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
추성은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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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익숙함의 오해를 가장 많이 가져오는 성경의 부분이 바로 ‘룻기’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작 그 안에 흐르는 당시 고대 근동 지방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상실감과 절규와 탄식은 사실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흔히 고생 많이 하던

룻이 보아스라는 좋은 부자를 만나 잘 살았다라는 해피 엔딩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성경은 그 안에 남겨진 이의 고통을 취약하고도 척박한 생활을 제도가 가진 양면성과

야비함, 외국인 노동자로서 겪어야 하는 편견과 부당함을 지적하며 지금의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건넨다. ‘나그네를 잘 섬기는가?’



룻기를 가로지르는 ‘헤세드’는 종교적 사랑의 차원을 뛰어 넘는다. 그것은 삶의

돌봄이며 함께함이며 동행이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통해 보여지는 돌봄과 함께함은

고부간을 뛰어 넘는다. 그 방법이 아니어도 되는데 선택함 함께함은 끝까지 곁을

지키며 함께 하는 연대와도 같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go'el 제도’는 공동체의

결속을 위하여 친족들 사이에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규칙들로 속량하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룻의 경우엔 신명기의 ‘수혼법’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저자는 여기에서 고엘제도를 이갸기하는 점도 흥미롭다. 당시 여성이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상실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위치와 보호, 생게에 대한 모든

수단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데 이런 상황을 보완해주는 제도가 ‘고엘’이다. 남겨진

이들인 나오미와 룻의 모습은 고부간을 넘어서 동반자와 같다.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고 조언하고 존중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가득한 지금의 모든 관계들을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각장의 말미에 그때의 질문을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며 진지하게 다가온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남겨진 이들의 아픔과 이방인들이 겪는 편견, 젠더 간의 갈등, 소외된

이들을 향한 시선, 관계 속에 벌어지는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룻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나오미의 이름이 제목으로 사용된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네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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