안 되는 차이가 있고 인정될 수 없는 가치관도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비판의 기술이 필요하다. 오늘날은 길동이처럼 아비를 아비라 하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옳고 자신의 신념이 담긴 용기있는 비판은 누구에게나 허용되고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국제관계 전문 시사지이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라는 모토의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인 디플로마티크는 다양한 시선과 참신한 비판으로 읽는 재미를 주고 작가들의 작업을 이미지로 사용하여 보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다.

이번 1월호는 릴리아 샤바가의 <초현실적 콜라주 연작의 한 작품이 표지에 실려있다.

러시아vs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vs이스라엘의 가시적인 전쟁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비가시적 충돌을 읽으며 그 어느 시기보다 불안한 현실을 감각했다.

엘렌 리사르의 우크라이나의 전쟁 회의론과 알렉세이 사킨의 러시아, 전쟁옹호라는 신기루를 보면 길어진 전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이들의 삶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전쟁의 적은 상대 국가 뿐 아니라 자국의 정부까지 포함된다. 외부의 적으로 내부의 단결을 만들기 보다는 내부의 여러 적을 양산하는 꼴이 되었다. 불안한 시류는 세계 곳곳에 확산되고 이것에 대한 해결을 과거의 방식으로 하려 하는 그들의 모습은 제자리에서 같은 역사를 반복해서 돌리는 햄스터처럼 보였다.

비단 전쟁하는 국가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 여름 폭우로 드러난 프랑스의 센강 수영 사기극이나 부패한 에이전트 때문에 지저분해진 벨기에 축구, 코로나로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이상하게 변질된 직업군, 분노할 힘을 잃어버린 청년들 등 사회의 여러 민낯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직면한 현실에 순응해야 하고 있는 것인지, 대항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대세인 힘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옳다고 하는 정의를 따라야 하는 것인지를 다시금 되짚게 되었다.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나오는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이라는 구절처럼 그런 부끄러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good point

1) 다양한 필진이 쓴 독특한 시선의 글

2) 매 기사에 삽입된 예술가의 작품

3) 읽기 편한 서채와 줄 간격

4)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와 빛 반사가 없는 종이

 

@lediplo.kr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시사잡지 #다양한시선 #르몽드

<리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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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16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즐겨 읽었던 김광규 시인의 시가 소개되다니, 반갑네요.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정영목 지음 / 소요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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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목 선생님의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

여리여리한 표지에 끌려 책장을 넘겼다가 묵직하고 강렬한 울림으로 책장을 덮은 책!

지금 국현미 덕수궁관에서 하는 전시<<가장 진지한 고백:장욱진 회고전>>을 보고 나온 사람은 누구나 장욱진 작가에게 감동을 느낄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미술 애호가가 아님에도 약속 전에 잠깐의 여유가 있어서 장욱진 전시를 보러 갔다가 너무 좋아 중간에 나올 수가 없어서 약속을 취소하고 2시간 넘게 전시를 보았다고 한다.(그가 약속을 취소한 것은 안타깝지만 내가 이 전시는 꼭 봐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보람이 있었다:))

그만큼 그의 작업은 누가 보아도 끌리고 처음 보고 또 볼수록 끌린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나는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이 말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남았기에 그의 그림 속에서 장욱진이라는 사람의 이 모습 저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저 좋다거나 그 안에서 작가가 보인다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 안에 어떤 것이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무언가를 늘 놓치는 듯했다.

이번에 <..>을 읽으면서 내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을 찾았고 체계적으로 그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장을 읽으며 짚어본 몇 가지

bon point 1_ 종이

미술책을 보는 사람들은 안다. 종이가 무광이면 도판이 그지같고 종이가 유광이면 번뜩임 때문에 글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도판의 색감을 충분히 살리면서 번뜩임도 없는 접점을 잘 찾아냈다.

 

bon point 2_ 제본

책장이 쫘악 펼쳐지는 사철제본은 책장 넘김을 쉽게 하고 책의 양면이 한눈에 들어와서 가독력이 상당히 좋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한땀 한땀노력으로 공 들인다는 것인데 이 책이야말로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만든 것 같이 느껴진다.

