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이명지 지음 / 수필in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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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든다. 하고 싶지 않은 것 안하기라고 당당히 말하는 저자가. 그 중 세수 안하기와

드러누워 뒹굴기, 맘껏 게으름 피우기는 아주 그만이다. 원초적 욕구에 충실하고 구속받지

않기에. 그러면서 내심 불안해진다. 그리 길지 않을 이 방종의 끝을 알기에.

Social Position. 우리를 참 주눅들게 하는 단어다. 이것 때문에 누르고 참고 억제하고

가두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저자에게 있어서 소셜

포지션(계급장)을 놓은 자신은 그저 스텝이 꼬여 버벅거리는 대책없이 나이든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자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더는 젊지도 주목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위축된다. 여기까지가 시작이다. 이후 저자의 삶은 반전이며 도전이며

새로움이다.

모른 다는 것. 무지는 많은 불편과 비용과 시간과 감정소모를 초래한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을 때도 그랬다. 처음 집을 구입하고 전체를 리모델링할때 동네 이장님(지금은 누구 보다도

친하고 챙겨주신다)이 찾아와 공사를 방해(?)했던 것도, 첫번째 겨울에 바깥 수도(사실 이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보온 장치를 안해줘서 2주동안 물 때문에 생고생을 했던 것도,

서울과 부산에 일이 있어 40여일을 비운 집 마당이 정글로 변해 버린 것도, 한우가 유명한

곳이라 그거 먹으러 찾아 오는 지인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지쳤던 것도 저자와 흡사하다.

모르는 세계는 설레지만 한편 두렵다. 미지에는 무지도 포함하고 있기에 설렘 가득한 미지를

무지라는 용기로 건너왔다. 저자도 그랬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을 태워 무늬를 얻어내는

일이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모두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에 무늬져 있다. 그것이 어떠하든

누구도 자신이 만든 시간의 무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게 우리 삶에 무늬가 새겨지기에

우리는 돌아보며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님의 '늙어서 편안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말이 실감난다면 우리도 나이들어 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다만 잊고 있을 뿐 인연에 빚진다. 그래서 저자의 이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지금의 내 몫. 뒤에 오는 이에게 돌부리 하나라도 걷어내 준 삶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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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 관계의 벽을 허무는 하버드 심리학자의 대화 수업
몰리 하우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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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과에 집착한다. 사과의 가치는 보편적이며 시대마저 초월하지만 사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른 사과(용기있는 사과)는 손상된 관계를 회복시키고, 외로움과 수치심을

달래주고, 관계를 돈독하게 해 보다 친밀하고 문명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속에서 사과의 완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나쁜 일을 한다. 판단 미스나 칠칠치

못한 실수, 상황에 맞지 않는 과민반응, 습관적인 하얀 거짓말, 보이지 않는 실수나 사소한

기만행위 등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 보여졌으면 하는 모습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히브리어에서 죄악(sins)을 뜻하는 단어는 과녁을 놓쳤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말은 넘쳐도

모자라도 그것이 상대에게 죄가 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과녁을 벗어

나거나 과녁에 못 미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주 잘못을 저지르며 다른 사람의

실수는 민감하게 알아차리면서도 자신의 실수에는 무심하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잘못된

일을 저지르며 어느 시점에서든 후회할 이유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코 자존감을

낮추는 쓸모 없고 해로운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원인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하도록

독려하기에 저자는 이를 '좋은 죄책감(a good sense of guilt)'이라 부른다. 이 생산적 죄책감

(불교에서는 '현명한 자책'이라 부름)은 수치심과는 구별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죄책감'과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는 '수치심'은 명백히 다른

경로로 발현되며 다른 결과를 수반한다. 일반적으로 수치심은 숨거나 달아나거나 부인하거나

남의 탓을 하는 반면 죄책감은 같은 문제들과 역관계를 가진다.

효과적인 사과의 시작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유를 설명하거나 변명하거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하거나 반박할 때도 아니고 자신의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덜어낼 순간도 아니다. 이 시간은

상처 입은 사람이 무엇을 겪고 느꼈는지 듣고 이해하는 시간이다. 듣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용적 행위이다.

저자는 이 책의 곳곳에 '진심'과 '진솔'이라는 단어를 포진시켰다. 진솔한 사과는 보복이나 분노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게 아니라 양쪽 또는 관련된 모든 당사자가

온정어린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때 자신의 입장을 굽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과는 정신의 안녕을 증진시키고 인간적인 확장과

성장에 기여한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의 말을 남긴다. '내가 인간 관계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한 다음에 나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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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쉽 - 잠들어 있는 내 안의 검은 양을 일깨워라
브랜트 멘스워 지음, 최이현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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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목적의식을 가지고 싶어 하며 목적의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방향이 정확해야 목적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책은 '무엇'을 찾아 주지 않는다. 다만

'무엇'을 찾을 수 있는 길로 데려가서 무엇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왜'에 따라 살 수 있게

돕는다.

블랙 쉽(black sheep). 일반적인 흰 양이 아니라 검은 양이다. 우리의 편견과 확증편향은 검은

양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사실인양 믿으며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따돌림의 대상으로

여긴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검은양일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 안에 미처 인지하지 못한 힘이

존재하며 그 힘은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방법으로 인생에서 놀라운 일을 펼치게 할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검은 양 가치(black sheep values)'라소 말한다. 검은 양 가치에는 창의성

(creativity), 희망(hope), 영향력(impact), 공감(emphathy), 가족)family), 진정성(authenticity)이

있다.

