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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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대 여류 작가중 하나인 에쿠니 가오리의 책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을 받아

들면서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다."낮도 밤도 아직 가거나 오지 않았다."

아직 우리에게는 낮도 혹은 밤도 오지 않은 여백과 빈자리들이 넉넉히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띠지의 글귀를 통해 메마른 나무와 같던 나의 감성에 단비는 이미 내리기

시작했다

미노루라는 이름의 주인공.
그는 50대의 중년 남성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 덕분에 특별히 무언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모습만으로도 부러운 존재이다. 유유자적하며 느린듯 여유로운 그의 모습은 어느 정도 샘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이다. 현실과는 조금 떨어진 생활을 하며 책 읽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모습은 대단함을 넘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으며, 무언가 집중하려 해도 잘 안되고 뭔가 해보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은 중년의 남자로서 미노루는 분명 부러움 그 자체이다.
이미 나이는 50을 훌쩍 넘은 어른이지만 마음과 생각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순함을 지닌 그의 모습은 읽는 내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현실과 이상이라는 부조화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헤쳐 나가는 미노루의 모습을 통해 십여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의 전처인 나기사가 이혼 서류를 접수한 후 찾아 왔을 때 나누었던 대화는 상쾌하다라는 느낌이 날 정도로 담백하고 좋았다.
먼저 서류를 접수한 직원의 말 "수고하셨습니다" 이혼 서류를 접수한 사람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어디 있을까? 그동안 사느라 수고하셨고, 어렵게든 아니든 이혼을 결정하느라 수고하셨고, 판결을 받느라 수고하셨고, 이렇게 접수를 하게 되니 정말 수고하셨지 않은가.
구차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직원의 말처럼 수고한것이다.
또 하나.
그렇게 서류를 접수하고 온 나기사에게 차카의 가게에 가서 한잔하며 나머지 이아기를 더 듣자고 말한 후 던진 한마디.
"지금 좀 긴박한 장면이라서 이 장이 끝나는 데까지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안될것 같아"라고 던지며 현실이 아닌 다시 이상 혹은 그만의 현실로 돌아가 책을 펼쳐드는 그의 모습은 무언가 얽매이고 종속되어 자신의 가치와 의미마저 상실한 것 처럼 살아 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사이다 같은 말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생의 황혼으로 달려가는 삶의 모습이 투영되어 놀라움과 반가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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