 

bon point 3_ 말투

이 책은 문어체 형태의 나열로 텍스트를 구성한 것이 아니라 구어체가 배어있다. 가령, ‘실로 미술도 사람의 일이라 사람이 그림보다 앞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p41) 라는 부분처럼 작가에 대한 정보를 문헌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구술을 듣는 듯해서 좋다.

 

bon point 4_ 구성

작품을 분석해 주고 작품들을 이어서 보게 만든 구성이 흥미로웠다. ‘작은 그림, 큰 주제부분에서 장욱진 그림을 여러 구도로 보여주며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설명한다. 프레임으로 설명한 후 그 작품들을 뒷부분에 연이어 실어 놓아 작품 속에서 느껴보게 하는 방식이 독자에게 유용한 부분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각주가 페이지 아래에 실리는데 이 책은 페이지 좌측에 실려 색다른 느낌이 든다.

 

bon point 5_ 노력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노력이 보이는 부분들이 많다. 다양한 문헌을 찾아 적절하게 인용하고, 책에 실린 도판의 캡션을 소장처까지 찾아 그것이 실린 페이지를 명시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부분, 가독력 좋은 서체와 크기를 보면 세심한 노력과 정성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un point regrettable

약간의 조사 오류(이건 내가 텍스트에 민감한 탓;;;)나 표지의 연약함이 아쉬운 부분이다. 처음 나에게 올 때에도 한 귀퉁이가 긁혀서 온 이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처가 벌어지고 내 손이 닿을 때마다 손때가 물씬물씬 묻어난다.(분명히 손을 깨끗이 씻고 책을 보는데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책장에 고이 꽂아두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쁘다.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을 안 봐도 장욱진 작품을 느낄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그에 대한 깊은 매력과 울림을 느낄 수 있다. 그 매력을 보게 되고 그 울림을 듣게 되면 벅찬 짜릿함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게 될 것이다.

그리는 행위의 집중과 반복으로 몰입의 어느 순간 흰 캔버스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의도하지 않은 어떤 그림이 만들어지면 내가 그림인지 그림이 나인지자연과 나와 그림의 일체감이 찾아올 때 작가의 가슴은 뛴다.’ (p237)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그리는 행위의 집중과 반복으로 몰입의 어느 순간 ’흰 캔버스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의도하지 않은 어떤 그림이 만들어지면 ’내가 그림인지 그림이 나인지‘ 자연과 나와 그림의 일체감이 찾아올 때 작가의 가슴은 뛴다.’ (p237)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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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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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건축가의 이전 저서보다 읽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어떤 리뷰를 할지 고민도 많았던 책이다.

이 책은 저자에게 의미있게 다가온 30개의 건축물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소개한다. 건축 공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주의 하나이다. 얼마 전에 인간에게 의식주가 결핍된 상황에서 '식'의 중요함을 이야기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인간의 흔적을 가장 장 보여주는 것이 '주' 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물은 인간의 추상적 생각이 물질적인 것들이 만나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창조의 결정체이다. 다른 예술 영역과는 달리 많은 자본이 드는 만큼 쉽게 시도할 수 없고, 그만큼 신중한 결과물이자 반영체이다. 

우리는 건축물을 통해 그 당시의 세상을 추리하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주변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기술, 사회시스템 등을 접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건축 작품들은 하나같이 생각의 대전환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이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사람 들의 흔적이다. 별생각 없이 조상이 하던 대로 따라 짓던 건축가가 아닌, 수 백 년 된 전통을 뒤집거나 비트는 혁명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건축가들은 벽, 창문, 문, 계단 등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 혁명가들이고 대중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철학자들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최초로 그림자를 그린 마사초의 그림, 바라보고 느끼는 대로 그린 세잔의 사과 그림, 2차원 평면에 4차원 시 간의 영역을 포함한 피카소의 그림처럼 건축에서 새로룬 시대를 열었다고 할 만한 작품을 모아봤다.' p9-10 


