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 - 두 번째 까미노, 포르투갈 길을 걷다
이윤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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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음은 자신이 걷는 그 길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저자의 두번째 산티아고는 그렇게 시작된다 누군가에게는 '왜

그걸 굳이'라는 말이 될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것 자체가 삶의 의미이며 완수해야

할 사명 일수도 있기에 섣부른 예단은 필요하지 않다.



익숙함에 지친 이들은 다름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길은 익숙함에 비해 조금은 어렵고

험난할수도 있지만 그 길이 주는 매력은 그 길을 가 본 이들만 알수 있다. 해서 누군가의

이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길이 거기 있어도 내가 걷지 않으면 산도 길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네 삶이 그렇다. 해 보지 않으면 그건 그냥 '그림의 떡'이다.

아무리 맛있어 보이고 아무리 멋져 보여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저자가 그 길을 걷는 또

다른 이유이고 ‘천천히, 꾸준히 그러나 끝까지’는 쉽사리 포기하고 좌절하는 우리에게

시금석이 된다.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결국은 완주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기에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인생이 되어 간다.



저자의 글에서 십여년전 내가 걸었고 묵었던 그곳들을 여럿 발견했다. 반가웠고 기억이

새록새록해 오래된 사진들을 들춰보았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그곳은 포기하고 싶은

곳이었고 다시는 안 오리라 다짐했던 고난의 길이었다. 그래서 저자의 글에 더욱 흥미가

갔다. 왜 다시 그곳을 갔을까? 역시나 ‘그리움’이었디. 그곳에 가면 엄마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엄마를 생각하며 걸었다. 의사도 만류하는 불편한 다리로

매일 10km 정도의 거리를 걸어야 함에도 무작정 떠날 수 바께 없었던 것은 ‘그리움’이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바라다 보는 전경은 분명 몇일전 누비고

다니던 그곳이고 지나온 그곳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그곳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저자도 그랬다. 아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난다. 친절한 저자는 본인이 걸었던 거리와 묵었던 숙소와

식사 비용까지 알려 준다. 스페인 대부분 마을에는 식수대가 있어 편리하고 삶은 문어

요리인 뽈뽀와 절인 대구 요리인 바칼랴우는 정말 맛있다. 매일의 일상과 함께 소개되는

사진들은 정감있고 기억을 재생시키기에 충분했다.



여행은 철저한 자기 결정 과정이다. 계속함도 중도에 멈춤도 그냥 포기함도 자신이

결정한다. 자신의 방법대로 속도대로 그렇게 걸어 나가는 것이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운동이고 수련이며,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자기 존재를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이유가 있고 당위성을 가진다.

각자의 위치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획일화되고 의식화된 사고를 가진

우리에게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아직은 한참 먼 미래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죽음 같은 밤을 경험한 뒤 아침에 새로운 생을 부여받은 세포가

걷는 것은 자신과 만나는 명상이며 아침에 걷는 것은 그날 태어난 새로운 나에 대한

축복의 의식이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공존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다시 짐을

꾸릴지도 모른다. 저자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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