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 알고리즘 - AI 시대에도 결코 대체되지 않는 창조적 사고법
박종규.곽병열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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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디슨은 그가 만든 수 많은 발명품 보다 그것들을 만들기까지의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도전과 끈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있다. 에디소니언 어프로치(Edisonian Approach)라는 말인데 그가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다는 사실과 그 시도와 실패의 과정을 거쳤기에 인류역사를 바꾼

수 많은 발명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의미의 단어이다. 저자는 에디슨의 사고에

기반하여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정 자체의 알고리즘에 주목하길 권하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중요함을 이야기하며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실패를 어떻게 다른 시도로 연결하는지의

과정은 여전의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음 역설한다.




에디슨의 실패는 하나의 과장이 불과하다. 그는 실패의 순간을 통해 그것이 안되는

이유 하나를 더 발견한 것으로 생각했다. 소모적인 시행착오의 순간을 현장의 경험을

앞세우는 상향식 접근법을 통해 샌산적인 실패로 만들어 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장애는 극복래야 할 대상이 아닌 인정하고 받아들일 동반자였고 그는 자신의 청각

장애를 세상의 소리에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삼는다. 저자는 여기에서 AI가 쏟아 내는 정형화되고 도식화 된 답이 아닌

인간의 감성과 감각이 동반된 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결과와

성과에 매몰된 우리는 과정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다. 아무리 좋은 결과물도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와 반복된 시도를 통해 창조되는 것이다. 지금

에디슨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결과만을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니라 ‘과정의

설계자’였기 때문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단 하나인 과정을 설계하는 인간의 알고리즘은 Ai가대세가 되어

버린 세상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인간의 보루일 수도 있다. 마지막 챕터엣

이야기하는 ‘통제의 역설’과 ‘권한위임’은 그가 단순히 발명가가 아닌 행정가이며

사업가의 면모를 갖추었음을 보여 준다. 인간 리더는 기존의 세세한 관리, 보다는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터(Human Orchestrator)로 진화하고 있고 관리의 엄격함과

혁신의 자우로움의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 ‘활성적 리더’로서의 본질적 역할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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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조건 : 야망은 큰데 왜 아직도 평범한가 ㅣ 세계척학전집 6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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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철학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은 철학으로의 접근 가능성에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실제 철학은 좀 어렵다. 쉽게 설명한 철학 개념이라고 해서 시작하지만

조금만 들어가면 벌써 머리부터 지끈거린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우리는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것도 아닌데’라는 이유로 자위한다. ‘철학하기’란 나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근원적 질문들에 대해 새삼 고쳐묻는 헹위를 말하는데 이는 스스로 다시 질문하고

의문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초월의 가능성을 가지지만 모두가 초월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병철의 자기 착취는 신선하다 못해 섬뜩하다. 2010년 그는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을 착취하는 것은 더 이상 외부의 주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끝까지

쥐어 짜며 그것을 ‘자기계발’이라 부르며 흐뭇해한다. 자기를 넘어서라는 그 명령,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그 목소리가 사실은 가장 정교한 착취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이 자발적 착취에서 멈춰야 하며 우리에겐 멈출 용기와 의지 그리고 결단이 필요한데

롤 메이는 이를 ‘창조적 용기’리고 말하며 이를 악문 의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한다. 떨면서도 손을 움직이고 발을 내 딛는 사람이 결국 이루는 것이다. 자기를

넘어서는 일은 떨림이 멎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떨리는 손으로 첫 획을 긋는

것이다.




철학의 안경을 쓰고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는 경험은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키워준다. 우리는 정답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불확실성의 세상은 진리에 대한 탐구와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기에 대부분은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철학의 안경을 쓴다는 것은 사물과 현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다양성을 의미하고 철학자의 어깨 위에 선다는 것은 그들의 시선과 안목으로

세상과 현상을 바라보는 현명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다만 누구나 도수가 다른 안경을

쓰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철학이 존재하기에 선택은 늘 그렇듯 본인의 몫이다.