스위스 발스 스파 부분에서 저자는 땅과 물에 대한 깊은 인식을 유도한다. 목욕을 하는 공간이나 물이 흘러가는 길은 로마나 폼페이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자주 보며 흥미를 가졌던 공간이다. 발스 스파에서는 단순히 목욕한다는 느낌보다 내 몸을 감싸는 물의 촉감이나 눈으로 봉 수 있는 물의 움직임이 새로운 감각을 깨어나게 한다. 냉탕에 들어가면 물속에서 조명된 욕조 물 안에 파란색 꽃잎들이 소용돌이친다. 물은 온도를 시각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온도가 더 차갑게 느껴진다. 온탕에는 빨간 꽃잎이 휘몰아쳐 실제의 뜨거움을 배가 시킨다. 스파의 공간이 어둡기 때문에 민감해진 우리가 느끼는 감각치를 조명으로 확장시킨다. 공간은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인간과 함께 숨을 쉰다.   


'자연과 하나 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의 자연을 잘 이해해 야 한다. 그가 얼마나 자연 환경을 잘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낙수장’은 라이트가 말년에 인생 역전을 이루는 계기가 된 재기작이다. 그는 경력 초기에 일찍이 성공했다. 그러다가 당대에는 허용되기 힘든 이혼을 하고 재혼했는데, 부인과 자녀가 집에서 일하는 일꾼에게 살해당하고 집이 방화로 소진되는 일을 겪게 된다. 그가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는 미국에 대공황이 닥쳐서 경력 이 단절되었다.'p272 


그가 생계를 위해 운영하던 건축학교에서 재력가의 아들을 만나 폭포 위에 자연과 하나인 것 같은 낙수장이 만들어졌다. 마치 자연스러운 폭포와 물길처럼 보이는 낙수장은 그의 건축적 고집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콘크리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재료를 그 지역에서 가져왔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을 집의 일부로 만들어 사용했다. 거실에서 강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을 정도이니. 모든 방에 테라스를 두어 사적인 공간을 자연과 맞닿게 만들었다. 물론 물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자연 그대로를 옮겨놓은 아주 멋진 결과물이다. 


예전에 <알쓸신잡>을 보았을 때 그 기획의 신박함에 무릎을 친 적이 있다. 하나의 소재를 놓고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신기하게도 너무나 잘 어우러져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도 내가 가보았던 그 공간이 또다른 이야기로 풀어져 있어서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받을 수 있었다. 각 영역의 친구들과 알쓸신잡과 같은 모임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동안 유현준 건축가의 책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었고 공간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넓힐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내 주변의 공간에서 내가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조만간 책에서 이야기한 장소 하나하나를 마음맞는 지인과 찾아가는 소소한 투어를 하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도서협찬 #인문 #건축 #유현준건축가 #셜록현준 #책추천 #베스트셀러 #이책어때 #공간을생각하게하는 #그곳에가고싶게하는 #상상력을자극하는 #을유문화사 #홍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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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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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라이언 무어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오랫동안 곱씹었다. 주디스 헌의 인생 그리고 나의 인생에 대해서.

그래서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망설여 한동안 머뭇거리기만 했다. ('')


주디스 헌의 인생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일지도.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인 주디스 헌.

이기적이고 노망 든 이모를 보살피느라 자신의 청춘을 다 보내고, 이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렇다 할 직업도, 외모도, 친구도 그 어느 것도 없다. :-(

주디스 헌은 새 하숙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모의 사진을 끼워 놓은 은색 액자를 먼저 꺼냈다. 그 슬펐던 장례식장 날 이후로, 그녀가 살았던 그 모든 단칸방에서, 이모의 사진을 위한 자리는 항상 벽난로 선반 위였다. 막 이모의 사진을 선반에 올려놓고 보니 오늘따라 사진 속 이모의 근엄한 눈빛 어딘가에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삐걱거리는 침대 스프링과 허름한 가구, 그리고 이 하숙집이 자리한 지역의 황폐한 분위기는 주디스에게 온갖 불안을 가져다 주었고, 이모도 그 불안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p11)

브라이언 무어의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은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 새로운 하숙집으로 이사를 간 주디스는 하숙집 주인의 오빠이자 제임스 매든에게 반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모습을 진정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서로의 환상에 의한 것이다.