이 책에서 확증편향과 유사한 성격의행동을 발견했다. 결과로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행동으로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다. 실제로 우리는 결과를 보고 중요한 결정을 한다

우리중 누구도 결과를 통제할 수 없는데 말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목적의식 뿐이다. 이에 저자는 결과를 통제하려는 억지스러움 보다 자신의

검은 양 가치를 발견하고 모든 사실을 파악하며 순간의 감정을 존중하라고 주문한다. 결과

대신 결정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

진실한 삶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런 삶은 주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 당겨 스스로에게

혹은 그들에게 위안과 동시에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마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믿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무엇'은 삶의 핵심가치이며 이 '무엇'은 우리의 '왜'를 좌우하고 '어떻게'를

결정한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 삶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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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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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인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를 읽으며 삶을 뒤돌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도 하고

질문도 하고 아쉬움의 한 숨을 쉬기도 했다. 저자가 운영하는 연남동 카페 공명은

크로아상 앙버터가 맛있는 집이다.

삶은 결국 '왜'와 '어떻게'의 연속이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삶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내 인생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삶에 어느것도 남지 않은 것만 같을 때'가

숙명처럼 찾아 온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보단 해야만 하는 일을 해온 우리에게 이 시간은

고통이다. 잘하지 못하면 못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것과 같은 막막함을 가져온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대부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가끔 자신 앞을 지나가는 운명을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세상 속애서 균형을 잡기란 마치 굴러가는 공 위에 몸을 실을 것 같이 어렵고 위태롭다.

신체도 정신도 마음도 행동도 균형이 맞지 읺으면 결국 탈이 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대부분 '편향적'이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중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하고 받아들여 믿는 선택적 수용, 즉 확증편향을 한다. 조금 덜 책임지고

샆고 조금 덜 고통 받고 싶고 조금 덜 부대끼고 싶기에 우리의 편향은 오히려 자유롭다. 좋은

모습 ,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노력이 필요함을 인지하면서도 일단 피하다 보니

'균형'은 이미 무너져 버린지 오래다. 무언가 해내고 싶고, 하고 있는 중이라면 분명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을 것이고 내가 가는 방향을 방해하는 존재도 등장할 것이다. 사실 이때가 내가

옳바른 길,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과

지금 당장의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양극단에 위치해 있다고 말한다. 'No pain, No gain'

저자가 사무실 앞 보도블럭 사이로 피어난 잡초를 보고 '너도 참 애쓴다'고 생각했던것 처럼

우리의 삶은 그 잡초와 같이 '참 애쓰는 삶'이어야 한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

1440분이 어떤이에게는 '크로노스(kronos)'가 되고 어떤이에게는 '카이로스(kairos)'가 된다.

나 여기있다고 뽐내거나 티내지 않고 어디서든 꿋꿋하게 '제 속도'를 가지는 잡초가 살아남으며

그 자리를 견딘것 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치열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내가 걷는

길은 가봐야 알 수 있고 나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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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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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저자가 얼마나 재미있게 다시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원전에 가깝게 썼느냐를 눈여겨 보라고 말한다. 억지로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기 보다는 위대한 작가들이 주제에 적합하다고 여긴 방식으로 써내려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 각각의 작가들의 차이점을 독자들이 뚜렷이 구별할 수

있게 전개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아는 토마스 블핀치(Thomas Bulfinch, The Age of Falde)가 아닌

이디스 해밀턴(Edith Hamilton)의 작품이다. 이디스 해밀턴은 교사에서 은퇴한 후 63세에

처녀작인 'The Greek Way'를 출간하여 대중적 사랑과 인지를 넓히게 되었고 '진리의 증인

: 그리스도와 그의 해석자들'(1949)과 '신의 대변인'(1949)등의작품을 집필하였고 토마스

블린치와 더불어 2대 신화 작가로 불린다.

까마득히 먼 옛 고대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신화는 자연친화적이다. 대부분이 땅과 나무, 바다, 산,

꽃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를 통한 상상력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냉철한

이성은 불필요하며 우리는 신화 속에서 님프를, 나이아니(Naiads, 물속 요정)를 만날 수

있다. 뿐인가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프로테우스, 제우스와 그의 형제인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비롯한 올림푸스의 열두명의 신들도 만난다. 아는가. 제우스와 그의 형제들이

우주를 놓고 제비뽑기를 해 바다는 포세이돈에게 지하 세계는 하데스에게 제우스는 만물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겨우 제비뽑기로.

우리의 상식은 '신=완벽'이다. 그래야 신답고 신은 그래야 한다. 전지전능하기에 그들에게서

실수나 약점이 발견되어서는 안됨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산들 중 대부분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누가봐도 어리석은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고, 사랑을 하다

어이없게 배신당하고, 눈노 가득한 복수혈전을 벌이기도 하고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이라는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진시황이 그렇게도 목 매었던 '불노장생'이 산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비극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특징은 에피소드 중심이 아니라 신의 이야기, 왕국 이야기, 영웅들의 서사, 사랑, 모험,

여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가문들이(아트레우스 가문, 테바이 왕가, 아테네

왕가) 상세하게 소개되었고 가계도를 배치하여 흐름과 관계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맨

뒤편에 위치한 그리스 로마 신 이름 비교는 각각의 이름이 어떻게 다르게 불리는지 알수 있다.

흔히 우리가 아는 제우스(그리스 식) - 유피테르(로마 식) - 쥬피터(영어 식, 목성)등은 물론이고

포세이돈(그리스 식) - 넵투누스(로마 식) - 넵툰(영어식, 해왕성)등 20여명의 신들의 이름을

각각 표기하여 이해를 돕는다.

이 책 두껍다. 무려 500여 페이지가 넘는다. 불리워지는 이름도 어렵다.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계도와 흐름을 짚어가며 읽어 나가면 어느새 마지막 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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