철학은 세상을 보는 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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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야, 마흔!
송효지 지음 / 이너뷰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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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잘 하는 저자의 삶과 자기와의 협상의 지난함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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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야, 마흔!
송효지 지음 / 이너뷰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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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칭한다. 어느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헷갈리지 않는

나이를 의미하는 않는 불혹이란 세상에 더 이상 유혹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유혹을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는 뜻이다. 욕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욕심인지

알게 되는 나이이고 무엇에 흔들릴지를 선택할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 세상과 나

사이에서 혹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나이를 의미한다. 어쩌면

불혹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굳어져 가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어느덧 마흔이 되어서야 균형 잡는 법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삶에서

세상에서 관계에서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을 경험하며 수도 없이 흔들리지만 그것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숨기려고 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며 자신만의 균형을 유지한다.

세상은 척하는 것에 익숙하고 당연한듯 보이지만 저자는 정면으로 이에 맞선다. 삶은

오롯이 나로 살아 내는 것이고 누군가의 시선과 목표가 아닌 스스로가 만든 목표와

가치를 이루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누가 대신 가주는 길이 아닌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그 길에 돌부리도 낭떠러지도 가파른 오르막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이다. 힘들면 쉬어 가도 좋고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리며 달래며 걸어가는 그 길이 우리의 인생이고 삶이다.




스스로를 ‘휴먼 인사이터(Human Insighter)’라고 부르는 저자는 ‘영혼을 담는다는

건 ’리얼(real)'로 살겠다는 의지’라고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아프면 아픈대로 사는 것이다. 감추고 위장하고 꾸밀 이유가 없다. 그래서인가. 저자의

‘그러려니’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이 주로 사용

한다는 이 단어가 그렇게 위안이 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름을 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지혜며 통찰이다. 자신 안에 존재 하는 항아리를 비우기

위해 저자는 지금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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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詩로 태어나다 - 비울수록 맑아지는 삶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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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스님이 남긴 고언들을 중심으로 쓰여진 저자의 글들이 담겨 잇다. 어렵고

힘들고 지치고 낙심될 때 곁에 두고 읽으면 위로가 된다. 살며시 다가와 깊은 울림을

주며 오랜 여운을 남기는 스님의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




'쉼은 삶의 정지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쉼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고역일

뿐이다.'라는 글인데 결국 스님은 쉼을 '놓음'이라 말하고 쉼이 삶을 살찌게도 하고

빛나게도 한다고 말한다. 삶을 살아가며 쉼을 포기해야 할 이유보다 쉼을 쟁취해야

할 이유가 더 많이 생각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쉼과 나아감의 균형을

유지하며 말이다. 스님은 항상 물으셨다. '나는 누구인가?'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다음 행보가 가능하다. 존재 증명도 가치증명도 못하면서 목적을 위해 질주하는 것은

고장난 폭주 기관차와 같다. 때문에 스님은 '묻고, 묻고, 또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물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내는 것, 이것이 무소유의 시작이다. 얽혀있는

것들에서 놓아 지는 것, 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주는 것 이럴때 번뇌에 물들지 않고

생각이 흔들리지 않는다. 작은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삶, 스님은

그런 길을 걸으셨다. 휴식은 삶을 버텨야만 하는 것에서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며,

일을 넘어선 삶이 보이고, 자아를 깨닫게 하며,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난 축복과

자유를 누리게 하며,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며, 단지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휴식은 결국

자신에게 자유를 부여하며 축복을 인정하는 과정인 셈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 중 '고독은 인생에서 동반해 가야할 필수 친구다'라는 글귀가 있다.

고독은 느끼는 주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다. 혼자

있으면서 고독하다고 느끼게 되면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강하게 내포된다.

이와 반대로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가 아난 홀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감정은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감정을 가진다. 혼자 있으면서 고독감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 속에 고립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혼자 있으면서 고독력이 있다는 것은 고독을 즐기며 타인과 함께

나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에 대해 ‘침묵에 듦으로써 안 들리던 소리를 듣게

되고 안 보이던 길이 보일지니 홀로 있음은 정년 홀로가 아닌것을 보라 저 엄숙한 홀로

있음의 고요함을’이라고 표현한다. 헬스장에 가서 근력을 키우듯 고독을 키우는 힘도

꾸준히 마음속 근력 운동을 통해 증대시켜야 한다. 언젠가는 혼자가 되어야 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과 행동 뿐만 아니라 고독에서 조치도 독립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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