주디스는 호텔 도어맨 매든을 호텔 사업가로 착각했고, 매든은 주디스를 부자라고 오해했다.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보았고, 행복한 상상을 하며 관계를 시작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좌절한다.

그저 통속적이고 흔하디 흔한 이야기이지만 작품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심리적 긴장감은 작품을 중간에 놓아버리지 못하게 한다.

주디스 헌은 인간적이고 착하지만 아주 미워서 읽는 내내 목구멍의 가시처럼 불편하게 하는 묘한 캐릭터이다. 공상에 빠지기 일쑤이고 알코올 중독자라고 할 만큼 술을 마신다. 자신의 감정, 특히 시기나 증오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발시키곤 한다.

몸을 떨며 침대에서 내려온 주디스는 트렁크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긴 손가락으로 병의 봉인을 긁었고, 손톱을 부러뜨렸고, 초조하게 마개를 잡아당겼다. 봉인 조각이 바닥에 흩어진 뒤, 코르크 마개가 침대 옆 탁자 위에 거구로 떨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그건 퍽 현명한 습관이었다. 옷을 늦게 갈아입다보면 종종 까먹고 그냥 잠들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옷과 가운을 입은 가녀는 조용히 난로 옆에 앉았다. 몸은 여전히 조금씩 떨렸다. 하지만 분노에 떠밀린 그녀는 감정에 충실해지고 싶었다. 값싼 위스키병이 술잔 가장자리를 통통 건드렸다. 그녀는 긴 손가락 두 개로 술을 따른 뒤 의자에 몸은 끼웠다. 노란 액체가 잔 속에 천천히 맴돌았다. 향이 풍부하고 기름진, 만족으로 이끄는 이 열쇠, 그녀는 단숨에 삼켰다. 배 속에 데워지며 술기운이 서서히 몸에 퍼졌다. 떨리는 손이 가라앉았고,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세상 하나 뿐인 연인, 그녀는 손을 뻗어 잔 가득 술을 따랐다.’(P190-191)

그녀를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도 그리고 독자들도... 아무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고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자꾸 주디스에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가고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읽어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다가오는 불편함은 이 소설의 작가에게서 유발된다.

작가가 사용한 3인칭의 전지적 시점과 인물들의 내면 독백을 오가는 서술은 인물들의 상황을 더 멀고 안타깝게 느끼게 된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편견으로 가득한 인물이고 그들의 주관적인 속마음과 차가운 현실을 대비시킨다.

주디스가 진실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닐 가족의 집을 방문했을 때처럼, 우리에게는 진정한 관계는 없다. 다만 내가 그렇다고 생각할 뿐. 그 사람을 끝까지 믿는다던지 이해하는 것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라는 말처럼 지금 나와 관계가 좋아 보이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믿을 뿐이다. 주디스가 그런 것처럼.

입구로 향한 그녀는 결심이 서지 않는 듯 그 앞에서 망

설였다. 정말 컴컴하네.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아. 지난번에는 어느 꼬마에게 심부름을 시켰었다. 하지만 그 때는 낮이었다. 그래도 난 사 가야해. 이렇게 멀리 왔는데.’(P294) 나의 삶처럼 매순간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외로워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지만 또다시 좌절하는 주디스의 이야기는 쉽게 이렇다고 규정지을 수가 없다. 너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는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묵직한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주디 그런 생각 말아요. 그리고 지금이 힘들다고 해서 앞으로도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도 말아요. , 아재 호텔로 가소 좀 눕는 게 어때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꺼예요. 명심해요. 하느님께선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셨다는 걸요.”’(P395) 그 당사자가 되지 못하면 아무도 모른다. 그 상황에 대해서, 그 감정에 대해서.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상대를 위로하고 위안의 말을 던져 내 눈앞에서 그를 밀어버리려고 한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진정한 위로를 찾으러 다닐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작가는 지나치게 리얼하게, 냉정하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가슴 아팠고 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던 책이다. 지금 다시 읽으면서 주디스 헌을, 그들을, 그리고 나를 다시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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